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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인  필자는 얼마 전 하숙집에서 자취방으로 이사를 했다. 하숙집과 달리 자취방은 부엌이 따로 있어 요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09학번 새내기 후배들을 초대해서 손수 요리를 해먹고 싶다는 생각에 집들이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09학번 새내기 5명과 함께 저녁 먹을 재료를 사들고 좁은 필자의 자취방에 들어섰다. 7명(필자와 룸메이트 포함)이 발 디딜 수 없을 것 같은 좁은 방이었지만 마음먹고 들어서니 다 앉을 수 있었다.

후배들이 직접 자신이 만들어 먹고 싶은 음식 재료를 샀기 때문에 당연히 알아서 요리 할 줄 알았다. 하지만 필자의 예상을 뒤집는 질문이 쏟아졌다.

09후배들 왈
"선배 저 칼질 처음 해보는데요. 어떻게 할까요?"
"유부 초밥 만들려고 유부는 샀는데 하는 방법을 모르겠어요."
"선배 김치볶음밥에 들어가는 김치는 잘게 자르면 안 되죠?"

필자 왈
"너희 집에서 부엌일 한 번도 안 해 봤어?"

"대학 와서 설거지 처음 해봐요"

부엌일을 처음 해보는 후배들이 너무 답답해서 필자는 하나 하나 무엇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기 시작했다.  

"선욱아 그릇 모자라니 설거지 좀 해줄래? 지만아 어묵탕에 들어가는 어묵 좀 잘라주라. 명민아 돈가스 좀 구워줘. 그리고 황이는 밥을 더 해주고, 완영이는 볼(bowl) 큰 거 하나만 사와주라!"

정장 차림에 소매도 걷지 않고 설거지를 하려고 했던 선욱이
 정장 차림에 소매도 걷지 않고 설거지를 하려고 했던 선욱이
ⓒ 배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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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들에게 하나하나 해야 할 일거리를 쥐어 주고 잠시 쉬고 있는데, 뒤에서 선욱이가 불쑥 "선배 저 설거지 처음 해봐요" 라고 말하였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설거지야 수세미에 세제 묻혀서 그릇을 닦고 물로 헹구면 된다고 간단히 대답했다. 하지만 선욱이는 와이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셔츠 소매를 걷지도 않고 설거지를 하려는 게 아닌가!

"너 정말 설거지 처음 해보는구나? 셔츠 소매 안 걷으면 물에 다 젖어."
"아 그런 거예요? 저 정장 입고 왔는데 큰일 날 뻔 했네요. 선배 저 소매 단추 좀 풀어주세요."

선욱이에게 설거지 하는 방법을 간신히 알려줬는데 또 뒤에 명민이가 "형 이 돈가스 익은 걸까요? 언제까지 익혀야 되는 걸까요? 한번 먹어봐요" 라고 물었다. 명민이가 익었다고 준 돈가스는 겉은 뜨겁고 익었는데, 속은 차갑고 덜 익은 맛이 났다. 약한 불에 천천히 오래 익혀야 익는 거라고 누누이 말했는데 명민이는 빨리 먹고 싶어서 겉만 익은 거만 보고 꺼냈던 것이다.

이제 후배들이 알아서 자기 요리를 다 만들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완영이가 "형 이거 볼(bowl) 맞죠?" 라고 하며 자장면 그릇을 사왔다. 유부초밥을 만들기 위해 큰 볼(bowl)을 사오라고 했는데 잘못 사왔던 것이다.

"큰 볼(bowl) 없어? 그릇 같은 거 말고 안이 좀 깊은 식기 말이야."
"이게 볼(bowl) 아니에요? 대충 그릇에 밥 조금씩 넣어 비벼요."

"나도 새내기 때 선배들에게 많이 혼났어"

다 같이 유부초밥을 만들고 있는 모습
 다 같이 유부초밥을 만들고 있는 모습
ⓒ 배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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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2시간 만에 모든 요리가 완성되었다. 손수 한 요리였기 때문에 누구 하나 맛 없어서 얼굴 찌푸리는 사람 없이 담소를 나누며 음식을 다 먹었다. 음식을 너무 맛있게 먹어서 포만감에 젖어 후배들은 금방 잘 태세였다. 그래서 자리를 정리하고 각자 귀가하였다. 

후배들을 보내니 갑자기 대학교에 처음 들어와 선배들과 함께 여행 가 요리한 기억이 생각났다. 그 당시 카레라이스를 만들었는데 필자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어리둥절하게 서있었다. 그 때 한 선배가 "너 지금 뭐하고 있는데? 내가 카레 하는 방법 알려줄게 이리 와라!" 라고 했다. 할 줄은 모르지만 뭔가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칼질도 해보고 뜨거운 물에 카레 가루를 풀어보기도 했다.

"야 감자를 그렇게 썰면 어떻게 하니? 감자를 그렇게 얇게 썰면 카레 먹을 때 씹는 맛이 나겠냐?"
"뜨거운 물에 카레가루를 다 풀어야 해. 가루 덩어리가 남으면 절대 안돼!"

선배들에게 코치를 받으며 카레라이스를 만들었지만 필자의 첫 카레라이스는 실패작이었다. 카레 가루 덩어리가 둥둥 떠다니고, 감자를 너무 얇게 썰어서 감자를 넣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필자의 카레는 웃음거리가 되었지만 그 이후 요리에 취미를 붙여 밖에서 밥을 해먹을 때마다 선배들에게 요리를 하나 하나 배웠다.

이제 필자가 후배들에게 요리를 하나 하나 알려줘야 하는 처지가 됐다. 아직 할 줄 아는 것도 별로 없고 맛있게 음식을 만들 줄도 모르지만 후배들에게 내가 아는 많은 요리를 알려주고 싶다.

특히 남자 후배들은 어머니 밑에 곱게 자라서 부엌일에 손도 안 되어 봤다고 한다. 하지만 필자를 만난 이상 이제부터 부엌일 하는 자상하고 부드러운 남자로 환골탈태를 하는 거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필자의 블로그와 다음 블로그 뉴스에도 송고합니다.



태그:#요리, #새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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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부산본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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