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뻘배의 귀환
 뻘배의 귀환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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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만을 걸어보고 싶다. 얼마 전에 읽은 곽재구의 <포구기행>에 순천만 거차 마을이 나온다. 마을 이름도 특이하거니와 순천만 끝자락에 사는 모습이 궁금하다. 화포도 궁금하고 와온 마을도 보고 싶다.

불빛들이 빛나기 시작한다. 저 불빛은 화포의 불빛이고, 저 불빛은 거차의 불빛이며, 저 불빛은 와온 마을의 불빛이다. 하늘의 별과 순천만 갯마을들의 불빛들을 차례로 바라보며 마는 어느 쪽이 더 아름다운가 하는 싱거운 생각에도 잠겨본다. 당신 같으면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나의 선택은 마을의 불빛들이다. -곽재구의 <포구기행> 중

순천만 도보길. 거차에서 대대포구까지. 거리는 대충 계산한 것임
 순천만 도보길. 거차에서 대대포구까지. 거리는 대충 계산한 것임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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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동안 지도를 보면서 계획을 짰다. 걸어갈 거리와 시간을 계산하고, 버스 운행시간도 맞췄다. 지도를 보면서 더욱 매력을 느낀 건 바다를 보면서 해안을 따라 한적한 길을 걸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거차 마을로 가는 버스

거차가는 85번 시내버스 풍경
 거차가는 85번 시내버스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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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0일 아침. 거차 가는 시내버스를 기다린다. 혹시나 가버렸을까 조마조마했는데 기다리던 버스가 온다. 이번 차를 놓치면 2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버스 번호판에는 거차 간다고는 안 쓰여 있다. 올라타면서 거차 가는 거냐고 물으니, 할머니들이 먼저 얼른 올라오라고 한다. 거차까지 가려면 뒤에 자리 잡고 앉으란다.

시내버스 안은 조용하다. 승객들은 대부분 할머니들로 말이 없다. 할머니들은 벌써 아침 시장에 나가 해산물을 다 팔고 빈 다라이를 차곡차곡 포갰다. 시장에서 반찬거리도 사고, 병원도 다녀오셨는가 보다. 약봉지도 보이고, 장바구니도 보인다.

버스는 큰 도로에서 벗어나 별량면 쪽으로 빠져 나간다. 면소재지를 지나 차 한 대 겨우 다닐 좁은 길을 구불구불 따라간다. 몇 개의 마을을 지나고 버스는 종점에 도착한다. 거차마을이다. 할머니들도 내렸다. 마을 바로 앞으로 갯벌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갯벌과 함께 살아가는 삶의 현장 거차마을

거차마을은 행정구역으로는 별량면(別良面) 마산리(馬山里)에 속한 마을이다. 마을 중심에 천마산(145.6m)이 뾰족 솟아 있다. 시인 곽재구는 마을 할머니의 말을 빌어서 살아가는 게 거칠거칠해 거차마을이라고 했다. 거칠 것 없이 바다를 향해 치닫는 갯벌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휑한 느낌이다.

마을을 둘러보려고 바닷가를 따라 방파제로 향한다. 그림으로만 보던 풍경이 펼쳐진다. 저 멀리서 뻘배를 슥슥 밀고서 해안으로 들어오는 풍경. 썰매를 밀고 다니는 것 같이 펄 위를 미끄러지듯 타고 다닌다.

거차마을 갯벌 풍경. 뻘배와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다.
 거차마을 갯벌 풍경. 뻘배와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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뻘배를 타고 돌아온 할머니는 작업장에서 잡아온 해산물들을 씯고 있다. 상자에는 숭어도 들었고, 게도 들었다.
 뻘배를 타고 돌아온 할머니는 작업장에서 잡아온 해산물들을 씯고 있다. 상자에는 숭어도 들었고, 게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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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가까이 다가올수록 펄을 밀어내는 한쪽 다리가 무척 힘들어 보인다. 펄에서 살아가는 거친 삶이 그대로 드러나 보인다. 뻘배에는 양동이나 상자를 하나씩을 실었다. 텔레비전에서 보던 고막이 가득 들었을까? 내가 상상했던 거와는 달리 상자마다 들어 있는 건 고막이 아니라 작은 게와 장어 같은 물고기가 가득 들었다.

"뭐 찍을 거나 있어?"
바닷물로 펄을 씻어내며 웃으시는 할머니의 표정이 너무나 맑다. 연세가 상당히 되셨다. 얼굴에는 굵은 주름이 아름다운 선을 만들어낸다.

"지금 고막은 안 나와요?"
"제 철이 아니여. 어제 방송사에서 촬영하느라고 저 멀리까지 나왔던데."
짱뚱이를 한 양동이 들고 나오시는 아저씨는 마을 자랑이다. 참 친절들 하시다. 힘들게 일하시는데 한가하게 여행이나 하고 있는 나에게도 말을 붙여준다.

방조제 위. 풀잎이 바람에 눕는다

마을을 나와 방조제를 따라 걸어간다. 바람이 세차게 분다. 저 멀리 끝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세찬 바람이 불어온다. 귓가로 거친 바람소리를 내면서 지나간다. 쉬~~익. 바람막이 하나 없는 갯벌은 황량하기만 하다.

해안으로 방조제를 쌓아 논을 만들었다. 그 길을 걸어간다.
 해안으로 방조제를 쌓아 논을 만들었다. 그 길을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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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목에 매어 있는 뻘배. 마치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는 자가용 같다.
 말목에 매어 있는 뻘배. 마치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는 자가용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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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벌 위로 흐르는 갯골. 자연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예술작품
 갯벌 위로 흐르는 갯골. 자연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예술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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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조제 위로 자란 풀들이 바람에 누웠다 섰다 한다. 방조제를 따라 가는 길 아래로는 군데군데 작업장이 있고 갯골을 따라 바다로 이어진다. 구불구불 자연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선. 바다로 나아가는 길이다. 물이 흐르고, 사람이 흐른다. 검은 빛 펄 위로 환한 물길이 바다로 이어진다. 방파제를 따라 걸어오는 할머니. 뻘배를 들고 오신다. 바다로 나가려나 보다.

뻘배도 주차장이 있다. 물길이 시작되는 곳. 뻘배를 말목에 매어 놓은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럽다. 발이 푹푹 빠지는 갯벌을 뻘배가 없으면 들어갈 수 없다. 그러니 뻘배는 갯벌에서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혹시나 도망갈까 묶어 놓은 모습이 이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박한 꿈처럼 다가온다. 뒤로 돌아보니 거차마을 위로 천마산이 뾰족 솟았다.

가드레일도 바다와 만나면 아름다운 예술작품

방조제가 끝나는 곳에서 또 다른 마을을 만난다. 창산 마을이다. 마을 앞으로 구불거리는 해안 길이 너무나 아름답다. 노란 가드레일이 길을 더욱 아름답게 꾸며주고 있다. 인공이 만든 아름다운 선. 예술이다.

창산마을 앞 해안길. 구불거리는 길이 예술이다.
 창산마을 앞 해안길. 구불거리는 길이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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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생긴 허수아비. 얼굴은 오일통으로 만들고, 예쁜 한복을 입혔다.
 잘 생긴 허수아비. 얼굴은 오일통으로 만들고, 예쁜 한복을 입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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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은 조용하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구불거리며 마을을 빠져 나온다. 참 잘생긴 허수아비가 길 가를 지키고 있다. 참새들이 도망가는 게 아니라 팬클럽 만들어 모여들겠다.

다시 방조제로 올라선다. 죽전방조제다. 바람을 맞으며 방조제를 걷는다. 한참을 걸었는가 보다. 방조제 중간쯤에서 바다를 보고 앉았다. 간식으로 가져간 막걸리 한잔. 바닷바람과 함께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술에 취한 건지 바람에 취한 건지.

방조제에 앉아서 막걸리를 한잔 한다. 갯벌도 취하고, 바람도 취하고...
 방조제에 앉아서 막걸리를 한잔 한다. 갯벌도 취하고, 바람도 취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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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거차마을 가는 85번 시내버스 시간표(기점 출발기준) : 07:00, 09:40, 12:10, 14:30, 17:20, 19:25, 21:25(순천역이나 터미널을 지나가는 시간은 출발시간 10분 후)

대대포구 가는 67번 시내버스는 30분간격으로 수시 운항

걸은 거리 13km, 걸은 시간 5시간(쉬는 시간 포함)

이동 시간 내역 : 순천버스터미널 버스(09:50) - 거차(10:28) - 걷기시작(10:40) - 창산마을(11:02) - 죽전방조제(11:13) - 간식(11:20~11:45) - 도로(11:54) - 하포마을(12:13) - 우명마을(12:46) 초가집(12:56) - 장산마을(13:26) - 인안방조제(13:33~43) - 장산갯벌관찰장(13:51) - 인안교(14:10) - 무진교(15:05) - 주차장(15:28) - 순천만 버스(16:43)



태그:#순천만, #뻘배, #거차마을, #갯벌, #창산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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