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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 용산철거민참사 범국민대책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이 10일 오후 서울 명동성당에서 진행한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추석 전까지 용산참사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말하고 있다.
 박래군 용산철거민참사 범국민대책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이 10일 오후 서울 명동성당에서 진행한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추석 전까지 용산참사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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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도 용산 참사에 대한 부담을 느낀다고 본다. 우리가 파악한 정보로는 청와대 쪽에서도 비공식적으로 '추석 전에 끝내겠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친 서민' 행보 하고 새 내각 출범하면서, 용산문제를 털어내고 싶다는 것이다."

박래군 용산철거민살인진압범국민대책위원회(이하 범대위) 공동집행위원장은 '추석 전 총력집중'의 근거를 이렇게 말했다. 최근 청와대의 태도에 변화 조짐이 보인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그동안 여러 종교계 인사들이 용산참사 해결을 위해 청와대 측과 만났지만, 지난 8개월 내내 청와대 관계자들은 "시간이 지나면 해결된다", "재개발 조합과 얘기할 문제다" 등 무시 전략으로 일관했다.

'추석 전'이라는 시한에는 정서적 이유도 크다. 용산 참사는 설 연휴 직전에 일어났다. 박래군 위원장은 "추석에도 분향소에서 제를 올리면 너무 비참하지 않겠냐"면서 "우리 요구가 다 관철되지 않더라도 올 추석에는 유가족들이 상복을 벗고 집에서 차례를 지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음주부터 협상 논의 본격화... 보상만으로는 안 된다"

박래군 용산철거민참사 범국민대책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
 박래군 용산철거민참사 범국민대책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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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박 위원장은 정부, 서울시, 민주당 용산참사대책위, 유가족이 참여하는 '4자협의체'에 큰 희망을 걸고 있었다. 송영길 민주당 의원과 한승수 총리가 논의한 바 있는 이 협의체는 유가족 측이 직접 참여한다는 점에서 그동안의 테이블과 다르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아직 정부는 4자협의체에 대해서도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범대위와 청와대 사이의 직접 소통도 없다. 사회적 갈등이 생기면 청와대 민정수석 등이 나서 시민사회단체들과 공식·비공식 협상을 벌였던 지난 정권들과는 달라진 모습이다. 추석 전 장례협상은 과연 가능할까?

박래군 위원장은 "다음 주부터 협상에 관련된 본격적 논의가 진행될 것으로 본다"면서 "종교 지도자들에게도 이에 대해 목소리를 내달라고 부탁드리고 있고, 종교계에서도 공감대가 있다"고 전했다. 그동안의 협상 과정을 좀 더 자세히 물어봤다.

- 그동안 구청이나 서울시와 물밑협상은 전혀 성과 없이 끝난 것인가.
"사건 초기 용산구청 쪽을 만났을 때는 '돈만 대충 주고 끝내자'는 태도였다. 거의 재개발조합 주장만 전달하는 꼴이었다. 서울시도 기본 방침은 '시의 책임은 없지만 재개발조합과 중재하겠다'는 것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선거용 명분쌓기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그래도 진전은 있었다. 서울시는 세입자 생계대책과 관련, 임시상가와 비슷한 '함바집' 운영권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제도적 임시상가가 아니어서 수용하지는 못했다. 또 협상 전에 총리 사과도 (협상이) 가능하다는 말도 들었다. 그랬는데 이후 서울시 태도가 강경해졌다. 지난 8월 15일 물밑접촉에서는 임대상가는 논의 못한다는 최종안을 제시하면서 '받을래? 안 받을래?' 하는 식으로 말하더라."

- 유가족들이 장례를 치를 최소한의 조건은 무엇인가.
"첫 번째가 정부의 대국민사과, 두 번째가 용산 세입자 생계대책 마련, 세 번째가 유가족·부상자 보상이다. 정부는 세 번째인 보상 문제만 말하지만, 우리는 이 세 가지가 모두 해결되어야 한다고 본다. 다섯 분이 세입자대책을 요구하다가 돌아가셨는데, 이번 참사를 계기로 재개발 정책을 전환하지 못한다면 그 죽음이 너무 헛되지 않나. 물론 협상 과정에서 서로 양보해야 하지만, 양측의 협상안이 오가면서 진행돼야 하는데 지금은 중단된 상태다."

- 진상규명이나 책임자 처벌은 요구에서 뒤로 밀렸다. 유가족들의 생각은 어떤가.
"장례 치르고 나면 진상규명 포기한다고 보일까봐 걱정인데, 우린 계속 싸울 것이다. (이번에 요구하는) 대국민사과 역시 진상규명의 단초라고 본다. 그리고, 완벽하게 규명하려면 지난한 세월이 필요하다. 이 정권 안에 해결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총력집중을 해도 추석 전에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면, 그 다음 수는 무엇인가.
"계속 싸워야지.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재개발조합과 해결할 문제? 그렇다면 왜 공권력 투입했나"

지난 7월 18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 앞에서 이명박정권 용산철거민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원회원들과 유가족들이 용산참사 문제에 대해 정부의 책임 있는 해결을 촉구하며 청와대로 향해 삼보일배를 진행하자 경찰들이 막아서고 있다.
 지난 7월 18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 앞에서 이명박정권 용산철거민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원회원들과 유가족들이 용산참사 문제에 대해 정부의 책임 있는 해결을 촉구하며 청와대로 향해 삼보일배를 진행하자 경찰들이 막아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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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대위는 사건 초기부터 청와대와 직접 대화 창구를 요구해왔지만, 정부 측 태도는 "재개발조합과 세입자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것이었다. 이러다보니 협상은 처음부터 제자리를 맴돌았다. 박래군 위원장은 "이명박 정부는 정치를 할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다"면서 "사인(私人)간의 문제면 서로 드잡이하게 내버려두지 왜 용산에 공권력을 투입했냐"고 꼬집었다.

"자기가 진압해놓고 재개발조합에게 해결하라고 하는 셈이다. (1980년) 광주(항쟁) 이후에 국가에 의해 한꺼번에 가장 많은 사람이 죽은 사건인데, 이렇게 무시할 수 있냐. 전두환 때 같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빨리 해결했을 것이다. 물론 시신을 탈취해서 장례식을 치른다거나 하는 안 좋은 방식으로. 반면 지금 정부는 사람 피 말리게 만든다. '한번 해봐, 지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나오니까…."

그러나 현실적으로 추석 전 협상타결의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추모제는 물론, 1인시위나 삼보일배 등 범대위 활동이 대부분 경찰에 의해 가로막히는 상황이다. 현장에서는 활동가, 일반 시민들이 무더기로 연행된다. 박 위원장에게 "정부를 압박할 수단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알면 좀 가르쳐달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 여론의 관심이 떨어져 있다. 진보진영도 힘이 빠져 있다.
"바닥을 기고 있는 현재 진보진영의 힘으로는 참사를 해결할 수 없다. 지금 상황은 사실 한국 진보의 실력을 드러내주는 것이다. 그래도 지금까지 버텼던 것은 일반 시민들의 힘 때문이다. 가령 돈 문제만 해도 투쟁기금에 선전물 비용, 유가족 생활비까지 필요한데 시민들이 돈 내고 물품 지원해주고 있다."

- 그동안의 범대위 활동 과정에서 반성할 점은 없나.
"참사 초기에 분노가 크다 보니까 시민들의 자발적 항의운동을 만들지 못하고 조급하게 활동했다. 사실 이 사건이 이렇게 오래 가리라고 생각 못했다. 나도 범대위도 이명박 정부의 본질에 대해 모르고 운동의 관성대로 대응했던 것이다."

무너진 민주주의, 용산에 답이 있었다

박래군 용산철거민참사 범국민대책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
 박래군 용산철거민참사 범국민대책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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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부터 수배자 신분이었던 박래군 위원장은 지난 4일 저녁, 6개월 만에 순천향대학병원 장례식장을 나섰다. '수배 동료' 이종회 공동집행위원장, 남경남 전철연 의장과 함께 명동성당 영안실로 거처를 옮겼다.

박 위원장은 자꾸 영안실 바깥으로 나가고 싶어 했다. 인터뷰도 야외에서 했다. 그의 생활공간은 영안실 4층에서 성당 마당으로 훨씬 넓어졌다. 시멘트 바닥만 걷던 발도 간만에 흙을 밟는 호강을 했다. 그는 당시의 감정을 "감격"이라고 표현했다. 다른 영안실의 곡소리를 들으면서 깨던 날도 이젠 끝났다. 처음 성당에서 자던 날, 그는 정말 편한 잠에 들었다.

그에게 수배생활은 처음은 아니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보호를 받은 수배는 처음이다. 그동안 전철연 회원들은 물론 유가족들이 경찰 진입을 막기 위해 매일 장례식장 4층을 지켰다. 내내 미안했던 박 위원장은 이들을 삶의 터전으로 돌려보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장례식장 '탈출'을 크게 기뻐했다.

수배자들이 거처를 옮긴 것은 유가족들을 용산4구역으로 보내 투쟁거점을 강화한다는 의미도 크다. 병원을 나온 유가족들이 용산에서 모여 살면 재개발조합의 철거 작업은 차질이 불가피하다. 유가족들의 새 집은 고 양회성씨가 운영하던 '삼호복집'. 현재 이 가게는 가족끼리의 사생활 공간을 보장하기 위해 칸막이 공사 중이다.

그러나 "불법집회를 주도했다"는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이 발부된 박래군 위원장은 소원대로 이번 추석 전에 장례를 치러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큰 집'으로 가서 검찰 조사를 받아야 한다. 하루 빨리 감옥에 가기 위해서 투쟁 중인 그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 용산이 아닌 여러 곳에서 '용산'이 거론된다. 쌍용차 평택공장에서 '제2의 용산참사' 얘기가 나오고, 인터뷰하러 오는 길의 지하도에서도 상가 리모델링과 관련해서 '제2의 용산참사 일어난다'는 자보가 붙어 있었다. 용산의 사회적 의미는 무엇인가.
"생존권이 워낙 짓밟히는 상황에서 극단적 결단을 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용산이 일종의 상징이 됐다. 1987년 이후 부자들을 위한 경제정책을 펴면서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만들지 못했기 때문에, 나름대로 노무현 전 대통령 때까지 기틀을 잡던 절차적 민주주의도 한 방에 무너진 것 아닌가. 용산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사상누각인지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철거민들에겐 법도 적용되지 않았고 공권력도 조합과 건설사 편이었다. 이런 곳에서 민주주의 얘기는 어불성설이다."


태그:#용산참사, #박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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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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