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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전쟁이 할퀴고 간 상처마저 말없이 보듬는다. 남북한 군인들이 치열하게 싸우며 모든 것을 파괴하고 피를 흘리며 죽어간 이 땅 위에 자연은 고귀한 생명을 불어넣었다. 지금은 수 천여 종의 동식물이 사는 지상의 낙원이 된 이 곳. 자연의 경이로움과 전쟁의 상흔이 동시에 느껴져 가슴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이 곳은 한반도의 비무장지대, DMZ다.

시민단체 녹색연합의 활동가와 자원봉사자, 회원들이 DMZ를 다녀왔다. 이번 답사는 DMZ의 역사와 생태 가치를 직접 체험하고 자연생태계를 보전하기 위한 의제를 나누기 위한 '녹색현장강좌'의 일환으로, 군 당국의 허가를 받아 9월 12-13일 이틀간 연천과 철원 일대를 살펴보았다. 녹색연합의 '녹색현장강좌'는 DMZ 이후에도 '10월 에너지자립마을 등용마을', '11월 백두대간'편으로 이어진다(참조http://www.greenkorea.org/).

낮은 산들이 포근히 감싸는 연천

이 곳에서 분단의 역사가 시작되었지만 다시 평화의 역사가 시작될 곳도 바로 이 곳이다.
▲ 철원의 승리전망대에서 바라 본 비무장지대. 이 곳에서 분단의 역사가 시작되었지만 다시 평화의 역사가 시작될 곳도 바로 이 곳이다.
ⓒ 안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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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MZ의 중서부 경기도 연천. 연천은 동쪽으로 포천과 서쪽으로 장단, 남쪽으로 양주, 동두천, 파주와 맞닿아 있다. 눈 앞에 펼쳐지는 연천의 낮은 구릉성 산지들은 끊어질 듯 다시 이어진다. DMZ 남쪽으로 5~20km에 이르는 지역은 군사작전과 보안을 위해 민통선(민간인통제선)으로 지정되어 있다. 민통선에 들어가려면 군 검문소에서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미리 허가를 받고도 몇 가지 확인을 거친 후에야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경비가 삼엄하다. 민통선 지역에는 군인들과 허가를 받아 농사를 짓는 몇 몇 농부들을 제외하고는 사람이 살지 않는다.
  
연천의 제 5사단 열쇠부대는 비무장지대에서 유일하게 철책선 일부를 걸을 수 있도록 해놓은 곳이다. 철색선 앞에 서니 비무장지대가 바로 한 걸음 앞이고, 북녘 땅은 가까운 시야에 들어온다. 철책 사이로 보이는 비무장지대의 숲은 밤새 내린 비로 한껏 물기를 머금어 싱그러운 흙내음을 풍긴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에 자연의 숨결이 오롯이 느껴진다. 이 고요한 정적을 깨는 것은 오직 새들의 노래와 일행의 발걸음 소리뿐이다.
  

철책선 너머로 비무장지대가 보인다. 비를 머금은 무거운 구름이 비무장지대의 하늘을 지나고 있다.
▲ 철책선 너머 비무장지대 철책선 너머로 비무장지대가 보인다. 비를 머금은 무거운 구름이 비무장지대의 하늘을 지나고 있다.
ⓒ 안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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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아름다움을 채 만끽하기도 전에 이 곳은 휴전 중인 비무장지대임을 깨닫는다. 비무장지대 안 능선 고지마다 아군의 GP(경계초소)건물들이 눈에 띄고, 황토색의 북측 추진철책선도 보인다. 멀리 11시 방향으로는 희미하게 북한의 선전마을인 마장리도 보인다. DMZ는 평화로운 가운데 남북의 끊이지 않는 기싸움과 전파가 오가는 곳이다.
  
600m의 철책선을 걸은 뒤 열쇠전망대에 오르자 철책선 너머 복개평야가 한 눈에 들어온다. 전쟁이 있기 전 이 곳에는 100여개의 마을이 있었다고 한다. 전쟁으로 마을들은 모두 사라지고 지금은 키 작은 수풀만이 우거져있다.

아름다운 비무장지대의 비밀

열쇠전망대에서 바라 본 복개평야. 한국전쟁 전에는 100여개의 마을들이 모여 있던 이곳에 지금은 수풀이 우거져 있다
▲ 복개평야 열쇠전망대에서 바라 본 복개평야. 한국전쟁 전에는 100여개의 마을들이 모여 있던 이곳에 지금은 수풀이 우거져 있다
ⓒ 안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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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무장지대의 뛰어난 생태적 가치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비무장지대와 민통선 일대에는 67종의 멸종위기종을 포함하여 2천7백여 종의 동·식물들이 살고 있다. 이 곳은 천연기념물 두루미와 희귀종 저어새, 왜가리 등 다양한 철새들의 월동지이면서, 동북아 토착희귀종인 고라니와 멸종위기종인 산양, 반달곰 등의 서식지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름다운 DMZ 안에서 크고 작은 환경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비무장지대와 민통선 일대에는 군사 목적으로 인한 환경오염이 끊이지 않고 있다. 남과 북이 시야확보를 위해 매년 봄마다 산불을 내고 있어 비무장지대 곳곳에 민둥산이 보인다. 산불로 인해 변한 비무장지대의 식생은 그렇지 않은 민통선 지역과 큰 차이를 보여 여러 학자들의 연구대상이 되고 있다. 또 비무장지대와 민통선 일대의 군시설 보수와 차량이동로 공사 등으로 산림파괴도 상당한 수준이다.
  
이에 산림청은 4월부터 민통선 지역의 산림복원 사업을 시작했다.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는 많지만 지금까지 환경관리의 사각지대였던 민통선 지역에 보호의 손길이 뻗친 것은 의미가 크다. 특히 이 지역의 산림훼손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해 온 녹색연합에게는 더욱 그렇다.

"산림청이 지자체와 합의를 보는 과정이 쉽지 않고, 특히 DMZ 동부는 산세가 험하고 지뢰가 많아 공사자체가 어려운 문제도 있다. 산림청의 예산은 한정되어 있고 복원작업도 쉽지는 않을 것이나, 오랜 시간을 두고 계획을 짜고 있어 지켜보고 있다." (유소영 녹색연합 DMZ 담당)

역사가 흐르는 철원

평화전망대에서 바라본 비무장 지대. 사진 속에 보이는 저수지에 물을 좋아하는 고라니들이 종종 나와서 뛰논다.
▲ 평화전망대에서 바라본 비무장 지대 평화전망대에서 바라본 비무장 지대. 사진 속에 보이는 저수지에 물을 좋아하는 고라니들이 종종 나와서 뛰논다.
ⓒ 안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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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에서 동쪽으로 이동하면 구릉성 산지 대신 넓은 평야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 곳은 DMZ의 중부지역인 강원도 철원이다. 철원은 신생대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현무암 지대다. 넓은 현무암 지대 위로 충적층이 쌓여 비옥한 토양이 되었다. 비옥한 토양 때문에 일제시대부터 논농사가 활발했고 가장 부유했던 곳이다. 그러나 그 비옥한 토양 탓에 일제의 잔혹한 수탈을 겪은 곳이기도 하다. 또 한국전쟁 당시에는 이 지역을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전투가 있었다. 철원의 토양이 조금만 비옥했더라면 역사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얼음창고의 측면. 한국전쟁 때 총탄에 맞은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 철원의 근대문화유산 얼음창고 얼음창고의 측면. 한국전쟁 때 총탄에 맞은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 안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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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타고 철원 일대를 돌면 식민지시절의 유물과 전쟁으로 폐허가 된 시가지를 만나게 된다. 철원은 삼국시대부터 한국전쟁까지 군사 충돌 지역이었던 탓에 전쟁유적과 산성 등 국방문화재들이 많다. 현재까지 근대의 국방문화재를 포함하여 총 19호의 문화재가 등록되어 있다.

그 중 노동당사와 농산물 검역소, 제 2금융조합지는 일제의 수탈과 애국인사에 대한 가혹행위가 있었던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들 건물은 식민지시절 철원의 모든 경제적 기반이 일제로 들어가는 통로였다. 건물의 외관은 한국전쟁 때 총탄에 맞아 곳곳이 파괴되고 구멍이 뚫린 앙상한 몰골을 하고 있다. 이 건물들 앞에 서면 식민지시절과 전쟁의 아픔이 한 눈에 펼쳐진다.
  
철원의 역사와 지리를 오래 연구한 학자들은 철원이 DMZ 중 가장 중요한 곳이라고도 한다. 철원은 남북방한계선이 남북을 가르고 서울과 원산을 잇는 경원선 철도가 동서를 가르는 교차지점이기 때문이다.

"철원은 종적으로 경원선과 횡적으로 DMZ의 철책선이 만나는 십자축의 상징이다. 여기에 지리적, 역사적으로 이 땅이 주는 메시지가 있다. 우리가 이 십자축을 해결하지 않는 한 한반도의 통일도 없을 것이다" (이형우 한국국방문화재연구원)

DMZ는 지금
  
황금빛으로 물든 들판과 분홍색 꽃들이 철원에 가을이 왔음을 알리고 있다.
▲ 철원의 가을 황금빛으로 물든 들판과 분홍색 꽃들이 철원에 가을이 왔음을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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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DMZ에는 '평화'라는 이름을 내건 사업들이 한창이다. 경기도의 '평화생태공원'이나 강원도의 'DMZ 박물관', '평화문화광장'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사업을 펼치기 전에 앞으로 우리가 어떤 '평화'를 추구할 것인지, 또 모두가 평화라는 가치를 공유하고 있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 사업들이 지자체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도 많다.

"지역 주민들도 정보를 공유하고 주도적으로 사업에 참여해야 한다. 지금처럼 지자체에서 일방적으로 사업을 진행하면 결국 주민들은 소외될 수밖에 없다. 주민들과 끊임없이 논의하여 생태관광이나, 지속가능한 관광의 건강한 모델을 찾아야 한다." (유소영씨)
  
평화전망대에서 바라본 동송저수지. 저수지 뒤로 철원평야가 넓게 펼쳐진다.
▲ 동송저수지 평화전망대에서 바라본 동송저수지. 저수지 뒤로 철원평야가 넓게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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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분계선으로부터 남북으로 각각 2km씩 총 4km구간의 DMZ. 지금은 남북이 전략적인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조금씩 앞당기면서 1~1.5km 정도로 좁아진 상태다. 가까워진 DMZ 거리와 달리 남북관계는 단절되어 가고 있다. 그 와중에 평화라는 이름을 한 각종 DMZ사업들은 빠르게 진행되는 상황이다. DMZ를 단순히 돈을 벌기위한 관광 구역으로 만들 것인가, 아니면 평화와 생태계의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곳으로 만들 것인가. DMZ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녹색기자단 안미소 기자


태그:#비무장지대, #DMZ, #연천, #철원, #생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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