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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이라크 파병 논란이 한창 일 때 파병을 주장하는 이들이 내세운 논리 하나는 '석유자원' 확보였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라는 말을 귀가 따갑게 들었던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파병 찬성을 이끌어낼 수 있는 좋은 논리였다.

 

대체 연료가 개발되고 있지만 석유를 대체할 만한 연료는 아직 없다. 그러므로 석유를 차지하려는 각 나라 싸움은 치열하다. 그 중 하나가 '전쟁'이다.

 

전쟁까지 불사하면서 차지하려는 석유가 세계의 역사와 문화, 정치와 경제에 어떻게 영향을 끼쳐왔는지 그 과정을 역동성 있게 담은 책 한 권이 있다. 

 

석유기술자로 훈련을 받았고, 대학에서는  스칸디나비아 문학, 동유럽 역사를 공부하면서 <절대주의와 계몽주의 시대, 1648~1779>, <독일전쟁 1618~1648>, <열광에 빠져 있는 파리>를 썼던 '귄터 바루디오'가 지은 <악마의 눈물, 석유의 역사>이다. 

 

바루디오는 <악마의 눈물, 석유의 역사>에서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갈등과 전쟁의 이면에서 석유를 둘러싼 세계 강국들의 첨예한 대립, 석유 태동기부터 첨단생명과학 산업 주역으로 발돋움, 석유산업의 대규모 합병추세와 주유소에서 벌어지는 가격전쟁을 흥미있게 기술하여 읽는 이들에게 700쪽이 넘는 책을 쉬 덮지 못하게 만든다.

 

석유를 캐내기 위해 오로지 깊게 깊게만 파고 들어간 모험적인 삶을 산 시추기술자, 정글 같은 석유사업자들을 향하여 "자연은 소수의 소유욕에 불타는 인간들이 자신들의 재산을 늘리는 것에 분노했고, 훤히 드러난 광맥을 통해 지구에 석유는 넘쳐흐르게 되었다"고 말한 석유역사학자 타벨이 말하자 지지치 않는 불굴의 아나콘다, '록펠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약 석유 생산자들이 자연을 그렇게 착취하지 않았더라도, 만물의 어머니인 자연이 자신의 광맥을 그렇게 드러내지는 않았을 것이다."(259쪽)

 

자말 압단 나세르 이집트 전 대통령이 "석유는 문명의 젖줄이다. 석유가 없었더라면 문명은 나타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 것처럼 석유는 기술문명을 촉진하고 지구를 부유하게 만들었고, 미국 같은 경제제국을 만들었다.

 

하지만 석유로 부를 쌓은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를 종속관계로 만들었다. 세계 강대국이 암묵적인 동의 아래 저지르는 전쟁의 이유는 단 하나, '석유' 때문이다. 따라서 석유의 역사는, 석유자원을 둘러싼 기술선진국, 오만한 강대국들의 소유욕과 부패로 점철된 고통과 수난의 역사라 해도 좋다. '악마의 눈물'이라 할까.

 

부에노스아이레스 출신의 이 노벨 평화상 수상자가 한 말이 지니는 역사적 의미는 늦어도 1941년에는 나타났다. 이 해에 베를린에서 개최된 제3차 세계 석유회의는 세계평화를 장려하고 석유생산품을 인류를 위한 긍정적이고 고귀한 목적에 사용하려는 석유인사들의 노력을 강화시켜야 하는 과제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대신 석유는 또다시 모든 법을 어기고 군사적인 승리와 야만성을 위해 함부로 악용되었다. 즉 석유는 화염방사기로부터 폭격기를 위한 비행연료를 거쳐 강제수용소의 독가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용도로 남용되었던 것이다. 그뿐 아니라 이것은 우라늄 핵 연료봉과 핵폭탄의 생산에까지 사용되기도 했다. (570쪽)

 

악마의 눈물인 석유. 하지만 석유 자체가 악마의 눈물은 아니다. 석유를 이용한 자들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악용함므로써 악마의 눈물이었다. 악마의 눈물 주체는 석유가 아니라 석유를 이용한 사람, 곧 강대국이었다.

 

여기에 희망이 있다. 석유를 정치적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인슐린, 형형색색의 염료, 첨단화학 제품 따위 생명과학을 위한 다양한 재료로 활용하고, 석유를 채굴하여 자연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자신의 미래를 환경친화적으로 만들고자 한다면, '생명의 눈물'이 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악마의 눈물, 석유의 역사> 귄터 바루디오 지음 ㅣ 최은아 조우호 정향균 옮김 ㅣ 뿌리와 이파리 펴냄 ㅣ 25,000원


악마의 눈물, 석유의 역사

귄터 바루디오 지음, 최은아 외 옮김, 뿌리와이파리(2004)


태그:#석유, #문명, #에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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