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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EU FTA를 대하는 농식품부의 자세는 점퍼를 즐겨 입는 장태평 장관의 이름처럼 '태평'하기 그지 없다. 농가 피해 대책은 9월에 발표하겠다고 이야기하는가 하면, 2300억 원대의 아주 작은 피해가 예상된다며 여유를 부리고 있다.

 

이번 협상에 가장 큰 피해를 보게 되는 양돈업계와 낙농업계가 5200억 원대의 피해를 예상하며 정부를 원망하고 있는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장태평 농식품부 장관이 2300억 원 정도의 낙관적인 피해 전망치를 제시한 근거는 무엇일까.

 

양돈산업 경쟁력 높여 유럽으로 역수출하겠다?

 

우리 양돈산업의 경쟁력을 유럽의 주요 양돈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려 유럽으로 역수출 등을 추진하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돼지의 생산성은 사료효율(고기 1kg을 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사료량)과 이른바 MSY로 불리는 어미돼지 한 마리가 연간 출산해 시장에 출하하는 새끼돼지의 마릿수로 표현된다.

 

사료효율은 우리나라나 유럽이 대동소이하지만 MSY의 차이는 유럽을 따라잡기에 현재로서는 매우 버거운 것이 현실이다.

 

현재 우리 양돈업계의 평균 MSY는 14두 수준으로 연간 22두를 출하하는 유럽의 덴마크 등 양돈선진국과는 질적으로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어미돼지는 2년에 5회 ,1년에 2.5회 출산을 하는데 한번에 10여 두를 출산하는 것을 감안할 때 새끼돼지의 폐사가 없을 경우 25두 정도의 산술적 계산이 가능한 상황으로 우리는 2.5회 출산 중 절반 가까이의 새끼돼지를 질병 등으로 잃는다는 이야기다.

 

양돈업계는 돼지폐사의 원인을 찾기 위해 수년간 노력하고 있고 농촌진흥청 산하 국립축산과학원에서는 국내 양돈전문가들로 구성된 TF팀까지 만들어 MSY 22두 달성을 위한 연구와 실증 실험에 주력하고 있는 상황으로, 경쟁력 제고에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지는 미지수인 가운데 2017년까지라는 목표를 두고 국내 관련 R&D기관들은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문제는 우리 양돈산업이 경쟁력을 확보한다고 해서 유럽 양돈업계의 파상 공세를 이겨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수입삼겹살 파생 공세는 사육두수 감소로 이어질 것

 

우리 한국 소비자들의 돼지고기 소비성향은 매우 극단적이다.

 

이른바 구이용 돼지고기(삼겹, 목살)에 대한 수요가 절대적이고, 조리과정을 거쳐야 하는 뒷다리, 전자, 등심, 안심 등의 수요는 거의 없다시피하고 있다.

 

그나마 돈가스로 사용되는 등심은 소비가 이뤄지고 있지만 불고기 등으로 주로 소비되는 뒷다리 살과 앞다리 살 등은 소비가 한계에 부딪혀 있는 상황이다.

 

장태평 장관은 우리나라 소비자들이 먹지 않는 뒷다리 살을 비싼 값에 수출한다면 우리 양돈산업의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 말하고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희망적인 이야기일 뿐 현실을 모르고 하는 이야기다.

 

비선호 부위를 아무리 수출한다 해도 파상적으로 밀려드는 수입 삼겹살 등 선호 부위의 시장 잠식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관세가 철폐될 경우 현재 국내산 삼겹살의 절반 정도 가격에서 유통이 이뤄지는 수입삼겹살의 가격은 절반 이하로 내려가게 된다.

 

현재 돼지의 가격체계가 구이 위주로 되어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구이 부위의 시장 축소는 곧바로 돼지 사육두수 감소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될 경우 자칫 MSY 상승으로 시장에 유입되는 돼지의 양이 늘어나게 된다면 국내산 돼지의 수급조절 실패로 파동이 발생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실례로 1990년대 UR협상 실패로 시장에 조제분유가 가공용으로 대량 수입되면서 국내 원유시장은 하루아침에 대규모 잉여를 기록하게 됐고 지금까지 그 잉여 원유분을 해소하지 못해 정부의 예산이 투입되고 있는 상황 등을 감안할 때 양돈분야도 싼 값에 밀려 들어오는 삼겹살에 시장이 초토화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특히 유럽의 삼겹살은 다이어트에 민감한 서구인들에게는 섭취하지 말아야 할 부위로 분류되면서 소비가 거의 일어나지 않아 수급조절에 애를 먹는 품목으로 비싸게 팔아야 하는 우리 삼겹살과는 위치가 질적으로 다른 상황이다.

 

여기에 유럽은 이미 엄청난 양의 삼겹살을 우리나라에 수출하고 있고 더 수출할 수 있는 여력을 갖고 있는 상황인데, 언제 확보하게 될지도 모르는 돼지의 생산성을 전제로 수출을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 앞서나간 것이라는 지적이다.

 

여기에 수출을 위해 꼭 극복해야 할 돼지 콜레라라 불리는 돼지 열병의 청정화(이 질병이 청정화 돼야 해외로 돼지고기를 자유롭게 수출할 수 있으나 현재 우리나라는 백신을 접종하고 있어 바이러스가 상존하고 있다)도 이뤄지지 않은 상황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최소한 농정의 책임자라면 아주 긍정적인 시나리오 말고 부정적인 시나리오에도 귀를 기울여 이번 협상에서 피해를 입게 될 농가들을 염두에 두고 보상책과 경쟁력 제고방안 발표를 통해 위로했어야 했지만 한-EU FTA 타결 임박 소식이 지난 3월부터 줄기차게 이야기 되고 이미 3월 이전에 축산분야 협상이 끝났음에도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는 것은 문제가 있는 대목이다.

 

지금도 장태평 장관은 태평하게 우리도 수출하면 된다는 긍정의 바이러스 전파에 힘을 쏟고 있는 듯하다. 인터넷을 통해 쏟아져 나오는 뉴스마다 방송에서 '수출, 수출'을 외치고 있으니 말이다.

덧붙이는 글 | 김재민 기자는 축산경제신문 기자입니다. 개인 블로그 http://blog.daum.net/3546969/1884272에만 올렸습니다.


태그:#한-EU FTA, #양돈, #장태평, #농식품부, #농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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