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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부터 전국 극장에서는 '대운하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꼼수(?)로 의심되는 '4대강 살리기 사업' 코믹 홍보물을 '대한늬우스'라는 타이틀로 상영하고 있다. 이 '대한늬우스'는 1953년부터 40년 넘게 상영되다 1994년에 막을 내렸다. 참 묘하게도 이 세월은 이승만 독재부터 노태우 독재까지 대략 독재정권의 수명과 그 기간을 같이 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민주주의 위기가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는 지금, 극장가에는 독재정권의 대표적 선전도구였던 '대한늬우스'가 15년 만에 다시 부활했다. 

 

상황을 정리해보면 변신로봇의 휘황찬란한 활약상이 애니메이션이 아닌 실사로 그려진 최첨단 테크놀로지 영화 <트랜스포터2 : 패자의 역습> 앞에 구시대 유물인 '대한늬우스'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 시추에이션인가! 실소가 터져 나와 뒤로 발라당 자빠질 지경이다.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개봉될 화제작들로 마음이 설레다가도 이 '대한늬우스' 상영이라는 어처구니없는 뉴스에 극장을 찾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지는 것은 물론 짜증이 제대로 밀려온다. 왜냐하면 어린 시절 들뜬 마음으로 극장을 찾았다가도 영화 시작 전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로 시작되는 국민의례와 더불어 의무적으로 방영되던 '대한늬우스'와 각종 정부정책 관련 '홍보영화'에 짜증과 지루함에 몸을 부르르 떨었던 나쁜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비단 나뿐만 아니라 극장에서 '대한늬우스'를 경험했던 세대들은 다들 비슷한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실상 많은 사람들이 '대한늬우스'의 내용은 물론 출연한 개그맨들에게까지 비판을 가하고 있다. 또한 '대한늬우스'를 기획한 문화체육관광부의 시대착오적 발상에 대해서도 거센 비판을 하고 있다.

 

'구시대유물' 대한늬우스 부활 이유 곰곰 생각해보니

 

나 역시 문화체육관광부의 이런 구시대적 발상에 대략난감, 어이상실이다. 처음에는 이 정권이 온 국토에 삽집을 하고 싶은데 '대운하'도 '4대강 살리기'도 여론의 탄력을 받지 못하니 홍보를 위해 무리수를 두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러다 어쩌면 이것은 일부러 요란스러운 구설과 논란을 일으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려는 고도의 '노이즈 마케팅'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의문이었다. 박물관이나 역사책에서 조용히 잠자고 있어야 할 독재의 부산물과도 같은 '대한늬우스'를 왜 다시 끄집어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다 불현듯 지난 6월 3일 문화체육관광부 유인촌 장관이 한국예술종합학교 감사 결과에 항의하며 1인 시위를 하던 학부모에게 던진 말이 떠올랐다.

 

"학부모를 왜 이렇게 '세뇌'를 시켰지?"

 

이 말에 학부모는 "내가 나이가 몇 살인데 세뇌입니까?"라고 응수했고 이에 유 장관은 다시 한 번 '세뇌 당한 것이 맞다'라고 확인사살을 했다. 

 

이 대화에서 우리는 유 장관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유 장관은 나이가 많은 어른이라 할지라도 세뇌를 시키면 당하게 되어 있다고 믿는 듯했다. 아마도 문화정책을 총괄하는 수장의 이런 믿음이 바로 '대한늬우스'를 부활시킨 근본 배경이 아닌가 싶다.

 

즉 좌파들의 선동에 한예종 학부모가 세뇌당했다고 생각하듯 역으로 극장을 찾는 남녀노소에게 일방적으로 '4대강 살리기' 홍보물을 틀어대면 이를 보는 국민들은 영락없이 '세뇌'당해 힘을 보태줄 것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만일 그렇다면 과거 '대한늬우스'를 틀어대던 독재정권이 국민을 바라보던 인식과 지금 '대한늬우스'를 틀어대는 유 장관이 국민을 바라보는 인식이나 별반 다를 게 없는 셈이다.

 

유치찬란 세뇌작업 시도해놓고 광고일 뿐 오해하지 말라?


물론 이런 생각은 나의 짐작일 뿐이다. 하지만 문화부가 지난 25일 '대한늬우스'에 대한 비판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다음(Daum) 아고라에 게재한 "'대한늬우스', 광고는 광고일 뿐 오해하지 말자"라는 글을 보면 짐작이 아니라 확신을 갖게 한다. 글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대한늬우스'라는 단어는 장년층에게는 향수를, 젊은 세대에게는 신선함을 주기 위한 광고기법 차원에서 사용한 것입니다.

 

이 말을 단순히 디지털시대에 아날로그적 아이템이 갖는 복고적 매력으로만 해석할 수 없다. 앞서도 말했지만 '대한늬우스'는 독재정권이 국민들을 현혹시키기 위한 대표적 선전도구였다. 이런 '대한늬우스'를 '향수'와 '신선함'이라는 긍정적 가치로 치환해 버리는 문화부의 인식을 과연 어떻게 받아 들어야 할까? 독재적 가치관과 맞닿아 있다고 여길 수밖에 없다.

 

독재 혹은 파시즘이 꼭 폭력으로 정권을 잡은 이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선거에 의해 정당한 방법으로 출범한 정권이라도 언제든지 독재정권이 될 수 있다. 독재와 파시즘의 대명사인 독일의 히틀러 역시 정당한 선거로 당선된 인물이다. 사실 독재란 국민과의 소통과정 없이 국가의 가치관을 국민들에게 일방적으로 주입시키거나 어찌 해보려 할 때 바로 독재가 되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이명박 정권을 한 번 돌이켜 보자.

 

'명박산성', '미네르바 구속', '서울광장 폐쇄', 'PD수첩 작가 이메일 공개', '대한늬우스' 등  차단, 단절, 감시, 주입, 처벌이 온통 범벅이 되어 있다. '소통'은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날려 버리고, '억압'이 일상이 되어 버렸다. 이런 상황을 단순히 3류 '복고삽질개그'로 웃어넘기기에는 그 정도가 심각하다. 백번 양보해 독재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이 정권이 민주주의에 대한 개념을 탑재하고 있지는 않은 듯하다.

 

참으로 걱정스럽다. 앞으로 또 어떤 구시대 유물들이 무덤에서 뛰쳐나와 좀비처럼 이 시대를 활보하고 다닐지 깊은 한숨만 나올 뿐이다.


태그:#대한늬우스, #유인촌, #문화부, #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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