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공정한 선위에서 다같이 동시에 출발하여, 정정당당히 승부해야 하는 백 미터 달리기 경기에서 치사하게 누군가 규정을 어겨 경기에 임하는 것 말이다.

 

알다시피 달리기는 정말 괴롭고도 외로운 종목이다. 따라서 그러한 과정을 이겨내고 선수들이 쏟아내는 신기록과 관중들의 기막힌 함성은 그 선수의 놀라운 능력과 노력의 산물이다. 하지만 그러한 틀 속에서 누군가 기록을 단축하기 위하여 규정에 맞지 않은 신발을 신거나 세계적으로 공인받지 못한 희귀한 출발 타이밍으로 달리기를 했다고 치자. 그리고 그 선수가 국내에서 남들이 이제껏 개척해내지 못한 끝내주는 기록을 세웠다 치자. 그래서 순식간에 스타가 되고 육상신동이란 별칭까지 얻었다고 치자는 말이다.

 

그리고 우쭐해진 그 선수는 결국 국내무대는 너무 좁다고 여기고 세계 올림픽에 나가 금메달을 따오겠노라는 원대한 포부를 공언하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언론은 그의 믿음직한 모습에 흥분하고 대중들은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경기 당일. 컨디션 조절에 성공한 그 선수는 출발선에 서서 출발신호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검은 옷을 입은 심판관이 다가와 규정에 맞지 않으니 신발을 바꿔 신으라 한다. 이 웬 날벼락인가. 이 사람들은 내가 국내에서 경기 할 때는 아무 소리 하지 않더니 이제 와서 이 무슨 행패란 말인가.

 

하지만 그러지 않으면 경기자격 자체를 박탈한다고 하니 할 수 없다. 갈아신을 수밖에. 그리고 그 선수는 또 다시 출발선에 선다. 땅 하는 소리 뒤에 출발했으니 어디선가 울리는 나를 향한 기계음. 출발 신호보다 빨리 뛰었다는 것이다. 이건 또 뭔가. 난 늘 이 타이밍에 뛰었단 말이다. 이제 와서 이것이 잘못된 출발이라니. 결국 움츠려든 그 선수는 자신의 기록보다 말도 안 되는 초라한 기록을 안고 국내에 귀국한다. 그리고 말한다. 역시 세계의 벽은 너무 높았노라고.

 

'표절'은 잘못되었다. 근데?

 

안다. 꽤 극단적인 이야기다. 하지만 난 단지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 머릿속에 한 공통적인 문장이 함께 공유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저런 글을 끼적였다. 남들과 다른 선상에서 출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표절'은 엄연히 '반칙'이라는 것이고, 그것을 엄격하게 재단하는 환경이거나 더 이상 꼼수가 통하지 않는 날이 오면 언젠가 자신에게 독이 되어 되돌아온다는 것이다.

 

표절. 그렇다. 반칙이다. 그래서 같이 음악을 하지 않고 다만 수용만하는 대중들도 이러한 행위에 분노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반칙이라는 도덕적 일탈이 감지되는 순간, 대중들은 그들보다 도덕적 우위에 서게 되는 것이다. 치사하다. 비겁하다. 그들에게 손가락질 하고 매도할 권리는 그렇게 대중들 스스로 부여한다.

 

하지만 우리 흥분하지 말고 이걸 냉정하게 바라보자. 우리는 과연 표절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 막말로 분명히 대충 유투브에서 들어보면 비슷하다는 것은 알겠는데, 이게 과연 표절인지 아닌지 어떻게 아느냔 말이다. 게다가 최근 샘플링, 리믹스, 레퍼런스 등등 모르고 살아도 될 머리 아픈 용어들을 들먹이며 표절에 대해 이야기 하는 언론기사나 글들을 접하면서 그게 분명히 나쁜 짓이라는 것도 알긴 알겠다. 그리고 인터넷 댓글을 통해 실컷 욕도 해줬다.

 

근데 도대체 음악에서 '표절'이 뭔가. 뭘 어떻게 해야 표절인 건가. 들어보고 대충 비슷하면 표절인가. 뭐 누가 세 마디 이상 똑같으면 표절이라던데, 그럼 그것의 위법을 심사하는 공인된 기관이 있기는 한가. 그리고 그것을 교묘하게 피해가는 곡들은 또 뭔가.

 

복잡하다. 솔직히 어렵다. 그리고 무엇보다 화가 나는 건, 아니 왜 우리는 때때로 자랑스러운 자국의 거대 엔터테인먼트 회사 대신에 외국의 거대 음반회사를 옹호해야하는 지경에까지 내몰렸는가 하는 점이다. 얼마 전에 오마이뉴스를 통해 썼듯이('빅뱅' 권지용의 표절 논란 어떻게 볼까), 대한민국의 기획사나 가수들의 말보다는 왜 외국 음반회사에 말에 더 귀를 귀울여야 하고 우리끼리는 서로 의심해야 하는 비참한 일이 벌어졌느냐 말이다.

 

표절의 과정은 다분히 '정치적'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 표절이라는 것의 행위는 단순하지만, 그것을 풀어나가는 행위는 상당히 '정치적'이기 때문이다. 오해가 있을까봐 반복해서 적는다. 표절이라는 행위자체는 정치적이지 아닐지언정, 그 표절이 대두되고 해결되는 과정은 다분히 정치적이라는 것이다.

 

사실, 누구나 표절을 할 수 있다. 덕분에 우리는 가끔 리포트 사이트에서 천원주고 다운받은 자료로 A+를 받기도 하고, 직장에서 보고형식의 프레젠테이션을 성공적으로 이끌기도 하며, 기업은 해외의 히트상품을 그대로 끌어와 큰 수익을 올리기도 하지 않는가. 따라서 이것은 엄연히 말하자면 정치적 행위와는 거리가 멀다. 이것은 외려 본능에 가까운 행위다. 더 간단하게 말하자면 자신의 이익을 위한 도둑질이다. 남의 것이 너무 좋아보여서, 혹은 창작의 고통을 감내하기 싫어서 벌이는 지저분한 본능이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는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문제는 언제나 수습하는 데 있다. 그저 '베껴서 죄송합니다'라고 말 한마디 하고 넘어갈 시대가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 수습해야 한다. 더구나 이것이 대중들에게 지탄받지 않고 넘어가기 위해서는 치밀해져야 한다. 그래서 여기서 어김없이 '정치'가 등장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정치적'이란 것은 무엇인가. 굳이 이런 거대한 담론을 얘기해서 힘들게 기운 빼지 말고 간단히 세 가지 개념만 가져오자. 첫째는 '권력', 둘째는 '합의', 셋째는 '돈'이다. 이 개념 덕분에 우리는 표절의심을 받는 몇몇 뮤지션들이 버젓이 수익을 가져가도 넋 놓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정치가 원래 그렇지 않은가.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이해관계 주체들이 서로 손해 볼 것 없다고 판단되면 그들 사이에 초법적 합의가 이루어지는 거. 

 

따라서 정작 표절을 했다고 의심받는 뮤지션은 여기서 논외로 빠진다. 물론 키는 그들이 들고 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주세요. 표절 하셨죠?'라고 묻는다고 '네'라고 말할 얼빠진 가수나 작곡자는 아마 없을 것이기 때문에 논외로 치자는 것이다. 그들에 대한 이야기는 서두에 언급했던 백 미터 달리기 선수 이야기로 충분하다. 따라서 흥분하며 그들을 욕 해봐야 달라질 건 사실 별로 없다.

 

그렇다면 누구를, 어떤 집단을 끌고와야 말이 되는가라고 물으신다면 간단하게 앞에 얘기한 세 가지 개념을 빌려 말하겠다. 뮤지션들의 저작권과 음원을 통해 '권력'을 가지고, 권력의 크기만큼 우선순위를 정해서 매개체인 '수익'으로 '합의' 보는 집단들. 그들이 바로 음악에서 표절을 결정하고 무마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주요 주체들이 아닐까. 

 

'표절'은 없다!

 

 

따라서 표절은 없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있을 수 없다. 과거 문화관광부에서 정한 음표의 연속성, 질적인 유사성, 코드의 진행과 같은 가이드라인이나 항간에 떠도는 3마디 원칙(Three Bar Rule)이나 6마디 원칙(Six Bar Rule)과 같은 규칙은 어디까지나 참고사항이지  표절을 규정짓게 하는 데에는 별로 쓸모가 없다. 표절인가 아닌가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력은 음원 저작권자와 당사자 간의 합의가 되었는가, 아닌가 하는 점이다. 합의가 되면 표절이 아닌 것이고, 합의가 안 돼서 재판까지 끌고 가면 표절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알다시피 한국대중음악시장은 상당히 좁다. 서로 알게 모르게 인맥과 이해관계로 연결된 것이 그들 네트워크다. 게다가 표절판정이 난다고 해도 외국의 사례처럼 엄청난 액수의 지급액이 부여되는 것도 아니라면 답은 간단하다. 앞서 말했듯이 좋은 게 좋은 거다. 괜히 골치 아프게 이전투구할 거 뭐 있는가. 이것이 바로 표절의 법적분쟁이라 하면, 창작권을 빼앗긴 힘없는 개인과 기획사 간의 공방이 대부분 주류를 이루고, 거대 저작권회사와 국내 대형 음반기획사가 법정분쟁으로 귀결되지 않는 이유다.

 

그런 의미에서 얼마 전 MBC <시사매거진 2580>을 통해 밝혀진 소니ATV뮤직퍼블리싱의 경고장의 의미는 꽤나 각별하다. 경고장 자체는 큰 의미를 가지지 않을지 모르나 이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는데 그 핵심이 있다. 즉, '합의' 대신 '공론'으로 이전되었다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저작권'의 딜레마

 

 

그렇다면 이렇게 표절이 무조건 적으로 공론화 되는 것이 마냥 좋은 것인가. 여기선 하나의 맹점이 존재한다. 표절이 처벌을 받는 본질적인 이유는 저작권 침해라는 법적인 영역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것이 저작권을 지금보다 훨씬 더 강화하자는 논리로 귀결될 소지가 많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잘 생각해보자. 그러한 저작권의 권력은 현재 대중의 것인가 아니면 거대 미디어 기업의 것인가.

 

명백한 딜레마다. 이 딜레마 때문에 해외 뮤지션들의 음악 저작권을 관리하는 해외 음반회사나 해외 직배사들은 손 안 대고 코 푸는 일도 벌어지는 것이고, 남 좋은 일 시키며 우리끼리 의심하고 비난하는 일도 벌어지는 것이다. 한국 대중들이 자발적으로 자신들의 권리를 보호해주겠다고 아우성이니 그들로선 손해 볼 게 뭐 있겠는가. 가끔 경고장이나 보내면서 팔짱 끼고 관망하다가 기획사 쪽에서 어떤 협상카드를 제시하는지 지켜보고 있으면 그만일지도 모를 일이다. 

 

또한 'EIDF 2009'(EBS International Documentary Festival)에서도 소개된 바 있는 브렛 게일러(Brett Gaylor) 감독의 <찢어라! 리믹스 선언 (RiP: A Remix Manifesto)>은 그러한 강화된 저작권은 대중을 통제하는 칼이 되어 우리에게 다시 돌아올 가능성도 다분함을 경고한다. UCC를 통해서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의 춤을 따라 췄던 아이가 저작권 침해로 법정에 설 수도 있고, 시퀀서 프로그램을 사용해서 유명인의 음성을 좀 사용했다고 해서 경고장을 받지 못하라는 법도 없다는 것이다.

 

즉, 표절도 따지고 보면 저작권 침해의 부분집합임을 감안하면, 대중들이 표절을 근절하기 위해 소리치는 저작권의 강화는 외려 역풍으로 다가올 소지도 다분하다는 거다. 그래서 한국이 그나마 이러한 저작권 문제가 해외보다 조용한 것은 우리 음악시장이 그들이 참견하기엔 너무 작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가능하다. 그리고 그 작은 시장에서 저작권, mp3, p2p, 기획사 주도의 가요시장, 기업들의 음원경쟁 등의 지엽적인 문제들이 난립하니 표절이라는 난제를 이해하는데 이 어찌 머리가 아프지 않을 텐가.

 

문제가 꼬여 버린 것이다. 이렇게 꼬여버린 것에는 사실 이런 문제들을 쉬쉬하고 뒤에서 처리했던 몇몇 회사들의 탓이 크다. 심지어 그들은 가수들의 정당한 저작권마저 박탈하던 전력을 가진 집단이 아니었나. 그렇게 그들이 썩어가는 충치를 방관하는 사이, 우리들은 표절과 저작권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 것이다. 어금니를 뽑아야 할지 송곳니를 뽑아야 할지 감도 안 잡힌다. 탓할 주체를 찾지 못하니 그저 노래 부르는 가수 몇몇을 붙잡아 이지메 하듯 몰아세우기만 할 뿐이다.  

 

뒤에서 정치하지 말고 앞으로 나오라!

 

그러므로 이제는 앞으로 나올 때다. 혹여나 해외의 앞서가는 트렌드의 음악을 참조하고 싶다면 공개적으로 얘기하라. 그리고 그 저작권 비용이 너무 만만치 않으면 대중에게 호소하라. 최소한 나는 그들 해외의 거대 미디어 권력업체들로부터 자국의 뮤지션을 보호할 여력이 충분하다. 좋은 음악 좀 가져다 쓰겠다는데, 이렇게나 말도 안 되는 비용을 지불하라니. 이것은 과도한 폭력이자 폭압이라 외쳐줄 수가 있단 말이다.

 

또한 대중들에게 음악을 향유했다면 좋든 싫든 반드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외쳐 줄 수도 있다. 좋은 음악의 순기능은 사실 대중에서 출발하니까.

 

그러니 제발 뒤에서 정치는 하지 말자. 이러한 악순환에서는 순기능을 담당해 줄 대중의 자본이 유입될 명분을 잃어버리지 않겠는가. 불신과 불신, 대립과 대립 안에서 무슨놈의 순기능인가.  

 

그렇다. 그들은 더 이상 우리를 괴롭히지 말고 이제는 정말 대중 앞에 '탁'까놓고 이야기할 때가 온 것임을 자각할 때다. 여기서 시간을 더 끌어봐야 결코 좋을 게 없다. 게다가 앞에서 거짓말 하고 뒤에서 수습하는 모습은 국내 정치인들로도 이미 충분하지 않았는가. 그러니 음악 들을 때만큼은 맘 편히 듣게끔, 이제는 시작하자. 서로 거짓말 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태그:#대중음악, #표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