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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오랜만에 쿠하와 함께 전시회 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이번에는 엄마와 쿠하가 모두 좋아하는 그림책 원화를 보는 전시회였습니다. 평소에는 엄마가 좋아하는 작가의 전시회를 보러 가는 게 다반사이지만, 이렇게 그림책을 주제로 하는 전시회는 아이와 엄마가 함께 즐기기에 좋은 시간입니다. 아직은 봄바람이 차갑고 쌀쌀했지만, 겨우내 집안에 갇혀 있던 탓인지 아이는 추운 줄도 모르고 기분 좋게 제 발로 걸어다닙니다.   

 

1967년에 처음으로 열린 이탈리아 볼로냐 국제 그림책 원화전은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그림책 공모전입니다. 해마다 개최되는 공모전은 매년 다른 심사위원들이 심사를 맡아 공정하게 선정하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이탈리아 볼로냐와 일본 5개 도시 순회전시를 마치고 우리나라에서 지난 1월 24일부터 열리는 이번 전시는 내일, 3월 1일까지 조선일보 미술관에서 볼 수 있습니다.

 

지난해 전 세계 54개국에서 2598명의 작가가 응모했고, 그 가운데 99명이 입상의 영예를 안았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작가로는 유일하게 이경국의 <바보 이반>이 전시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괜히 반가웠지요.

 

많은 작품이 한꺼번에 전시된 대형 전시에서는 아이들이 자칫 지루해 할 수 있는데, 이럴 때 기념 엽서 몇 장을 미리 사주고 숨은 그림 찾기 놀이를 하며 천천히 구경하도록 하면 좋을 듯합니다. 쿠하는 전시장 입구에서 판매하던 일러스트 엽서와 배지를 사주었더니 전시장에서 구경하다가 만나는 엽서 속 그림을 보면 "찾았다, 엄마, 여기 있어요!"하고 반가워 했습니다.

 

전시회가 열리는 조선일보 미술관 옆에는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이 있습니다.

1926년 미완성 건물인 상태로 축성된 이후 1996년에 와서야 원래의 설계도 대로 완공된 근대 건축물입니다. 덕수궁과 이웃한 성당은 수녀원 건물의 출입문을 한옥 대문으로 해 둘 정도로 한국식 건축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을 차분하게 조화시킨 공간입니다. 성당을 설계할 때 고딕양식으로 할 경우 덕수궁과 어울리지 않을 것을 염려해 보다 부드러운 이미지로 선택했다고 합니다.

 

청록색 순교자 기념 조형물이 성당 앞에 앉아 있고, 유월항쟁이 시작된 곳이라는 돌에 새긴 글자를 읽지 않아도 낮 12시만 되면 울리는 종소리에 괜히 마음이 숙연해지는 곳입니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상을 보더니 갑자기 쿠하가 배꼽 인사를 합니다. 언젠가 성당에 갔을 때 수녀님들이 예수님과 마리아님 앞에서 두 손을 모은 채 꾸벅 인사를 하던 모습이 떠올랐는가 봅니다.

 

볼로냐 원화전에서 걸어서 십오분, 성곡미술관 그림책 축제

 

볼로냐 원화전을 보고 가볍게 점심을 먹은 뒤, 피곤해 하는 아이를 달래 근처에 있는 성곡미술관까지 걸어갔습니다. 동생이 생겨서 이제는 엄마가 저를 안아주거나 업어줄 수 없다는 것을 잘 아는 쿠하는 보채는 대신 주스나 사탕, 초콜릿을 사달라고 흥정을 하기도 합니다. 사탕 두 알로 십오 분 거리에 있는 성곡미술관까지 걸어서 이동했습니다. 엄마의 체력이 받쳐 주었다면 흥국생명 빌딩 로비에 전시된 작품들도 구경하고 갔을 텐데, 두 아이를 데리고 다니려니 도저히 그럴 여유가 없었습니다.

 

지난 가을 이후 성곡미술관 앞은 작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림책 <나의 사직동>에 나올 듯한 오래된 집들이 하나둘 카페로 변신하고 있습니다. 50년 가까이 된 집을 개조해 단골이 되고 싶은 멋진 카페로 바꾸는 것은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반가운 일이지만, 그림책 속 옛집들이 사라지는 것이 독자의 입장에서는 안타까운 일이기도 합니다.

 

그림책 축제가 열리는 성곡미술관 1층 전시실에는 축제 선정작들이 공개되어 있습니다만, 아이와 함께 보기에는 적당한 분위기가 아니어서 그냥 지나쳤습니다. 마치 보석 갤러리에서 고가의 보석을 보는 분위기 같지요? 어두운 공간에 머리 위에서 내리비치는 조명 빛을 받으며 책을 보게 되어 있어 눈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CJ그림책 축제는 올해 처음 열리는 그림책 전시회입니다. 100여 권의 책이 그림책 축제에 초대되었고, 일러스트 공모전에 출품된 작품 원화를 볼 수 있는 행사이지요. 우리가 미술관을 찾은 날, 운 좋게도 <내 꼬리>의 조수경 작가의 낭독회가 있었습니다. 미처 본 적 없는 그림책을 현장에서 한 권 사주니 아이는 좋아하며 작가의 사인도 받았습니다.

 

작가 선생님이 직접 읽어주며 해설해 주는 행사는 아이도, 엄마도 처음입니다. 이런 행사가 자주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전시회 한쪽에 마련된 '그림책 서재'에서는 마음에 드는 책을 자유롭게 골라서 읽을 수 있습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스타일과 엄마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이렇게 다릅니다. 쿠하는 볼로냐 전시회와 그림책 축제에서 본 모든 그림들 가운데 위에 있는 빨간색 그림이 제일 마음에 든다고 했습니다. 빨간 배경에 귀여운 표정을 한 아이가 입은 옷은 진짜 옷감을 잘라 붙인 그림입니다. 실로 리본을 만들고 옷감으로 옷을 잘라 붙인 아이디어가 어린 쿠하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엄마 눈에는 스페인 작가가 그린 'Why this way'가 제일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다들 똑같은 길로 가는 데 저 빨간 옷을 입은 아이만 다른 방향으로 가는 내용의 그림들입니다. 아크릴 물감이 번지는 느낌으로 그리다 만 그림처럼 그려진 저 작품이 그림책으로 만들어진다면, 한 권 사주고 싶습니다.

 

올해 처음 열린 그림책 축제에는 미국 출신의 유명 그림책 작가 데이비드 위스너가 초대 작가로 선정되었습니다. <자유낙하> <이상한 화요일> 등으로 유명한 작가는 1988년에 처음으로 책이 한국에 번역될 때 우리나라를 방문했다고 합니다. 20여 년이 지난 올해 그림책 축제의 초대 작가로 한국을 방문하게 된 그는 영광스럽다는 멘트로 전시장 입구에 긴 감사의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집에서 늘 보던 그림책이 전시장 벽면을 가득 채운 작품으로 보여지는 모습에 아이들은 신기해 합니다. 어른이 봐도 색다른 느낌인데 아이들 눈에는 얼마나 신기할까요? 성곡미술관 별관을 데이비드 위스너 특별전으로 꾸며 놓아 아이들의 눈을 즐겁게 합니다. 거대한 개구리 조형물과 민들레 홀씨가 날아가는 듯한 설치작품을 준비해 둔 것도 작품을 더 입체적으로 느끼게 해 주어 좋습니다.  

 

달력이 또 한 장 넘어갑니다. 3이라는 숫자만으로도 봄기운이 확 불어옵니다. 봄날을 맞이하는 2월의 끝, 3월의 시작에서 아이들과 함께 그림책을 소재로 한 원화 전시회로 나들이 다녀왔습니다. 작가의 손맛이 느껴지는 그림들을 보면서 그림책 내용을 상상해 보기도 하고, 생략된 줄거리들을 꾸며보기도 했습니다. 투명한 수채화부터 둔탁한 유화, 매끈한 컴퓨터그래픽과 다양한 재료를 섞어 쓴 작품까지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여럿 구경할 수 있었습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볼 수 있는 다음 번 그림책 전시가 벌써부터 기다려집니다.  

덧붙이는 글 | 볼로냐 국제 그림책 원화전은 어른 7000원, 초·중·고생 5000원, 유치원생 3000원입니다. 어린이 체험교실 '상상보따리' 참가비는 1만5000원이며 인터넷(www.bologna.co.kr )에서 미리 예약을 해야 합니다. 

성곡미술관 CJ그림책 축제는 어른 6000원, 학생·청소년 4000원입니다. 



태그:#그림책 , #걷기, #쿠하,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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