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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소가 먹으면 우유가 되고 뱀이 먹으면 독이 된다고 한다. 같은 물을 먹었는데도 형성되는 물질이 다른 것은 소도 뱀도 어찌할 수 없는 태생적 결과인 것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어떤 이는 물로 독약을 만들고, 어떤 이는 보약을 만든다. 마음 쓰기에 따라 물의 쓰임새가 이렇게 달라진다.

이명박 대통령과 부인 김윤옥씨가 23일 국회 앞마당에서 열린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영결식에서 헌화, 분향한 뒤 걸어 나오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부인 김윤옥씨가 23일 국회 앞마당에서 열린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영결식에서 헌화, 분향한 뒤 걸어 나오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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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지지도 최고? 자신감 찾은 이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정국에서 김영삼과 전두환의 병문안으로 새삼 '화합과 통합'이라는 말이 화두가 되었다. 24일 아침 이명박 대통령의 라디오 정례 연설 주제도 화합과 통합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화합과 통합이야말로 우리의 시대정신'이라고 말했다.

그러하니 이명박 대통령으로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죽음으로 인해 얻은 가장 큰 교훈이 '화합과 통합'인 셈이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한두 번 들은 말은 아니지만 듣기에 그보다 희망적인 말도 없다. 하지만 실체가 없다 보니 그 말은 늘 추상으로 끝나고 말았다.

월요일 아침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장을 지낸 후 '한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분열을 통합의 반대 개념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분열'이라는 단어를 '흩어짐'이 아니라 '다양성'으로 해석한다. 이때 유능한 지도자는 다양하게 표출되는 에너지를 하나로 모으는 일을 하지만, 무능한 지도자는 분열 운운하며 '통합'이라는 구호만 외친다.

이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분열하면 작아지고 통합하면 커진다'고 했다. 그러하니 이 대통령은 다양하게 표출되는 에너지를 모으는 지도자이기보다 구호만 거창하게 외치는 지도자에 가까워 보인다.

그의 말은 이승만 독재의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를 되풀이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왜 이런 일들이 자꾸만 일어날까. 그것은 이 대통령이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문화 코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무지의 결과가 빚어낸 발상이 아닌가 싶다. 어쩌면 군사문화에 길들어져 있어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아니라면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후에 생긴 자신감의 발로일 수도 있겠다. 마침 김 전 대통령 국장 이후 조사한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가 46.7%(청와대 발표)로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이는 지난 11일 30.3%(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 발표)에 비하면 불과 12일만에 16.4%나 상승한 것이다.

지난 해 촛불 집회에서 한 시민이 전경의 가슴에 꽃을 꽂아주었다. 하지만 곧 고참이 와서 꽃을 뽑아 버렸다.
 지난 해 촛불 집회에서 한 시민이 전경의 가슴에 꽃을 꽂아주었다. 하지만 곧 고참이 와서 꽃을 뽑아 버렸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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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원하는 것은 화합과 통합보다 '용서와 화해'

하지만 국민들의 생각은 이 대통령과 다른 듯싶다. 국민들은 이 대통령이 화합과 통합을 들고 나오기 전 '행동하는 양심'까지는 아니더라도 '화해와 용서'를 먼저 실천하기 바라고 있는 탓이다. 화해와 용서없는 화합과 통합은 공염불이자 듣기 좋은 수사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이 언급한 정치적 또는 사회적인 화합과 통합을 이루기 위해선 이명박 정부에 인해 발생된 숱한 갈등 요인들을 결자해지 차원에서라도 먼저 풀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대통령이 원하는 어떤 방식의 화합이나 통합도 이루어지기 힘들다. 20009년 현재 정치, 사회적으로 갈등을 빚고 있는 대표적인 몇 가지를 제시해본다.

첫 째, 용산 참사 문제를 풀어야 한다. 이 사건은 2009년 새해 벽두에 일어난 일이니 벌써 8개월째 접어 들었다. 전후 사정이야 어찌되었던 공권력의 과잉 진압으로 다섯 사람이 목숨을 잃었는데도 정부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시신은 여전히 병원 냉동고에 갇혀 있고, 장례는 언제 치를지 알 길이 없다. 지금 같아선 5년이 걸릴지 10년이 걸릴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유족들은 8개월째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한 채 거리의 투사가 되었다. 유족들과 아픔을 함께 하던 시민단체 사람들은 수배자 신세가 되었다.

공권력에 의한 대형 참사가 일어난 그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자신의 일기에 당시의 심경을 이렇게 토로했다.

용산구의 건물 철거 과정에서 단속 경찰의 난폭진압으로 5인이 죽고 10여 인이 부상 입원했다. 참으로 야만적인 처사다. 이 추운 겨울에 쫓겨나는 빈민들의 처지가 너무 눈물겹다.

일기 내용만으로도 김 전 대통령의 심정이 어떠했을 줄 짐작이 간다. 아마도 김 전 대통령이 현직에 있었다면 (물론 광폭한 진압도 없었겠지만) 그의 성정을 미루어 대국민 사과는 기본이고 당장 관련자들을 구속하고 억울하게 죽어간 이들에 대한 장례를 치렀을 것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규정한 국민 중에서 용산 참사로 희생된 5인은 이명박 정부의 국민이 아닌 모양이다. 그 이유 때문일까. 정부는 지금껏 유족들과 협상은커녕 단 한 차례도 대화에 응하지 않았다.

둘째, 단군 이래 최악의 국책 사업인 4대강 살리기를 백지화 해야 한다. 강을 건강하게 만드는 일은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4대강 살리기는 '살아 있는 강 죽이기'와 다름없다. 과거 조상들은 나무 한 그루를 베는 데도 수만 번의 고심끝에 결정했다. 하물며 수변 생태계와 수중 생태계를 완전히 파괴하는 토목공사이다. 수천만 번 고민하고 결정해도 부끄럽지 않는 일이다.

셋째, 민주주의 시계를 제자리에 돌려 놓아야 한다. 이명박 정부 들어 서울광장은 대형 경찰버스로 봉쇄되었고, 민주주의는 질식사했다. 경찰과 검찰은 민생 치안 등 정작 해야 할 일은 손을 놓은 채 미네르바 구속 사건과 KBS 정연주 사장 구속에 이어 유모차 부대 소환을 비롯해 인터넷에 올린 댓글을 수사하는 등 국민들의 입과 눈, 귀를 막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다.

참다 못한 국민들과 학계, 문화예술계, 시민단체 등의 시국선언이 줄을 이었지만 이명박 정부는 눈도 꿈벅거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을 반대하는 단체나 국민이 얼마나 되는지 집계하여 그들을 반정부 단체나 반정부 국민으로 낙인 찍기에 바빴다.

봉하마을에서 한 여성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봉하마을에서 한 여성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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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갈등 해결 없는 화합과 통합은 정치 쇼

넷째, 미디어법을 무효 처리하라. 누가 보아도 일부 재벌 신문들에 대한 특혜로밖에 볼 수 없는 미디어법을 강행 처리한 것 또한 이명박 대통령이다. 정치의 기본은 타협일 것이나 미디어법은 어떤 타협이나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더구나 법을 통과 시키면서 일어난 대리투표 등의 불법행위는 절대로 용납되어서는 안 될 일이기도 한 것이다. 이제라도 정부와 한나라당은 국민 다수가 원하는 만큼 미디어법 통과를 원천무효화 해야 한다.

다섯째,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책임을 지고 유족과 국민에게 사과하라. 국민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간 책임이 일부 정치 검찰과 이명박 정부에게 있다고 믿고 있다. 하여 국민들이 이 대통령의 책임 있는 사과를 사과를 줄기차게 요구했지만 이 대통령은 짐짓 딴청만 피웠다.

김 전 대통령은 그날의 충격을 이렇게 일기에 남겼다.

자고 나니 청천벽력 같은 소식 ─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했다는 보도.
슬프고 충격적이다.
그간 검찰이 너무도 가혹하게 수사를 했다.
노 대통령, 부인, 아들, 딸, 형, 조카사위 등 마치 소탕작전을 하듯 공격했다.
그리고 매일같이 수사기밀 발표가 금지된 법을 어기며 언론플레이를 했다.
그리고 노 대통령의 신병을 구속하느니 마느니 등 심리적 압박을 계속했다.
결국 노 대통령의 자살은 강요된 거나 마찬가지다. - 5월 23일 일기

이것이 그날의 진실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수사 검찰과 이명박 정부에 의한 자살 강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 내렸다고 적시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책임 또한 아무도 지지 않았다. 국민은 분노했지만 이명박 정부 사람들은 분노 대신 축배를 들었다.

여섯째, 촛불 집회에 참가한 국민들에 대해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 이 대통령이 바라는 사회적 통합을 이루기 위해선 촛불 집회에 참여했다가 기소가 된 국민들을 전원 사면해야 한다. 이 대통령을 향해 국민과 소통하라며 촛불을 든 죄밖에 없는 국민들이다. 그런 이들을 범법자로 만드는 것은 국민적 분노만 키울 뿐 얻을 것이 하나도 없다.  

이 대통령은 라디오 연설에서 "우리는 이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시대를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새로운 민주주의는 대립과 투쟁을 친구로 삼기보다는 관용과 타협을 친구로 삼아야 합니다." 라고 말했다.

국민은 이 대통령의 진정을 믿고 싶다. 국민이 바라던 것이기도 하다. 하여 이제부터라도 위에 적시한 여섯 가지 갈등을 해결해주길 간절히 요구한다. 모든 게 해결된 후 참된 민주주의를 위해 화합과 통합에 대한 논의를 해도 늦지 않다.


태그:#이명박, #김대중,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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