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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스물여덟의 청년입니다. 지금은 창업을 준비하며 고용지원센터에서 수강료를 전액 지원받아 집근처 요리학원에서 5개월간 전문조리사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한식·양식 조리사 자격증을 따는 것이 목표이고 열심히 배우고 일해서 부모님께 듬직한 모습을 보여드려가지고 자본금을 얻어 내년 중에 유기농 밥상을 창업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유기농 밥상을 하고 싶은 이유는 작년 광우병 쇠고기 수입고시 철회를 위한 촛불집회에 참석하면서 먹거리 문제의 시급성과 중요성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촛불집회는 반짝 참석하다가 나중에는 지쳐서 못나갔지만 촛불의 의미와 정신을 제 삶으로 뚜렷이 보이는 물적토대로 구현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취사병 경력을 살려 요리사 준비생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기사 읽고 응원해주시면 감사한 마음으로 열심히 공부해서 한번에 시험 딱 붙겠습니다.

 

학원에서 저와 같이 전문조리사 과정을 밟는 학생은 스물다섯명입니다.그리고 한명의 담임선생님이 오전에는 실습수업, 오후에는 이론수업을 소리 높여 가르쳐주시며 수고하고 계십니다. 선생님은 하루에 이런 수업이 세번있으셔서 휴가도 없이 열심히 일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도 뜨거운 여름 더 뜨겁게 공부하며 나고 있습니다. 수강생들 모두 서로의 뜨거운 기운을 주고 받으며 공부에 열심입니다.

 

저도 지금은 아르바이트 하는 곳에서 일주일가 휴가를 받았습니다. 휴가는 받았지만 학원을 가야하기 때문에 멀리는  못가지요. 그렇지만 저는 멀리 못가도 재미있습니다. 요리학원에서 하는 공부가 매우 재미있거든요.

 

수강생들의 성별은 남자 반 여자 반 입니다. 그리고 나이대는 19살 소년부터 62살 할아버지까지 다양합니다. 이십대 후반의 미혼청년도 있고 같은 나이대 이지만 네살 아이를 둔 아주머니도 계십니다. 아이가 초등학생인 아주머니, 아저씨도 계시고 자녀를 이제 곧 군대에 보낼 아주머니도 계십니다. 정말 다양하지요? 다양한 만큼 수업 분위기도 매우 활발하고 재미있습니다. 주로 아주머니들이 분위기를 선도하시지요. 선생님께 질문도 많이 하고 선생님의 이야기에 맞장구도 많이 쳐주시고 수업 중에도 아이 키우는 얘기를 선생님과 주고 받기도 한답니다.

 

오전엔 실습수업, 오후엔 이론수업인데 실습한 요리로 점심을 먹고 오후에 임하는 실습수업은 매우 졸립니다. 선생님은 열심히 가르쳐주시고 수업 내용도 재미있지만 밥먹고 앉아서 수업을 듣기는 졸음이 밀려와 매우 힘듭니다. 오랜만에 공부하는 아주머니 아저씨들은 공부에 더욱 힘들어하시고 자신없어 하십니다. 매일 청년들 붙잡고 배우면 바로 까먹는다며 본인들이 시험에 붙을 수 있을까 걱정하시고 한숨을 쉬신답니다. 하지만 그러기때문에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공부에 더욱 불을 켜십니다.

 

맨앞에 앉으셔서 선생님을 똘망똘망 쳐다보고 선생님의 스쳐 지나가는 이야기까지 형광펜으로 밑줄 그어가며 들으십니다. 꼼꼼한 아주머니들은 학창시절 실력발휘하시듯이 요점정리까지 노트에 정리하신답니다. 그 공부의 열기에 머리 좋은 것 믿고 공부를 게을리 하려는 청년들은 아주머니 아저씨들에게 밀릴 수 없다는 마음으로 덩달아 공부에 열을 올립니다. 

 

하지만 그래도 졸린 건 어쩔 수 없지요. 그런데 그런 우리반 수업에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밥먹고 수업 시작전 잠시 쉬는 시간에 네살 아이를 둔 한 아주머니가 선풍기를 꺼내 박박 닦으신거죠. 선생님 말씀에 의하면 올 여름 시작할때 선풍기 커버 벗기면서 한번 닦았다고 하시는데 조리대 바로 옆 벽에 걸려 있는 선풍기라 찌든 기름때가 엄청 났거든요. 누구도 닦을 엄두도 안내고 닦아야겠다는 생각도 안하던 선풍기를 아주머니가 닦겠다고 뜯으시는 겁니다. 그 옆에 있던 청년들도 아주머니가 닦으시는 데 안닦을 수 없어 함께 닦고 다른 어르신 분들도 다른 선풍기를 떼어 모두 닦기 시작하셨습니다.

 

맑은 바람 오늘은 하늘이 맑았어요. 바람도 시원했구요. 우리 마음도 맑아지고 시원해졌으면 좋겠어요.
맑은 바람오늘은 하늘이 맑았어요. 바람도 시원했구요. 우리 마음도 맑아지고 시원해졌으면 좋겠어요. ⓒ 신병철

 

학원 20년 역사만에 수강생이 선풍기를 자발적으로 떼어서 닦는 일은 처음이라며 원장선생님도 칭찬하고 지나가시고 담임선생님께서는 우리에게 수고했다며 미숫가루를 한 대야 타서 갔다주셨습니다. 한사람의 열정으로 모두가 시원한 바람을 맞고 시원한 미숫가루를 마실 수 있었지요. 선풍기 바람의 세기야 닦으나 안닦으나 똑같겠지만 깨끗한 선풍기에서 나오는 바람은 더 시원하다는 거 아시나요? 그날 오후 수업은 선풍기 청소 덕분에 조금 늦게 시작하기도 했지만 모두 기분좋게 시원하게 수업하고 마쳤어요.

 

그리고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세요? 우리 반 인원이 25명이라 섬겨줄 반장과 부반장은 꼭 필요했어요. 그래서 매우 밝고 활달한 웃음을 가지신 아주머니 한분이 반장이 되시고 초등학생 자녀를 둔 아저씨 한분이 반장을 보좌하는 부반장이 되셨어요. 그런데 오늘 아침 두분께서 같은반 수강생들을 위해 선물을 주셨어요.

 

기대되시나요? 선물은 뭐냐면 수강생 전화번호부와 요점정리노트 복사본이었어요. 전화번호부를 나눴다는 것은 앞으로 5개월동안 함께 공부할 사람들이니 남처럼 지내지 말고 5개월 과정이 끝나고 나서도 계속 연락하며 지내자는 뜻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요점정리 노트를 혼자만 안보고 같이 나눴다는 것도 시험에 모두 다같이 붙자는 뜻 아니겠습니까. 두시간에 걸쳐 수백 페이지 인쇄하신 반장님은 인쇄료도 안받으시고 모두에게 나눠주셨어요. 시험에 자신없어 하시던 다른 분들도 이거 받고 떨어질 순 없겠다며 다시 한번 전의를 불태우셨죠.

 

전문조리사 과정은 5개월 중에 이제 3주를 지났어요. 앞으로 4개월이 남았는데 4개월 과정이후에 수강생들이 어떤 직업을 구하고 어디서 요리를 뽐내고 요리로 사람들을 즐겁게 건강하게 해주며 살아갈지 기대되요. 이것이 사람사는 세상이구나 싶어요. 다른 사람을 배제하고 나만 잘되기 위한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돕고 기운을 북돋으며 모두가 함께 잘먹고 잘살기 위해 경쟁하는 세상, 앞장서서 섬기고 그 섬기는 기쁨으로 모든 사람의 마음이 시원해지는 세상이요. 이렇게 좋은 사람사는 세상의 행복을 누가 빼앗으려고 하는 걸까요?

 

맑은 음악 미사가 끝날 즈음 두 분이 음악을 들려주셨어요. 음악은 맑았어요. 현장을 떠나지 못하고 영정을 지키시는 분들도 행복할 권리가 있어요. 우리의 연대도 아름다운 음악처럼 가볍고 맑았으면 좋겠어요.
맑은 음악미사가 끝날 즈음 두 분이 음악을 들려주셨어요. 음악은 맑았어요. 현장을 떠나지 못하고 영정을 지키시는 분들도 행복할 권리가 있어요. 우리의 연대도 아름다운 음악처럼 가볍고 맑았으면 좋겠어요. ⓒ 신병철

 

오늘도 평택에서 들려오는 비보를 듣고 평택을 찾아가기에는 너무 멀어 용산을 찾았어요. 평택에서 접하는 소식과 용산에서 접했던 소식이 크게 다르지가 않은 것 같아서요. 용산을 찾은 적이 한번도 없었어요. 장례식이라도 편안히 치르지 저렇게 오랫동안 힘들게 투쟁해야 할까 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기만한 것도 사실이지요. 하지만 요리학원에서 같이 공부하는 어르신들처럼 이렇게 평범하게 행복하게 사실 수 있는 분들을 투쟁의 자리에 내몰고 폭력투쟁한다고 떼쓴다고 몰아붙이는 정부와 경찰과 언론이 너무 답답했어요. 우리는 정말 해결책을 찾을 수 없는 걸까 이렇게 계속 분노만 쌓는 것이 옳은 걸까 하는 질문을 가지고 용산미사에 참석했어요.

 

용산참사 현장은 용산역과 매우 가까웠어요. 불탔던 건물 앞으로 길이 잘 나있고 버스와 차들도 쌩쌩 다니고 사람들도 많이 다녔어요. 우리집에서 참사현장까지 한번에 오는 버스도 있었어요. 참사현장은 우리와 가까운 곳에 있었어요. 평택에서 공장을 점거하고 투쟁하는 노조원들도 우리 일상 가까이 있던 그런 아저씨 아닐까요. 그리고 공장 밖에서 생수 한 병이라도 넣어주고 싶어하는 가족들도 평범한 우리 이웃 아닐까요. 우리는 행복하게 같이 공부하고 서로 힘을 주고 받으며 살 수 있는데 왜 이렇게 서로 무관심하고 해고 노동자와 비해고 노동자로 나뉘어서 싸워야 하는 걸까요?

 

학원에서 마음이 시원해진 만큼 참사 현장에서 제 마음은 답답해졌어요. 제가 누리는 시원함을 이들과 함께 누리고 싶어졌어요. 함께 살자! 여기 사람이 있다!라는 구호는 언제 저의 구호 그리고 우리 이웃의 구호가 될 지 모르니까요.

 

휴가와 피서, 용산으로 평택으로 가보시는 건 어떨까요? 마음이 무거워지겠지만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재물과 만나고 이야기 나누는 이웃들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실 거에요. 소비해야 재밌게 휴가를 보낼 수 있다는 강박감으로부터 자유로워지실 것이고 지금 버시는 돈을 더 의미있게 사용할 수 있는 계기도 되실 거 같아요.

 

우리의 무기는 비워지고 가난해지는 것 같아요. 소비해야 한다는 무거운 마음은 서로를 외면하게 만드니까요. 이웃의 고통은 잊고 싶어지고 소비하는 기쁨만 누리고 싶어하게 하니까요. 그렇다고 바다와 산, 광화문광장과 시청앞광장에서 행복하게 쉬고 있는 사람들을 우습게 보지는 마시고요. 모두 우리의 행복한 이웃이니까요. 그리고 우리의 동지가 될 사람들이니까요.

 

우리 이웃 용산 참사 현장에 가시면 지금도 분향할 수 있어요. 곧있으면 참사 200일이고 또 곧 있으면(8월 20일) 참사 7개월째에요. 아직 가보지 못하셨다면 한번 가보시는 건 어떨까요? 신용산역 2번출구로 나오셔서 왼쪽을 보고 쭉 걸어가시면 계시답니다.
우리 이웃용산 참사 현장에 가시면 지금도 분향할 수 있어요. 곧있으면 참사 200일이고 또 곧 있으면(8월 20일) 참사 7개월째에요. 아직 가보지 못하셨다면 한번 가보시는 건 어떨까요? 신용산역 2번출구로 나오셔서 왼쪽을 보고 쭉 걸어가시면 계시답니다. ⓒ 신병철

 

부족한 기사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름, 남은 기간동안 휴가 잘 사용하시고 휴가 이미 쓰신 분, 없으신 분 모두 제 기사로 행복해지셨으면 좋겠습니다. 행복하세요.

덧붙이는 글 | 용산미사는 월요일 부터 토요일까지 저녁 7시에 드립니다. 한번 참석해보셔요.


#여름#휴가#용산#평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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