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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얼마나 깡통 찼는지 알아?!"

 

16일 오전 서울 영등포의 한 증권사 객장에서 만난 한 60대 개인투자자의 말이다. "최근 주가가 많이 오르고 있는데, 객장 분위기가 좋겠네요"라는 기자의 말에 대한 대답이었다. 그는 대화를 이어나가려는 기자를 뿌리치고 객장을 나섰다.

 

객장 안에는 밝은 표정의 개인투자자가 많지 않았다. 심각한 표정으로 객장 밖으로 나가 담배를 피우는 이들이 더 많았다. 최근 주가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고, 이날 오전 객장의 주식 전광판 역시 붉은 색으로 도배된 터라, 다소 심각한 객장의 분위기는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이날 서울 여의도의 여러 증권사 객장에서 많은 개인투자자를 만나고 나서야 이러한 분위기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들은 "당장 오르니 좋긴 하다"면서도 "작년에 워낙 많은 돈을 잃었다, 이를 만회하려면 아직 부족하다, 더 올라야 한다"고 말했다.

 

코스닥 시장 과열인 것 알지만...

 

"'묻지마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서울 여의도 A증권사 객장 앞에서 만난 박세일(64)씨가 기자에게 내뱉은 첫마디다. 객장 분위기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주가가 오르니) 나이 드신 분들이 기업 실적 이런 것을 보지도 않고, 돈 들고 객장에 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주식 투자 경력이 있는 투자자도 돈을 싸들고 오고 있다"는 게 박씨의 설명이다. 그는 "주식은 도박과 같다"며 "작년에 잃은 돈을 만회하려고, 주가가 크게 오를 때 빚을 내서라도 투자하는 경우가 전체 투자의 절반은 되는 것 같다"고 전했다.

 

박씨도 그가 한 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는 "최근 몇 년 간 몇 천만원을 잃었다"면서 "최근 주가가 오르는 것을 보고 여윳돈 1000만 원을 투자했지만, 고르는 종목마다 떨어져 한 달간 150만 원 가량 손해 봤다"고 씁쓸해했다.

 

객장에서 만난 이들은 최근 주가가 과열되고 있다는 데 동의한다. 특히 올해 초에 비해 50% 이상 오른 코스닥에 대해 많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올해 첫 거래일(1월 2일) 339.76포인트였던 코스닥 지수는 16일 497.52포인트까지 50% 가까운 상승률을 기록했다. 세계 최고 수준이다.

 

B증권사 객장에서 만난 최형우(가명·60)씨는 "코스닥 지수가 어느 정도 오르면 모를까, 지난 3월부터 지금까지 45일 동안 35%나 올랐다"며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최씨는 "잃은 돈을 만회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선다"고 전했다.

 

"작년에 1억원을 투자해 3천만원 손해 봤다. 그나마 손실이 적었다. 만회해야 한다는 생각에도 주가가 계속 떨어지니 투자를 못하고 있다가 최근 주가가 예상 밖으로 많이 오르니 얼마 전 모아놓은 돈을 가져와 투자를 했다. 돈을 좀 벌었는데, 만회하려면 멀었다."

 

C증권사 객장에서 만난 최민호(53·가명)씨는 "경제도 안 좋고, 기업들 실적도 많이 안 좋을 것 같은데, 언제까지 오르겠느냐"며 "많은 사람들이 위험해 처해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각 증권사 객장에 놓인 TV에는 주식매입자금대출 광고가 쏟아졌다.

 

"코스닥 과열 경보... 많은 코스닥 투자자들이 타격받을 수 있다"

 

전문가들도 '코스닥 과열'을 경고하고 있다. 곽병열 KB투자증권 선임연구원은 지난 15일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를 고려하자'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코스닥 시장에 과열 주의보가 발령됐다"고 전했다.

 

코스닥 시장의 과열 여부를 판단할 때 쓰이는 거래량 지표들이 모두 과열 신호를 나타내고 있다는 게 곽 연구원의 분석이다. 보통 5억~6억주인 거래량이 지난 14일 10억 주를 돌파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또한 거래량비율(VR·일정기간 주가가 상승한 날의 거래량을 하락한 날의 거래량으로 나눈 것으로 주식시장의 과열·침체 여부를 판단하는 지표)도 422%에 달했다. 거래량비율은 150%가 보통 수준이고, 450%가 넘으면 과열로 판단한다.

 

또한 주식시장 전체 시가총액 중 거래소 중소형주와 코스닥주의 비중이 23.6%로 2003년 이후 최고치(24.9%)까지 급등한 상황이다. 곽 연구원은 "2003년 이후 중소형주와 코스닥의 비중이 고점을 형성한 이후엔 주가조정이 나타난 것으로 관찰됐다"며 "1보 후퇴(과열 해소를 위한 조정)를 고려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배성영 현대증권 투자분석부 수석연구원도 "코스닥의 역사적 흐름을 봤을 때, 거래대금이 3조 원을 넘어서면 조정이 온다, 지금은 4조 원에 이르렀다"고 전했다. 또한 "일부 테마 주의 경우 올해 초에 비해 10배 이상 오른 종목이 많다"며 "상승 속도가 너무 빠르다"고 말했다.

 

그는 "어닝 시즌(기업들의 실적 발표가 집중되는 시기)이라 실적이 뒷받침되지 않은 종목을 중심으로 조정이 시작될 것"이라며 "많은 코스닥 투자자들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태그:#코스닥 과열, #코스닥, #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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