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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파우더 석면 검출 파문이 화장품, 의약품으로까지 확산되면서 석면은 멜라민 사태 이후 전 국민이 관심을 갖는 최고의 유해물질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가을에 멜라민을 모르면 대화에 낄 수 없었듯, 올봄은 석면과 탈크를 알지 못하면 대화를 나눌 수 없을 정도다. 그렇다면 석면은 과연 얼마나 위험한 물질일까. 냉장고, 세탁기, 전기다리미 등 석면이 들어간 제품은 모두 위험한 것일까. 석면이 들어간 건축 자재가 집에 있는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의심은 커지고,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이처럼 대중들의 불안감은 커지고 정확한 지식을 몰라 인터넷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는 사람도 늘고 있다. 대중과의 정확한 석면 위험소통(리스크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져야 석면 노출을 피할 수 있고 불필요한 불안감이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의심은 커지고,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환경운동연합 석면 베이비파우더 피해신고센터
 환경운동연합 석면 베이비파우더 피해신고센터
ⓒ 환경운동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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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베이비파우더 석면 위험 경고는 21년 전인 1988년 2월, 필자가 펴낸 <석면공해- 조용한 시한폭탄>에서 이미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 책 가운데 중요하다고 여긴 부분 20쪽 분량을 2008년 6월 새로 펴낸 <침묵의 살인자 석면>에 다시 실었다. 여기에서도 국산 베이비파우더의 주원료로 쓰인 활석에 석면이 포함됐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조사를 할 것을 재차 촉구했다.

언론인을 포함해 상당수의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지만 문제가 된 부분을 제대로 읽지 않았는지 아니면 설마 석면이 들어간 제품을 정부가 지금까지 제조·판매하도록 방치했겠느냐는 생각에서인지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그러던 중 며칠 전, 한 여성화장품건강 관련 시민단체 활동가가 연락을 해왔다. 그는 이 책의 베이비파우더 석면 경고 부분을 읽고 한 번 조사를 해야지 하며 차일피일 미루다가 한 방송사 프로그램에서 자신들보다 먼저 석면 분석을 한 뒤 이를 방영해 결과적으로 자신들은 헛물을 켠 셈이 돼 아쉬웠다고 털어놓았다.

필자는 언론인으로서 21년 전부터 석면 서적을 펴내고 악성중피종 실태를 추적보도하는 등 언론보도를 통해 석면의 위해성을 알리고 석면 추방에 앞장서왔다. 여러 환경운동가와 노동운동가 등도 몇 년 전부터 석면 추방에 힘을 쏟아왔지만 석면의 위험성에 대한 국민의 관심과 지식은 여전히 낮았다. 그런데 이번 석면 베이비파우더 파문이 이를 단번에 해결한 것이다.

베이비파우더 석면 위험 21년 전부터 알렸지만...

국내 최대의 광산이었던 충남 홍성군 광천광산의 폐광 모습
 국내 최대의 광산이었던 충남 홍성군 광천광산의 폐광 모습
ⓒ 안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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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1986년 <서울신문>에서 환경 분야와 과학 분야 보도를 맡아 취재를 하던 중, 아라미드펄프를 개발한 한국과학기술원 윤한식 박사팀에게 "인체에 유해하며 용도가 광범위한 석면물질을 아라미드펄프가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석면의 유해성에 대해 막연하게나마 깨닫게 됐다.

그리고 얼마 뒤 중 국립환경연구원(지금의 국립환경과학원)에 들렀다가 당시 대기연구부장(국장급)이 나에게 재미있다며 건네준 일본책 <조용한 시한폭탄- 석면의 재해>를 읽고 하루빨리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석면의 위해성을 알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부랴부랴 이 책을 번역하고 몇 달간 환경청, 노동부와 국내 관련 연구보고서, 논문, 산업위생 전문가와 산업의학 교수 등을 차례로 만나 취재한 뒤 한국의 석면 실태를 보태 펴낸 책이 바로 <석면공해- 조용한 시한폭탄>이다. 

21년 전 책이지만 이 책에는 지하철 석면 문제, 석면방직업체 노동자의 열악한 작업환경과 석면광산 노동자의 심각한 석면 노출, 석면 건축자재 문제 등 우리나라에서 2~3년 전부터 문제가 되고 있는 내용을 자세하지는 않지만 간략하게나마 모두 다루고 있다.

당시 이 책이 제기한 문제에 정부 당국자들이 조금이라도 귀를 기울이고 들었더라면 피해자를 줄일 수 있었던 것은 물론이고, 지금의 베이비파우더 석면 파동도 겪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에서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이후 지난해 봄 우연한 기회에 한국석면추방네트워크(반코, Ban Asbestos Network Korea) 결성 준비모임에 참여하게 되었고, 2008년 7월 3일 발족식을 며칠 앞둔 6월 30일 <침묵의 살인자 석면>이라는 책을 펴냈다.

이 책은 국내 석면 피해자의 비극적인 이야기와 석면 때문에 많은 사람이 죽어간 세계 각국의 비극적인 마을, 석면 소송, 석면추방 활동, 석면 사용과 재해의 역사 등 석면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담았다. 이 책을 쓰기 위해 읽은 보고서와 서적, 논문, 자료집 등만 수만 페이지에 달한다. 따라서 이 글의 상당 부분은 어쩔 수 없이 이 책에서 따온 것임을 미리 밝혀둔다.

석면으로 흥한 기업, 석면으로 망한 이유

베이비파우더 석면 파문의 원인이 된 탈크(활석)의 원석 모양
 베이비파우더 석면 파문의 원인이 된 탈크(활석)의 원석 모양
ⓒ 안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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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면의 유해성에 대한 기록은 멀리 로마시대 때부터 있었다지만, 산과 알칼리에 잘 견디고 불에 타지 않으며 전기도 통하지 않고 실과 옷감으로도 짤 수 있는 마법과도 같은 특성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을 전혀 받지 못했다. 

19세기 말부터 남아프리카공화국, 캐나다, 러시아 등에서 대규모 석면 광맥이 발견되면서 석면시대는 활짝 열렸다. 노동자들은 허연 석면먼지를 뒤집어쓴 채 눈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열악한 작업환경 속에서도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하루에도 12시간 이상씩 일했다.

석면먼지를 다량 들이마신 노동자들은 쿨럭이면서도 일했다. 진폐증의 일종인 석면폐였다. 많은 석면 섬유가 폐 깊숙이 쌓여 생기는 불치의 병이다. 하지만 회사 소속 의사들은 감기 또는 결핵이라며 석면폐에 잘 듣지도 않는 결핵약 등을 주며 속였다.

결국 이들 앞에 놓인 것은 죽음뿐이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뒤늦게 분노하며 회사를 상대로 피해보상 소송을 냈다. 자동차브레이크라이닝 제조업체 등 석면을 이용해 건축자재 등 각종 석면제품을 만드는 다른 석면회사들도 작업환경이 열악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제조업체에서 석면질환에 걸린 노동자와 유족들도 석면소송에 뛰어들었다. 석면소송은 미국 역사에서 가장 오랫동안 진행된 공중 불법행위 소송이다. 이런 상황은 유럽에서도 비슷하게 벌어졌다. 2004년 2월까지 석면에 노출된 적이 있는 약 60만 명이 8400개의 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소송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소송비용을 포함해 약 100조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보상비용이 들어갔다. 존스맨빌사 등 세계적인 석면기업은 차례로 쓰려져갔다. 기적의 광물 석면으로 세계적인 대기업이 되었다가 '침묵의 살인자' 석면으로 망한 것이다.

ⓒ 김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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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면이 질환을 일으키는 유해물질이라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밝혀진 것은 1930년대 들어서다. 석면섬유에 다량 노출되면 진폐증의 일종인 석면폐에 걸려 결국 호흡기능이 떨어져 숨지는 치명적인 질환이다.

실제 환자와 사망자 보고는 1897년께부터 오스트리아,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석면제품을 다량으로 만들어내는 국가에서 속속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석면과 석면질환과의 역학적인 인과관계가 밝혀진 것은 30여 년의 세월이 더 흐르고 난 뒤였다.

석면과 폐암과의 관련성은 1935년부터 제기됐으나 증거가 충분치 않았다. 1940년대와 1950년대 초반 과학문헌에서 여러 차례 이것이 되풀이됐다. 1955년 영국의 리처드 돌(Doll)이 석면으로 인해 영국에서는 폐암이 추가적으로 발생한다고 보고했다.

1964년 미국 마운트사이나이의과대학의 어빙 셀리코프(I. J. Selikoff)는 석면단열재 공장 노동자들의 폐암사망률을 일반노동자들과 비교한 결과, 석면노동자에서 사망률이 매우 높다는 것을 발표했다. 석면과 폐암과의 연관성을 확정하는 기념비적인 연구였다.

아직까지 석면이 유일한 원인이며 전체 발생의 85% 이상을 그 원인으로 보는 악성중피종이 직업적 노출의 결과라는 주장은 1935년 영국의 학자 글로윈(S. R. Gloyne)에 의해 제기됐다. 1955년부터 1964년 사이 여러 학자들이 석면노동자에서 발생한 악성중피종을 보고했다. 1960년대 중반 석면이 암을 일으킨다는 사실이 확정된 것이다.

알게 모르게 석면 노출, 나도 혹시?

석면섬유를 전자현미경으로 확대해본 모습, 바늘 같은 석면섬유가 무수히 있다
 석면섬유를 전자현미경으로 확대해본 모습, 바늘 같은 석면섬유가 무수히 있다
ⓒ 안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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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은 석면에 얼마만큼 노출되면 석면 질환에 걸리는가에 관심이 많다. 그동안 많은 동물을 대상으로 석면을 강제로 흡입시킨 뒤 조사한 결과들이 있지만 아직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연구결과는 없다.

사람을 실험대상으로 할 수 없기 때문에 이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석면질환 가운데 어떤 질환에 잘 걸리느냐는 흡입한 석면섬유의 형태, 즉 길이와 굵기 그리고 석면 섬유의 끝 모양 등에 따라 달라진다.

악성중피종의 경우 2주간 석면에 노출된 뒤 수십 년이 지나 발병된 사례도 있다. 물론 석면에 노출된 양이 많을수록 석면질환에 걸릴 위험은 그만큼 높아진다.

특히 석면폐는 일정 농도 이상의 석면에 노출돼야 걸린다. 하지만 암은 다르다. 폐암과 악성중피종은 이론적으로는 약간의 석면에 노출돼도 걸릴 가능성이 있다. 역치(易置, threshold)가 없다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노동기구(ILO)는 전 세계에서 매년 10만 명에 가까운 노동자 등이 석면에 희생되고 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에서는 1993년 석면방직업체인 부산의 제일화학(지금은 제일 E&S) 여성노동자가 악성중피종으로 사망한 것이 처음으로 산재인정을 받은 이후 환자들이 속속 나오기 시작해 제일화학에서만 50여 명의 피해자가 나왔다.

지하철, 조선소 등 다른 석면취급 작업장에서 근무하다 석면질환에 걸린 사람까지 보태면 100명에 가까운 환자들이 산재로 공식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 석면과의 인관관계가 매우 높은 악성중피종 환자만 매년 50~60명 이상 보고되고 있고 환경성 피해를 주장하는 사람도 속속 나오고 있어 실제 우리나라 석면 피해자 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고 있으며 그 정확한 수는 알기 어렵다.

덧붙이는 글 | 안종주 기자는 전국석면환경연합회장입니다. 2편 '생활주변의 석면 위험과 대처방안'에 대한 글이 이어질 예정입니다.



태그:#최은경 기자 부탁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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