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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문안 비석군, 30기의 비석이 ㄷ자 형으로 세워져 있다
 남문안 비석군, 30기의 비석이 ㄷ자 형으로 세워져 있다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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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고 예쁜 꽃들이 다투어 피어나고 나뭇잎들도 질세라 싱그럽게 피어나는 신록의 계절이다. 이맘때의 나뭇잎은 그냥 나뭇잎이 아니다. 짙은 초록색 소나무 숲 속에서 참나무 몇 그루가 연두색 잎을 피워낸 모습은 나뭇잎이 아니라 고운 빛깔 그대로 흐드러진 꽃이다. 이 계절엔 색깔이 저마다 다른 나뭇잎들도 꽃이 되어 온 산이 그야말로 꽃동산이다.

이 아름다운 계절에 어디로 떠나볼까? 굳이 먼 곳이 아니어도 좋다. 어린 자녀들 손을 잡고, 나이든 부모님을 모시고, 아니면 부부나 연인끼리 다정하게 손을 잡고 오순도순 정답게 걷기에 좋은 곳. 그런 곳이면 좋지 않을까?

4월 28일(화) 이른 점심을 먹고 길을 나섰다. 목적지는 경기도 광주에 있는 남한산성, 버스를 타고 산성터널을 지나 남문 입구에서 내리자 눈 아래 질서정연하게 ㄷ 자 형으로 서있는 수많은 비석들이 눈길을 붙잡는다.

남문(13:20)~동문(14:00)무너진 성벽보수공사가 한창인 활엽수길

비석들은 모두 30개로 흥선대원군의 불망비를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 역대 광주유수와 수어사, 부윤 군수들의 선정비였다. 그 중에는 광주부윤을 거쳐 영의정에 올랐던 심상규의 비석도 섞여 있었다. 그들이 진짜 선정을 베풀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한 시대의 역사를 간직한 유물들임에는 틀림없었다.

우선 남문인 지화문(至和門) 밖으로 나서니 주변 풍치가 일품이다. 고목과 예쁜 꽃들, 그리고 고색창연한 성벽과 문루의 어울림이라니, 오랜 역사를 간직한 유적과 신록, 꽃의 어울림이 그렇게 조화롭고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성밖에서 바라본 남문(지화문)
 성밖에서 바라본 남문(지화문)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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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성안으로 들어가 남문 문루를 거쳐 동문으로 향했다. 건강상태가 썩 좋지 않은 아내와 동행이어서 되도록 천천히 걷기로 했다.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면서, 길은 처음부터 오르막길이었다. 그러나 성벽을 따라 오르는 길은 그리 가파르지 않고 높지도 않았다. 이쪽 길은 찾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 조용하고 호젓한 길이다. 오른편은 성벽 여장이고 왼편은 싱그러운 숲이었다.

숲은 대부분 활엽수들이었다. 참나무와 단풍나무, 상수리나무와 서어나무 등이 빼곡한데 한창 잎을 피우는 나무들이 피워내는 숲 향이 감미롭기 짝이 없다. 그런데 조금 더 올라가자 길을 막아 놓았다. 무너진 성벽을 복구하는 공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없었다. 공사장 옆으로 돌아가는 길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공사장은 그곳 한 곳 뿐만이 아니었다. 동문에 이르는 동안 몇 곳에서 공사를 벌이고 있었지만 걷기에 방해가 되지는 않았다. 그나저나 공사는 왜 이제야 벌이고 있을까? 무너지기 전에 미리 보수공사를 벌였더라면 훨씬 손쉬운 공사가 되었을 텐데 말이다.

동문(14:00)~ 북문(15:10)황진이도 만나고 장경사도 돌아보고

남문에 도착하니 오후 2시다. 남문은 성남시에서 성안을 관통하여 광주시로 빠져 나가는 도로를 건너 산으로 오르는 길에 있었다. 왼편 숲속길로 오르면 장경사와 망월사로 오르는 길이지만 성벽을 따라 걷기로 했다. 조금 올라가자 조선시대 기생시인 황진이의 전설이 묻힌 표지석이 나타난다. 송암정 터였다.

밑에서 올려다본 동문
 밑에서 올려다본 동문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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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암정은 조선시대 기생시인 황진이가 금강산에서 수도를 하다가 하산하여 이곳을 지나게 되었는데 남자들 몇 명과 기생 두 사람이 함께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술에 취한 건장한 남자가 황진이를 희롱하려 하자 심오한 불도를 설법했는데 이에 감명을 받은 기생 한 사람이 자괴감을 이기지 못해 이곳에서 투신자살을 하고 말았다.

그 후부터 이곳에서는 달 밝은 밤이면 노래 소리와 통곡소리가 들렸다는 전설이 깃든 곳이었다. 송암정을 지나자 또 다시 성벽 공사장이 나타난다. 그런데 보수공사가 끝난 성벽들도 곳곳이 틈이 벌어지고 강회가 떨어져 나간 곳이 너무나 많다. 더 손상되기 전에 미리미리 보수를 해야 성벽과 여장이 온전히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작은 봉우리를 넘어가자 저 앞에 하얀 꽃이 흐드러진 넓은 공터 뒤로 절집이 나타난다. 남한산성 안에 유난히 많은 귀룽나무 꽃과 장경사였다. 장경사는 조선 인조임금 시절 남한산성을 석성으로 축조할 때 수많은 승려들의 부역을 돕기 위해 세운 사찰 중의 하나다.

남한산성은 숭유억불정책에 의하여 당시 전국 8도에서 부역으로 소집된 승려들이 성을 쌓는 노역으로 모진 고통을 당한 현장이기도 하다. 승려 각성이 승도청 도총섭으로 임명받아 전국 8도의 승군을 동원하여 성을 쌓는 사역을 담당하였기 때문이다.

한창 보수 공사중인 장경사
 한창 보수 공사중인 장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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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 따라 걷는 활엽수길
 성벽 따라 걷는 활엽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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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성 사역이 끝난 후에는 승군을 주둔시켜 성을 지키고 훈련하는 장소로 사용된 곳이 바로 이 장경사였다. 그러나 이날 찾은 장경사는 절집으로 오르는 계단에 놓여 있는 수많은 꼬마 불상들이 귀여운 모습이었고, 절집도 커다란 중장비가 동원되어 지붕 보수공사가 한창이었다.

북문까지 가는 길은 상당히 가파른 오르막길이 몇 군데 있었지만 결코 그리 힘든 길은 아니었다, 봉우리에 오르자 광주 쪽으로 이어진 산줄기들이 우람하다. 내리막 길을 한참 내려가자 드디어 북문이 나타났다. 시간은 오후 3시 10분이었다.

북문(15:10)~서문(15:45)전망 좋은 소나무 숲길

북문 문루를 지나면서 뒤돌아보니 시야가 온통 소나무 숲이다. 앞길도 마찬가지. 잡목 활엽수림이 북문 가까이 이르면서부터 어느새 소나무 숲으로 바뀐 것이다. 북문을 지나면 다시 오르막길이다. 성벽을 따라 걷는 길은 여전히 오르락내리락 아기자기한 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길도 넓어졌다 좁아졌다 반복한다.

산책로에서 바라본 북문
 산책로에서 바라본 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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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에는 곳곳에 암문이 만들어져 있어서 은밀하게 성 밖 출입을 하며 적정을 살펴볼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병사들의 초소건물이었던 군포지와 배수구였던 수구 터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고, 유사시에 사용하기 위해 숯을 묻어두었던 매탄지 자리도 있었다.

여담 밑과 길가에는 작고 귀여운 야생화들이 지천으로 피어 있었다. 보라색 제비꽃들도 많았고 노랑 제비꽃들도 흐드러진 모습이다. 아내는 길을 걷다가 예쁜 야생화를 만나면 잠깐씩 주저앉아 들여다보곤 한다. 귀엽고 예뻐서일 것이다.

옹성이 연결되어 있는 연주봉에 오르니 서울의 동부지역과 하남시 일원이 시원한 전망으로 다가온다. 이 봉우리가 바로 조망이 좋은 최고의 전망대 중의 한 곳이다. 옹성 중에서도 이 연주봉 옹성이 가장 아름답고 멋진 옹성이었지만 아쉽게도 복원한지 오래 되지 않은 옹성은 많은 곳에 흠집이 생긴 채 방치되고 있는 모습이었다.

굽이치는 성벽과 소나무 숲
 굽이치는 성벽과 소나무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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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 아래 피어난 야생화
 성벽 아래 피어난 야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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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봉에서 서문은 지척이었다. 잠깐 내려가자 서문이다. 서문 문루에 올라서니 시간은 오후 3시 45분이었다. 서문을 지나면 시원하게 열린 길이다. 수어장대로 가는 길이어서 그럴 것이다. 길가에는 수령이 만만치 않아 보이는 크고 멋진 소나무들이 즐비하다. 그 소나무 그늘 아래 몇 사람의 등산객과 산책객들이 둘러 앉아 정담을 나누는 모습이 정겹다.

서문(15:45)~ 남문(16:30)역사의 숨결을 느끼며 원점으로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호인 수어장대는 1624년(인조 2) 남한산성을 축조할 때 지은 4개의 수어장대 가운데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물이다. 수어청의 장관들이 군사를 지휘하던 곳이다. 하부 구조는 자연석을 쌓은 낮은 축대 위에 한 단 높여 다듬은 돌로 기단을 마련하고, 맨 바깥 둘레에는 8모뿔대 주춧돌을 세우고 안두리기둥 밑에는 그보다 낮은 반구형의 주춧돌을 받친 웅장하고 멋진 2층 누대건축물이다. 주변에는 역사와 전설이 깃든 몇 개의 유적들이 함께 보존되어 있었다.

산책로에서 내려다본 서문
 산책로에서 내려다본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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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장대를 둘러보고 내려가는 길은 서울의 남부지역을 조망하기에 매우 좋은 길이다. 매끄럽게 휘어진 산줄기를 따라 굽이치는 성벽은 안쪽으로 파고들었다가 바깥쪽으로 튀어나가기도 한다. 이쪽 지역은 성벽 안과 바깥에 모두 길이 나있다.

성벽 안쪽에서는 여장으로 이어진 산줄기와 멀리 서울의 남산과 관악산 청계산을 조망하며 걸을 수 있고, 성벽 바깥 길에서는 육중한 성벽을 바라보며 끼고 걷게 되어 있었다. 성벽 안쪽 길 나무계단을 밟고 내려가는 길에서는 여장 담장과 성벽이 능선을 타고 용틀임하듯 출렁거리고, 담장과 마주보고 나란히 서있는 소나무 푸른 숲도 덩달아 출렁인다.

"저 아래 내려다보이는 문루가 남문이잖아요? 내가 컨디션이 좋아진 건지 산책로가 좋은 길이어서인지 모르겠네. 내가 성을 한 바퀴 돌아오다니."

급경사 길을 내려서자 잣나무 숲이다. 숲 아래 내려다보이는 문루가 우리 부부가 함께 걷기를 시작했던 남문이었다. 아내는 스스로 대견하고 감개무량한 표정이었다. 처음 성벽을 따라 한 바퀴 돌아보자고 했을 때는 전혀 자신 없어 했던 아내였기 때문이다.

수어장대 근처의 암문
 수어장대 근처의 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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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문 문루에 올라서니 시간은 오후 4시 30분이었다. 남한산성 성벽을 끼고 안길을 따라 한 바퀴 돌아 원점으로 돌아오기까지 아내와 함께 도란도란 느긋하게 걸어온 거리는 7,5킬로미터 시간은 3시간 10분이 걸린 것이다.

백제와 신라시대를 거쳐 조선 인조임금 때는 병자호란을 온몸으로 겪어낸 현장, 남한산성은 우리 조상들의 한과 질곡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다. 성벽 길을 따라 걷노라면 그날의 함성과 통곡소리가 들릴 것 같은 흔적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어서 조상들의 숨결을 느끼며 걷는 역사 기행의 길로도 매우 좋은 곳이었다(걷는 도중 힘들면 어느곳에서도 바로 주차장으로 내려올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

덧붙이는 글 | 찾아가는 길: 전철 8호선 모란역이나 산성역 2번 출구 앞에서 9번이나 52번 버스를 타고
산성터널을 지나 첫번째 정거장에서 내리면 바로 남문이다.



태그:#남한산성, #역사의 숨결, #이승철, #오순도순, #오르락내리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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