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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쯤 잠에서 깼다.

더 누워있고 싶었지만, 전날 약주를 한 잔 하시고 밭에서 늦게 돌아온 아버지와 어머니가 하시던 이야기 때문에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이미 부모님은 아침을 드시고 밭에 나갈 채비를 하시고 계셨다.

전날밤 "대통령도 저렇게 가는데..."란 말씀을 하시며, 그간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하소연하듯 꺼낸 아버지는 부지런히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아랫밭으로 먼저 나섰다. 그 뒤를 따라 붉은 아침해가 떠오르기 시작한 동쪽 하늘과 아직 잠들어 있는 마을, 모내기를 끝낸 논사이를 어둠기가 남아있는 서늘한 새벽바람에 몸서리치며 걸어갔다.

동쪽하늘이 붉게 빛난다.
 동쪽하늘이 붉게 빛난다.
ⓒ 이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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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에 마주한 풍경, 수많은 사람들이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그가 그들 곁에서 떠나가는 마지막 날의 새벽은 너무나 눈부시고 아름다웠다. 산능선 위로 살짝 솟아오른 태양은 순식간에 아침이슬을 놀래키며 파란 초여름날을 열며 밤새 잠들어 있던 생명들을 하나둘 깨웠다.

개구리밥이 일렁이는 논에는 청렴결백한 새하얀 백로가 오가며 먹이를 찾았고, 논둑과 농수로를 따라서는 생명의 젓줄인 물이 졸졸졸 맑은 소리를 내며 대지를 적시며 흘러갔다. 밀려드는 아침잠에서 벗어나니 어느덧 밭에 이르렀고, 평생 농사꾼으로 살아온 아버지와 어머니는 쪼그려 앉아 어린 철쭉 모묙을 심고 계셨다.

아직 잠이 깨지 않은 마을과 논밭 위로 붉은 태양이 솟아오른다.
 아직 잠이 깨지 않은 마을과 논밭 위로 붉은 태양이 솟아오른다.
ⓒ 이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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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는 금새 본 모습을 드러냈다.
 해는 금새 본 모습을 드러냈다.
ⓒ 이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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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냘픈 나무줄기에서 거미줄 같은 실뿌리를 내려 잎을 틔운 나무들을 밭에다 옮겨심느라, 어제(28일)도 부모님은 무더운 날에 고생을 하셨다. 어젯밤 아버지가 잠에 드신 뒤 "아침에 4시간만 밭에 나와 도와주라"는 어머니의 말씀에 평소보다 일찍 잠에서 깬 것도 이 때문이다.

경운기로 밭을 갈아 검은 비닐을 씌워 나무 심을 구멍을 뚫어 놓은 뒤라, 부모님은 나무심기에 매달렸다. 무슨 일을 어떻게 도와드려야 할지 여쭙고는, 구멍 개수에 맞춰 연약한 실뿌리를 가진 묘목을 하나씩 떼어내 부려놓고 모자란 흙덮기와 긴 몸집을 자랑하는 보아뱀과 같은 고무호스를 끌고 다니며 비를 뿌리듯 나무에 물을 주었다.

이 새벽 그의 운구가 서울로 향했다.
 이 새벽 그의 운구가 서울로 향했다.
ⓒ 이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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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로 살고자 했다는 그가 떠올랐다.
 농부로 살고자 했다는 그가 떠올랐다.
ⓒ 이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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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일하는 동안 비닐하우스에 올려놓은 소형라디오를 통해, 대통령 퇴임 후 고향 땅으로 돌아가 농부로 살고자 했던 '바보'란 별명을 좋아했던 그의 운구행렬이 서울로 올라오고 있다는 소식에 귀기울였다. 참여정부 시절 온갖 반환경정책들 때문에 그를 지지하지 않았고 지금도 그리 좋아하진 않지만, 쓸쓸히 죽어간 그가 편히 잠들었으면 싶었기 때문이다.

이마저 이념과 논리만 따지는 냉혹한 이들은 '슬픔과 도덕을 강요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초록생명을 품은 어린 나무를 심으면서 한 인간의 죽음이 교차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흔히 눈물을 보이지는 않지만, 감정이 남아있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암튼 그가 떠나는 새벽부터 아침나절 내내 나무를 심었다. 잘 자라주길...

새하얀 날개짓을 하는 백로
 새하얀 날개짓을 하는 백로
ⓒ 이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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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부터 일을 나선 부모님
 새벽부터 일을 나선 부모님
ⓒ 이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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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나무들을 밭에 심었다. 잘 자라길...
 어린 나무들을 밭에 심었다. 잘 자라길...
ⓒ 이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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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뉴스와 블로거뉴스에도 송고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새벽, #밭, #아침, #부모,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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