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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전당 3층 강봉규 사진전에 축사하는 모습과 작가가 답사하는 모습(아래)
 예술의 전당 3층 강봉규 사진전에 축사하는 모습과 작가가 답사하는 모습(아래)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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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봉규의 '멈추지 않는 시간' 다큐사진전이 서울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3층 제6전시실에서 4월 26일까지 열린다. 그는 고향산촌을 거의 50년간 찍어왔는데 이번 전은 주로 최근 3년간 오지마을을 찍은 것이다. 작가는 이런 마을들이 10년 안에 사라질까 걱정한다.

강봉규는 1935년 전남 동복에서 태어난 저널리스트사진작가다. 20년간 광주일보 사진부장과 출판국장을 역임했다.1980년부터는 출판사를, 1992년에는 월간지 '사람 사는 이야기'를 창간했다. 1995년에는 제1회 광주비엔날레 집행위원장으로 이를 주도했다.

그는 사진을 통해 고향의 관찰자로 기록자로 우리 문화의 원형을 보전하고 탐구하는 반(半)인류학자로 살았다. 또 이 분야에서 타에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열정과 몸을 바쳐왔다. 이런 기록성과 예술성을 겸비한 작가가 있다는 건 우리에겐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60년대 삶을 재충전시켜주는 사진
 
'강강수월래' 광주시 동구 양림동 양과정 1964. 눈 덮인 무등산과 사직공원의 강강수월래가 흥겹다
 '강강수월래' 광주시 동구 양림동 양과정 1964. 눈 덮인 무등산과 사직공원의 강강수월래가 흥겹다
ⓒ 강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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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강강수월래 사진, 눈 오는 걸 보니 정월대보름이다. 그 시대의 정감이 살갗에 느껴진다. 사사로운 감정보다는 공동체의 이익을 도모하는 춤이다. 삶에 새 기운을 넣어주는 몸짓이 경쾌하고 날렵하다. 그리고 치맛자락의 출렁임이 무등산의 고요와 대조를 이룬다.

광주사직공원에서 무등산이 훤히 내려다보이니 시원함을 준다. 무속에서 접신을 하려면 춤을 통해야 하는데 이런 춤은 그런 경지에 닿아있다. 일상의 지루함도 씻고 마음의 먼지와 원한을 털고 같이 잘 살아보자는 해원상생(解寃相生)의 정신이 담긴 것 같다.

70년대 들뜬 동네잔치의 모습
 
'고향사람들' 전북 남원군 도통리 1972. 들뜬 잔치집 갓 쓴 사람들의 모습이 정겹고 인정이 넘쳐 보인다
 '고향사람들' 전북 남원군 도통리 1972. 들뜬 잔치집 갓 쓴 사람들의 모습이 정겹고 인정이 넘쳐 보인다
ⓒ 강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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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고향사람들' 지금은 양복으로 바꿨지만 작가시대에는 흔히 보는 모습이었을 것이다. 이런 한복을 갖춰 입은 어르신들 모습이 젊은 세대에겐 영화에서나 볼 것 같으리라. 하여간 문화원형들이 사라져 가는 판에 이런 사진이라도 남아있어 다행이다.

여기서도 한국인을 연결시켜주는 '정(情)' 같은 강력하고 끈끈한 뭔가가 느껴진다. 상차림을 보니 넉넉하진 않아도 푸짐하다. 여자가 안 보이는 건 가부장사회의 어둔 단면이다. 그런데 이심전심이라고 요즘처럼 소통에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문화답사의 충동을 일으키는 사진

'닮은꼴 장승'전북 남원시 운봉읍 서천리 1990.  마을 어귀를 지키는 소탈한 돌장승이 정겹다
 '닮은꼴 장승'전북 남원시 운봉읍 서천리 1990. 마을 어귀를 지키는 소탈한 돌장승이 정겹다
ⓒ 강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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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장승과 촌로가 너무 닮았다. 삐뚤어진 입하며 왕방울 눈과 주먹코가 해학적이고 풍자가 넘친다. 이를 보니 90년대 유행한 문화유적답사가 생각난다.

반가사유상이 우리가 가장 닮고 싶은 이상적 얼굴이라면 여기 돌장승은 마음씨 좋고 소박한 시골사람들, 민초들의 그 모습이다. 화순 근처 운주사로 가는 길에서 본 민불(民佛)이 떠오른다. 그런 모습은 사람도 자연과 교감하면 돌멩이와도 대화가 가능함을 일러준다.

지한파 노벨상작가 르 클레지오(1940~)는 이런 물아일체의 신비를 2001년 가을에 운주사에서 터득한 것인가. 가랑비가 단풍과 바다가 되고, 하늘과 구름이 된다는 시를 남겼다.

[…] 운주사에 내리는 가랑비는/ 가을의 단풍으로 구르고/ 길게 바다로 흘러/ 시원의 원천으로 돌아간다/ 두 와불의 얼굴은 이 비로 씻겨/ 눈은 하늘을 응시한다/ 한 세기가 지나는 것은 구름 하나가 지나는 것/ 부처님은 또 다른 시공간을 꿈꾼다/ 눈을 뜨고 잠을 청한다/ 세상이 벌써 전율한다. - <운주사, 가을비> 중에서

아마존 사진에도 한국인의 체질이 느껴져

'브라질 아마존 강 유역' 실버프린트 1994
 '브라질 아마존 강 유역' 실버프린트 1994
ⓒ 강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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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고향땅이 아니고 이국땅인 브라질 아마존이다. 그동안 쌓은 사진실력을 여기서도 유감없이 발휘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이런 사진까지도 한국냄새가 난다. 이 작가의 유전인자 속에는 유난히 한국적 기운과 체질이 강한가보다.

구조주의 인류학의 선구자인 클로드 레비-스트로스(1908~)도 문화의 우열주의를 거부했지만 이런 사진을 보면 '가족애'에서 '한국농촌'이나 '브라질아마존'이나 다를 게 없다. 애초부터 '원시'와 '문명'을 구분하는 게 부질없는 일이다. 현대 미술에서도 원시와 전위는 하나로 통한다. 다만 분출하는 생명력을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문제이다.

디지털시대에도 그리움의 목마름은 여전하고

'이름 모를 들꽃' 전남 담양군 고서면 고읍리 2000. 끈질기게 이어온 생명과 오랜 전통을 보여준다
 '이름 모를 들꽃' 전남 담양군 고서면 고읍리 2000. 끈질기게 이어온 생명과 오랜 전통을 보여준다
ⓒ 강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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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는 컬러 사진을 즐기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이 사진은 컬러로 처리하려 훨씬 효과가 크다. 달빛 어린 밤에 기와의 멋이 더욱 고요하고 은은하다. 그러나 거기에 등불처럼 한 폭의 그림처럼 노란 꽃 한 송이 피어 있어 사람들 마음을 사로잡는다.

기와는 달항아리나 석굴암 등과 함께 빼놓을 수 없는 한국적 멋이다. 특히 처마의 곡선이 주는 운치와 여유로움은 또한 특별하다. 밤이 깊어갈수록 기와의 그윽한 푸른빛은 더해간다. 이 세상의 모든 그리움과 정겨움이 다 집결된 것 같다.

현대적 추상미 넘치는 호박 말리는 풍경

'흩어진 곡선' 전북 순창군 구림면 산내마을 2006. 호박 말리는 어머니의 정성스런 손길과 사랑이 느껴진다
 '흩어진 곡선' 전북 순창군 구림면 산내마을 2006. 호박 말리는 어머니의 정성스런 손길과 사랑이 느껴진다
ⓒ 강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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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호박 말리는 사진인데 추상화 같다. 점과 선과 형이 신비한 조형을 이룬다. 그리고 보면 형태와 색채와 구도를 갖춘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예술이다. 그런데 우리는 미술이 우리 삶과 무관하다고 생각해 주변에 가려진 아름다움을 즐기지 못한다.

시선의 탁월함이란 하찮고 흔한 것에서 뜻밖의 미를 발견하는 것이리라. 미지의 것을 찾고 자기만의 고유한 관점으로 재해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이 작가의 기지와 발상이 돋보인다. 꿈틀대는 리듬감이 관객의 마음에 와 닿는다.

간간이 남은 시골풍경도 다 사라지나

이제 근작을 보자. 완도에서 찍은 '초분'과 담양에서 찍은 '기다림' 두 작품 아련한 추억을 일으킨다. 아직도 이런 풍경이 있다는 것이 잘 믿어지지 않는다. '초분'은 죽음이 뭔지를 '기다림'은 삶이 뭔지를 묻게 한다.

'초분(草墳)'을 작가는 몇 번 언급한다. 낯선 묘 이름이다. 이는 입관 후 관을 이엉으로 덮어서 몇 년 두었다가 뼈만 남으면 다시 이장한다. 보기 드문 '이중장'이다. 이런 번거로움으로 이도 사라질 판이다. 여기 사람들은 망자와 정 떼는 데 시간이 더 걸리나보다.

2번째 사진 허름한 간이창고에 달린 우체통이 초라해 보이지만 정겹다. 작가 자신도 이런 사진을 찍으며 인생을 자문자답하는 것 같다. 사진은 기다림의 예술이기에 그는 아마도 인생을 '기다리는 것'이라고 답할지 모른다.

여전히 정겹고 아름다운 남도의 풍경

'청산도' 전남 완도군 청산면 청계리 2008. 돌담의 멋과 바람의 애달픔이 만나는 곳이다. '상쇠놀이꾼' 전남 진도군 지산면 소포리 2008. 구십 평생 희로애락을 꽹과리로 녹인 상쇠할아버지가 인자하게 보인다.
 '청산도' 전남 완도군 청산면 청계리 2008. 돌담의 멋과 바람의 애달픔이 만나는 곳이다. '상쇠놀이꾼' 전남 진도군 지산면 소포리 2008. 구십 평생 희로애락을 꽹과리로 녹인 상쇠할아버지가 인자하게 보인다.
ⓒ 강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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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완도 '청산도'와 '진도' 풍경을 보자. 힘겹게 올라가는 언덕길이 인생과 닮았다. 할머니의 뒷모습이 왠지 씁쓸하다. 생명을 지키는 자의 책무를 다했건만 평생 허리 한번 펴지 못하고 살았다. 우리가 이런 분을 알아줘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아래 할아버지는 그래도 행운아다. 농사지으며 상쇠놀이꾼인 현장예술가다. 하지만 매우 평범해 보인다. 이 작품의 매력은 역시 돌담길이 주는 서정이다. 하긴 삶이란 돌담길처럼 작은 돌멩이들이 쌓여 이루어지는 것 아닌가.

지구상에서 가장 빠르게 변하는 한국사회는 이런 유산을 지킬 틈이 없어 보인다. 80년대는 농촌의 노인인구가 60%였는데 지금은 80%이고 빈집이 45%나 된다고 작가는 귀띔해준다. 이런 남도풍경을 사진으로 건졌으니 이젠 '민속박물관'으로라도 보존하면 좋겠다.

ⓒ 강봉규

덧붙이는 글 |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6전시실(02-580-1300) 입장료 2000∼3000원 http://www.sac.or.kr/program/daily.jsp
'초분'에 대해서 더 알고싶은 분은 여기를 클릭하면 됩니다.
http://sagang.blog.seoul.co.kr/149?srchid=BR1http%3A%2F%2Fsagang.blog.seoul.co.kr%2F149



태그:#강봉규, #르 클레지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문화상대주의, #초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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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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