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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전 10시. 5일장이 열리는 함양 장날인 이날, 100여 명의 지역주민들과 농민들은 함양군농업기술센터에서 앞에서 분통을 터뜨렸다.

 

경남 함양군이 도축장시설현대화 사업을 추진하면서 주민들 몰래 도축장 시설을 허가해줬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함양군과 도축업체는 지난 2008년 3월 7일 투자협약을 체결하고, 주민들에게는 2009년 8월 3일에 와서야 공청회를 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더구나 업체 측에서는 부지도 지난 3월까지 82%를 이미 매입한 상태다. 이에 군은 각종 인·허가 관련 행정지원을 약속한 바 있고, 도축장 유치를 위해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

 

사실상 이날 시위는 불가항력 상태에서 지역주민들과 농민들이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단계였다. 장날에 함양읍과 인근 상인들에 호소하면 조금이라도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억울한 심정을 막걸리 한 사발에 이웃 주민에게 털어놓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평생 부모가 물려주신 삶의 터전에서 농사 밖에 모르는 이들이 오로지 '생존권' 하나 만을 주장하며, 함양 장날 이른 아침부터 아주 절박한 심정으로 거리로 뛰쳐나온 것이다.

 

이날 시위는 지곡면 정취·효산·보각·백일·공배·부야·주곡·덕암·남효 마을과 함양읍 평촌리 10개 마을 주민 등 1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함양민중연대와 함양군농민회가 가세해 2시간 동안 집회와 거리시위를 하면서 함께 진행됐다.


지역주민 우롱하는 밀실행정의 표본

 

함양군이 추진하고 있는 도축장은 함양읍 신관리 산 101-1 일대에 총 부지면적 5만7959㎡(1만7563평)에 도축시설 5236㎡(1586평), 부대시설 2610㎡(790평) 규모로 하루에 돼지 1000두와 소 50두를 도축할 수 있는 양으로 경남 서북부권에서는 최고의 시설을 자랑한다. 사정이 이러다보니 폐수도 하루 500톤이 방류된다.

 

이 사업은 내년 12월 완공목적으로 융자인 축산발전기금 105억 원과 자부담 45억 원 등 총 150억 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융자는 기금으로 전체사업비의 70%에 해당되며 연리 4%에 5년 거치, 10년 균등분할상환으로 도축 및 가공시설을 위한 건축․시설비용 등에만 쓰이게 된다.

 

문제는 함양군과 투자의향사인 (주)하이미트는 지난해 3월7일 이 같은 내용의 투자협약을 체결하고도, 주민들에게는 '쉬쉬'하다 1년 5개월이 지나서야 공청회 과정에서 내용이 알려지면서 파문이 확산됐기 때문이다. 특히 도축장은 함양 민속마을인 정여창 고택과 2㎞, 지곡 전원마을과도 1㎞ 남짓 떨어지지 않아 주민들의 원성을 한 몸에 사고 있다.   

 

도축장건립반대 추진위원회 최병상 위원장은 이날 "이런 상황이야말로 지역주민을 우롱하는 밀실행정의 표본"이라며 "군민 여러분들이 단결된 힘을 발휘하여 청정지역 함양을 지켜내자"고 호소했다.

 

최병상 위원장은 "함양군농업기술센터 책임자는 도축장 건립을 미리 밝히면 주민들이 다 반대하기 때문에 도축장사업 사실을 사전에 알리지 않았다"고 전했다. 또한, 그는 "함양에도 축산농가가 많기 때문에 도축장 사업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며 "이런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주민들과 사전에 의견을 나눠 적합한 곳에 도축장이 들어서야지, 어느 날 기습적으로 도축장이 들어오게 하는 것은 절대 허락할 수 없다"고 강력히 반발했다.

 

최 위원장과 주민들은 "시위 하루 전날, 지곡면에서 이장들과 주민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하는 바람에 혹시 자식들에게 해라도 가지 않을까 싶어 나이 드신 분들은 많이 참석하지 않았다"며 "이장들도 효산·정취·부야·거평·평촌 등 젊은 사람들만 참가했다"고 말했다.

 

사실, 힘없는 주민들이 함양 장날에 거리를 박차고 나선 이유도 철저하게 지역주민들을 무시한데 따른 것이다. 시위에 참가한 주민들은 "군수와 행정의 오만함에 치를 뜬다"고 말했다.   

 

시위현장에 '선출직' 눈에 띄지 않아

 

 

도축장건립반대 추진위원회가 처음 집회를 연 이날, 현장에는 단 한 명의 군 의원과 군수 출마자들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아 지역 주민들로부터 공분을 자아냈다.

 

'표심'을 먹고 사는 군 의원들과 내년 6·2 지방선거 군수 출마자들이 모습을 보이지 않은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사전에 이 같은 내용을 모르지는 않았을 텐데도 이들은 '약한 자의 호소'를 철저히 외면했다.

 

게다가 군의회의 경우 집행부인 함양군으로부터 도축장건립 사업을 제대로 보고받지 못했고, 의회도 최근에 이를 알았다는 주장들이 나온 상태라서 왜 참석하지 않았지 하는 의구심을 부추겼다. 아무래도 도축장 사업을 찬성하는 쪽도 있을 테고, 또 반대도 있을 테니 아예 참가하지 않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특히 추진위원회의 주장대로 "군의회가 도축장이 추진되는 것을 사전에 모르고 있었다"면 민의를 대변하는 군 의회 입장에서는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함양군의회 A의원은 "기존에 있던 도축장은 함양 하림의 공원화사업으로 도축장이전이 불가피했다"며 "작년 가을쯤 하림에 있던 도축장시설은 냄새도 많이 나 옮기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어디로 옮기는지 장소는 보고 안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집행부는 당시 도축장 건립에 대해 구두로만 보고했다"며 "군과 도축장업체의 투자협약 체결도 최근에 알게 되었다"고 곤혹스러워했다.

 

A의원은 "빠른 시일 내에 의회에서도 현장을 방문하고, 주민들의 의견을 청취해서 절차상 문제는 바로 잡겠다"고 말했다. 그는 집행부가 의회를 무시하고 있다는 일부 주장에 대해서는 즉답을 회피했다. 군은 올해 8월4일 의회간담회를 통해 의회에 정식으로 보고했다.

함양군의 도축장 추진 배경

 

 

함양군에 따르면, 기존에 있던 도축장은 노후화된 비위생적·재래식 도축시설로 시설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었고 함양 하림의 공원화사업으로 도축장 이전은 불가피한 상태다.

 

또 도축장이 들어서면 위생적이고 현대화된 도축․가공시설 확충으로 안전한 축산물을 생산, 공급할 수 있어 국민건강 보호 및 농가 소득에도 증대할 수 있고, 축산 관련업체의 경쟁력 제고를 통해 경남 서북부권 유통거점으로 발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군은 소 도축시설이 없어 관내 축산 농가들의 불편 및 경제적 손실이 막대하고, 지역사회에 상시고용 효과도 100여명에 세수도 연간 7억여 원이 기대됨에 따라 도축장 현대화 사업을 추진하게 됐다고 밝혔다. 

 

현재 도축장은 지난 6월 농림수산식품부로부터 도축장 통폐합사업을 승인 받은 상태로 내년 1월부터 도축장 건립공사에 들어갈 예정이다.

 

당초 이 사업은 농림수산식품부가 소규모 도축장 통폐합사업의 일환으로 경남이 축산물 유통처리구조가 취약해 도축장시설현대화사업을 추진하면서 축산발전기금을 지원하면서 이뤄지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함양군이 적극적으로 도축장을 유치했고, 농림부에서는 도축장 예정부지 매입 및 관련 법령 검토를 거쳐 지난 6월 12일 (주)하이미트를 최종 사업자로 선정했다. 

   

축산발전기금을 받기 위해서는 소규모 도축장이 통폐합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당초 피앤엠영농조합법인(함양)과 명목축산(하동), 부광산업(양산) 등 3개 업체가 (주)하이마트로 통폐합하기로 했다가 하동에 있는 명목축산이 빠지고 2개 업체만 통폐합하는 것으로 사업이 변경됐다.

 

하지만 양산에 있는 부광산업마저 오는 19일 4차 경매에 나서게 되어 사실상 통폐합의 의미는 없어진 셈이다. 추진위윈회 측에서는 이날 "축산위생처리협회 선정위원회에서는 부광산업이 경매에 들어가기 때문에 재검토를 지시하라고 유보결정을 내려 아직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농림부 안전위생과 관계자는 "부광산업의 경매여부와 사업 재선정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며 "축산발전기금 사업선정 시 기본요건을 갖추었고, 부광산업의 경우도 구조조정으로 봐야한다"고 밝혔다.

주민 간 갈등은 막아야 한다

 

 

지리산 골짝에 위치해 있는 경남 함양군이 꽤 시끄럽다. 지난 2000년 국민적 합의에 의해 중단됐던 지리산 댐을 함양 천사령 군수가 다시 들고 나오면서 '지리산 댐' 논란이 수면 위로 급부상했다.

 

도축장건립반대 추진위원회 시위가 있던 이날도 '지리산 댐 반대 릴레이 1인 시위'가 함양군청 정문 앞에서 오전 8시부터 9시30분까지 1시간 30분 동안 열렸다. 1인 릴레이 시위와 수몰예정지 주민행동은 17일부터 21일까지 매일 열리게 되며 함양시민연대 임병택 운영위원장이 첫날 1인 릴레이 시위자로 나섰다.

 

이들은 "지리산 댐은 2002년부터 시작된 함양 군수의 대정부 청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1인 시위 이유에 대해 밝혔다.

 

뿐만이 아니다. 2003년 12월 24일 경남도청에서 장인태 도지사 권한대행과 천사령 함양군수, 민간투자업체로 선정된 (주)도시와 사람 하창식 대표이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다곡리조트 개발사업 민간투자 협약을 체결하면서 '골프장'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당시 주민들은 "군이 다곡리조트에 함양군의 운명이 달렸다느니, 이 사업을 반대하는 자는 함양을 떠나야 한다느니 하며 행정력을 휘두르며, 개발예정지역 토지 주인을 찾아다니며 비정상적인 수단과 방법으로 토지매수에 협력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며 분개했다.

 

그리고 6년이 흘러가는 지금에도 담당 공무원들은 "주민들을 설득하고 동의를 구해내기 보다는 시위에 참가하면 안 된다"고 전화로 종용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함양군의 현실이다.

 

대형 개발사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주민들의 의견수렴이다. 그러나 함양군이 사업을 처음 시작할 당시 주민들에게 이익이나 부작용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아 반대와 또 다른 반대가 되풀이 되고 있다.

 

도축장을 반대하는 현수막과 나란히 놓여 있는 도축장 찬성 현수막을 보고 있노라면 진정 이 지역에 필요한 것은 주민들 간의 화합과 단결이 아닌가 생각한다.

 

도축장반대 추진위원회 연대사로 나선 함양민중연대 김현태 조직국장은 이점을 분명히 밝혔다. "도축장을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지역에 한 곳은 도축장이 들어서야 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주민들을 철저히 무시당하고 소외되며, 밀실에서 모든 행정이 결정되는 게 더 큰 문제입니다"

 

자치단체장은 국민을 힘이 아니라 말로 설득하고, 국민에게서 나오는 말에 귀 기울이는 소통 과정을 통해 지역을 발전시키고 유지시켜나간다는 말을 명심해야 할 때다. 주민과 행정당국의 지루한 싸움은 언제쯤 끝날 것인지.


태그:#함양군 , #도축장, #도충장반대 추진위원회, #굿모닝지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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