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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도 제대로 안 먹고 차 안에서 빵을 한 입 베어물고 부랴부랴 갔는데도
약간 늦게 학교에 도착했다. 그런데 헐레벌떡 올라간 교실안의 풍경이 이상했다.

정호는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부어있고, 정호 엄마도 속상한 얼굴로 울지도 못하고 그냥 정호 등을 두드리고 있다. 가냘픈 노처녀 담임선생님은 다른 아이들의 손을 잡고 먹갈고 있지만 표정은 늘 그렇듯이 안타까움을 담고 있다.

매주 한 번씩 점심시간을 활용해서 가는 청각장애특수학교인 성심학교에는 영혼이 천사인 아이들이 있었다. 말도 안 통하지만 그렇다고 구화나 언어도 안 통하고, 수화조차 통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대다수 비장애 아이들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등을 통해 이미 글을 익혀 학교에 들어가지만 청각장애 아이들은 여간 똑똑하지 않으면, 집에서 미리 엄마한테 한글을 깨치기 어렵다. 더구나 부모가 비장애인데 아이만 청각장애 일 경우는 그나마 수화도 배울 수 없다.

정호와 정호 엄마는 모자지간이지만 서로 밥 먹고 자는 일상의 단순한 생활이외에는 마음을 표현하는 소통은 잘 되지 않는다. 서로의 마음과 생각을 전달하는 수단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날도 내가 도착하기 전에 미리 선생님과 아이의 엄마들은 아이들 옆에서 벼루를 놓고 먹이라도 미리 갈고 있을려고 했던 모양이다. 점심시간이란 것이 1시간이면 금방 지나가기 때문에 최대한 준비시간을 절약해서 내가 아이들과 나눌 수 있는 묵향시간의 집중력을 키우기 위해서이다.

청각장애엄마들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같이 학교에 나와 선생님들을 도우는 보조선생처럼 아이들의 공부를 도와준다. 말로 소통이 안 되기 때문에 일일이 손을 잡아주고 표정으로 해야 하기 때문에 담임선생님 혼자서는 벅차기 때문이다.

정호는 내가 먹갈기를 가르칠때  바른 자세로 좌정하고 앉아서 오른 손으로 오른방향으로 일정한 속도로 하게끔 연습을 시켰다. 그래서 다른 아이의 자세가 비뚤거나 혹은 왼 손으로 먹을 갈면 정호는 정의의 투사라도 되는 듯이 참지 못하고 불분명한 괴성을 지르면서 다른 아이들을 향해 틀렸다고, 바르게 하라는 시늉을 한다.

정호엄마는 그것을 모르고 정호가 너무 느리게 먹을 간다고 생각했던지, 아니면 대신 갈아줄려고 했던지 벼루를 약간 기울여서 빠른 속도로 갈았는데, 그것을 보고 정호가 아니라고 난리를 쳤던 것이다.

먹갈기가 틀렸다고 아니라고 하는 정호의 마음을 모르고, 정호엄마는 아이가 왜 갑자기 이렇게 일어서서 고래고래 난리를 치는지 당황해서 아이를 꼼짝 못하게 물리력으로 제어했고, 정호는 억울해서 더욱 울었던 것이다.

그렇게 먹을 갈고 줄 긋기를 할때 처음에는 붓으로 글자를 쓰기 위해 줄을 긋는 것인지 아니면 먹탕인지 모를 정도로 엉망이었지만, 매 주 한 번씩 꾸준한 묵향의 씨앗뿌리기와 청각장애특유의 집중력으로 비장애인보다 줄을 더 잘긋고 상형문자도 제법 그린다.

그리고 내 개인전시회에 와서는 진지하게 작품감상하는 폼도 잡고, 웃음이란 작품앞에서는 어느 개그맨의 흉내를 내며 진짜 사람들의 웃음을 나오게 만들었다.

전시회와서 진지하게 보는 꼬맹이
▲ 전시감상 전시회와서 진지하게 보는 꼬맹이
ⓒ 성심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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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이란 전시작품앞에서 더 크게 웃는 아이들
▲ 웃음 웃음이란 전시작품앞에서 더 크게 웃는 아이들
ⓒ 성심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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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작년에는 한. 중학생서예대전에 천진한 마음을 담은 '엄마 아빠 사랑해요'를 써서 특선을 했다. 이 작품을 처음 만들때의 에피소드가 있다. 자기 딴에는 정성껏 잘한다고 공책에다 쓰는 것처럼<엄마! 아빠! 사랑해요!>이렇게 마침표를 꼭꼭 그리고 끝에는 하트도 그렸다. 실격인 것이다.

제출시간이 다 되어서 정호작품을 포기하고 일어섰다. 느낌이 이상했던지 정호가 바닥에 갑자기 누워서 바둥거리고 뒹굴며 울었다. 다시 한번 하겠다는 뜻이었다. 시간이 얼마 없었지만 양해를 구하고 다시 종이를 담요위에 깔아주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작품이었다.

한.중학생교류전에서 특선작품
▲ 사랑해요 한.중학생교류전에서 특선작품
ⓒ 이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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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갈라고 하면 손등을 깨물고, 줄긋기를 하라고 하면 온통 먹탕을 하고, 먹물에 눈물을 더하던 정호가 학교로 보내진 한.중학생서예대전 상장을 다시 분교 수녀님에게 전해받는 모습
▲ 상장수여 먹을 갈라고 하면 손등을 깨물고, 줄긋기를 하라고 하면 온통 먹탕을 하고, 먹물에 눈물을 더하던 정호가 학교로 보내진 한.중학생서예대전 상장을 다시 분교 수녀님에게 전해받는 모습
ⓒ 이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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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정호는 4학년이 되어서 다른 지방에 있는 본교로 들어갔다. 많이 아쉬웠다. 이제 제대로 붓길을 가는 붓대가 바로서기 시작했는데 서예반이 없는 본교생활을 하자면 온 식구가 정호가 있는 학교근처에 방을 얻어 이사를 가야 한다.

정호가 본교로 간지 한 달이 지난 주말이다. 정호엄마가 집에서 만든 강정을 조금 싸들고 막내를 업고 정호의 손을 잡고 묻고 물어 변두리에 있는 내 작업연구실의 4층 계단을 힘겹게 올라 왔다.  앞으로 가끔 틈나는대로 들러서 정호가 하고 싶을 때까지 계속 묵향의 씨앗을 가꾸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정호처럼 어릴 때 붓을 잡았다가 묵향의 씨앗과 함께 자라나서 묘목이 되고 나무가 된 아이들이 더러 있다. 대학서예과에 다니는 아이들과 이미  서예과를 나와서 대학원 예술치료를 전공해서 아픈 사람들의 마음을 보듬기 위한 준비도 하고 있기도 하고, 꼭 그런 전공으로 나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자라난 집중력과 포용력으로 세상속으로 뚜벅 뚜벅 걸어가는데 보탬이 되는 것이다.

장애아동들에게 필요한 것은  참 많겠지만, 소통이 잘 되지 않는 세상과 사이좋게 악수할 수 있는 푸른 감성이 중요하다. 세상의 사람들과 다르다는 두려움과 외로움이 복합되어서 눈이 잘 젖는 아이들의 눈을 항상 엄마와 선생님들이 닦아 줄 수는 없다. 스스로 눈물을 그칠 수 있거나, 그렇게 젖은 눈으로도 세상을 아름답게 느낄 수 있는 감성과 생명력이 자라나야 한다.

덧붙이는 글 | 보다 많은 장애아동들이, 단기프로그램이 아닌 지속적으로 문화예술교육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문화의 힘, 예술의 풍부한 감성들이 장애를 이겨내는 좋은 힘이 되고, 세상을 사랑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태그:#장애아동문화예술교육, #묵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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