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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이 쌍용자동차 노조 농성 현장에서 활동했던 국군기무사령부 소속 S씨가 소지했던 수첩의 민간인 사찰 메모와 테이프 등을 공개하고 있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이 쌍용자동차 노조 농성 현장에서 활동했던 국군기무사령부 소속 S씨가 소지했던 수첩의 민간인 사찰 메모와 테이프 등을 공개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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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의 공개로 국군기무사령부(이하 기무사)가 민간인을 사찰한 정황이 드러났습니다. 기무사는 군사에 관한 정보수집 및 수사를 목적으로 창설된 국방부 직할 군 수사정보기관으로 과거 군사정권 시절 이름만 들어도 무시무시했던 '국군보안사령부'의 후신입니다.

이런 군기관이 간첩도 군인도 아닌 민간인을 감시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대단히 충격적인 일입니다. 더욱이 MB정권이 들어선 이후 기무사령관이 청와대를 수시로 드나들며 대통령에게 정보보고를 해왔다고 하니 군사독재를 연상케 해 섬뜩함 마저 듭니다.

이처럼 공포정치, 공안정국을 실감케 하는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나다보니 화도 나고 답답하기 그지없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은근히 겁도 나면서 마음이 착잡하고 무겁기만 합니다. 그래서 '기무사 민간인 사찰'을 비롯해 감시와 억압이 난무하는 요즘 사회 분위기를 시민의 입장에서 기사를 한 번 써보려고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조금 있으니 아내가 제게 다가와 무거운 표정으로 묻습니다.

"오빠 무슨 글 쓸라카는데?"
"응, 요새 분위기가 하도 공포스러버서 비판 기사 하나 써 볼라꼬."

얼굴이 더욱 굳어진 아내는 다시 제게 묻습니다.

"그거 안 쓰면 안 되나?"
"왜에?"
"걱정되잖아, 요새 보니깐 막 잡아가고 그라던데…."
"에이 아무리 그래도 설마 일개 시민기자를 비판 기사 하나 썼다고 잡아 가기야 하겠나!"
"아이다 오빠야! 미네르바도 그냥 네티즌이었는데 잡아갔잖아. 그러니까 오빠도 조심해야 된다!"
"그래도 괜찮다, 부드럽게 쓸테니깐 너무 걱정하지 마라."

아내는 정부를 비판하는 글이나 말을 했다가 고통 받는 사람들이 많아지다 보니 혹시나 저도 그런 일을 당하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웠던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선 뒤 발생한 수많은 사건들

용산참사 발생 6개월째를 맞은 지난 7월20일 저녁 서울 용산구 한강로 남일당빌딩 참사 현장 앞에서 열린 '용산참사 해결 촉구를 위한 추모미사'에서 희생자 영장 앞에 고인의 넋을 위로하는 수많은 촛불들이 놓여져 있다.
 용산참사 발생 6개월째를 맞은 지난 7월20일 저녁 서울 용산구 한강로 남일당빌딩 참사 현장 앞에서 열린 '용산참사 해결 촉구를 위한 추모미사'에서 희생자 영장 앞에 고인의 넋을 위로하는 수많은 촛불들이 놓여져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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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저는 아내를 다독이며 안심시켰지만 저 역시 마음 한 편이 개운치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비단 미네르바 사건뿐만 아니라 경찰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에 참가한 유모차 부대 주부 44명을 소환한 일,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벌어진 용산참사, 시국선언에 동참한 교사들을 대거 징계한 일 등 따지고 보면 일상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 잡혀가고 고통 받은 일이 MB정부가 들어선 이후 허다했기 때문입니다.

또 이번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뿐만 아니라 '검찰의 MBC <PD수첩> 작가 이메일 공개', '경찰의 잇단 대학생 연행', '빈번한 경찰의 폭력진압' 등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린 과도하고 무리한 공권력 투입은 저 같은 일반 시민들을 주눅 들게 하고 위축시킵니다.

자유와 소통을 억압하는 기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해 온 논객인 진중권 교수는 문화부의 이상한 '한예종' 감사로 고초를 겪고 있고, 논쟁을 벌이던 보수논객들로부터 걸핏하면 소송의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즉 '감사'와 '소송'이라는 '합법적 제도'마저 MB정권에서는 비판세력을 옥죄는 우회적 공격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습니다.

덧붙여 연세대와 부산대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모공연'을 불허한 일, 중앙대가 별다른 이유 없이 진중권 교수를 임용탈락 시킨 일 등 지성과 양심의 상징인 대학에서도 정권의 눈치를 보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도 '뭔가 압력과 보복이 있으니 저렇게 알아서 기는 것 아닐까'라는 인식을 사람들에게 심어줍니다.

최근 '청산가리 발언'으로 고소를 당한 배우 김민선의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극히 개인적 공간인 미니홈피에 남긴 글을 두고 여당의 힘 있는 여성의원은 공개적으로 '잘 모르면 입조심 하라'고 무서운 질타를 보냅니다. 또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로 거론되던 힘 있는 보수인사는 '지적수준이 떨어지면 입 닥치고 있으라'며 혼을 내는가 하면 한 발 더 나아가 '연예판, 대대적인 세무조사와 입법정책으로 정화시켜야', '진중권, 유창선, 박경신은 김민선이 물어야 할 손배액 대신 지급하겠다는 각서 써라'(관련기사 보기)며 강경한 어조로 겁나게 몰아붙이기까지 합니다.

이처럼 궁금하고 의심이 생겨도 잘 모르고 아는 게 없으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라'는 힘 있는 사람들의 으름장 역시 사람들의 자유로운 의사표현을 억압하는 요소입니다.

'고문'만 하면 완벽 '독재' 부활 생각 들 정도

전여옥 의원이 지난 11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배우 김민선의 발언을 비판하는 '연예인의 한마디- 사회적 책임이 있다' 는 글을 올려 논란이 되고 있다.
 전여옥 의원이 지난 11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배우 김민선의 발언을 비판하는 '연예인의 한마디- 사회적 책임이 있다' 는 글을 올려 논란이 되고 있다.
ⓒ 전여옥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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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펴봤듯이 MB정권은 법적, 제도적, 심리적 압박 등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과 소통을 억압하고 있습니다. 소통을 차단하고, 의사표현의 자유를 억압, 통제하는 것을 우리는 '독재'라고 배웠습니다. 그래서 요즘 들어 MB정권을 두고 '독재'라고 하는 말이 단순히 정치공세를 위한 수사로만 들리지 않습니다.

괜스레 '탁 치니 억하고 죽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해 옵니다. 이제 '고문'만 하면 완벽한 '독재' 부활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막장까지 온 것 같습니다. 정권을 비판하는 세력을 제거하려는 의지와 노력은 과거 '군사독재'나 지금의 'MB독재'나 다를 바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다른 것이 있습니다. 과거 '군사독재'는 철저히 밟으면 된다는 식으로 거의 대부분을 폭력적으로 해결한 반면, MB독재는 한 쪽에서는 '서민행보'를 대대적으로 홍보하면서 다른 한 쪽에서는 합법을 가장해 비판세력을 공격합니다.

또 군사독재는 정권에 비판적인 이들은 누구 할 것 없이 대놓고 짓밟았지만 MB독재는 밟아야 될 사람만 선택과 집중하여 밟습니다. 그것도 '경제살리기', '법치주의 확립'이라는 그럴싸한 명분으로 포장한 채 말입니다. 그러다 보니 군사정권 시절에는 '독재'를 하고 있다는 것이 확연하게 드러나 국민들의 공분을 쉽게 살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연대와 저항도 힘 있게 지속될 수 있었지만 MB정권의 '독재'는 교묘하게 은폐, 엄폐되어 있어 관심을 갖고 찬찬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지나치기가 쉽습니다.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

광우병 위험으로부터 안전하지 않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지난해 5월31일 밤 촛불을 밝히며 서울시청 앞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광우병 위험으로부터 안전하지 않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지난해 5월31일 밤 촛불을 밝히며 서울시청 앞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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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자면 '군사독재'는 단순 무식했다면 'MB독재'는 치밀하고 지능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범죄도 '폭력'은 진단서만 있으면 협의를 쉽게 입증할 수 있지만 '사기'는 혐의를 입증하기 상당히 복잡하고 어렵습니다. 마찬가지로 똑똑해진 독재 역시 종식시키기가 대단히 어려운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나라 신문, 방송 등 언론지형의 상당 부분이 친정부적이라는 점도 '독재'가 잘 드러나지 않는 큰 이유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그러나 '희망'은 있습니다. 아직까지 '선거'라는 민주주의 제도가 살아 있기에 '표'로써 심판하면 되는 것입니다. 물론 MB정권이 행정·입법·사법 3권을 동원해 선거에 유리한 지형을 만들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기 때문에 이 역시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저와 같은 평범한 시민들이 정치, 사회적 이슈에 지금보다 더 관심을 가진다면, 나아가 좀 더 용기를 내어 의사표현을 보다 적극적으로 한다면 최첨단 인공지능이 장착된 'MB독재'도 무력화 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막연한 불안감에 휩싸여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에 새겨진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라는 글귀가 새삼스레 떠올라 자꾸 곱씹게 됩니다.


태그:#기무사, #민간인사찰, #김민선, #진중권, #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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