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엊그제 어버이날을 맞아 학교에서 효행상 수상자를 선정해서 시상했다. 그런데 호명하는 각 반의 수상자들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당혹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왜냐하면 대부분 그 반의 반장이거나 최상위 성적의 아이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반의 경우는 공부는 그다지 잘하지 않지만, 기초수급자 가정의 아이를 선정했던 터였다.

 

아, 이런…!

 

반감이 솟았다. 아무리 요즘 고등학교가 대학 입시의 수단으로 전락해 버렸다손 치더라도 선행상 효행상마저도 입시 전략에 따라 공부 잘 하는 아이들에게 주어서 입시에 유리한 '상품'으로 만들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 보면, 틀린 것도 아닐 수 있었다.

 

요즘은 예전처럼 가정 방문을 하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의 가정 생활에 대해 깊이 알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여고생들의 특성상 자신의 어려운 가정 형편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아 효행상 대상자를 선정하기가 쉽지 않은 데다가, 공부 잘하는 아이들 속에도 형편이 어려운 아이, 행동거지 바르고 성실한 아이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 아이들에게 상을 줌으로써 의지를 북돋아 주고 격려해준다면 얼마나 큰 힘이 될 것인가. 그리하여 원하는 일류대학에 합격할 수 있다면 아이도 좋고 학교도 좋은 일이 될 것이다. 

 

그런데도 왜 나는 이런 경우에 공부를 못하거나 가난한 아이에서 찾으려는 것일까.

 

그런 성향은 거의 본능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올해 뿐만이 아니다. 늘 그랬기 때문이었다. 내 경우 '선행상' 수상자를 정할 때에는 학급 아이들에게 공개 추천으로 결정을 하고, '효행상'의 경우는 어려운 가정 형편을 고려해서 나 혼자 결정을 한다. 그러고 나서 아이들에게 내용을 공개할 수는 없지만 상담을 통해 결정했음을 밝히고 양해를 구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대부분 고개를 끄덕인다. 이번 경우도 그랬다. 왜냐하면 공부를 잘하지는 못하지만 자신들도 인정하는 성실하고 착한 아이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런 나의 결정에 아쉬움도 있다.

 

우리 반 아이 중에도 공부 잘 하면서도 가정 형편이 어렵거나, 행동거지 바르고 성실한 아이가 이런 상 하나를 더 받는다면, 일류 대학에 갈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왜 나는 그런 경우를 만들어내는데 이토록 서툰 것일까. 순수하게 보면 정말 순수한 것인데도, 왜 나는 공부 잘 하는 아이들이 공부 이외의 상마저 다 휩쓸어가는 것에 반감을 느끼고 있는 것일까. 왜 '몰아주기'식 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런 순간이 올 때마다 왜 내 시선은 들러리처럼 앉아 박수를 치고 있는 아이들의 공허한 눈빛에 가 닿는 것일까.


태그:#어버이 날, #효행상, #성적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