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 16일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던 고(故) 장준하,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등 9명에 대한 재심을 청구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 16일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던 고(故) 장준하,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등 9명에 대한 재심을 청구했다.
ⓒ 이경태

관련사진보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이 16일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던 고(故) 장준하,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등 9명에 대한 재심을 청구했다.

민변은 앞서 지난 2월 긴급조치 1호 위반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오종상, 양춘승씨의 법적 신원 회복을 위한 재심을 서울고법에 청구한 바 있다. 민변은 당시 이와 아울러 유신헌법 제53조 및 긴급조치 제 1·2호, 제9호, 그리고 형사소송법 제326조 제4호(범죄 후 법령개폐로 형이 폐지됐을 때에 면소하도록 규정)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도 청구했다.

이와 관련해 민변은 "유신헌법은 박정희 대통령이 스스로 형성한 국가비상사태를 빌미로 국민을 강박하여 제정한 헌법으로서 근대적 헌법의 기본원리를 부인한 것"이라고 규정했다.

또한 긴급조치 제1·2호, 제9호에 대해서도 "헌법 개·제정권자인 국민의 정치적 기본권·언론출판의 자유 등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것으로 현대 입헌주의 국가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자의적 공권력 행사에 다름 아니었다"고 결론지었다.

민변은 이어, "사법부 자체가 불법적·범죄적 공권력 행사를 확정했거나 방조함으로써 피해를 초래한 본 긴급조치 사건에 대해서는 특별법을 통한 입법적 구제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사법부 또한 기계적·형식적 면소규정을 탈피하여 실체 재판을 통하여 스스로의 과거의 국가폭력을 단죄함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되찾고 법과 정의를 바로 세울 것을 다시 촉구한다"고 밝혔다.

고 장준하 선생 유족 "36년이 지난 지금까지 가족이 모두 한 자리에 못 모여"

고(故) 장준하 선생 대신 기자회견에 참가한 장남 호권(60)씨는 "아버지가 구속되면서 뿔뿔이 흩어진 우리 오남매는 3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한 자리에 모여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고(故) 장준하 선생 대신 기자회견에 참가한 장남 호권(60)씨는 "아버지가 구속되면서 뿔뿔이 흩어진 우리 오남매는 3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한 자리에 모여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 이경태

관련사진보기

민변 긴급조치사건 변호인단 단장 이석태 변호사는 "특히 백기완, 장준하 선생은 박정희 군사독재정권 시대에 가장 맨 앞에서 민주주의를 외치다가 투옥되셨다"며 "그런 의미에서 이번 두번째 재심 청구는 더더욱 뜻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고 의미를 설명했다.

이 변호사는 이어, "6월 항쟁 이후 여러 과거의 문제들을 평가하고 개선해 왔지만 유신헌법과 긴급조치 등은 아직까지도 법률적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며 "이제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해 국민들의 이름으로 바로잡을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고(故) 장준하 선생과 함께 '개헌 100만인 선언'에 나서는 등 유신헌법 개헌 필요성을 주장했다는 혐의로 영장 없이 체포돼 지난 1974년 1월 긴급조치 법정 최고형인 징역 15년·자격정지 15년을 받았던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은 "유신헌법에 '법'이라는 단어만 붙었지 법이 아니라 생각해 원천적으로 나는 무죄라고 생각하며 40년 가까이 살았다"며 "그동안 누구도 (이 죄를) 벗겨주지 않았다, 이제 민변이 꼭 이겨주길 바란다"고 부탁했다.

고(故) 장준하 선생 대신 기자회견에 참가한 장남 호권(60)씨는 "아버지가 엉터리 같은 재판과정을 거쳐 15년 형을 받은 뒤 저희 가족들이 겪은 참담한 생활은 말로서 표현할 수가 없다"며 "아버지가 구속되면서 뿔뿔이 흩어진 우리 오남매는 3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한 자리에 모여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장씨는 이어, "최근 보면 이명박 정부가 과거의 박정희 정권과 같이 유신헌법과 비슷한 법을 만들 수 있지 않나 싶다"며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헌법기관에서 (긴급조치 등이) 위헌이라고 밝혀진다면 미래에 이런 참담한 사건이 안 일어나지 않겠느냐는 게 제 바람"이라고 덧붙였다.

"죽인다는 협박에 인정한 혐의... 명예회복도 못하고 죽는구나 싶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이 16일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던 고(故) 장준하,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등 9명에 대한 재심을 청구했다. 사진은 재심청구인들의 재판결과 요약과 혐의 및 형 등을 요약한 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이 16일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던 고(故) 장준하,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등 9명에 대한 재심을 청구했다. 사진은 재심청구인들의 재판결과 요약과 혐의 및 형 등을 요약한 표
ⓒ 이경태

관련사진보기


백 소장과 장씨 외에 이번 2차 재심 청구에 참여한 이들도 유신정권으로 겪은 각자의 기구한 사연을 털어놨다.

한봉석(64)씨는 정부 비판 유인물을 소지하고 있다는 정황만으로 체포돼 징역을 살았다.

한씨는 현대건설 본사에 근무하던 중 1977년 미국의 포드 대통령과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 등에게 '한국의 민주주의가 소멸되고 많은 지식인과 학생들이 정치적인 문제로 고통을 받고 있다'는 내용의 문건을 작성했다는 혐의로 구속돼 12일 간 고문을 받은 뒤 재판에 회부됐다. 1심 재판 도중 고문에 의한 정신분열 증상을 보여 감정까지 겪었지만 당시 사법부는 '원래부터 있었던 병증'이라며 그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상고를 했지만 형량은 징역 3년으로 감형됐을 뿐이었다.

한씨는 "가정이 풍비박산되고 지금까지 수십 년간 (가족들을) 만나보지도 못하고 있다"며 "지금도 온전치 못하다, 다행히 지난 국민의 정부 때 기초생활보장 대상자로 지정돼 어렵게 생활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씨의 담당 변호사인 오창훈 변호사는 "고문에 의한 정신분열임이 분명함에도 법원은 그전엔 멀쩡히 회사에 근무하고 있던 이를 정신병자로 판단했다"며 "더불어 서신이 발송되지도 않았는데 이를 '예비 범죄'로 판단해 사법처리한 것은 '양심 살해'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간첩을 못 잡는 예비군이 무력하다"는 유언비어를 날조·유포한 혐의로 구속돼 징역을 산 이봉래(83)씨는 "명예회복도 못하고 죽는구나 싶었다"며 이번 재심 청구에 대한 마지막 기대를 드러냈다.

"중앙정보부에 연행돼 3일 동안 갖은 협박을 받았다. 당시 너 하나 죽이는 것 문제 아니라는 협박에 못 이겨 인정한 게 지금의 혐의다. 요행히 (한국전쟁 때)학도병으로 참전해 세운 공적을 내세워 살아나왔지만 날 음해한 이들이 죽거나 행방불명돼 과거사 위원회도 명예회복을 시켜주지 못했다. 오늘 이렇게 기회를 맞았다."

1차 재심청구는 여전히 계류중... "국회·사법부의 자기반성 없다면 계속 재심청구"

한편, 지난 2월 변호인단이 제기한 오종상, 양춘승씨의 유신·긴급조치 재심 청구 사건은 여전히 계류 중이다. 

긴급조치사건 변호인단 간사 조영선 변호사는 이와 관련해 "근본적으로 긴급조치가 위헌이라는 점에서 재심을 청구하는 것도 있지만 국회나 사법부에서 자기반성의 뜻을 가지고 있는 입법 및 재판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까닭이 크다"며 "변호인단은 이런 점이 해결되지 않는 한 청구인을 계속 모아 3차, 4차로 재심을 청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태그:#긴급조치, #장준하, #백기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