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포행등과 포충등  

 

시랑헌 터 8부 능선에 수행터를 만들면서 내가 원하는 때 시랑헌 산책길을 따라 편한 복장으로 걸으면서 수행하는 포행(布行)길로 만들겠다는 생각을 해왔다. 저녁에는 너무 어두워 가로등을 설치해야 될 것 같다. 부담스럽게 포행이라는 말을 쓰지 않더라도 숲 속으로 난 길은 언제나 걷고 싶은 길이다.     

 

시랑헌 아래 텃밭 가상자리에 서 있는 전신주에서 수행터까지 직선거리는 약 400 m 정도이며 걷는 거리로는 500~600 m 정도 될 것이다. 늦은 밤 수행터에서 좌선을 하다 쥐가 난 다리의 혈액순환을 위해 포행을 하려면 타인들을 놀라게 하거나, 나 역시 타인들로부터 방해 받을 염려가 없는 이 길이 좋은 여건을 갖춘 포행길이 될 것이다.  

 

시랑헌 밤나무 밭의 포충등(捕蟲燈)은 3년 전에 구례군에서 농촌 지원금으로 친환경 농사를 위해 무상으로 설치했다. 산동~고달 간 도로 공사 때 밤나무 밭이 훼손되면서 포충등으로 연결된 전선들도 마구잡이로 끊겼다. 피해를 예상하지 못했기에 복구비를 보상 품목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그렇다고 설치한 지 몇 년 안된 포충등의 보수나 재설치 신청을 할 수도 없다.  

 

6월은 밤나무 해충들을 제거하기 위해 포충등을 설치해야 할 때이다. 구례군에 있는 설치업체의 견적을 받아 나름대로 분석해보니 내가 직접 시공한다면 1/3 정도의 금액으로 가능할 것 같다. 전선의 종류는 천차만별이라 그들이 견적서에 제시한 것보다 좋은 것을 쓰지 않을 것이다. 전에 설치한 전선은 녹 쓸어 재활용이 어려울 것 같다. 포충등 설치할 때 포행등도 같이 설치하자고 집사람을 간신히 설득했다.   

 

이틀간 전선의 종류 용도, 가격 등 수집할 수 있는 정보를 모아 정리했다. 대전의 전선도매상으로 가서 1 km 정도 연장해도 전압강하를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10SQ*2C/TFR 전선 3 롤(900 m)을 가로등 용으로, 6SQ*2C/TFR 전선 1.5 롤(450 m)을 포충등 용으로 구입했다.  

 

배전판, 누전차단기, 고무테이프, 절연테이프 등 배선공사에 필요한 자재들을 추가로 구입하였다. 지하로 매립하기 위해 ELP 주름관 9롤(900 m)을 포함한 설비자재를 구입하고, 마지막으로 파손된 포충등을 교체하기 위한 포충등 4개를 1백만 원에 구입하니 재료비 총액이 3백만 원이 훌쩍 넘어간다.  

 

재료비를 생각해서라도 제대로 시공해야 할 것 같은 생각에 각오가 새롭다. 약 100 m 간격으로 서 있는 가로등 8개와 밤나무 단지 2곳 포충등 8개를 본 집터와 시랑헌 2곳에서 제어할 수 있도록 시공하려다 보니 배선공사도 그렇지만 설계 역시 생각과 달리 만만치 않다. 우선 급한 밤나무 밭 포충등과 정원등 같이 자신 있는 것부터 시공하고 자신없는 부분은 자꾸 미루다 보니 전기공사를 시작한 지 3개월이 되 가지만 아직까지 완전하게 끝나지 않았다.  

 

 

가로등 배선공사  

 

일기예보에 의하면 오늘은 마지막 더위가 기승을 부린단다. 오전에는 히말라야 트레킹을 위한 체력단련 훈련등반, 오후에는 그늘에서 할 수 있는 집 보수 작업과 마무리 전기공사를 하기로 했다.  

 

시랑헌 서북쪽에 있는 견두봉(775 m)까지 왕복 6 km 정도의 거리다. 시랑헌에 살게 되면 매일 오르내릴 산이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은 등산로이기 때문에 등산로가 선명하고 깨끗하게 나 있을 리 없다. 새로운 등산로를 개척하는 기분으로 낫으로 등산로를 정비해가며 전진한다. 속도가 나지 않는다. 뒤따라 오는 집사람은 그런 내가 못마땅하기 그지없는 기색이다. 중간 지점에서 되돌아서자는 둥 노골적으로 불만이다. 젊었을 땐 무조건 나를 믿고 잘도 따랐는데…….  

 

오후에는 8개의 가로등 중에서 제대로 작동되지 않은 대문 쪽 첫 번째와 두 번째 등을 시랑헌에서 제어할 수 있도록 스위치를 설치하는 작업과 본 집터의 배전판 배선공사를 점검하고 보완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등이 50 m 이상 떨어져 있고 두 번째 전등에서 본 집터 창고까지 100여 m, 여기서 시랑헌까지 50 m 떨어져 있으니 이들 지점을 오가며 스위치 선을 확인하고 손가락 굵기의 전선을 연결하는 작업은 생각보다 어렵고 시간도 많이 걸렸다. 날이 어두워질 때가 돼서 겨우 끝났다.    

 

시랑헌을 들어서면 입구에서 40~50 m 지점에 이르면 우체통을 달고 있는 소나무 기둥이 서 있고 길 건너편에 첫 번째 가로등이 있다. 시랑헌을 비울 때는 이 가로등과 우체통을 가로질러 쇠사슬을 매 둔다.   

 

인터넷검색을 해보면 가로등 가격은 생각보다 비싸다. 조각된 주물인 경우 한 개 가격이 4~5백만 원이 넘는다. 아주 평범한 것도 70만 원 정도이다. 내가 부담하기엔 벅차다. 대안으로 벌목한 곳에서 쓸만한 소나무기둥이나 곧게 자란 편백나무기둥을 골라 사용하기로 했다. 잘 말린 후, 오일스테인으로 3~4회 듬뿍 칠한 다음, 굴착기로 1 m 깊이로 파고, 밑동에 보조지지대를 대고, 자갈을 채운 다음, 시멘트로 마무리하면 아주 튼튼한 가로등 지주가 된다.  

 

 기둥 위에 설치할 등은 개당 2~3만 원이면 족하고 각각의 등을 따로따로 조정할 수 있도록 제어박스에 콘센트와 누전차단기를 설치한다고 하더라도 개당 2만원 정도면 가능하다. 개당 5만원 정도면 제법 운치 있는 가로등을 설치할 수 있다. 문제는 굴착기를 사용하여 도로를 파서 전선을 매설하고 기둥 매설 지점을 1 m 깊이로 팔 수 있는지가 상당한 관건이다. 인력으로 팔려고 한다면 많은 고생과 상당한 인건비를 각오해야 한다.  

 

두 번째 등은 시랑헌 터의 중심이 되는 곳이다. 아들이 기념식수를  하려고 사 놓은 배롱나무를 심을 곳이다. 세 번째 등은 본 집터 연못가에 있는 등이다. 졸부 소치겠지만,  집안에 졸졸 흐르는 물소리와 정자 그리고 연못에 피어 있는 연꽃의 정취가 좋을 것 같아 연못을 팠다. 시랑헌으로 흐르는 물줄기를 연못으로 유도했지만 연결관을 너무 적은 것을 사용하여 적은 비에도 밀려온 토사에 관이 막힌다. 시랑헌의 꼭 해결해야 할 머리 무거운 문제 중 하나이다.    

 

 

네 번째 등은 시랑헌 데크(deck) 옆에 설치된 등이다. 등 옆에 높직한 누대를 만들어 새벽이면 이곳에서 참선한다고 앉아서 온갖 망상을 피는 재미가 별나다. 네 번째 등은 언젠가 만들고 싶은 블루베리농장으로 가는 길목에 서 있다.  

 

다섯 번째 등이 있는 곳은 한 낮에 들어서도 어두컴컴한 깊은 숲 속 같은 곳이다. 편백과 고로쇠나무가 울창하게 자라고 있다. 후배가 가져온 곰취 모종도 잘 자라고 있다. 곰취는 취나물 중의 왕으로 향이 좋아 여린 잎을 양념 돼지고기에 쌈을 하면 그 맛을 잊기 힘들다. 강원도 고지에서 자라는 귀한 나물이었지만 지금은 양식이 가능해 많이 보급되었다. 여섯 번째 등은 큰 오동나무 사이로 전망이 좋은 곳이다. 정상쪽인 서쪽사면으로 마사토가 좋아 흙이 필요하면 굴착기로 퍼다가 사용하는 흙 창고다. 언젠가 여력이 미쳐 오동나무 나무 앞으로 돌출하는 데크를 설치하고 싶은 곳이다. 빼어난 전망대 자리이다.  

 

일곱 번째 등은 사랑헌 암반수가 나는 곳이다. 소나무 아래 약 7~8 m 깊이에 수원이 있다. 이 물줄기를 찾아 대형공사를 했던 때의 용기가 가상하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내가 그랬다.

 

여덟 번째가 수행을 핑계 삼아 아침이면 이곳으로 출근할 곳이다. 혼자 이곳에서 수행을 한다고 도사가 되겠는가마는, 읽고 싶은 책과 음악이 있다면 나머지 여생이 그렇게 척박하지는 않을 것 같다. 이 곳에 내 손으로 원형흙집과 소박한 정자를 지을 것이다.  

 

ⓒ 정부흥

 

제 2인생은 진정으로 내 몫이고 싶다

 

제 2인생의 삶은 소박하고 깨끗한 삶의 모델이 되고 싶다. 퇴직 후 제 2인생을 준비한다고 터를 닦기 시작한지 3년이 지났지만 아직 본 집터에 들어설 집의 설계는커녕 개념도 못 잡고 있다.   

 

처음에 임시 거주를 위해 지은 오두막이 시랑헌으로 거듭나 이제는 제법 오롯한 맛이 밴 주말 별장이 되었다. 때문에 본 집을 짓는 일이 자꾸 뒤로 미뤄진다. 퇴직 후 한옥을 짓는 교육을 받고, 팀버프레임 중목구조 건축 방식을 배워 이들이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고 흙과 상생하는 실용적인 집을 짓고 싶다. 세상에 하나뿐인 집을 집사람과 둘이서 지어볼 생각이다. 서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먹을 것은 내가 짓겠다는 생각은 귀농 사연의 초석이다. 잘 지어 보고 싶지만 친환경 무농약 농사는 절대로 그냥 지어지는 것이 아니다. 유기물이 많이 함유된 부숙퇴비를 얼마나 잘 만드느냐가 열쇠이다. 한번 시도했지만 아직은 발효과정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선농일여(禪農一如) 생각으로 농선쌍수(農禪雙修) 하겠다는 나의 꿈이 이뤄지고 이를 좋게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는 보편적인 삶의 방식이 되었으면 좋겠다. 


태그:#가로등, #포충등 , #포행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대덕연구단지에 30년 동안 근무 후 은퇴하여 지리산골로 귀농한 전직 연구원입니다. 귀촌을 위해 은퇴시기를 중심으로 10년 전부터 준비했고, 은퇴하고 귀촌하여 2020년까지 귀촌생활의 정착을 위해 산전수전과 같이 딩굴었습니다. 이제 앞으로 10년 동안은 귀촌생활의 의미를 객관적인 견지에서 바라보며 그 느낌을 공유해볼까 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