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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하지 않은 곳에서 문화재를 만나게 되는 날이 종종 있다. 그런 문화재들은 흔히들 이름 없이 쓸쓸하게 우두커니 서 있다가 길손들에게 손짓을 하며 자신을 보라는 듯이 모양새를 취한다. 이러한 문화재들을 보게 되면 당혹스러움보다는 반가움이 앞선다.

봄냄새가 물씬 풍겨 오르고 벚꽃이 만개하여 그 꽃잎을 흐트러트리는 어느 날이었다. 이런 봄날에 집에만 있고 싶지는 않아, 예전부터 가고자했던 장흥 보림사를 향해 길을 나섰다. 보림사를 향해 나있는 한적하고 나긋한 시골도로를 지나면서 주위를 살펴보다가 문득 길의 오른편에 석탑 한기가 눈에 띄었다. 문화재에 관심이 많고, 또한 사찰을 찾아가던 중이라 궁금한 마음에 길가에 차를 세우고 그 석탑을 향하여 내려갔다.

석탑은 2차선 도로의 아래쪽에 있었다. 이곳은 장안뜰이라고 불리는 곳으로서, 주위에는 논밭이 있고, 그보다 조금 더 나아가면 작은 마을이 있다. 주위의 땅보다 탑이 있는 위치가 더 높고 기단석이 대지와 딱 붙어있고 흙에 묻힌 게 아니라 오히려 빈 공간이 있을 정도로 약간 떨어진 것을 보아, 입지상으로서는 왠지 이곳에 계속 있었기보다도 공사 등으로 인하여 부득이하게 약간 자리를 옮긴 것으로 보였다.

이 석탑은 등촌리에 있기 때문에 현재 등촌리 삼층석탑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발길 바쁜 길손에게는 그냥 쓸쓸하기만 한 이름 없는 탑일 뿐이다.

등촌리 석탑을 살펴볼까요?

전형적인 고려 초기의 석탑으로서 비지정문화재이다. 비지정문화재이기 때문에 갖는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문화재이다.
▲ 장흥 등촌리삼층석탑. 전형적인 고려 초기의 석탑으로서 비지정문화재이다. 비지정문화재이기 때문에 갖는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문화재이다.
ⓒ 송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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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가서 탑을 살펴보니, 우선 기단부에는 상층기단과 하층기단으로 구성된 2층의 기단석이 있었다. 하층기단에는 희미하게 안상을 새겨 주위를 돌리고 있다. 상층기단은 4개의 면석으로 결구시키되, 둘은 크고 둘은 작게 하여, 큰 면석에 우주와 탱주를 작은 면석에 탱주를 모각해 놓았다.

그 위에는 비스듬한 경사로 우동을 내어 탑신괴임에 정육각형 같은 1층의 탑신이 살포시 올라갔다. 이어 5단의 옥개받침을 둔 옥개석이 올라가고, 그 위엔 또다시 탑신이 올라간다. 하지만 2층과 3층의 탑신은 1층의 탑신을 반으로 쪼갠 듯 절반도 안 되는 크기에 쪼그라든 듯 한 옥개석이 올라가, 1층의 탑신에 비해 가녀린 느낌마저도 든다. 이 옥개석들 중에서도 3층옥개석은 한쪽 면이 상당히 많이 떨어져나가 세월의 아픔을 그대로 보여준다.

3층 옥개석 위에 있는 상륜부는 노반과 복발만 남아 있는 단출한 형식의 탑이었다. 전체적으로 소박한 느낌을 주고, 신라시대의 탑을 계승하려고 한 흔적은 보이지만, 그에 비해 초라한 모습의 고려시대 초기 탑일 뿐이다.

등촌리 석탑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하지만 이러한 외면적인 것 외에, 그 내력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길이 없다. 그 이유는 단지 탑만 덩그러니 서 있지, 이에 대한 표지판은 근처에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표지판은커녕 이 탑으로 가는 길도 제대로 나있지 않아, 논두렁 사이를 통해서나 오갈 수 있을 뿐이다.

문화재 아닌 문화재, 비지정문화재

결국 이런 경우에 답은 하나다. 이 석탑이 바로 비지정문화재라는 것. 비지정 문화재란 사적이나 지방기념물, 혹은 문화재자료 등으로 지정된 다른 문화재와는 달리 문화재이면서도 문화재 취급을 받지 못하는 문화재를 말한다. 다른 문화재는 관련 기관에 등록이 되어 있어서 그에 대해 관리가 되지만, 이러한 비지정문화재는 딱히 그런 게 정해져 있지 않기에, 후세의 입장에선 단지 조상들이 만들어낸 천덕꾸러기일 뿐이다.

비지정문화재는 사적이나 지방기념물, 문화재자료 등에 비교하여 그 역사적 가치가 높지 않고, 또 상대적으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문화재로 취급받는다. 전남지역에서는 어느 동네든지 한 기 이상 볼 수 있는 고인돌이나, 평범한 고려시대의 석탑, 혹은 조선시대의 건물 등이 여기에 다수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과연 누가 비지정문화재를 역사적 가치가 높지 않다고 한단 말일까? 사적으로 등록된 문화재나, 비지정문화재나 똑같이 조상들이 정성과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어, 이를 후세에까지 보이고 싶었던 당당한 우리의 문화유산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후세의 사람들이, 자기들이 멋대로 만들어낸 잣대로 인하여 역사성이 없다는 핑계로 관리조차 안 되는 문화재로 취급한다.

문화재 중에서 이러한 비지정문화재들은 다른 문화재에 비하여 그 훼손이 되는 경우가 매우 높다. 시골 마을에서 고인돌들을 살펴보면서 마을 어르신들에게 그 내력을 물으면 새마을 운동 당시 길을 내기 위하여 고인돌을 깨부수는 경우가 많았다고들 증언한다. 또한 누구 하나 제대로 관리하는 이들이 없다보니 도굴꾼의 타깃으로 가장 먼저 손꼽히는 게 바로 비지정문화재이다.

등촌리 석탑은 어떨까? 등촌리 석탑도 여기에서 예외일 수 없다. 아니, 오히려 다른 비지정문화재보다 상황은 심각하다.

부관참시 되어버린 비지정문화재

등촌리삼층석탑 면석 부분은 도굴꾼에 의하여 또다시 훼손된 채로 방치되어 있다.
▲ 훼손된 면석 부분. 등촌리삼층석탑 면석 부분은 도굴꾼에 의하여 또다시 훼손된 채로 방치되어 있다.
ⓒ 송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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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촌리 석탑은 다른 석탑에 비해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뭔가 다른 부분이 하나 있다. 바로 상층기단의 작은 면석 하나가 뒤틀려있다는 것이다. 깊게 생각하지 않으면 대수롭지 않게 여길 부분이지만, 생각과는 달리 이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본래 등촌리 석탑은 일제강점기 시절 도굴꾼들에 의하여 탑이 해체된 적이 있다. 도굴꾼들이 탑을 노리는 것은 그 속에 있는 사리함 등을 얻고자 하기 때문이다. 탑이라고 하는 것은 본디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기 위해 만들어 진 것이다. 하지만 모든 탑에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할 수는 없다. 그래서 고승의 사리나, 사리를 대신할 불교용품들, 즉 책이나 기타 여러 기물들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이들이 들어있는 당시의 유물들 중에서 가치가 높은 게 바로 사리함이고, 도굴꾼들은 이 사리함을 노리기에 탑을 부숴버리는 것이다. 그 당시 이런 식으로 훼손된 문화재들은 부지기수였다.

일제강점기 시절에 그렇게 해체된 등촌리 석탑은 그 이후 남은 잔해로서 힘겹게 버티고 서 있었다. 하지만 81년에 태풍을 맞아 무너지게 되고, 이후 이를 복원한 게 지금까지 내려온다. 하지만 이로써 끝난 게 아니다. 이렇게 복원하여 현재의 위치에 세워두었음에 불구하고 또 다른 도굴꾼이 다시 손을 댄 것이다. 즉 이 속에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고, 또 무엇이 있다면 이를 가져가기 위해 지금처럼 면석을 들어내 버린 것이다. 즉, 멀쩡하던 고려시대의 탑은 일제강점기와 근래 들어 2번이나 도굴을 당한 셈이 되었다.

역사적 유물과 유적은 잊히면 죽어 버린 것과 비교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죽은 상태에서 후세는 도굴이라는 이름으로 잔해까지 훼손시켜 버렸고, 그 후에 또다시 도굴로서 두 번, 세 번을 죽여 버렸다. 옛 형벌 중 '부관참시'라는 무서운 형벌이 있다. 바로 관 속의 시체를 빼내어 목을 베어 죽인다는 것. 즉 이미 죽은 사람을 또다시 죽여서 그 영혼까지 소멸시켜버린다는 형벌이다. 이 등촌리 석탑 또한 그와 비슷하게 잊혔다는 이유로 후손들에게 부관참시를 당한 셈이다.

문화재를 다시 살리려면, 문화재를 죽여라

그럼 이 등촌리 석탑을 다시 살리는 방법은 무엇일까? 당연히 그대로 복원시켜 놓는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좀 더 다르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그대로 복원시켜 놓는다면 이전보다 말끔해지고 보기에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머지않아 우리들의 기억에서 잊히게 되어, 또다시 훼손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그럼 우리는 또다시 이 석탑을 죽이는 셈이다.

그럼 이런 방법은 어떨까? 등촌리 석탑의 모습을 이대로 남겨놓는 것이다. 즉 죽은 상태 그대로를 놔두자는 것인데, 이는 바로 문화재에 대한 관리 소홀의 결과를 그대로 보여주어 후세에게 깊은 귀감이 되게 하자는 뜻이다.

그리고 이에 대해서 등촌리 석탑에 대한 설명과, 그 옆에 이 문화재에 대한 훼손의 기록을 적어 둘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한다면 비록 등촌리 석탑을 죽인 꼴이 되지만, 오히려 후세들에게 문화재 보호의 경각심을 키워주는 교육 장소로 사용 될 수 있다. 즉 문화재를 죽임으로 인하여 그 문화재를 또다시 살아나게 하는 방법이다.

문화재에 있어서 가장 슬픈 것은 아무래도 잊히는 게 아닌가 싶다. 문화재가 남겨지는 것은, 이를 만든 당대 사람들의 기억을 후세까지 그대로 전해주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러한 당대 사람들의 마음과는 달리, 후세 들어서 잊히고 버려지게 되면 결국 과거 사람들의 가치 또한 버림받은 꼴이다. 하지만 이를 어떠한 계기로 다시 기억하고, 또한 그 기억으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충분히 경각심을 준다면, 그 자체로도 문화재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것이라 본다.

등촌리 석탑의 주위를 정비하고 진입로를 조성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조성만 한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다. 문화재가 생명을 갖게 하기 위해서는 바로 사람들이 이 문화재를 찾으러 오고, 또 깊은 관심을 가져주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바로 문화재가 기억될 수 있도록, 그러한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책무가 아닐까?

덧붙이는 글 | 2009년 4월 12일 장흥 등촌리 삼층석탑을 보고와서 쓴 글입니다. 비지정문화재의 현실과 그에 따른 훼손에 대해 적어 보았습니다. 이번 기사 작성에는 장흥문화원의 적극적인 자료제공 및 협조가 있었습니다.



태그:#등촌리삼층석탑, #장흥, #고려, #비지정문화재, #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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