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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잊지 않겠습니다.
▲ 노무현, 당신을 잊지 않겠습니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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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장맛비가 뿌립니다. 멈추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면 비가 와서 다행입니다. 속절없이 흐르는 눈물을 애써 감추지 않아도 되고, 소금처럼 짜지 않으니 입으로 흘러 들어간다 해도 서럽지 않습니다.

투사였던 당신, 이젠 열사입니다

한 사람을 보냈습니다. 아니, 그가 우리의 곁을 떠났습니다. 오래 전 이형기 시인은 시 '낙화'에서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고 노래했습니다.

그가 떠난 사실은 지금 순간도 믿어지지 않지만 그는 분명 우리의 곁을 떠났습니다. 민주주의를 위해 앞서간 수많은 이들이 그러했듯이, 그 역시 몸 던져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대통령이라기보다 '노무현 열사'라고 부르고 싶은 대통령 노무현. 그는 생전 백성을 위한 투사였고, 죽어서는 열사입니다. 보내고 싶지 않지만 그는 가야할 때가 언제인지 알고 있었고, 그렇게 떠났습니다. 떠난 노무현의 뒷모습이 아름다운 이유입니다.

저는 작년 2월 그가 대통령직을 그만 둘 때 오마이뉴스에 이런 글을 썼습니다.

노무현은 대통령으로 당당했으며, 나름의 임무를 완수했다. 지금까지 대통령의 지위에 오른 사람치고 노무현만큼 당당한 투사를 우리는 본 적이 없었다. 대통령이 투사가 되어야 할 만큼 성숙하지 못한 이 나라에서 우리가 두려워 해야 할 것은 그나마 노무현이 뿌려놓은 씨앗이 발아도 하지 못하고 썩어가는 것이다. < 기사 당신은 어느 대통령보다 많이 맞았고 그래서 당당했다 일부 > 

그랬습니다. 저는 당시 그가 뿌려놓은 민주주의 씨앗이 발아도 하지 못하고 썩어가는 게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은 그가 뿌려놓은 민주주의 씨앗이 발아하는 것을 두려웠던지 씨 뿌린 농부를 죽음의 길로 내몰았습니다.

그가 떠나고 비가 많이도 내렸습니다. 비를 흠뻑 맞은 씨앗들이 하나 둘 움이 트기 시작했습니다. 전국 곳곳에서 그의 바람이 불었습니다. 껍질을 깬 씨앗들이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단단하게 뿌리 내린 민주주의가 꽃을 피우고 수많은 씨앗을 하늘로 날릴 때 우리는 비로소 눈물을 거둘 것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어디엔가 있을 것같아 자주 그를 찾았다.
▲ 부엉이 바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어디엔가 있을 것같아 자주 그를 찾았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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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49재가 있던 날입니다. 그가 부엉이 바위에서 몸 던진 5월 23일부터 7월 10일까지 봉하마을은 해방구였습니다. 봉하마을에서는 그 어떤 말을 해도 공허하지 않았습니다. 노무현이 걸었던 길을 따라 걸으며 혹은 그가 올랐던 봉화산에서 그 어떤 다짐을 한다 해도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그가 뿌린 씨앗을 발아 시키는 몫은 살아남은 자들

노무현을 마지막으로 떠나보내는 49재. 그 하루 전인 9일(목) 봉하마을로 갔습니다. 추모 예술제 행사인 <노무현 전 대통령 49재 추모예술제 '부활하는 푸른 님이여!'>를 진행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누군가는 영광스런 자리라고 했지만 전혀 그렇지 못했습니다. 웃을 수도 없는 자리에서 눈물 감추며 사회를 보는 일이 얼마나 힘든 지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행사에 참여한 문화예술인들은 버스 두 대에 나눠 타고 봉하마을로 갔습니다. 거칠게 내리는 비를 뚫고 봉하마을에 갔을 때 거짓말처럼 비가 그쳐 있었습니다. 비가 오면 행사를 어떻게 하나 싶었던 한국문학평화포럼과 추모행사위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의 생가 앞에 이르렀을 땐 구름이 잔뜩 몰려왔습니다. 곤궁하게 살았던 소년 노무현이 짐작되었습니다.

일부 언론에서 '아방궁'이라고 떠들어대던 노무현의 사저 앞을 지날 때에는 바람이 몹시 불었습니다. 농부가 된 그가 밀짚모자를 눌러 쓰고 대문을 나서는 듯 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기다리던 이들에게 손 흔들어주며 "또 비가 온다니 논에 물보러 가야합니더. 함께 가실랍니까?" 하는 듯도 싶습니다. 다시 바람이 불었고, 그는 물 고인 논으로 그렇게 떠났습니다.

예술제를 준비하는 중 전국에서 참여한 시인 100여명은 정토원으로 갔습니다. 시인들은 대한민국 시인 262명이 쓴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시집인 <고마워요 미안해요 일어나요>(화남출판사 발행)를 대한민국 16대 대통령 앞에 헌정했습니다.

하나의 거대한 우주를 품고 살아가는 시인들이 한 사람에게 보낸 추모의 노래는 대한민국 문학사에서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세계문학사라고 그 유래를 넘어서지 못할 것이라 믿습니다. 눈물로 또는 피끓는 마음으로 써내려간 시인들의 추모의 시는 노무현의 또 다른 역사입니다.

그날 오후 5시, 추모예술제가 시작되었습니다. 마을 곳곳에 남아있는 노무현의 흔적을 찾던 추모객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습니다. 의자도 마련되지 않은 광장 바닥에 앉은 이들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한 것은 시인들의 울음섞인 시가 토해질 때였습니다.
  
그리하여 한 사람이 떠나고
또 한 사람이 돌아오고 있다
한 사내가 가고 또 한 사내가 오고 있다
한 바보가 가고 또 한 바보가 돌아오고 있다
한 시대의 의인이 가고
비운의 풍운아, 고독한 승부사가 가고
순명의 혁명가 노무현이 돌아오고 있다

단 하나의 노무현이 떠나고
노무현 같은 바보들이 하나 둘 돌아오고 있다
마침내 수십만 수백만 명의 노무현들이 돌아오고 있다

- 이원규 추모시 '마침내 바보들이 돌아왔다' 중에서

한 사람의 바보가 떠나고 수백만 명의 바보가 돌아왔다.
▲ 노무현을 추모하기 위한 바보들의 행진. 한 사람의 바보가 떠나고 수백만 명의 바보가 돌아왔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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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떠나고 난 후에야 '민주주의' 소중함을 깨달았습니다

그러합니다. 지리산 자락에서 온 이원규 시인의 추모 시에서처럼 단 하나의 노무현이 떠난 후 수백만 명의 백성들이 노무현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단 한사람의 바보가 떠난 후 수백만 명의 백성이 바보가 되었습니다.

수백만 명의 노무현이 그가 생전에 걸었던 길을 따라 걷고 있습니다. 그 보다 많은 수백만 명의 바보들이 노무현의 삶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당신 떠난 그 자리에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당신 떠난 그 자리에
사람들이 서성이며 울고 있습니다
아아 천둥 번개 비바람 지난 뒤에서
당신 떠난 빈 자리에
사람들은 숲이 되어 서 있습니다

- 정희성 추모시 '봉화산' 전문

노무현이 떠나고 나서야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습니다. 노무현이 떠나고 나서야 '민주주의'가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그의 죽음 이후 바보같은 우리는 그가 떠난 빈 자리에서 시를 낭송하고 눈물을 흘리고 진혼무를 춥니다.

노무현이 대통령이던 시절 한미FTA와 이라크 파병, 대추리 미군기지 문제 등으로 핏대를 세우며 "노무현이가 이럴 수 있는 거여?"라고 했지만, 농민이 경찰에게 맞아 죽임을 당했지만, 이명박 치하에서처럼 '자유'와 '민주주의'를 억압당하진 않았습니다.

그는 이명박처럼 뻔뻔하지 못했고, 이명박처럼 도덕적으로 비난 받은 일 없기에 자신의 잘못은 반드시 사과했습니다. 그는 상식이 있는 대통령이었고, 그것을 실현 시키려다 뭇매만 맞은 대통령이었습니다.

그런 연유입니다. 그가 대통령이던 시절 이라크 파병 반대 집회에 참여했고, 한미FTA 협상 반대를 위해 협상장이 있는 제주까지 날아갔고, 평택에 들어서는 미군기지를 반대하기 위해 대추리 들판을 뛰기도 했던 제가 노무현을 사랑하는 이유가 그러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안장식을 하루 앞둔 9일 저녁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노무현 대통령 49재 추모예술제 행사위원회'와 '한국문학평화포럼'이 공동으로 마련한 '노무현 전 대통령 49재 전야 추모예술제'에서 한 추모객이 시인들이 낭송하는 시를 경청하다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아, 노무현 노무현 전 대통령 안장식을 하루 앞둔 9일 저녁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노무현 대통령 49재 추모예술제 행사위원회'와 '한국문학평화포럼'이 공동으로 마련한 '노무현 전 대통령 49재 전야 추모예술제'에서 한 추모객이 시인들이 낭송하는 시를 경청하다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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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시낭송이 끝나고 춤공연이 이어졌습니다. 노무현을 추모하기 위한 춤사위가 비장합니다. 노란 티셔츠를 입고 무대에선 40여명의 어린이예술단 '아름나라' 단원들이 '가자 아름다운 나라로' 와 '노무현 사랑해요'를 불렀습니다. 노래를 듣는 순간 가슴이 저릿했습니다. 국민장이 있던 날 생방송 중인 카메라를 향해 V자를 만들던 대통령의 손녀가 떠올랐습니다.

아이들에게 지금의 대한민국을 물려 주어야 합니까?

그날 사회를 본 저는 어른들을 향해 "이 아이들에게 지금과 같은 나라를 물려주어서는 안된다"라고 말했습니다. 어른들의 부끄러운 역사를 아이들에게 물려주는 일 또한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도 했습니다.

전직 대통령 노무현님이
몸 던진 바위

김구를 죽이고
여운형을 죽이고
조봉암을 죽인 그들이
좋은 지도자 한 사람을 죽였다
아니
우리 모두가 죽였다

부엉이 바위라 부르는 그 바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에 있다

- 김규동 추모시 '바위' 전문

김구를 죽이고 여운형을 죽이고 조봉암을 죽인 이들이 노무현을 죽였습니다. 책을 읽을 수도 없고 글을 쓸 수도 없을 정도로 죽어가는 노무현을 바라만 본 것은 우리들이었습니다. 그러하니 우리는 비겁한 방관자였습니다. 연일 중계방송되는 그의 허물을 안주 삼아 술만 마셨습니다.

하루에도 수 만의 사람들이 봉하마을을 찾습니다. 그들은 '대통령 노무현'이라 쓰여진 아주 작은 비석 앞에서 자신의 비겁함에 대해 용서를 빕니다. 그러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눈물 짓습니다.

행사가 마무리 될 즈음 바람이 세차게 불어왔습니다. 비 냄새도 묻어있습니다. 노무현이 생전에 뿌린 씨앗들이 바람을 타고 풍등되어 훨훨 날았습니다. 봉하마을을 떠난 그 풍등은 광주를 지나 서울을 지나 군사분계선을 넘어 평양을 지나 백두산까지 통일의 이름으로 하늘을 날 것입니다.

저녁 7시, 행사는 끝났습니다. 먹구름이 몰려 들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그를 보내야 합니다. 더 이상 눈물 지으며 추모만 하지 말고 다짐한 것을 실천해야 할 시간이 된 것입니다. 그를 추모하기 위해 만든 걸개시 펼침막이 바람에 퍼드득 거립니다. 객석에 앉아 있던 노무현이 바람되어 봉화산을 오릅니다. 경배의 잔을 올립니다.

남은 자들의 슬픔과 다짐을 실어 보낸다
편히 가시라
당신은 실패하지 않았다, 너무 많이 이루었다
당신은 불멸이다

- 조용미 추모시 '풍등을 날리며' 중에서

어린이예술단 '아름나라' 어린이들이 추모노래를 부르고 있다. 이 아이들에게 물려 줄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 노무현 사랑해요. 어린이예술단 '아름나라' 어린이들이 추모노래를 부르고 있다. 이 아이들에게 물려 줄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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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노무현 49재, #봉화산, #노무현, #이명박, #부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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