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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월 31일은 '한글학회'가 우리 나라에 처음 생긴 지 백한 돌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한글학회는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어학회(1931년부터)'라는 이름이었고, '조선어연구회(1921년부터)'라는 이름으로도 있었으나, 처음 문을 연 때는 1908년 8월 31일이었고, 이때 '국어연구학회'라는 이름으로 김정진님을 회장으로 두었습니다. 1911년에는 국어연구학회라는 이름을 '배달말글몯음'으로 바꾸기도 했는데, 이러한 발자취를 한글학회에서도 지난날에는 제대로 갈무리하지 못하고, 1971년에 《한글학회 50년사》를 펴낸 적이 있습니다.

늦게나마 스스로 학회 발자취를 바로잡아서 지난 2008년 한글날에 《한글학회 100년사》를 펴냈으나,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못했고,, 아직도 숱한 기관과 단체와 언론사와 백과사전 들에는 '한글학회 처음 연 날'을 1921년으로 적어 놓고 있습니다.

한글학회 발자취를 적어 놓은 병풍입니다.
 한글학회 발자취를 적어 놓은 병풍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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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포털 네이버를 열어 보면, "한글학회 설립연도 1908년"으로 밝혀 놓지만, 정작 "본문 내용"에서는 1921년 12월 3일에 문을 열었다고 적고 있습니다. 스스로 잘못된 정보를 엉뚱하게 엇갈린 채 놓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나 인터넷포털 다음을 열어 보면, "1908년 8월 31일 '국어연구학회'라는 명칭으로 창립되었고, 이때 회장은 김정진, 주시경은 강습소의 강사로 활동했다. 학회 이름을 1911년 9월 3일 '배달말글 몰음'으로, 1913년 3월 주시경이 회장에 오르면서 '한글모'로 바꾸었고, 강습소도 1911년 '조선어강습원'으로, 1914년 '한글 배곧'으로 바꾸었다. 그러다가 1917년부터 활동이 침체되자 1921년 12월 3일 임경재·장지영·이규방·신명균 등이 '조선어연구회'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재개했다. 기존에는 조선어연구학회를 한글학회의 기원으로 보았으나 그 이전의 국어연구학회에 대한 자료가 수집됨에 따라 정정되었다. 학회 이름이 1931년 1월 '조선어학회'로 다시 바뀌었다가 1949년 9월 지금의 명칭인 '한글학회'로 정착했다"고 꼼꼼하게 밝혀 놓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 어느 모임과 도서관과 학교 자료가 그러지 않겠느냐만, 한글학회조차도 꽃등 자료를 알뜰히 건사하지 못했다고 하겠습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일제강점기에 조선어학회는 모질게 억눌리고 시달렸으며, 숱한 국어학자가 끌려가 고문을 받다가 죽었습니다. 이무렵 수많은 자료를 빼앗겼고, 한국전쟁 때에도 숱한 자료가 불타거나 사라졌습니다. 조선어학회가 펴내려 했던 《조선말 큰사전》 원고는 일본 헌병이 빼앗아 갔다가 해방 뒤 어렵사리 창고에서 찾아내어 1947년에 가까스로 1권과 2권을 내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종이가 없어 열 해 동안 뒤엣권을 내지 못한 끝에, 미국 재단한테서 종이와 돈을 얻어 나머지 3∼6권을 1957년에 펴내며 비로소 '우리 말 다루는 큰사전'이 빛을 보았습니다.

한글학회 101돌을 기리면서, 강당 들머리에 여러 가지 전시를 함께 하고 있습니다.
 한글학회 101돌을 기리면서, 강당 들머리에 여러 가지 전시를 함께 하고 있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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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학회는 서울 종로구 신문로1가 '한글회관' 5층에 있습니다. 한글학회가 깃든 한글회관은 1970년대에 이 나라 시민들이 쌈지돈을 푼푼이 그러모아서 오로지 '여느 사람 힘'으로 세운 건물입니다. 따로 시민사회운동이 자리잡고 있지 못하던 박정희 독재정권 때, 한글학회는 지난날 일제식민지배자하고 싸우면서 말과 글을 지킨 보람을 '정부 권력'이 아닌 '백성 힘(또는 시민 힘, 또는 민중 힘)'으로 받았다고 하겠습니다.

8월 31일에 치른 백한 돌 잔치는 퍽 조촐하게 치렀고, 백한 돌 잔치를 알음알이로 찾아온 분들은 하나같이 머리가 하얗게 센 어르신들입니다. 머리가 까만 젊은이는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머리가 까만 젊은이들은 하나같이 우리 말과 글이 아닌 나라밖 말과 글과 문화와 문명에만 흠뻑 빠져들도록 정치권력이나 교육 얼거리가 짜여 있는 탓입니다. 젊은이들 스스로 우리가 늘 쓰는 말과 글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한다고 탓하기 앞서, 우리 정부와 시민사회가 우리들 말과 글을 올바르고 알맞게 다스리거나 추스르는 데에 힘을 쏟지 못하고 있음을 느껴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행사장.
 행사장.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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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31일, 한글학회 백한 돌은 아주 조용하게, 거의 소리도 소문도 없이 지나갔습니다. 2009년 10월 9일 한글날은 어떠할까요? 2010년 8월 31일 한글학회 백두 돌은 또 어떠할까요? 한글학회 처음 연 날을 기리는 자리에 더 많은 사람과 더 많은 젊은이가 찾아오는 일도 반갑겠지만, 이에 앞서 우리 스스로 우리 삶과 터전과 생각과 넋을 찬찬히 돌아보면서, 우리 매무새를 가다듬을 수 있다면 더욱 반갑고 고마운 노릇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글 서예 글씨입니다.
 한글 서예 글씨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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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학회 101돌을 기리는 자리에 모인 분들은 거의 모두 흰머리 어르신이었습니다.
 한글학회 101돌을 기리는 자리에 모인 분들은 거의 모두 흰머리 어르신이었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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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를 마치고 막걸리 한 잔 걸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잔치를 마치고 막걸리 한 잔 걸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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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태그:#한글학회, #한글, #우리말, #한글학회 백년, #조선어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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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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