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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어느 날, 우연히 한 기회를 얻어 친구들과 짧으면서도 긴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그 여행 중 둘째 날, 사전 계획에 없던 한 코스를 추가하였고, 이에 대해서 같이 여행을 떠나는 친구들은 모두 찬성을 택하였다. 그 코스는 바로 봉하마을. 김해에서 창녕으로 갈 계획이었는데, 중간에 봉하마을이 있기도 하여 그곳에서 참배를 하자고 이야기를 모았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5시 반부터 일어나서 부지런떨면서 출발을 준비하였다. 다들 졸린 눈을 비비면서 차례로 씻고, 6시 반 정도가 되자 모든 준비를 완료하고 출발하게 되었다. 내비게이션에 봉하마을을 찍고, 그 길을 따라 30분 정도 갔을까? TV에서만, 그리고 인터넷에서만 봐 왔던 봉하마을을 직접 찾게 되었다. 이른 아침에 찾아서인지 전체적으로 조용한 분위기였으나, 분주히 공사를 하는 소리도 들려왔다.

 

봉하마을에 내려 봉하마을 안내도를 보면서 우리는 간단한 계획을 짰다. 일단 분향소에 분향을 하고, 소위 아방궁(?)으로 불리는 노무현 대통령 사저를 둘러본 뒤, 봉화산의 부엉이바위에 올라 정토원에 가자는 계획이었다. 정토원까지 차를 타고 가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고인의 발길을 그대로 따라가자는 생각에 가벼운 등산로로 정토원까지 가기로 마음먹었다.

 

"이거 뭐… 거의 성지순례인데?"

 

같이 여행을 떠난 한 친구가 그렇게 말했다. 성지순례…, 어찌 보면 적절한 표현이다. 한 사람의 발길이 머물고, 또한 자취를 남긴 그곳은 후세들에 있어서 그대로 성지가 되리라. 모두 한 사람을 추모하고, 또한 그를 기억하는 노란 리본은 계속 그 자리를 지키겠지….

 

이른 아침에 찾아간 조용한 그분의 분향소

 

 

사진으로 많이 봤던 곳이지만 막상 맞닥뜨리니 낯선 느낌을 숨길 수가 없었다. 우리에 앞서 참배를 하는 이들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곳에 있던 상복을 입은 자원봉사자분이 우리에게 다가와 말하셨다.

 

"참배하러 오셨나요? 여기 방명록에 성함과 남기고 싶은 말을 적고 이쪽으로 오세요."

 

친절한 설명에 우리도 그대로 따랐다. 방명록에는 우리보다 앞서 다녀온 수많은 사람들의 글귀가 적혀 있었다. 우리도 저마다의 글귀를 쓰고는 잠시 방명록을 응시하였다. 그리고 펜을 자리에 놓고 분향소 앞으로 걸어 나갔다.

 

노무현 대통령 분향소는 이번이 세 번째이다. 한 번은 집에서 가까운 고흥의 분향소에서, 그리고 서울에 올라가 서울시청의 대한문 분향소에서 추모를 하였다. 그리고 이번에는 봉하마을에 찾아와 추모를 올린다. 비록 나만 이렇게 찾아갈까?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이 분향소를 왔다 갔다 하였고, 여러 번 찾은 이들도 수없이 많으리라. 저마다 가슴에 한가득 그리움을 담고서….

 

 

분향소 건너편에는 마을회관이 보인다. 저 마을회관의 2층에서 입관식이 이뤄졌었다지…. 그리고 그 옆 편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초상화가 비치되어 있고, 아래엔 국화꽃들이 놓여 있다. 초상화로 본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은 약간은 어색하기도 하였지만, 진정한 서민의 모습처럼 그저 평범한 옆집 할아버지의 모습처럼 느껴졌다.

 

"여기까지 오셔서 추모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친절로 맞아주셔서 오히려 저희가 더 고맙습니다."

 

자원봉사자분과의 짧은 대화를 마치고, 다시 그분은 우리가 아닌 다른 추모객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였다. 우리는 사저 쪽으로 걸어 나갔다. 하지만 아쉽게도 사저를 보기는 쉽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 생가 복원공사로 인하여 펜스를 쳐놓아 일반인들의 출입을 자제하도록 해놓았기 때문이다. 아쉬운 대로 먼발치에서 사저를 바라보고 천천히 봉화산 쪽으로 걸어갔다.

 

"저게 부엉이 바위 아냐?"

"아니. 그건 사자바위라고 들었어. 저게 부엉이 바위라더라."

 

봉하마을에 왔을 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사자바위다. 부엉이바위는 그에 비해서는 약간 초라한 느낌도 든다. 그래서 다들 시선은 사자바위로 먼저 향하지만, 깊은 시선은 부엉이바위에서 멈춘다. 셔터를 누르고 우리는 잠시 감상에 잠긴다. 가마에서 굽다가 실패한 옹기의 표면처럼 둥그스름하면서도 울룩불룩한 바위의 표면을 보자면, 저곳에서 뛰어내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아픔은 얼마나 심하였을까란 생각이 절로 든다. 그리고 노란 리본을 따라 정토원으로 오른다.

 

노 대통령이 잠들어 있는 정토원으로 발걸음을 옮기다

 

 

정토원까지는 지지자들의 메모를 써 놓은 노란 리본으로 길을 표시해 놓았다. 노란 리본을 보며 그 쓰인 글귀를 읽자면 수많은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였는지 절로 알 수 있다. 다들 노무현 대통령을 추모하고, 또한 그리워하는 내용이다. "편히 쉬십시오", "제 마음속 영원한 대통령은 당신입니다", "당신을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내용 등…. 우리는 그렇게 아픔을 공유한다.

 

정토원에서 아래를 내다보면 봉하마을을 다 볼 수 있다. 특히 사저와 경비원 숙소, 그리고 마을회관과 분향소 등이 가장 눈에 띈다. 보수언론에서 아방궁이라고 핏대 올려 주장한 그곳은 우리의 눈엔 평범한 저택일 뿐이며, 대통령이 머무는 곳이라 생각한다면 약간 초라한 느낌도 든다.

 

아쉽게도 부엉이바위로 가는 길은 막혀 있다. 경찰조사가 아직 끝나지 않아서 그런 곳으로 보이지만 왠지 모르게 섭섭하다. 모방자살이나 실족사고 등 위험한 상황을 염려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왠지 고인의 발걸음이 머물었던 그곳에 한 번 가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기에…. 왠지 모르게 섭섭했다.

 

 

 

정토원은 간단하게 만들어진 자그마한 암자였다. 이곳에서는 추모객을 위하여 생수와 초코파이 등을 공짜로 나눠주고 있었으며,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식사까지도 기꺼이 대접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인 판매대에서 자그마한 책자와 염주를 팔고 있었다.

 

이왕 정토원까지 발걸음을 하였기에 노무현 대통령의 유해가 봉안된 곳으로 가고 싶었다. 정토원의 가장 중심된 건물인 수광전에 그 유해가 봉안되었기에 천천히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이곳을 지키면서 수고하는 의경들에게 눈인사를 하고, 아무도 없는 수광전에 조용히 들어갔다.

 

수광전의 오른편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정과 유해가 봉안되어 있다.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향 냄새와 함께 영정 쪽으로 향하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정을 하염없이 지켜보고 다시 두 번의 절을 올렸다. 앞서 분향소에서도 절을 올렸지만, 왠지 여기에서도 절을 올리고 싶었다. 그분이 계신 곳이기에…. 절을 올리고 나서 잠시간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나도 그분을 그리워하며 잠시 감상의 시간을 가진다.

 

봉하마을의 아침이 밝아오자 조용하던 마을은 조금씩 사람 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먼곳에서 찾아오는 차들이 계속 마을로 들어오고, 주민들도 지나간다. 해가 오르며 그림자가 짧아질 때마다 발걸음은 점차 늘어난다.

 

이왕 봉하마을까지 온 거, 뭔가 기념품이라도 하나 사 가려고 주위를 둘러봤지만 눈에 띄는 것은 봉하빵밖에 없었다. 상중이어서 그런지 노무현 대통령을 가지고 캐릭터화하거나 관련 상품으로 한 것은 하나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오히려 이런 게 어울린다. 섣불리 노무현 대통령의 이름을 파는 것보다 신중하게 그분의 넋을 기리고 차분한 발걸음으로 떠나는 게 이치에 맞으리라.

 

이제 얼마 후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해는 유언대로 작은 비석에 남게 된다. 그 후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이곳을 찾고 싶다. 그리고 고인을 기억하며, 작은 비석 앞에서 그분을 추억해 보리라.

덧붙이는 글 | 6월 24일 김해 봉하마을에 찾아갔다온 이야기를 써 보았습니다.


태그:#봉하마을, #노무현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 서거, #부엉이바위, #정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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