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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초 어린이날을 앞두고 6명 여자분들이 모티프원에 오셨습니다. 이 분들과 함께 하는 자리에서 모두가 올해 임용된 초등학교 교사들임을 알았습니다. 봉직하고 있는 학교는 모두 달랐지만 한 대학에서 같은 꿈을 준비하며 4년을 함께 보낸 대학동창이었습니다. 담임을 맡은 분도 계시고 일부는 교과만을 담당하고 계신분도 있었습니다. 대부분 3,4학년을 담당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순종적인 1,2학년과 어느 정도 지각능력이 성숙된 5,6학년에 비해 3,4학년은 호기심이 왕성하고 스스로를 어른으로 여기는 소년기적 특징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시기입니다. 담당선생님들의 에너지도 가장 많이 필요한 학년이기도 합니다."

 

초임교사들이 왜 3,4학년을 주로 담당하는가라는 제 의문에 대한 이가영 선생님의 답변이었습니다.

 

함께 한 여섯 분들은 모티프원에서 잠시 선생님이라는 외투를 벗고 대학 때 그 발랄한 여대생의 모습으로 되돌아갔습니다. 하지만 서로의 안부와 신상 변화에 대한 얘기 중에도 곧 각자가 맡고 있는 학생들에 관한 것으로 되돌아가곤 했습니다. 이제 첫학기를 보내는 초임교사들에게 가장 큰 관심과 얘기는 학생일 수밖에 없는 듯 했습니다.

 

"우리 반에 시설에 있는 학생이 있어. 학기 초 모든 학생들의 학부모 면담을 해야 하는 것을 통보하면서 부모님들이 언제 오실 수 있는지를 알아오라고 했어. 한데 그 아이가 '저는 엄마 대신 선생님이 오셔야 하는데요'라고 하는 거야. 참 당황됐었어."

 

시설아동은 아마 예전 고아원이라 불리던 보육원 같은 아동보호시설을 지칭하는 듯했습니다.

 

"우리 반 한 아이는 늘 내게 묻는 거야. '선생님 뭘 갖고 싶어요? 저희 아빠가 오시면 제가 선생님 갖고 싶은 것 모두 사드릴께요'라고. 나중에 알고 보니 편모(偏母)가정 아이었고 아마 엄마는 아빠가 돈을 벌기 위해 멀리 외국에 가 계신다고 사실과 달리 말했던 것 같아. 그 아이는 아빠가 1억을 벌어온다는 소리를 들었고 그 돈은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 큰 돈으로 믿고 있는 거지. 아빠가 돌아오는 날 그 아이는 내게 뭔가를 해주고 싶은 거야."

 

다른 선생님이 얘기를 받았습니다.

 

"내 반에는 엄마가 안 계신 아이가 있어. 미술수업중에 재료를 나누어 주면 꼭 하나를 더 달라는 거야. 왜 하나가 더 필요한지를 물었지. '엄마 것을 하나 더 만들고 싶어요. 언젠가 엄마를 만나면 드릴려구요.' 그 얘기가 왜 그리 슬픈지 모르겠어."

 

서로의 얘기를 하며 함께 숙연해지곤 하는 선생님들을 보면서 이 가슴 따뜻한 새내기 교사들에게 참 믿음이 갔습니다. 이 시대에 선생님에게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 바로 '따뜻한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이즘 교육 현장에서 가장 아쉬운 것은 피교육자에 대한 '따뜻한 가슴' 갖는 대신 지식전달자로서의 역할만이 강요된다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검색해낼 수 있는 지식 주입 대신 스승이 해야 할 화급한 덕목이 부지기수임에도 불구하고 담당 학급 학생들의 총체적 시험성적의 합이 담당선생님의 능력으로 평가되는 시스템에서 애초 이 길을 가고자 했던 초심들이 자꾸 뒷전으로 우선순위가 밀려날 수 밖에 없음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미래'에 큰 책임을 진 선생은 그 덕목들을 한순간도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저도 때로는 누군가를 가르치는 경우가 되곤 하는 입장에서 나름으로 '스승의 덕목'에 대해 생각해보곤 합니다.

 

교단에 서는 분은  어떤 사람과 접촉해도 상대가 오염되지 않을 '순수한 영혼'과 자꾸만 뒤쳐지는 누군가의 발걸음을 등 떠밀며 부추겨줄 '용광로 같은 열정', 모두가 다 지쳐 쓸어져도 최후로 남아 '다시 출발!'을 외칠 수 있는 '강인한 체력', 완주까지는 수많은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해야하는 '마라토너의 인내', 새벽 4시면 벌써 마당에 나오셔서 헛기침으로 가족들의 기상을 독려하시는 '할아버지의 근면', 학생을 목표한 분야에 우뚝 세울 수 있는 '깊은 전문성', 학생들이 성장의 과정에서 부딪칠 수밖에 없는 내적, 혹은 외적 갈등에 조언할 수 있는 '다양한 경험', 무엇보다도 세상이 살만한 곳임을 확신할 수 있는 '따뜻한 사랑'을 두루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순수한 영혼을 유지하는 것, 열정을 잃지 않는 것, 체력을 연마하고 인내를 갖는 것, 스스로 근면하며 전문성을 확보하는 것, 경험을 쌓고 사랑을 실천하고자 하는 것은 갖춘 것 보다 미비한 것이 더 많은 저 스스로의 부족함을 일깨우기 위한 덕목이기도 합니다.

 

사랑이 매보다 유효한 것은 그것으로 치유된 상처는 결코 재발하는 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부모나 선생이나 '아이들을 사랑으로 휘감겠다'는 다짐이 유효한 이유입니다. '사랑'을 처방하기 위해서는 오랜 투약과 그 약효를 확인하기위해서 긴 기다림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모티프원의 앞집 청향재의 송효섭 교수님은 어제 강의가 없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학교로 갔습니다. 어제 저녁에야 한미란 사모님을 통해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내일이 스승의 날이라 제자들과의 만남이 있었나 봅니다."

 

다시 돌아오신 송교수님의 얼굴에 어느 날보다도 희색이 넘쳐흘렀습니다. 스승에게 제일 기쁜 것은 이렇든 제자들이 스승을 필요로 하는 것이지요. 스승에 대한 존경 대신 요구와 의무만 지우는 듯해서 아쉬웠던 마음이 송 교수님의 은근한 미소로 싹 가시었습니다.

 

스승의 날이라는 오늘, 우리 모두는 스승에게 의무만을 강요하는 대신 '직업이 선생이 아니더라도 모든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귀감이 되어야하는 스승'이라는 사실을 상기하는 것이 절실한 날입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홈페이지 
www.motif1.co.kr
에도 포스팅됩니다.


태그:#스승의날, #스승의덕목, #스승, #모티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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