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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유월에 새 자전거를 한 대 장만했습니다. '비토(VITO)'라는 이름이 붙은 자전거로, 제가 자전거를 제 돈으로 막 장만해서 타고다니면서 자전거 만화(미야오 가쿠, 《내 마음속의 자전거》)를 보고 자전거 모임('스트라이다' 동호회)에 들어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하면서 오래도록 부러워하던 자전거입니다.

골목마실을 하는 제 자전거. 웬만한 비탈도 오를 수 있고, 제법 먼길을 달리기에도 괜찮은 자전거입니다.
 골목마실을 하는 제 자전거. 웬만한 비탈도 오를 수 있고, 제법 먼길을 달리기에도 괜찮은 자전거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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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국민학생 때 아버지가 사 준 자전거를 얼마쯤 탔으나(1985년 무렵) '손잡이가 3자'라서, 그무렵 막 나온 '손잡이 1자' 자전거와 견주어 창피하다고 느껴 안 탄 뒤로, 1995년에 고향 인천을 떠나 서울로 홀살이를 나온 다음 신문사지국에 들어가 먹고자면서 신문을 돌리던 때에 짐자전거를 타면서, 비로소 자전거맛을 알았습니다.

신문 수백 부를 싣고 서울 이문동과 회기동 골목과 언덕을 새벽녘에 홀로 오르내리며 잔뼈가 굵어지는 가운데 '자전거란 이런 녀석인데, 나는 왜 어린 날에는 그렇게 그 자전거를 못생긴 녀석으로만 여겼을까?'하면서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열 해 만에 자전거를 다시 만나며 고개숙인 셈인데, 철부지한테는 세월 만큼 좋은 가르침이 없습니다.

이번에 장만한 자전거는 32만 원을 치렀습니다. 여기에 바구니 값이 3만 원이요, 앞거울에 앞등에 뒷등에 물병꽂이에 자물쇠에 해서 40만 원이 조금 안 되게 들었습니다.

짐자전거로 신문을 돌리며 살다가 1999년에 출판사에 들어가 일하면서는 자전거를 멀리하게 되는데, 출판사가 깃들던 동네에 버려진 자전거 한 대를 보고는 낼름 업어 와 고친 다음 탔습니다. 고쳐서 타던 자전거는 처음 들어가던 출판사를 그만두면서 이웃 출판사 선배한테 거저로 선물하고, 다음으로 들어간 출판사에서는 '회사 자전거'를 한 대 장만했습니다.

그곳 사장님은 눈과 생각이 밝은 분이었기에, '회사 자동차'를 장만하기보다는 '회사 자전거'를 장만해서 회사 일꾼 누구나 제 볼일을 보러 다닐 때 자전거를 타고 움직이면 한결 낫다고 여겼습니다. 그곳에서는 낮밥을 일터에서 해먹었는데, 저잣거리에서 먹을거리를 사올 때이든 겨울에 기름집에서 기름을 사올 때이든 짐받이나 바구니에 싣고 끈으로 묶어 날라 오곤 했습니다(거의 언제나 제 몫이었습니다). 낮밥을 먹고 졸음이 쏟아질 때에는 자전거를 타고 일터부터 김포공항까지 내처 달린 다음 돌아오기도 했습니다(일터가 방화동에 있었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자전거 타고 다니기

짐수레를 붙이고 달리던 허머 자전거. 태풍이 몰아치던 날에도 어김없이 자전거를 달렸습니다.
 짐수레를 붙이고 달리던 허머 자전거. 태풍이 몰아치던 날에도 어김없이 자전거를 달렸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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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두 번째 출판사를 그만두고 충북 충주에서 새 일거리를 얻어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다시금 자전거와 헤어지는 셈이었는데, 충주와 서울을 오가면서 고속버스만 타고 다니자니 엉덩이가 너무 쑤시고, 또 내 몸이 게을러진다고 느껴, 한 해에 걸쳐 고속버스가 다니는 길을 살피고 길그림책을 샅샅이 읽고 헤아리면서 '앞으로는 자전거로 이 길을 다녀 보자'고 다짐했고, 그동안 꽤 큰돈을 들여 접는자전거 한 대를 장만했습니다. 이제는 문닫고 사라진 '스포시엘'이라는 곳에서 만든 'FTC-2'라는 녀석으로, 자그마치 54만 원을 치릅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자전거를 타고다니는 버릇은 신문사지국에서 짐자전거로 날마다 신문을 돌리면서 들였습니다. 따지고 보면 그때에는 아무 생각 없이 일만 했지만, 이제 와 돌아보면, 1월이고 7월이고 언제나 새벽 두 시 반에 일어나 고작 실장갑 하나 끼고 신문을 돌렸던 일은 기운이 펄펄 넘친 셈인지 어리숙한 셈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1995년 그때에만 하더라도 거의 모두 오토바이로 신문을 돌렸지, 자전거로 돌리는 분이 없었거든요. 비 쫄딱 맞고 자전거로 신문을 돌릴 때에도 고달프지만, 한겨울에 가냘픈 실장갑을 낀 채 신문을 돌리면 손은 얼어붙는데 몸에서는 땀이 줄줄 흐릅니다. 손발 얼굴은 동상이 걸리지만 등판과 가슴과 허벅지는 땀으로 흥건했습니다(틀림없이 2009년 오늘에도 자전거로 신문 돌리는 분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분들은 참으로 훌륭하고 대단합니다).

그러나저러나, 제법 큰돈을 치르고 장만한 자전거로 충주와 서울을 오가지 못했습니다. 고속버스 짐칸에 싣고 몇 번 오가다가 그만 뺑소니 사고를 여러 차례 겪으며 팔다리가 망가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기껏 길을 눈과 몸에 조금 익힐 무렵 몸과 자전거가 망가지는 바람에 아프기도 아팠지만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쉬고 쉰 끝에, 이번에는 헌 자전거로 '스트라이다'라는 녀석을 30만 원에 장만하는데, 저한테 이 자전거를 판 분은 '여기저기 망가져 있는 채'로 넘겨주었고, 저는 어디가 어떻게 망가진 줄을 몰랐습니다. 처음 자전거를 넘겨받고 타던 날, 내리막에서 달리는데 손잡이가 빠져 하마터면 골로 갈 뻔 했습니다. 그래, 저한테 자전거를 판 분한테 연락을 해 보는데 전화를 안 받고 자취를 감추시더군요.

그래도 이 망가져 있던 자전거를 어찌어찌 손질하고 타면서 드디어 충주부터 서울까지 달렸습니다. 4시간 15분. 한 번도 안 쉬고. 그리고 이때부터 충주에서 서울까지 한 주에 한 번씩 자전거로 오가는 나날이 열립니다.

처음 살 때, '사기'를 친 사람 때문에 고장난 녀석을 받았지만, 고장난 채로도 살금살금 타면서 바퀴를 두 번 갈고 벨트도 세 번 갈 만큼 오래오래 먼길을 달렸고, 이제는 더 달릴 수 없을 만큼 낡고 닳아버린 '스트라이다'라는 자전거.
 처음 살 때, '사기'를 친 사람 때문에 고장난 녀석을 받았지만, 고장난 채로도 살금살금 타면서 바퀴를 두 번 갈고 벨트도 세 번 갈 만큼 오래오래 먼길을 달렸고, 이제는 더 달릴 수 없을 만큼 낡고 닳아버린 '스트라이다'라는 자전거.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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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부터 충주까지 아홉시간을 달렸다

이렇게 오가면서 '허머'라고 하는 자전거를 헌 녀석으로 90만 원에 장만했고, 이 자전거 뒤에 붙이는 '아기 태우는 수레'를 24만 원에 장만했습니다. 이때 저는 혼자 사는 몸이었으니 아기 태우는 수레를 장만할 까닭이 없다 하겠으나, 서울마실을 하면서 찾아다닌 헌책방에서 장만한 책 수백 권(70킬로그램 남짓)을 수레에 가득 싣고는 서울부터 충주로 돌아갔습니다. 마땅히 자전거로. 더욱이 책짐은 제 몸무게보다 훨씬 무거워 자전거로 달리기 꽤나 힘들었지만, 서울부터 충주까지 여덟∼아홉 시간을 달렸습니다.

이렇게 봄 여름 가을 겨울, 꼭 한 해를 보냈습니다. 그러고서 제 고향 인천으로 돌아옵니다. 고향으로 돌아올 때, 제 책짐은 3.5톤 짐차로 석 대가 되었습니다. 인천 배다리라는 곳에서 이 책들로 동네도서관을 하나 꾸리고 있습니다. 개인도서관으로서 '사진책'을 대표로 내걸고.

충주 일을 마무리짓고 고향 인천으로 돌아올 즈음, 이번에는 삼천리자전거에서 만든 'R-7'이라는 자전거를 장만했습니다(아쉽게도 이 녀석은 더 만들지 않는다고 합니다. 잘 안 팔려서). 왜냐하면, 그동안 충주와 서울을 오가면서 타던 '스트라이다'며 '허머'며 하던 꽤 값나가던 자전거들이 낡고 닳아 버렸기 때문입니다. 처음 장만할 때부터 새것이 아닌 헌것인 탓인지 모르지만, 저마다 수만 킬로미터를 달린 자전거가 아무리 튼튼하다손 치더라도, 이제는 손질하는 값이 새 자전거 사는 값보다 많이 들게 되었거든요.

이 자전거 또한 바퀴를 갈아 줄 만큼 신나게 달렸는데, 이제는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가 있습니다. 이 자전거를 만든 회사는 문닫고 사라졌기에 이 자전거 또한 다시는 장만할 수 없습니다.
 이 자전거 또한 바퀴를 갈아 줄 만큼 신나게 달렸는데, 이제는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가 있습니다. 이 자전거를 만든 회사는 문닫고 사라졌기에 이 자전거 또한 다시는 장만할 수 없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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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R-7'이라는 녀석도 이제 제 손에 없습니다. 인천으로 돌아오던 2007년 유월에 혼인을 했는데, 우리 옆지기 어린 동생이 올해에 중학교에 들어가게 되어 '졸업+입학' 선물로 제 자전거를 물려줍니다. 언제나 자전거와 함께 살아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또 제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저한테 자전거를 선물해 준 어른이 없었음을 떠올리며.

이리하여 제가 갖고 있는 자전거 두 대는 더는 탈 수 없는 녀석들이 된 까닭에, 제가 타고다닐 자전거를 새로 장만합니다. 이제 제 몸은 숱한 뺑소니 사고 탓에 자전거를 한두 시간 넘게 타면 손목과 어깨와 무릎과 발목을 비롯한 온몸이 저리고 쑤셔서 괴롭지만, 그래도 자전거를 안 탈 수 없어 제가 제 몸처럼 여기고 싶으며, 저한테 늘 꿈처럼 여긴 자전거를 장만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한 마디 덧붙인다면, 제가 더없이 타고픈 자전거는 짐자전거입니다. 신문을 수백 부 싣던 튼튼한 그 짐자전거입니다. 그러나 짐자전거는 전철에 태우기 힘들어, 그나마 바구니 어여쁜 비토라는 자전거를 장만했습니다. 저는 전철뿐 아니라 고속버스나 기차에도 자전거를 실을 일이 잦은데, 여느 짐자전거는 이렇게 여러 곳에 옮겨 싣기 어렵습니다.

오늘도 집에서 나와 일터인 동네도서관 문을 열려고 나오는 길에 골목길을 삼십 분 남짓 떠돌며 사진을 신나게 찍었습니다. 조금 뒤 도서관을 닫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골목마실을 하면서 즐거이 사진을 찍고서 사랑스러운 옆지기와 아기를 껴안아야겠지요.

오늘도 그렇고 어제도 그러했으며 내일도 그러하리라 봅니다만, 제가 달리는 골목길은 자동차가 들어서기 어려운, 아니 자동차가 들어설 수 없는 곳입니다. 그러나 골목길로 접어들자면 찻길을 달려야 하는데, 찻길에는 언제나 자동차들이 한 줄로 주차장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 자리는 버스가 서고 자전거가 달릴 길인데.

자전거를 다룬 만화책 <내 마음속의 자전거>. 자전거를 다룬 책 가운데 가장 훌륭하고 빼어난 책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나, 나라안에서는 그다지 사랑받지 못하고 '절판'이 되어 버렸습니다.
 자전거를 다룬 만화책 <내 마음속의 자전거>. 자전거를 다룬 책 가운데 가장 훌륭하고 빼어난 책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나, 나라안에서는 그다지 사랑받지 못하고 '절판'이 되어 버렸습니다.
ⓒ 서울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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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고향 인천도 그렇지만, 전국 어디를 보나 '수천 억, 또는 수 조'라는 돈을 들여 자전거길을 닦는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그런데 이런 소식을 들은 지 퍽 여러 해가 되었지만, 제가 인천부터 전국 곳곳을 자전거로 누비는 동안 '자전거가 걱정없이 다닐 만큼 길이 나아졌다'는 느낌은 꼭 0% 듭니다. 2% 모자란 느낌이 아니라 2%조차 안 돼요. 그 많은 돈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어디에 그 많은 돈을 쓰고 있을까요?

날마다 자전거를 타면서 생각하고 느낍니다만, 얼마 앞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라는 책을 펴내면서도 머리말에 적었습니다만, 제 옛 일터 사장님처럼 '회사 자전거'를 마련하고 사장님부터 자전거를 당신 삶으로 여길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공무원께서, 대통령께서, 국회의원께서, 판사님께서, 의사님께서, 선생님께서, 교수님께서, 박사님께서.

가만히 보면, 구멍가게 사장님과 저잣거리 할매 할배들은 쉰 해나 예순 해 넘도록 자전거로 살아오고 있으십니다.

덧붙이는 글 | - 이 글은 토지공사에서 펴내는 <시민과 도시>라는 잡지에서 '자전거 문화'를 특집으로 삼은 꼭지 가운데 하나로 썼던 글입니다. 잡지 <시민과 도시>는 길이 때문에 이 글을 3/4으로 줄여서 실었고, <오마이뉴스>에는 처음 쓴 그대로 싣습니다.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태그:#자전거, #자전거정책, #자전거 문화, #자전거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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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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