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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4당 대표가 한 자리에 모여 '사법살인 중단'을 촉구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 으로서 재판의 공정성에 대한 사회적 염려가 반영된 결과이다.
▲ 야4당 대표의 공동회견 화면 캡쳐 야 4당 대표가 한 자리에 모여 '사법살인 중단'을 촉구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 으로서 재판의 공정성에 대한 사회적 염려가 반영된 결과이다.
ⓒ 이래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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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퇴유곡에 빠진 문국현재판

차도살인(借刀殺人)이란 남의 칼을 빌려 사람을 죽이는 고도의 계략을 뜻하는 말로 손자병법 36계 중 세번째 계책에 속한다. 계략이나 술수로 상대를 제거하는 수단의 정당성에 대해 논란은 있어왔지만 병법으로서의 차도살인은 그런대로 봐줄만하다. 하지만 이 계략을 단지 '내 손에 피가 묻지 않았으니 나는 살인자가 아니다'며 경쟁상대를 제거하고 자신은 범행 모의에서 발뺌하기 위한 수단으로 누군가 악용했다면, 그는 명백한 교사범(敎唆犯)에 해당한다 할 것이니 정적이나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한 계략으로서의 차도살인지계는 실로 비열하고 음험한 범죄행위라 아니 할 수 없다.

지난 17일 국회에서 "문국현 대표에 대한 사법 살인을 중단하라"며 이례적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릴 만큼 야 4당(민주. 자유선진. 민주노동. 진보신당) 대표가 한 목소리를 낸 것은 문국현 수사 및 재판 전개 과정과 이재오 전 의원의 귀국 및 정치활동 재개 등 최근 동향 등 각기 별개의 사안이 결과적으로 '문국현 죽이기'는 '이재오 구하기'와 같은 말로 해석이 가능할 만큼 상호 긴밀한 연관성을 가지고 양자 간섭하며 진행되어 왔기 때문이다.

양자의 연관성은 지난 수 개월간 두 당사자의 격전지인 은평구 연신내역 광장을 중심으로 전개된 양 진영의 움직임만 보아도 쉽게 그림으로 떠올릴 수 있다. 재판을 정치적 음모로 보고 있는 문대표 측은 재판의 진실을 알리기 위한 홍보 활동과 '문국현 지키기'를 위한 서명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왔는가 하면,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 될 경우 있을 10월 재보선을 대비해 자전거부대 활동 및 지역행사 참석, 학교 방문 강연, 출판물 버스 광고 등 이재오 전의원 측의 활발한 움직임도 함께 전개돼왔던 것이다.

하지만, 정권 쪽에서 '문국현을 죽여 이재오를 구하려는 음모'는 대법원이 선고 기일을 정하지 못하는 진통 끝에 '은평을'의 10월 재보선이 무산돼 애초 목적을 달성하는 데 일단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재판은 재판대로 논란거리만 양산하고 향후 결과나 그로 인한 파장을 결코 낙관적으로 장담할 수 없는 진퇴유곡의 상황에 빠져들었다고 할 수 있다.

야 4당 대표가 모두 나서서 "문국현 죽이기를 중단하라"고 성토해야 할 정도로 수사와 재판과정 곳곳에서 하자가 드러나고 있는 만큼, 재판을 정권의 의지대로 밀어붙이자니 '정치보복'이나 '사법살인' 같은 비난과 저항에 직면할 것이 명약관화하고, 이쯤에서 포기하자니 국가의 핵심 공권력이 한갓 권력의 시녀로 전락한 사법 사례로 오랫동안 남아 회자되게 되었으니, 정권 쪽에서는 이 재판 결말이 어떠하던 간에 차라리 시도하지 않은 것만 못한 결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봉착한 것이다.

심판대에 오른 사법정의

1년 6개월 이상 갖가지 억측과 논란을 야기시키며 진행되어온 문국현 재판은 결국 사법부 최고 권위를 가진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최종 판결을 통해 결론을 가리게 되었다. 사건은 외형적으로 피고소인이 최고 사법 기관의 판결을 기다리는 모양새를 하고 있지만, 사건의 성격상 대법원의 판결 결과를 두고 이 나라 사법부가 정치권력으로부터 얼마나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는지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로 판단할 수 있는 여지를 다분히 담고 있다.

그야말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는 수사가 딱 어울릴 만큼 문국현 재판은 수사 검사의 피의자 회유 및 협박. 재판중 공소장 변경. 불고불리의 원칙에 위배한 판결. 중앙선관위의 유권해석을 뒤집은 이자율 판결 시비. 검찰의 공소장 일본주의 위배 등 도무지 단일 사건의 재판 과정에서 불거진 것이라고 보기에는 믿어지지 않으리만큼 많은 하자와 문제점이 드러난 사건이라는 점에서 사법부 최고 권위의 대법관들의 사건에 대한 판단을 새삼 주목하게 되는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 103조에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법관의 재판권 독립을 헌법 조항으로 엄연히 명시해 놓았지만 대한민국 사법부가 조봉암 사건, 인혁당 사건 등 셀 수 없이 많은 사건들에서 권력의 시녀가 되어 스스로를 사법살인의 실행법으로 전락시켜 온 수치스러운 과거사를 우리는 알고 있다. 권력과 금권에 굴복한 판결들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나 유권무죄 유전무죄 같은 조롱을 감수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법원 스스로가 조성해온 것이다.

참여 정부 시절 이용훈 대법원장은 기회가 될 때 마다 "법원이 권력의 시녀가 되어 사법살인의 주구로 전락한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더는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며 수 차례 국민 앞에 머리를 조아렸지만 정권 교체 이후 그런 사과가 무색한 판결이 이어지는 현실은 과거 사법부 수장이 한 사과의 진정성과 정치권력으로부터 사법부 독립을 여전히 의심하게 하게 하고 있다.

문국현 재판은 여러 측면에서 사법부의 독립 의지를 가장 잘 가늠할 수 있는 속성을 두루 갖춘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대법원은 주어진 권한으로 피고소인의 유무죄를 판단하겠지만 역사와 국민은 이 판결을 통해 사법부의 독립 여부를 판단하게 될 것이니, 이 재판에서 정작 심판대에 선 자는 피고소인이 아니라 사법부 자신이라고 볼수 있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한겨레와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문국현재판, #이재오, #은평을, #사법부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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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음악 오디오 사진 야구를 사랑하는 시민, 가장 중시하는 덕목은 다양성의 존중, 표현의 자유 억압은 절대 못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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