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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지배권을 둘러싼 러시아와 일본의 대립이 전쟁으로 확산될 무렵, 한국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빼앗고 자신들을 지배하기 위한 러일전쟁의 실체도 알지 못하고 살았던 사람들의 삶은 어떠했을까.

 

그 답을 찾을 수 있는 책 한 권이 출간됐다. 1904년 러일전쟁이 일어나던 해, 한국으로 신혼여행을 떠났던 독일인 부부의 신혼여행 기록을 번역한 <독일인 부부의 한국 신혼여행 1904> 속에서 러일전쟁 당시 한국인들의 일상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다만 독일인의 시각에서 바라본 한국인의 모습이란 점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한다. 근대화를 이루지 못한 채 주변국의 침략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무능력하고 게으르고 비위생적이고 쉽게 도락에 빠져들고 절제할 줄 모르는 미개한 사람들로 한국인을 묘사하고 있다.

 

산업혁명을 먼저 이룬 뒤 아시아, 아프리카를 침략해서 식민지로 만든 뒤 아시아, 아프리카 사람들을 노예처럼 부리며 수탈을 일삼던 유럽인의 시각이 여과 없이 드러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몰락해가는 대한제국 백성들의 삶이 생생하게 묘사되고 있는 귀중한 자료임에 틀림없다.

 

제국주의의 우월의식에 물든 시선을 의식하지 않더라도 이웃 국가의 군사력에 의존해서 자국의 백성들을 억압했던 대한제국의 몰락과 함께, 백성들의 삶 또한 철저히 유린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종에 불과한 한국인들

 

새파랗게 젊은 독일인 언론인이 신부와 함께 처음 도착한 곳은 개항장 부산이었다. 한일합병이 체결되기 전이니 엄연한 주권국가 항구도시였다. 하지만 독일인의 눈에 비친 부산의 모습은 주권국가 대한제국 항구도시란 느낌이 아니었다.

 

한국에 도착했지만 이 땅의 자손들은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꼭 일본의 어느 항구에 온 기분이었다. 거룻배를 저으며 증기선 주위를 배회하는 사공들도 하나같이 일본인이었다. 아주 드물게 흰옷을 입은 한국인이 눈에 띄었다. 그런데 한눈에도 이들이 일본인의 종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책 속에서)

 

작은 호텔 급사(일본인)은 결코 만만치가 않았다. 녀석은 대장 노릇을 하려고 했다. 짐을 지게에 실으려다 한국인 하나가 배 쪽에 발길질을 당했고, 다른 이는 빰을 맞았으며, 세 번째 사람은 옆으로 피하다 등에 지고 있던 지게에 상처를 입었다. 키 크고 우락부락하고  힘센 장정 서너 명이 열다섯 살짜리 호텔 사환에게 말 그대로 내동댕이쳐지고 발길질을 당하고 따귀를 맞는 등 갖은 수모를 당한 것이다. 여기서 내가 받은 첫 인상은 이곳의 주인은 일본인이며 이들은 피지배인을 아무런 처벌 없이 난폭하게 다룰 정도로 이미 자신들의 권세를 확신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책 속에서)

 

1904년 부산의 상황이다. 나이 어린 일본인 호텔 사환의 폭력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한국인 짐꾼들의 비참한 모습. 폭력 앞에 무방비로 노출된 채 외국인의 짐이라도 운반해주고 목구멍에 풀칠이라도 하려는 비굴한 사람들의 모습에서 이미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해버린 부산의 모습이 아프게 느껴진다.

 

1910년 한일병합으로 식민지로 전락했지만 1904년 부산에서는 이미 식민지나 다름없는 일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었다. 개항장에서 일본인들은 치외법권을 가진 존재였기 때문에. 일본인들에게 치외법권을 넘겨준 무능한 관료나 대신들의 삶이야 달라질 게 없었지만, 치외법권의 날선 칼바람 앞에 백성들은 무방비로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일본인들의 폭력은 주먹과 발길질로만 한정된 게 아니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한국인의 재산도 빼앗았다. 돈에 쪼들리는 한국인에게 땅을 저당잡고 돈을 빌려주어 고리의 이자를 매겨 돈을 갚지 못할 경우 땅을 빼앗았다.

 

수많은 환전소를 만들어 환율 개념에 익숙지 못한 한국인들에게 막대한 손해를 안겨주었다. 뿐만 아니라 위조 백동화를 마구잡이로 만들어 통용시켰다. 그리고 급기야는 화폐정리를 강요해서 백동화 모두를 무력화시켰다.

 

제 나라 백성을 지켜주지 못했던 왕조

 

조선왕조 권력은 자국 백성들을 지켜주지 못했다. 그럴 의지도 없었다. 백성들의 안전보다는 권력을 틀어쥔 자신들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애를 썼다. 그래서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변혁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주변국 군대의 물리력에 의존해서 변혁의 욕구를 가진 사람들을 억압했다.

 

하지만 주변국이 언제까지 조선왕조 권력의 힘이 되어주진 않았다. 그들은 조선왕조 권력 보다는 자국의 이익을 앞세우기 때문이다. 주변국의 이해관계의 충돌 속에서 왕비마저 살해되고 러일전쟁을 거치면서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제 나라 권력에 의해 보호받지 못하는 백성들이 외국인들에게 대접받으며 살 수는 없다. 독일인 언론인의 눈에 무능력하고 게으르고 비위생적이고 쉽게 도락에 빠져들고 절제할 줄 모르는 미개한 사람들로 비쳐졌던 일은 속상한 일이다. 하지만 백성들의 안전을 지켜줄 의지조차 없었던 무능한 권력을 떠올리면 더 속이 상한다.

 

<독일인 부부의 한국 신혼여행 1904>에 등장하는 한국인들의 삶은 비참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그 모습이 한국인 모두의 모습은 아니었다. 왕조조차도 지켜주지 못하는 삶을 스스로 지키기 위해 일어서 싸운 의병들의 모습도 있다. 결코 이길 수 없었던 싸움이지만 싸울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의로운 죽음도 있다. 죽음을 예감하면서도 뚜벅뚜벅 걸어간 그들의 고귀한 삶이 <독일인 부부의 한국 신혼여행 1904>에서는 누락되어 있다.

덧붙이는 글 | 루돌프 차벨 지음/이상희 옮김/살림/2009.5/23,000원


독일인 부부의 한국 신혼여행 1904 - 저널리스트 차벨, 러일전쟁과 한국을 기록하다

루돌프 차벨 지음, 이상희 옮김, 살림(2009)


태그:#러일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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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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