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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와 '강사', 그 차별의 끝은 어디일까.

학생들에겐 '교수' 소릴 들으면서도 정작 교원 자격이 없는 대학 강사들에겐 늘 무거운 화두다. 속칭 '보따리 강사'들의 처절한 삶의 이야기가 한 권 책으로 나왔다. '대학 강사의 교원지위 회복'을 요구하며 2007년 9월 7일부터 지금까지 국회 앞에서 천막농성을 펼치고 있는 김동애 한국비정규교수노조 교원특위 위원장 외 31명이 필진으로 참여했다.

<비정규 교수, 벼랑 끝 32년>(김동애 외 31인 저, 이후 출판)이란 책은 제목에서부터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대한민국 비정규 교수는 물론 대학생, 학부모, 변호사 등 다양한 이들이 증언하는 비정규 지식노동자들인 대학 시간강사들의 절망적인 현실, 그리고 예고된 어두운 미래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지난해 10월부터 올 2월까지 <프레시안>에 '벼랑끝 31년, 희망 없는 강의실'이란 주제로 연재된 32편의 글을 정리하고 재구성한 책이지만 다시 읽으니 통렬하고 감회가 새롭다. 책을 펼쳐든 순간 첫 장부터 쉽게 책장을 넘길 수 없게 만든다. 이 책이 출간될 즈음인 지난 4월 28일은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의 국회 앞 천막농성이 600일을 맞는 날이어서 의미를 더했다.

대학 강사들의 현실, 32명의 필자가 고발하다

'비정규 교수, 벼랑 끝 32년'(김동애 외 31인 저, 이후 출판)
▲ 보따리 강사들의 사연이 책으로 '비정규 교수, 벼랑 끝 32년'(김동애 외 31인 저, 이후 출판)
ⓒ 이후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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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지금도 천막농성은 끝나지 않고 계속 진행 중이다. 2007년 9월 7일 제17대 국회 본회의에서 고등교육법 개정안 통과를 촉구하며 시작한 농성이다. 이들의 요구는 한 가지. '대학 강사의 교원지위 회복'이다. 이 교원 지위는 1977년 교육법 개정 때 빼앗겨 어언 32년의 세월이 흘렀다.

당시 일련의 조처는 '학원 안정화'란 이름으로 불렸지만 이후 대학강사들은 대학 강의의 절반을 넘게 책임지면서 최저 생계비도 받지 못하게 됐다. 이 책은 대학과 교육당국에 대안들도 제시해 놓고 있다는 점에서 새겨볼 필요가 있다.

대학에 다녔던 이들이면 한번쯤 들어봤을 비정규직 강사들의 비애. 누가 교수로 임용되기 위해 어떤 짓을 했고, 교수가 된 뒤 어떻게 바뀌었다더라 하는 온갖 이야기들, 그 뒷면에는 비정규 교수에 대한 상식 이하의 처우가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지금도 전국 각지로 뛰어다니며 강의를 하고도 차비와 밥값에도 못 미치는 대가를 받고 연구실 하나 없이 캠퍼스 잔디밭과 분수대 등에서 학생들과 상담하는 '교수 아닌 교수'가 한국에는 7만 명이나 존재하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이기에, 박사학위를 따기까지 십수 년을 공들이고도 목숨을 끊는 강사들이 나타나는지, 연구비 지원도 휴게실도 없이, 정규직 교수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강의료를 받으면서 강단에 서야 하던 강사들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어떻게 해야 대학 강사들이 정당한 권리를 찾을 수 있는지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한다.

'교수 아닌 교수', 한국에 7만 명

2007년 9월 7일 제17대 국회 본회의에서 고등교육법 개정안 통과를 촉구하며 시작한 농성이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 국회 앞 천막농성... 2007년 9월 7일 제17대 국회 본회의에서 고등교육법 개정안 통과를 촉구하며 시작한 농성이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 한국비정규교수노조 교원특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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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빠른 이해를 돕는다. 350쪽 분량에 4부 32편으로 구성된 이 책 1부와 2부에선 '대한민국 비정규 교수의 오늘'을 생생하게 조명해 놓았다. 시작은 3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7년, 지식인을 길들이고 저항 지식인을 제도권 밖에 두려던 박정희 정권은 대학 교원 범주에서 시간강사를 제외했다.

개정된 교육법 75조는 강사의 정의를 끝내 전임강사로 바꿨고, 전임자가 아닌 강사의 교원 지위를 빼앗았다. 결국 대학 강의의 절반을 맡으면서도 아무런 신분 보장도 받지 못하는 수만 명의 계약직 강사가 생겨났다.

'눈물조차 말랐다, 시간강사의 끝없는 절망'
'대학 수업의 절반은 유령의 몫'
'우리에게 연구실을, 제대로 된 강사료를 지원하라'
'하청 노동자, 파견 노동자로 착취당하는 대학 강사'
'유학생의 편지―나의 미래도 자살인가'
'굶주리는 시간강사, 말라 죽는 지역 학문'
'우리는 지성의 전당에서 인간성 파괴를 배운다'

"이대로 둬선 안 된다"는 말이 책 구석구석에 배어 있다. "비정규 교수의 생존권뿐만 아니라 지식 사회의 발전을 위해 이들의 교원 지위를 회복해야 하는 당위성은 사실 굳이 이렇게 많은 필자가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명약관화하다, 그러나 아무도 나서지 않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내용에 오랜동안 시선이 머문다.

"언제든 계약이 해지될 수 있는 비정규 교수 본인들은 발언 자체가 생계와 직결돼 있었다. 전임 교수들은 이제 자신의 일이 아닐 뿐만 아니라, 비정규 교수의 처우 개선은 자신들의 밥그릇과 연결되는 문제였다. 교수와 대학 당국에 학점과 졸업을 맡겨 놓은 학생의 처지에서도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군다나 비정규 교수를 채용하는 대학 스스로가 문제를 해결할 리 만무했다."

고백의 글이다. 이처럼 대학사회가 비정하다. 비정규직 시간강사들의 처절한 생존의 현장에선 '인재 강국의 지식 사회'라는 구호가 요란한 위선임을 확인할 수 있게 한다. 때문에 그들에게 32년 동안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

"국가 폭력 32년, 국가가 결자해지하고 대학이 참회해야"

이 책이 그렇다고 현실을 비관하고 부정만 하는 것은 아니다. 3부와 4부에선 비정규 교수 문제와 함께 해법과 희망도 담았다. 

'대학생들이여, 교원 지위 없는 비정규 교수의 학점을 거부하라!'
'한국 대학이여, 곳간을 열어라!'
'한국의 법 속에 시간강사의 자리는 없다'
'무너진 강의실, 대학 민주화가 희망이다'
''교수'와 '강사', 그 차별의 시작과 숨겨진 음모'
'국가 폭력 32년, 국가가 결자해지하고 대학이 참회해야'

제목들에서 읽혀지는 해법은 간단해 보이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그래서 일까. 결국 변화를 외치는 비정규 교수들이 대학 밖으로 나섰다.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교원법적지위쟁취특별위원회 소속 비정규 교수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국회 앞에서 천막 농성을 벌이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농성 600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달라진 것은 없다. 입법 발의를 했던 국회의원이 교육과학기술부 차관이 된 오늘도 이들은 언제 천막이 철거될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죽은 시간강사의 사회'라고 일컬어지는 지금의 현실에 '도대체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은 점점 더 공허해진다. 대학이 그 답으로 내놓는 핑계가 너무 간단하기 때문이다. 바로 '돈'이다. 적립금이 수천 억 원이 넘어가고, 그 돈으로 펀드를 굴리는 대학이 '돈이 없다'며 발뺌하고, 정부가 이를 옹호하는 가운데 더 이상 상황을 이해하기 위한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2003년 5월, 서울대학교 러시아어학과 백준희 강사 서울대학교 뒷산에서 자살.
-2006년, 부산대학교 김모 강사 자살.
-2008년 2월, 서울대학교 불문과 모 강사 학교 화장실에서 자살.
-2008년 2월, 건국대학교 충주캠퍼스 한경선 강사 미국 텍사스 오스틴에서 자살…

최근 비정규 교수의 처지를 비관해 자살한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 알려진 것만 그렇다.

"나 몰라라 하는 사회, 이제 악순환을 끊을 때"

 천막농성 현장을 늘 지키고 있는 한국비정규교수노조 교원특위 김동애 위원장.(사진 가운데)
▲ 김동애 위원장. 천막농성 현장을 늘 지키고 있는 한국비정규교수노조 교원특위 김동애 위원장.(사진 가운데)
ⓒ 한국비정규교수노조 교원특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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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멀쩡하게 강의를 하고 있는 강사들을 왜 '교원'이라 부르지 않는지, 어떻게 해야 대학 강사들이 정당한 권리를 찾을 수 있는지, 그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에서 은폐되어 왔던 비밀의 문을 열어 줄 일말의 열쇠와도 같은 희망이 전혀 없진 않다. 시선을 떼지 못하게 하는 대목이 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대학의 질이 떨어지는 이유는 정반대에 있다. 벼랑 끝까지 내몰린 시간강사와, 살아남으려는 이들의 몸부림을 악용하며 청탁과 뇌물이 오가는 부조리한 교원 임용을 일삼는 교수와 대학의 만행 속에서 어떻게 제대로 된 학문이 이뤄질 수 있을까. 대학 진학률 85%를 자랑하면서도 정작 그 안에서 이뤄지는 배움의 실상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 하는 사회. 이제 악순환을 끊을 때다."

그러나 최근 대학들은 보다 경쟁력 있는 대학을 만들겠다며 계약 해지를 무기로 점점 더 많은 교원을 내몰고 있다. 그래야만 교수들이 정신을 차리고 일과 연구를 열심히 할 것이라고도 한다. 대학 자율화를 하겠다는 교과부는 지난해 기존에 교원 지위가 인정됐던 전임강사까지 교원의 범주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밝혔다.

이 같은 상황에서 "민주적인 과정으로 대안을 만들자"는 '닫는 글'과 '비정규 교수 교원 지위 회복 관련 일지' 및 '고 한경선 비정규 교수를 추모하며'란 부록까지 담은 이 책은 대학 강사들의 삶을 고단하게 하는 문제의 실상과 그 원인을 밝히고, 그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대안을 나름대로 모색했다는 점에서 더욱 무게가 실린다.

비정규 교수는 물론 정규직 교수와 대학생, 학부모, 변호사, 언론인까지 모두 32명의 필자가 머리를 맞대고 비정규 교수 문제의 해법을 찾고자 한 용기와 노력에 큰 박수를 보낸다.

제도가 바뀌지 않는 한, 인건비를 아껴 대학 재정을 불리려는 꼼수를 버리지 않는 한, 비정규직 고용의 편리함을 놓지 않으려는 대학 정책이 바뀌지 않는 한, 대학 강사를 '교원'으로 분류하지 않는 교육법이 바뀌지 않는 한, 이런 악순환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부와 국회, 대학은 하루빨리 법적·제도적 개선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비정규교수 교원지위 회복 고등교육법 개정 촉구 국회 앞 텐트 농성 600일을 맞아 책을 펴내 감회가 남다르다"는 김동애 위원장은 "대학강사, 비정규교수의 교권과 노동권, 교원지위, 고등교육법, 대학교육, 대학생의 수업권과 수업의 질, 지식사회의 대학, 자녀 대학교육, 외국의 대학제도에 관심 있는 분들께서 많이 읽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태그:#시간강사, #비정규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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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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