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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여름이었나. 문득 떠나고 싶어졌다. 일본으로. 그러나 현실은 바람과 달랐다. 내 곁에는 이제 막 돌이 지난 아이가 껌딱지처럼 딱 붙어 졸졸졸. 아내의 잔소리를 먹고 산다는 철없는 남편도 그 곁에서 졸졸졸. 뿐인가. 너 없이는 이 회사 안돌아가, 라는 소리를 듣는 건 아니지만 어찌됐든 꼬박꼬박 직장에도 나가야했다. 그렇게 어디론가, 그게 일본이면 더 좋겠다는 바람만 일 년째 내 안에서 잔뜩 부풀려지고 있다.

 

"일본에 가서 뭐할 건데?"

"그냥 있다 오지 모."

"그냥 있다 올 거면 돈 들여 그 멀리 뭐하러 가냐?"

"……."

 

친구들은 비용대비 효율을 따지라고 충고하지만, 난 그냥 일본에 '있다' 오고 싶었다. 아니 정확히 좀 '살다' 오고 싶었다. 그들처럼 그 나라의 바람을 느껴보고 싶었다. 햇살도. 비도. 다양한 소리와 냄새. 그러한 정겨운 것들, 일상적인 것들이 그리웠다.

 

경험해보지 않은 것을 그리워한다는 게 가능한 표현인지 잘 모르겠지만, 어찌됐든 내가 꿈꾸는 여행은 그리 소박했다. 여행 경비에 비하자면 말이다. 그러다가 동지를 만난 듯, 반가운 책을 발견했다. 전소연이 지은 <가만히 거닐다>가 바로 그것. 

 

'여행이란 또 다른 일상에 다름 아니다. 여행은 내가 모르는 공간에 가서 일상을 천천히 다시 만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을 읽힌 기분이었다. '이 친구, 정체가 뭐지?' 궁금한 마음에 얼른 책장을 폈다. 풍성한 사진과 간결한 텍스트. 15일 동안 저자가 일본에 있으면서 한 일은 '고작'(비용대비 효용을 따지는 객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 그러하다는 말이다) 느즈막히 일어나 아침을 먹고, 산책을 하고, 사진을 찍고, 맘에 드는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책을 읽고, 해질 무렵 다시 걷고, 저녁을 먹고, 간단한 야식을 챙겨 먹는, 한국에서도 다 할 수 있는 그저 그런 일상이 전부였다(그러나 이는 내가 그리던 여행의 모습이니, 나는 마냥 부러울 밖에).

 

물론 가끔 그래도 여행이니 동물원에도 가고 맛있는 음식점을 찾아다니기도 하는 '일탈'을 벌이기도 한다. 문제는 '오늘은 쉽니다'라는 간판을 발견하거나, 엉뚱한 메뉴를 주문하게 되는 돌발 상황에 직면한다는 거지만. 그러나 저자 말마따나 '예상치 못한 변수에 익숙해지는 것이 또 여행'이니, 그리 문제될 것도 없다.

 

저자는 이런 일상적인 여행의 매력으로 빈둥거림을 꼽았다. 그러면서 "나의 여행의 태도는 타인에 의해서가 아닌 나 스스로에 의해서 존중되어야 한다"고 못박는다. 이런 그에게 "그런 여행을 왜?"라는 질문은 끼어들 틈은 없어 보인다(나도 써먹어야 겠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대중적인 여행기보다는 '일기장'에 가까워 보인다. 가만히 가만히 걸으며 자신을 반추하는. 그러면서 일상으로의 여행을 함께 할 것으로 가만히 가만히 꼬득이는(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읽혔다).   

 

'살면서 빈틈을 만드는 일은 삶을 무언가로 채우는 일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중요한 만큼 쉽지 않다. 언제나 그랬다. 중요한 건 쉽지 않다.'

 

'빈둥거림'을 여행의 컨셉트로 정한 저자의 선택 역시 쉽지 않았으리라(우리 주변에는 마음을 흔들어대는 입들이 오죽이나 많은가 말이다). 그러나 어떤가. 그의 말마따나 이곳에서의 조용한 시간이 오랜 잔상으로 남아 마음이 시끄러울 때에 이따금씩 나를 토닥여준다면, 그거면 족하지 않을까. 
 
나 역시 그럴 생각이다. 우연히 동지(?)를 만나 '팔랑이던' 귀가 닫히고 생각도 굳어졌으니, 곧 떠날 채비를 해야겠다. 올 여름엔 기필코.
 


가만히 거닐다 - 교토, 오사카... 일상과 여행 사이의 기록

전소연 지음, 북노마드(2009)


태그:#가만히 거닐다, #전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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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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