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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을 기다리는 핸드폰
 주인을 기다리는 핸드폰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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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핸드폰 사주시면 안돼요?" 큰아들이 중학교 가면서 앵무새처럼 시시때때로 하는 말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핸드폰을 보여준다. "아빤 이런 걸 쓰고 있는데, 사주라는 말이 나오니? 엄마는 핸드폰도 없다."

아내도 거든다. "재형이가 저렇게 핸드폰 사 달라는 데 어떻게 해요?" 아빠에게는 말도 안 통한다고 판단했는지 엄마에게 졸랐나 보다.

"대체 핸드폰 사달라는 이유가 뭔데? 전화야 공중전화에서 콜렉트콜로 하면 되고…."
"학교 가는 버스에서 다른 애들은 게임도 하고 음악도 듣는데, 저만 할 일이 없어요."
"그럼 공부하면 되잖아. 아빠 학교 다닐 때는 영어단어도 외우고 그랬어."

더 이상 대화가 안 된다는 눈치다. 거의 포기 수준. "공짜폰도 많던데…"하면서 아쉬움을 진하게 남긴다. 아이는 서운하고, 나는 핸드폰 사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고…. 불현듯 이런 비생산적인 논쟁을 종식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아빠가 제안하나 할까?"
"뭔데요."
"네가 이 앞전 시험결과에서 등수를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면 고려해 볼게."
"조건 없이 해주시면 안돼요?"

아이는 넘지 못할 협곡을 만난 표정이고, 나는 아주 통쾌한 미소를 지으며 논란을 종식시켰다는 개선장군 같은 표정이다.

"제발 핸드폰 하나 사라"

"차 좀 빼주시면 안돼요." "윤성이 엄마 핸드폰 아니에요." "택배 왔는데요." 내가 수시로 받는 전화다. 사실 나한테 걸려오는 전화보다 이런 전화를 더 많이 받는다.

핸드폰 가게마다 최고급형 휴대폰을 공짜로 준다고 광고를 한다.
 핸드폰 가게마다 최고급형 휴대폰을 공짜로 준다고 광고를 한다.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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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핸드폰이 없다.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그것도 작은 이유가 되겠지만 그 정도 통신요금을 부담하지 못할 만큼 처절하지는 않다. 하여튼 무조건 싫다고 한다. 미칠 노릇이다. 급하게 찾으려면 연락이 안 된다. 제발 핸드폰 하나 장만해라고 해도 못 들은 체 한다.

그렇게 답답하면 하나 사주면 되지 않느냐고? 한번은 인터넷에서 핸드폰을 사서 택배로 보냈다. 아내는 핸드폰을 마음대로 샀다며 반품하란다. 이미 사버려서 반품할 수 없다고 완강하게 버티는 나에게 "그래도 처음 사는 핸드폰인데 내가 맘에 드는 걸로 골라야 하지 않겠느냐"고 한다.

철썩 같이 믿었다. 바로 다음날 구매했던 곳에 전화를 해서 사정을 설명하고 반품을 했다. 속았다. 절대 핸드폰 안 산단다. 며칠을 스토커처럼 쫓아다니며 사정했지만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아내는 핸드폰이 없다.

"웬만하면 하나 바꾸지"

내가 쓰고 있는 핸드폰은 안테나가 달려있다. 내 생애 두 번째 핸드폰. 첫 번째 핸드폰은 기차 안에서 잃어버렸다. 잃어버릴 당시에도 작은 핸드폰들이 많이 나와서 막대형인 핸드폰은 돌려줄 생각도 하지 않았을 거다.

8년간 나의 호주머니에서 함게 한 핸드폰
 8년간 나의 호주머니에서 함게 한 핸드폰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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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바꾼 두 번째 핸드폰은 나와 함께 한 지 오래됐다. 무려 8년. 매일같이 나의 오른쪽 호주머니에서 꼼지락거리며 제 역할을 묵묵히 해오고 있다.

"요즘 핸드폰 거저 주는데…" "웬만하면 하나 바꾸지." 주변에 있는 많은 분들이 내 핸드폰을 볼 때마다 한마디씩 하는 말이다. "아주 잘 되는데 왜 바꿔."

참 주인 잘못 만나 고생도 많이 했다. 술 먹다 성질나면 던져서 한쪽 모퉁이는 홈이 파였고, 예쁘게 단장한 코팅은 대부분 벗겨져서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산에서 전화하다 바위에 떨어뜨려 액정도 깨졌다. 더 이상 금이 가지 말라고 강력본드로 붙이고 있는 것을 보던 아내도 그냥 바꾸라고 한다.

충전할 때 분리해서 하는 것만 빼면 사용하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다. 당연히 충전하는 동안은 전화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게 엄청난 스트레스다. 한번은 회사에서 급하게 나를 찾을 일이 있었는데 전화가 불통이 되었다. "전 집에 들어가면 전화를 꺼 놓는 습관이 있어서요." 다음부터 그러지 말란다. 그러고 싶어서 그러나. 급한 일이 안 생기기만 바랄 뿐이다.

"아빠! 핸드폰 사주셔야 될 것 같은데요?"

큰애가 중간고사를 보고 난 며칠 후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걸어온다. "아빠! 핸드폰 사주셔야 될 것 같은데요?" 왜? "제가 이번에 중간고사를 아주 잘 봤거든요." 아직 학교에서 공식 발표는 없었지만 반 애들과 성적을 비교해 본 결과 시험을 아주 잘 봤다고 한다.

순간 기분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애가 성적이 올랐다면 좋아해야 할 일이지만 아들과의 게임에 졌다는 생각에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 "시험을 보고나서 잘 봤다고 하는 애들치고 시험 잘 본 애들 없더라."

핸드폰을 이것저것 켜 보면서...
 핸드폰을 이것저것 켜 보면서...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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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시험성적은 상상했던 결과를 초월했다. 발표된 성적은 상위권에 걸렸다. 등수를 반으로 줄이는 쉽지 않은 조건이었는데 그이상의 결과가 나왔다. "애가 얼마나 핸드폰이 갖고 싶었으면…" 아내는 애 편을 든다. "내가 핸드폰 가지려고 얼마나 공부를 했는데…. 이제는 사주셔야 돼요."

사고, 바꾸고, 버티고…

"오늘 바빠요?" 아내가 전화로 물어온다. 왜? "핸드폰 사달라고 난린데…" "그럼 회사 앞 핸드폰 가게로 내려와."

그렇게 무려 8년 만에 핸드폰 가게를 찾게 되었다. 아들은 이것저것 보면서 쉽게 결정을 못한다. 공짜폰이라 썩 마음에 들지는 않은가 보다. 아무래도 욕심이야 최신형으로 기능이 많은 것으로 사고 싶겠지. "공짜폰이라지만 공짜는 아니야. 다 기본요금에 산정되어 있는 거야."

핸드폰 구입시 작성하는 신청서와 약정서
 핸드폰 구입시 작성하는 신청서와 약정서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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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 가게에서 핸드폰 고르는 중
 핸드폰 가게에서 핸드폰 고르는 중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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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개월 의무사용에 기본요금은 가장 싼 걸로 구매를 했다. "근데 애들이라 잃어버리면 어떻게 해요?" "걱정 마세요. 위약금 안 물게 중고폰을 빌려드려요. 어떻게든 24개월 채우게 해 드릴게요."

애도 핸드폰 새 걸로 샀는데, 나도 구미가 당긴다. "번호 바뀌지 않고도 핸드폰 바꿀 수 있어요?" 점원은 웃으면서 있다고 한다. "현재 무슨 전화기 쓰세요." 호주머니에서 나온 나의 전화기. 점원은 아주 큰 웃음을 터트린다. "햐! 아직도 이런 거 쓰세요?" "잘 돼요."

통신회사를 변경하는 조건으로 전화기를 바꿨다. 그리고 가족요금으로 할인조건도 추가하게 되었다. "당신도 하나 사지?" 아내에게 이왕 산 거 다 하나씩 하자며 권유를 했더니,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며 나가 버린다. 결국 아내에게 핸드폰 사주는 것은 포기.

"밥 안 먹을 거야"

집으로 돌아온 우리. 아내는 늦은 저녁밥을 차리고, 아들과 나는 머리를 맞대고 핸드폰을 들고 열심이다. "벨 소리 어떻게 바꾸니?" 띠링띠링. 띠디디딩. 벨소리도 바꿨다가, 폰사진도 찍어보고, 바탕화면도 바꾸고….

"밥 안 먹을 거야?"
"잠깐만!"
"아휴! 시끄러워 죽겠네."

가게에 진열된 핸드폰
 가게에 진열된 핸드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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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8년 동안 쓰던 핸드폰을 새것으로 바꿨습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두 개의 핸드폰이 나란히 책상에 있습니다. 저 액정에 숫자가 사라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무척 서운합니다. 10년은 채운다고 했는데 결국 나와의 약속을 지키지는 못했습니다. 새로 산 핸드폰은 몇 년을 써야 할지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하지만 언제든 새 것으로 바꿀수 있다는 유혹. 이전 것보다 더 오래 쓰지는 못하겠지요?



태그:#핸드폰, #공짜폰, #휴대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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