메뉴 건너뛰기

close

민주당 최재성 대변인이 대변인직을 물러나며 3일 국회 정론관에서 고별 브리핑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노영민 신임 대변인.
 민주당 최재성 대변인이 대변인직을 물러나며 3일 국회 정론관에서 고별 브리핑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노영민 신임 대변인.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민주당 대변인이 교체됐다. 정세균 당 대표는 최재성 대변인의 사의를 받아들여, 노영민(청주 흥덕을, 재선) 의원을 새 대변인으로 임명했다. 김유정 대변인과의 남녀 공동대변인 체제는 계속 유지됐다.

평소 만담형 논평으로 유명한  최 대변인은 3일 고별브리핑에서도 "역대 대변인 중 가장 큰 얼굴로 국민들을 놀라게 한 기억이 있다. 그런데 방송카메라 기자들이 일반 정치인과 비슷한 크기의 얼굴로 잡아주셔서 국민들이 불안에 떨지 않고 안전하게 생업에 종사하게 해주셔서 특히 감사하다"고 말해 국회 기자들이 폭소를 터뜨리게 만들었다.

"강부자씨 만났는데 이름 쓰지 말라고 신신당부해 그뒤로 안썼다"

그는 또 "제일 죄송한 분이 있다"면서 "석달 전에 어느 행사장에서 (탤런트) 강부자씨를 만났는데 앞으로 자기 이름 좀 쓰지 말라는 신신당부가 있어 그 뒤로 저는 강부자(강남 땅부자) 내각이나 강부자 정부라는 말을 안 썼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대변인에 대한 국민적 착시현상은 벗어던져야 한다고 본다"며 대변인 생활의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그는 "정쟁이 격화되고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서 격동의 정치현장을 지켜야하는 대변인은 정당적 입장에 충실해야 한다는 기본적 책무가 있기 때문에 그것은 당리당략이 아니다"면서 "대변인의 입을 통해 희망의 언어, 기쁨의 언어를 찾아야한다는 것은 현실을 외면한 지나친 강압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변인간의 회식이나 소주자리가 마치 통합이나 화합을 예고하는 것처럼 비쳐지는 것도 사실 국민을 혼란스럽게 하는 행위"라고 덧붙였다. 극단적인 갈등이 구조화돼 있는 우리 정치 현실에서,  최전선 첨병 역할을 맡고 있는 대변인들이 부드러운 용어를 쓰기 어렵다는 고충을 토로한 것이다.

최 의원은 열린우리당 시절인 2007년 2월에 처음 당 대변인을 맡았었다. 23개월 동안 대변인으로 일하게 되는 시작이었다. 당시에도 정세균 의장의 발탁이었다. 대통합민주신당에서 원내 공보담당 부대표를 맡아 옛민주당과 통합한 뒤에도 계속 원내의 입역할을 했다. 지난해 7월 정세균 대표 체제가 출범하면서 다시 당 대변인을 맡았다.

동국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최 대변인은 유머와 풍자를 깃들이면서도 매우 신랄한 논평으로 주목받았다. 그러면서도 지난해 대선과 18대 국회 출범 과정의 치열한 전투 속에서 한번도 고소고발의 대상이 되지 않기도 했다.

그는 평소 "대변인직을 떠나, 지지세력이 크게 왜소해진 민주당의 집권방안을 큰 틀에서 고민해보고 싶다"는 뜻을 밝혀왔다.

시인 출신 노영민 "제 스스로 납득못하는 평가는 않겠다"

신임 노영민 대변인은 등단한 시인 출신으로 민주당이 1차 '입법전쟁' 과정에서 크게 효과를 본 '휴대전화에 자유를, 인터넷에 자유를, 방송을 국민에게'라는 표어를 만들어낸 주인공이다.

충북 청주 출신으로 1976년에 연세대 경영학과에 입학해 1977년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된 데 이어 1980년에는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수배ㆍ제적을 당하기도 했다.

노동운동과 지역시민운동을 거쳐 1999년 새천년민주당 창당준비위원으로 정계에 입문했고 17대 때 열린우리당에서 당선됐다.  당내 비주류세력의 조직인 '민주연대' 조직위원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민주당에서는 정세균 대표가 지역과 비주류에 대한 안배를 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는 이날 대변인으로서는 처음 국회 정론관에 나와 "제 스스로 납득하지 못하는 발언이나 평가는 하지 않으려 한다"고 각오를 밝혔다.

노 대변인은 이어 '용산참사, 시국미사, 검찰수사'라는 제목으로 첫 논평을 했다.


태그:#최재성, #노영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