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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산
▲ 산철쭉 서리산
ⓒ 이형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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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6일, 서리산의 산철쭉을 만나러 갔다.

비금리에서 서리산으로 오르는 길이 가팔라 축령산 휴양림 쪽으로 올랐다. 이미 산 아래 철쭉들은 만개한 뒤라 서리산 산철쭉 군락도 이제 막 피기 시작하리라는 기대에 발을 바삐 움직였다.

평일이라 한산하리라 믿었던 산행은 노인들로 오르내리는 길이 제법 붐볐다. 잣나무 숲을 지나니, 연분홍 산철쭉이 모습을 선보이기 시작한다. 어려서 인왕산 밑에 살았던 터라, 철쭉은 으레 진달래보다 붉은 것이라 여겨 왔던 내게 서리산 산철쭉은 색달랐다. 솔직히 말하자면 희미끄레한 연분홍의 꽃이 실망스럽기도 하고, 밋밋하게만 느껴졌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그 바랜 듯 희미한 연분홍의 산철쭉에게 마음을 빼앗기게 되었다. 신록이 짙어가는 숲을 배경으로 연한 분홍의 산철쭉을 생각하자면 어떤 애잔한 아름다움에 젖어들게 되었다. 짧고 아쉬운 봄날이 막바지에 이를 무렵, 희미하게 지워져가는 산철쭉을 바라보자면 그렇게 또 오고 가는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되는 듯했다.

제법 가파른 산길을 오르자니 시원하니 시야가 트인 바위가 나타난다. 세찬 풍상에 하늘을 오르는 용처럼 이리저리 뒤틀린 낙락장송 그루 사이로 내려다 뵈는 산 아래 풍경이 절묘하다. 산을 타고 오르는 바람이 땀에 젖은 몸을 상쾌하게 말려준다. 일행분이 준비해 온 도시락을 그 아래 펼치니 오랜만에 소풍을 나온 즐거움이 더한다. 산철쭉 그늘 아래서 나누는 도시락의 맛을 무엇에 비할까.

만개한 산철쭉
▲ 서리산 산철쭉 만개한 산철쭉
ⓒ 이형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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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내어 막바지 등성이를 오른다. 만개한 산철쭉들이 나타난다. 탄성이 절로 난다. 바로 곁에 두고도 이 일, 저 일에 밀려 때를 놓치고 삼 년 만에 다시 만나는 산철쭉이다. 듬성 듬성 이어지는 산철쭉을 지나니 드디어 서리산 산철쭉들의 군락지에 이른다. 사람 키 높이의 산철쭉들이 굴을 이루고, 그 밑을 오가는 사람들의 얼굴 위로 연분홍 꽃 그늘이 진다.

오랫동안 바람에 시달리며 자란 산철쭉의 등걸은 이리저리 굽어 오랜 풍상으로 마디진 촌로의 손을 연상시킨다.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배인 구부러진 나무 등걸들은 고풍스럽고 의연하기만 하다. 옹골지고 마디진 가지에 비해 거기 매달린 꽃은 그 얼마나 애련하고 가냘프더냐. 검은 가지에 달린 복사꽃이나 벚꽃만큼 어리지는 않지만, 바람 거센 산정에서 풍상을 소리없이 이겨냄이 의연하다. 큰 나무들도 이겨내지 못하여 자리를 비운 산마루에서 이 가냘픈 꽃나무가 버텨낸 세월이 더욱 비감하다.

가로거침 없이 탁 트인 산정고원에 떼를 지어 이룬 연분홍의 물결은 장관이 아닐 수 없다. 오르는 산길의 산철쭉들이 만개하였지만 산정의 산철쭉 군락은 아직 봉오리를 달고 있었다. 드문드문 피기 시작하는 걸로 미루어 이번 주말부터 다음 주까지가 절정이 아닐까 싶다. 바람에 흩날리는 산철쭉을 바라보자니 분홍 날개를 가진 나비처럼 보인다. 또 뾰족한 봉오리는 앵돌아져 야무지게 입술을 다문 계집아이처럼 예쁘기만 하다. 만개한 꽃에 결코 뒤지지 않을 설렘이 봉오리 안에서 금세라도 톡 소리를 내며 튀어 나올 듯하다.

서리산
▲ 산철쭉 가지 서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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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묵은 가지 끝에 매달린 산철쭉 꽃망울의 아름다움은 절묘하기만 하다. 하늘을 덮은 꽃 가지를 올려다보자니 성글게 내보이는 푸른 창공을 배경으로 한 폭의 그림이 펼쳐진다. 하늘이 그려내는 꽃무늬 프린트라고나 할까. 이렇게 아름다운 봄날 하늘에서 누군가 연분홍의 커텐을 드리운 듯하다.

한반도 모양의 산철쭉 군락
▲ 산철쭉 군락지 한반도 모양의 산철쭉 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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볕 바른 산철쭉 나무 아래에는 각시붓꽃들이 옹송그려 피어 있다. 한반도 모양의 산철쭉 군락지에는 언제 지어졌는지 조망대가 만들어져 있다. 아직 만개하지 않은 탓에 한반도 모양이 뚜렷하지는 않지만 만개한 뒤에는 산철쭉 삼천리의 꽃대궐을 보여 줄 것이다.

피나물 군락
▲ 피나물 피나물 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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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철쭉 터널을 빠져나가니 저만치 서리산 정상이 나타난다. 832미터의 높이에 이른 것이다. 가평군 현리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과 축령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을 알리는 이정표가 서 있다. 축령산 쪽으로 길을 잡는다. 완만한 내리막길을 천천히 걸어가자니 왼편으로 거대한 피나물 군락지가 나타난다. 등산로에서 조금 비켜난 탓에 온전히 제 모습을 지켜온 피나물 군락은 세 해 전보다 훨씬 넓어졌다. 노란 나비들이 떼를 지어 앉은 듯한 군락은 축축한 습지의 그늘에 숨어 골을 메우고 있었다. 이 밖에도 산 아래보다 조금 늦은 꽃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현호색을 비롯하여 바람꽃, 각시붓꽃, 홀아비꽃대들이 한창이었고, 귀룽나무, 물푸레나무, 수수꽃다리, 호리병꽃과 같은 나무꽃들도 한창이었다.

서리산
▲ 각시붓꽃 서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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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틈이 질러가는 길들이 숲 사이로 나 있지만 천천히 돌아가는 임로로 향했다. 오전 11시에 오른 길이 오후 2시를 넘겨 임로에 이른다. 구불구불 완만하게 에둘린 임로는 시멘트로 포장이 되어 조금 걷기에 불만이다. 나이 드신 분들은 임로를 따라 서리산 쪽으로 돌아오르는 것이 수월할 만도 하다. 시간은 조금 더 걸릴 듯하다.

내려 오는 길에 전망대에 올랐다. 축령산 아래 마을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이층의 전망대에 오르니 골마다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다 못해 서늘하다.  건너편으로 888미터의 축령산 정상이 보이고, 그 골에서 들려오는 물소리가 시원하다.

전망대에서 본 풍경
▲ 축령산 전망 전망대에서 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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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산 골짜기는 물이 적다. 얼마만치 걷다 보니 축령산 쪽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줄기와 만난다. 신발을 벗고 맑은 계곡 물에 발을 담근다. 삼 분을 견디지 못하고 발을 건진다. 대못을 박는 듯 얼음물에 발이 그대로 얼어붙는다. 서너 시간 산을 오르내리느라 땀에 젖었던 두 발이 화들짝 정신을 차린다. 볕에 말을 말리고 주차장으로 돌아온다.

서리산
▲ 산철쭉 터널 서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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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봄에 산철쭉을 만났으니 한 해 동안 연분홍 꿈을 꾸고 지내리라. 비록 만개한 산철쭉 군락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이렇게 아쉬움을 남기고 돌아서는 걸음이야 말로 향기로운 즐거움을 남겨 두지 않겠는가.

이제 떠날 채비를 하는 봄날의 끄트머리에, 서리산 산철쭉이 건네는 연분홍 꽃 편지를 전한다. 서리산 산철쭉은 5월 20일까지 이어질 듯하다. 

서리산 산철쭉 만나러 가려면
서리산(해발 832m) 산철쭉 군락지는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 도유림인 축령산 휴양림 안에 있다. 휴양림 안에는 여러 규모의 통나무 숙박시설이 있고, 잣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삼림욕장이 마련되어 있다. 다양한 희귀 초본과 수목들을 만나 볼 수 있는 축령산 휴양림 입장료는 성인 1인 1000원, 휴양림 안에 마련된 주차장 사용료 승용차 기준 2000원을 내야 한다. 주차장 자체가 높은 지점에 있어 정상까지 오르기에 그다지 힘이 들지 않으며, 임로를 비롯하여 다양한 등정로들이 있어 취향에 따라 골라 걸을 수 있다. 서리산 정상까지 오르내리는 데는 3시간 정도 소요되며, 축령산 능선으로 돌아내려오는 길은 4시간 정도 걸린다. 취사는 일정 지역에서만 허용되므로 간단한 도시락을 지참하는 것이 좋다.

서리산 산철쭉을 만나러 오는 길은 서울 - 경춘국도(혹은 북부간선도로 - 외부순환도로) - 마석에서 수동 표지를 따라 12km 지점에서 축령산 방향 표지를 따라 우회전. 외방리 길로 10분 정도 길 따라 들어가면 휴양림 입구가 나온다. 주말에 길이 많이 막힐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 경우에는 운수교차로에서 좌측으로 새로 난 사차선 도로를 달려 길이 끝나는 지둔리로 돌아오면 시간을 줄일 수 있다.

또한 조금 가파르긴 하지만, 비금리 방면에서 임로를 따라 서리산으로 오르는 길도 있다. 이럴 경우, 비금리에 있는 몽골문화촌의 전시장과 공연을 겸하는 것도 좋은 여행거리가 될만하다.

물이 좋아 물골로 불리는 수동의 특산은 취나물, 달래, 부추, 느타리버섯 등이 유명하며, 특히 천마산, 철마산, 주금산, 서리산, 축령산으로 둘러싸인 수동은 산나물과 장뇌삼이 많아 산꾼들이 많이 찾고 있다.


태그:#산철쭉, #서리산, #축령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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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면 광대울에서, 텃밭을 일구며 틈이 나면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http://sigo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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