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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임신했다. 삼백일이 지나고, 이제 출산을 눈앞에 두고 있다. 아내는 여느 임산부처럼 배가 남산(왜 임산부의 배를 남산에 비유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다)만 하다. 뱃속 아이가 힘껏 발길질을 해대면 배가 불쑥 뛰어나온다. 신비다. 며칠 뒤면 이 녀석이 나와 아내 사이에 누워있겠지. 기적이다.

두팔 두다리를 힘껏 펼치며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고 있다. 생명을 정성껏 맞으려는 노력이다. 하나야 너도 엄마의 수고를 알고 있지?
▲ 만삭의 몸으로 힘차게 걷고 있는 아내 두팔 두다리를 힘껏 펼치며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고 있다. 생명을 정성껏 맞으려는 노력이다. 하나야 너도 엄마의 수고를 알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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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임신한 걸 감사하면서도 산고를 걱정하는 눈치다. 아직도 남자가 군대에 다녀오고, 여자는 출산을 하니 쌤쌤(똑같다)이라고 생각하는 남성들 많다. 정신 차리자. 아무 상관없다. 요즘 비슷한 구석을 발견했다. 군대도 구타가 없어져 편하다고 하는데, 군대 따라 가나? 통증 없이도 아이를 낳을 수 있단다. 시내를 지나다 보면 '무통분만'이란 글귀를 흔히 볼 수 있다. 병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무통분만' 플래카드를 걸어놓고 호객행위를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임부가 출산을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짐작이 간다. 하지만 마취제와 촉진제를 사용하는 인위적인 출산이라 어째 마음이 찝찝하다.

출산의 고통은 그렇다 쳐도, 임신 기간 내내 안 해도 될 걱정과 불안을 달고 사는 사람도 많이 봤다. 임신이라는 지독한 병(?)을 가진 어미와 아비 심지어 양가의 예비 할머니·할아버지들까지 산부인과 의사 한마디에 살고 죽는다. 진료를 해야만 알 수 있는 의사는 기형아 검사, 양수 검사, 무슨 검사, 무슨 검사를 하자고 권한다. 까짓 돈이 문젠가 아이의 생명이 달린 일인데….

임신기간 중기에서 말기로 갈 수록 다리에 부종이 생긴다. 운동을 하고 나면 다리가 붓는 것은 두말해야 잔소리다. 그러나 운동을 포기할 수 없다. 자연스런 출산을 위해 아내는 해를 등지고, 쉬면서 다리를 풀어주고 있다.
▲ 다리를 주무르고 있는 아내 임신기간 중기에서 말기로 갈 수록 다리에 부종이 생긴다. 운동을 하고 나면 다리가 붓는 것은 두말해야 잔소리다. 그러나 운동을 포기할 수 없다. 자연스런 출산을 위해 아내는 해를 등지고, 쉬면서 다리를 풀어주고 있다.
ⓒ 고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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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는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고 있습니다"는 말을 듣고 싶다. 그 말을 듣고 나면 "감사합니다"란 말이 절로 나온다. 미안하지만 대다수의 아기는 의사의 그런 도움 없이도 뱃속에서 잘 자란다. 아이를 건강하게 키우는 건 신이 인간에게 허락한 신비로운 생명작용(활동)이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아내는 임신사실을 알고, '병원'말고 비과학적(?)인 '조산원'에 가서 낳자고 했다. 위험(?)해 보이는 조산원 출산을 감행한 형과 누나들의 격려가 힘이 되었다. 재밌는 건 공부를 하면 할수록 조산원보다 산부인과 출산이 더 위험해 보인다. 당연히(?) 부모님들은 반대하셨다. 아무래도 큰 병원이 낫지 않겠냐는 거다. 잘 아는 교수가 있으니 거기로 가자신다. 마음만 받겠다고 말씀드리고, 인위적인 개입(마취제, 촉진제, 제왕절개, 회음부절개 등)이 없는 조산원으로 결정했다(산부인과 중에도 '자연스런 출산을 해야 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운영하는 곳이 있다고 한다).

서울 강북구에는 안타깝게도 조산원이 없다. 우리는 멀리 부천까지 간다. 1시간 걸린다. 말 그대로 원정출산이다. 더 황당한 건 병원은 '고운맘'카드 혜택을 받을 수 있는데, 조산원은 안 된단다. 그래도 조산원 간다. 한번 진료(출산까지 4번 갔다)에 만 원 정도고, 부모와 아이를 위해 출산교육과 태교음악회도 정기적으로 열린다. 뱃속에 '하나(태명)'는 태교음악회 광팬이다(뱃속에서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머리를 갈색으로 물들였다. 아이(하나)를 밝은 마음으로 맞이하고 싶었다.
▲ 나와 아내 머리를 갈색으로 물들였다. 아이(하나)를 밝은 마음으로 맞이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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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오늘도 북한산 자락에 있는 영락기도원 운동장을 열다섯 바퀴 돌았다. 매일 산에 오르면서, 새소리, 물소리를 아이에게 들려준다. 출산을 돕는 풍욕, 모관,합장, 합척 운동, 윗몸일으키기, 엎드려 등 털기 등 운동을 매일하고 있다. 모유수유를 위해 호두껍질로 유두를 키우는 민간요법도 효과를 보고 있다.

예정일이 하루가 지났다. 어머니가 전화해 '입원' 안 해도 되겠냐고 물어보신다. 입원하면 100% 제왕절개다. 조산원에 갔더니 원장님이 이번 주말에나 나올 것 같다고 하신다. 밤송이가 알차게 여물어 입을 떡 하니 벌리기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하나'를 기다린다. "하나야! 너의 때에 자연스럽게 나오렴!"

엄마도 아기도 모두 건강합니다. 하나는 5월 26일 3.65kg의 몸으로 태어났습니다. 조산원에서 낳으면 아이와 격리되지 않습니다. 함께 지낼 수 있는 자연스런 기쁨.
▲ 하나의 모습 엄마도 아기도 모두 건강합니다. 하나는 5월 26일 3.65kg의 몸으로 태어났습니다. 조산원에서 낳으면 아이와 격리되지 않습니다. 함께 지낼 수 있는 자연스런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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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는 예정일에서 열흘 지난 5월 26일에 여유롭고 건강하게 태어났습니다. 아내와 저는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님의 서거로, 만삭의 몸을 이끌고 덕수궁 분향소를 찾았습니다. 하나같이 모여 애도를 표하는 사람들 속에서 반칙과 특권없는 '사람 사는 세상'의 노무현 대통령님의 꿈이 영글어 가고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어둠의 역사를 뚫고 나올 '희망둥이'을 밥하고 기저귀 빨고 청소하고 다시 밥하는 산후조리 살림생활을 반복하면서 기쁨으로 기다립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수동 마을신문 '아름다운 마을'에도 실렸습니다. welife.org



태그:#하나, #조산원, #자연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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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홍천군 서석면에 살고 있습니다. 마을에서 일어나는 작고 소소한 일들, '밝은누리'가 움틀 수 있도록 생명평화를 묵묵히 이루는 이들의 값진 삶을 기사로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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