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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조용할 날 없는, 하 수상한 시절이다. 며칠 전 어묵까지 사 드시면서 '서민의, 서민에 의한, 서민을 위한'을 부르짖었던 것을 깜빡하셨는지, 정부가 또 다시 그 서민의 뒤통수를 치는 정책을 발표한 것이다. 요번에는 그 이름부터가 해외토픽감이다. 죄악세라니. 기가 막힐 뿐이다.

지난 8일 정부로부터 용역을 받은 한국조세연구원은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 에너지경제연구원과 공동으로 '외부불경제(사회 전체에 주는 불이익) 품목 소비억제를 위한 정책 토론회'를 열고 담배·술에 관한 세금인상이 필요하다는 점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흡연 및 음주와 관련된 사회·경제적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고세율·고가격 정책을 통해 소비억제를 유도해야 한다"며 물가와 연동해서 소위 죄악세(sin-tax)를 통해 술·담배 가격을 인상하겠다는 것이다.

죄악세의 숨은 뜻

죄악세라. 물론 sin-tax는 재정학 교과서에서 나오는 가치중립적인 단어임에 분명하다. 또한 사전을 찾아보면 sin이라는 영어 단어는 죄, 죄악으로 해석되는 것도 맞다.

그러나 문제는 그 sin이란 단어를 세금과 붙여 죄악세로 직역했다는 점이다. 세금이 어떤 존재인가. 근대국가 시스템에 있어서 국가에게는 나라 살림을 하면서 꼭 필요하지만, 국민 개개인들에게는 자신의 소득 중 일정부분을 강제로 떼어가기 때문에 불쾌할 수밖에 없는 필요악 아니던가. 게다가 세금을 좀 더 걷어 복지를 챙기겠다는 사회민주주의적인 꿈이 전혀 먹히지 않는 우리 사회가 아닌가.

그런데 정부가 그런 민감한 세금 문제에다 '죄악'이라는 꼬리표까지 붙인 것이다. 어차피 우리 무식한 서민들이야 sin-tax를 어떻게 번역하는지 상관없었을 텐데 정부는 왜 굳이 조세저항이라는 위험을 감수하고 죄악세라는 직역을 선택했을까? 부자들에 대한 누진세 성격이 강했던 세금도 '종합부동산세'라고 명하면서 세심한 신경을 쓰던 정부가 이와 같은 반발을 예상하지 못한 것일까?

정부가 죄악세에 대한 격한 반응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하는 것은 난센스다. 현 정부만큼 지금 이 시대, 이 사회의 '세금'에 대한 인식을 가장 잘 이용해 온 이들은 없기 때문이다. 세금을 조금 더 걷어 복지를 하자고 주장하는 이들에게는 '빨갱이' 덧칠을 하고, '세금감면'이라는 사탕발림으로 선심 쓰는데 익숙했던 그들이 어찌 '죄악세'라는 단어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겠는가.

그렇다면 혹자들이 주장하듯이 정부의 '죄악세'는 청도교적 발상에서 나온 커밍아웃일까? 술과 담배를 하는 것은 곧 죄악이라는 일부 기독교의 논리. 한 때 서울시까지 봉헌한다고 했던 MB의 전력을 떠올린다면, 이는 확실히 일리 있는 가설일 지도 모른다. 천만이 넘는 불교 인구의 불만 따위는 쳐다보지 않은 채, 기독교 장로로써 끊임없이 커밍아웃을 하고 다니는 이가 바로 MB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는 죄악에 찌들어 살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을 구해야겠다는 종교적 사명을 가지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신이 대통령이 된 것은 이와 같은 소명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농민들과 함께 막걸리를 마시며 서민 행보를 했던 박정희와 달리, 죄악에 가득 찬 술 대신 오뎅 국물을 마시면서 서민과의 소통을, 서민의 계몽을 꿈꾸는 각하의 순수함이라니.

그러나 이 가설 역시 그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현 정부의 행태를 보아, 그들이 진정 금주, 금연을 꿈꾸었다면 아예 금주와 금연을 법으로 재정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헌법에 기재되어 있는 자유와 권리까지 하위 법으로 막아버리는 그들이 어찌 금주법과 금연법 따위에 국민들 눈치를 보겠는가. 게다가 국민의 건강을 위한다는 좋은 허울도 있지 않은가.

정부의 판단착오도 아니요, 대통령의 종교적 소신도 아니다. 그렇다면 정부는 왜 어처구니없는 '죄악세'를 운운했을까. 게다가 하루 만에 그 명칭을 바꿀 수 있다고 꼬리 내린 정부의 속셈은 무엇일까?

아마도 이는 술과 담배에 대한 세금을 인상함에 있어서 자연히 생길 수 있는 논란을 분산하기 위함일 것이다. 즉, 술과 담배에 대한 세금 인상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이 '부자감세'와 맞물려 '서민증세'와 밀접한 관련을 맺을 수밖에 없는데, 정부가 이를 예상하고 먼저 죄악세 운운하며 명칭 문제로 인상안의 본질을 흐리고자 한 것이다.

퇴근 후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을 낙으로 하는 서민들의 불만을 희석시키기 위한 그들의 꼼수.

술과 담배를 부르는 시대

결국 이번 죄악세 논란은 정부가 담배와 술에 대한 세금 인상에 있어서 커다란 부담을 갖고 있음을 반증한다. 정부도 담배와 술에 대한 세금 인상이 우리 사회에 있어서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님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뉴스를 보면 울화통이 터지는 이 시대. 당장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담배와 술에 자신의 애환을 녹이고 있는가. 술과 담배가 몸에 해로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통해 많은 이들이 쌓여있는 스트레스를 푼다. 물론 현 정부의 입장에서는 술자리의 국민스포츠 '대통령 씹기'가 부담이야 되겠지만 어쨌든 이를 통해 현 정부에 대한 과격한 움직임이 순화되는 것 역시 사실 아닌가.

세계 최고의 음주량과 흡연량. 이는 결코 개개인의 문제로 치환할 수 없는 구조의 문제이다. 술과 담배가 아니면 사람을 사귈 수 없고, 술과 담배가 아니면 자신의 이야기를 쉽게 할 수 없는 사회 분위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술에 대해 한없이 관대한 이유는 결국 맨 정신으로 풀 수 없는 부분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어쨌든 지금까지의 스타일로 보아 MB는 세금 인상안을 밀어붙일 것이다. 누가 뭐라 하든 말든 그는 자신의 말만 고장 난 축음기처럼 되뇔 것이다. 그 불소통의 답답함을 풀기 위해서는 또 소주 한 잔을 해야 할 터인데 이미 한껏 가벼워진 나의 지갑이 걱정될 뿐이다.

P.S : 글을 쓰다 보니 계속 죄악세를 좌익세로 쓰면서 스스로 놀라게 된다. 설마 정부가 이 역시 의도하지는 않았을 테지.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죄악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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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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