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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강사여 일어나라.

사람이 자살했는데... 심각한 문제 아닌가?

교수와 함께 식당에 갈 때 느끼는 굴욕감이란...

당장 작은 이익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연대를 선택해야 된다.

젊은 강사들에게 연구기회를 많이 줄 수 있는 환경이 되어야 한다.

 

실력 없는 교수들을 내보내야 한다.

학생과의 관계에서 피해의식을 없애라.

이 문제를 방치하면 '실력' 이데올로기도 무용물이 된다.

학교에서 알면 부정적인 언사를 언론에 흘렸다고 잘릴 수도 있겠군.

왜 대학교수 되려고 그렇게 안달들을 하는지, 나는 그들의 허영이라고 본다.

 

시글시글한 댓글은 두 부류였다. 격려와 공감 그리고 충고와 핀잔 등으로 갈렸다. 실로 대단한 피드백이다. 댓글 실명제와 인터넷 통신법 강화에도 불구하고 사이버 소통공간은 절대 위축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피드백은 즉각적이고 다양했다.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의 효과를 새삼 실감했다.

 

격려보다 따가운 충고와 질책이 더 많았다. 그래서 마음은 더욱 무겁고 착잡해진다. 무거운 가방을 들고 이 대학 저 대학, 이 강의실, 저 강의실을 누비며 힘든 생활을 하고 있을 시간강사들의 고통과 비애를 함께 나누고자 쓴 글에 대한 반응이 이렇게 클 줄이야. 미시적 일상사라고 밝혔지만, 워낙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기사를 쓰신 분이 교수식당부터 없애 달라" 주문도

 

이제 3년차 밖에 되지 않았지만 모든 대학 시간강사가 겪고 있을 애환을 함께 나누며 해결점을 서로 모색해 보고자 가볍게 쓰기 시작한 글이었다. 내심 침묵하고 있는 많은 강사들의 관심과 토론을 기대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표류하는 관련 법안에 대한 답답함을 호소한 두 번째 글(교수님 왜 학생식당에서 라면 먹어요?)은 금세 조회 수가 10만 건을 넘어서더니 이틀 만에 15만 건, 사흘 만에 18만 건 이상을 훌쩍 넘어섰다.

 

교수가 학생식당에서 라면 먹는 이미지를 제목에서 너무 부각시켰기 때문일까. "아직도 권위주의 시대의 유물인 교수식당이 따로 있느냐"며 "비정규직 강사문제보다 더 큰 문제인 것 같으니, 기사를 쓰신 분이 교수식당부터 없애 달라"는 한 누리꾼의 뜨끔한 주문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강사로 보이는 한 누리꾼은 "한 지방 사립대학에서는 시간강사에게 밥값을 500원 더 받는다"며 "식당이 더 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교직원에게는 학교가 매끼 500원을 지원하지만, 시간강사는 교직원이 아니기 때문에 교수와 함께 식당에 갈 때 느끼는 굴욕감이란…"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학생 처지에서 지적한 충고도 날카로웠다. "시간강사에 대한 처우가 달라져야 한다는 글의 논지는 이해하겠지만, 시간강사를 해서 그런지 약간 피해의식이 있는 듯하다"며 "중요한 건 교수력, 즉 실력"이라고 꼬집었다.

 

그런가 하면 "한 번 교수 되면 영원히 교수로 사는 철밥통을 깨야 한다"는 한 누리꾼은 "실력 없는 사람들만 내보내도 자리는 많이 빌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내보내야 할 사람들을 이렇게 묘사했다.

 

정치꾼들-무지하게 바쁘고 정치적 행사에 빠지지 않고 얼굴 내미는 사람들.

올드보이-20년 전 강의록 가지고 버티는 사람들.

경제꾼들-온갖 프로젝트에 눈독 들이며 그것을 실력으로 커버하는 젊은이들.

보직꾼들-학교 내 온갖 보직을 두루 섭렵하며 학칙과 교수들의 약점으로 버티는 인간들.

 

"이들만 내보낸다면 한국대학의 경쟁력은 두 배는 올라갈 것"이라는 재미있는 주장이다. 전적으로 공감하는 바이지만 어려운 현실이다. 이처럼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따가운 지적과 충고는 댓글뿐만 아니라 전화, 이메일 등으로도 쇄도했다.

 

"진정한 반성과 성찰 없이는 결코 극복할 수 없는 문제"

 

무엇보다 가슴 먹먹하게 한 1편의 이메일도 전달됐다. 바로 1년 전 힘든 강사의 삶을 이기지 못하고 지난해 자신이 박사학위를 받은 미국에서 자살한 고 한선경 박사의 유서 내용이 관련 자료들과 함께 메일로 전달됐다.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교원법적지위쟁취특별위원회(이하 한국비정규교수노조 교원특위)로부터다. 

이 글을 받으실 때, 저는 이곳 오스틴에서 그토록 바라던 평온한 휴식을 비로소 얻게 되었으리라 생각됩니다. 2004년 공부를 마치고 귀국 후 정신없이 일하며 보냈던 처음 1년을 제외하고는, 제정신을 갖고는 결코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았던, 어떤 보이지 않는 장애물을 넘으려 발버둥 거리며 만 4년을 보낸 후 이곳 오스틴에서 비로소 갈망하던 안식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

 

제가 삶을 마감하면서 이 글을 쓰는 것은, 더 이상은 이와 같은 비극이 일어나길 원하지 않기 때문이며, 또한 그럴듯한 구호나 정책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진정한 반성과 성찰 없이는 결코 극복할 수 없는 사항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2008년 2월 25일 미국 텍사스대 오스틴에서 고인이 삶을 마감하기 직전에 남긴 유서 중 일부 내용이다. 참담한 심경이 고스란히 배인 유서 내용은 시작부터 제대로 읽어나가지 못할 정도로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이 시려왔다. 한국비정규교수노조 교원특위는 최근 고 한경선 비정규교수 추모 1주기를 맞아 국회 앞 농성장에서 1주일 동안 엄숙한 추모행사를 열었다는 내용의 소식지도 함께 보내왔다.

 

많은 자료를 메일로 보내준 김영곤 한국비정규교수노조 고려대분회장은 기자와 통화에서 대한민국 시간강사에 대한 현 시각을 이렇게 진단했다.

 

"대학은 7만여 시간강사 등 13만5000여 명의 비정규교수가 교원이 되어 대학의 의사결정 구조에 들어오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이들이 들어올 경우 대학은 지금보다 민주화할 것이고, 또 평가에 따라 시간강사-조교수-부교수-교수로 승진하는 구조로 변할 수 있다. 비정규교수의 힘이 미약하고 전임교수가 대체로 반대하는 상태에서 학생, 학부모, 언론, 시민의 여론이 중요하다."

 

그동안 일선 대학에서 강의만 하며 느껴왔던 것보다 현실 세계의 시각은 훨씬 진부하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줬다.

 

비정규교수들 국회 앞 텐트농성 560일째라니... 그것도 모르고

 

이 외에도 기사가 나가자마자 순식간에 몰려든 많은 메일과 전화, 쪽지 등이 당혹케 했다. "이러다 어렵게 유지하고 있는 강사직도 잘리는 게 아니냐"며 걱정하는 소리도 적지 않았다. 물론 아내는 그중 한 사람이다. "잘리면 어쩌려고 비판적인 기사를 또 쓰냐"며 지금도 불안해하며 면박을 주곤 한다.

 

무엇보다 그토록 오랫동안 시간강사들을 위해 투쟁활동을 벌이고 있는 단체가 있는 것도 모르고 기사를 썼으니 그들에겐 얼마나 웃음거리가 되었을까. 불편한 심기를 더욱 불편하게 했다면 미안하고 죄송하다. 두 해에 걸쳐 국회 앞에서 1인 시위 또는 천막시위를 펼쳐오며 이 땅의 힘없는 대학강사의 교원지위 회복과 대학생의 수업권 회복, 고등교육법 개정안의 국회 교과위 상정 의결을 촉구해 온 한국비정규교수노조 교원특위 회원들이 바로 그들이다.

 

한국비정규교수노조 교원특위 김동애 위원장은 기사가 나간 뒤 전화와 이메일로 "비정규교수의 국회 앞 텐트농성이 560여 일째 돌입했다"며 "한국비정규교수노조 영남대분회도 3월 8일부터 한나라당 대구시당 앞에서 1인시위를 시작했다"고 전해왔다. 아울러 "서울대 대학생사람연대 학생들이 교육과학기술부 앞에서 5개월째 1인 시위를 한다"는 소식과 함께 자체적으로 발간하고 있는 '대학강사 교원지위 회복과 대학생 수업권 회복을 위한 고등교육법개정 투쟁소식지'도 함께 보내왔다.

 

나 홀로 느끼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동안 어려운 환경에서도 긴 투쟁을 펼쳐온 데 대해 경의를 표한다. 체계적으로 투쟁활동을 벌이고 있는 모습이 소식지 곳곳에서 묻어났다. 김 위원장은 남편(김영곤 한국비정규교수노조 고려대분회장)과 함께 투쟁을 이끌고 있어 주목을 받을만하다. 김 위원장은 "더 좋은 기사를 써 달라"며 국회 앞 천막(?)에도 초대했다. 560일째 지속돼 왔는데 관심 두지 않다가 이제야 초대를 받다니 솔직히 부끄러웠다.

 

이밖에 김 위원장은 "18대 국회에 들어서도 대학강사 교원지위 회복을 위한 고등교육법 개정안이 지난해 8월 발의되고(대표발의 이상민 의원) 12월 12일 공청회가 열려 뭔가 진전이 이뤄지는 듯했다"고 말한 후 "(그러나) 누구도 반대하지 않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이어 "그래서 올 2월말까지 대책을 구체적으로 내놓겠다던 교과부도 여전히 무대책"이라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그는 너무 많은 사연을 전화와 메일로 다 밝힐 수 없었던지 "천막농성 현장을 꼭 방문해 달라"고 요청했다. '지방에 거주하며 지방대 강사를 하고 있는 처지라 주말이나 휴일에 시간을 내어 방문할 것'을 약속하는 대신 전화와 이메일로 못 다한 애기를 나눴다.

 

"투쟁목표? 강사들의 법적 교원지위 회복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다음은 김동애 한국비정규교수노조 교원특위 위원장과 나눈 일문일답.

 

- 천막농성은 언제 시작됐는가.     

"2007년 9월 7일 국회 앞에 교원법적지위쟁취특별위원회가 천막농성을 시작해 두 해 겨울을 보내고 이달 14일로 555일째를 맞는다."

 

- 그동안 우여곡절도 많았을 텐데.

"천막농성과 1인 시위는 20명이 시작했다. 그러다가 2007년과 2008년 대선과 총선을 앞두고 7명이 중도에 이탈해 가슴이 아프다. 관련법 제정과 개정을 위한 좋은 시점이었음에도 당국과 일부 대학, 단체들의 끊임없는 회유와 당근책은 계속돼 왔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 지난해 경찰에 의해 천막이 짓밟힌 사건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사과와 보상은 받았는지.

"천막을 상시 설치해 놓고 점심시간에는 국회 앞에서 각 대학 분회 회원들과 함께 1인 시위를 벌여왔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8일 경찰 기동대가 천막을 짓밟아 박살내 그동안 텐트 안에 막대기를 세우고 움막처럼 지내왔다.

 

그날 오후 2시쯤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진보연대가 'MB악법 저지'를 위한 기자회견이 끝난 뒤 비상시국농성장 천막을 비정규교수 농성장 앞에 설치했는데, 채 5분도 지나지 않아 경찰기동대가 철거하려 달려들었고, 이를 저지하는 시민에게 힘이 밀리자 경찰기동대가 비정규교수 농성 텐트 위로 돌진해 짓밟았다.

 

국회에 '악법 저지'나 '법 개정'을 요구하는 평화적 민의를 짓밟은 반민주적 폭거에 다름 아니다.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행위다. 만약 농성인원이 농성텐트 안에 있었다면 어찌 되었을까. 차마 떠올릴 수조차 없는 일이다. 전쟁 중이라도 피차 '기거의 자리'는 함부로 짓밟지 않는 법이다. 관할 경찰서장 이름으로 사과는 전달 받았지만 보상은 요구하지 않았다. 다행히 올 2월 민주노총에서 보내온 새 텐트로 다시 쳤다."     

 

- 18대 국회 들어서는 좀 더 나아지리라 기대했는데, 어떤가?

"대학 강사 교원지위 회복을 위한 고등교육법 개정안이 지난해 8월 발의됐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아 여전히 대책이 요원하기만 하다. '2009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도 국회 교과위는 고등교육예산 증액 1조원 가운데 1500억원을 대학강사 처우 개선 예산으로 의결했으나 예결위 계수조정소위에서 전액 삭감됐다.

 

유신 때 대학강사의 교원지위를 국가폭력으로 박탈한 지 32년이 됐다. 문제는 대학강사 당사자의 권익이라는 인식을 넘어 대학의 주인인 대학생의 수업권이라는 인식을 거쳐 한국사회의 핵심 문제라는 인식으로 가고 있다. 국회에서 교원지위 회복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이 있으나 대학의 로비를 두려워하는 상태이고 교과부도 마냥 미룰 수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17대에도 3당이 각기 발의했지만 결국 폐기했고 18대에도 발의했지만 교과위에 상정하지 못했다. 아직 정성이 부족한 모양이다."

 

- 투쟁 방향이 교원지위 회복이 우선이냐, 강사료 현실화가 우선이냐를 놓고 갈리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는데.

"우리는 먼저 교원지위 회복을 원한다. 국회와 교과부 일부에서 4대 보험을 제공하고 강사료를 일부 인상하는 데 그치자는 의견도 있으나 이에 동의할 수 없다. 13만5000여 명의 비정규 교수들의 교원지위 회복 없이는 학생의 수업권 보장과 대학교육 정상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강사들의 법적 교원지위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태그:#시간강사, #비정규교수노조 교원특위, #김동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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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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