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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시사기획 <쌈> 한 장면. 가해자에 대한 온당한 처벌을 바라는 나영이가 그린 그림.
 KBS 시사기획 <쌈> 한 장면. 가해자에 대한 온당한 처벌을 바라는 나영이가 그린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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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가) 일반 시민들의 공분만 불붙이는 경향이 있다. 전자 팔찌, 화학적 거세 등 외국제도가 안전한 해결책인양 보도하고 있다. 감정적으로 몰입할 것이 아니라 정책의 부작용은 없는지 심층 보도해야 한다."

"범인에 대한 흉악함만을 강조하는 등 감정적 표현이 앞서면서 구조적이고 제도적인 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위의 주장은 최근 전 국민적 분노를 불러일으킨 '나영이(가명) 사건'에 대한 언론보도 비판으로 들리지만, 그렇지 않다. 첫 번째 주장은 2006년 3월 이미경 당시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의 언론 인터뷰 발언이고, 두 번째는 2007년 5월 KBS <미디어 포커스> 방송 내용이다.

당시는 각각 서울 용산과 제주에서 초등학생 성추행·살해사건이 벌어져 아동 성범죄에 대한 전 국민적 분노가 극에 달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당시의 감정적 언론보도는 아동 성범죄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논의하는 데 제 역할을 못했다는 지적이 많다.

그 뒤에도 언론은 2007년 12월 '혜진·예슬이 사건'에 이어 '나영이 사건'에서도 국민의 분노를 확산시키는 역할을 되풀이하고 있다. 심지어 일부 언론은 '나영이 사건'을 통해 이명박 대통령을 띄우거나 인권단체를 비판하기도 했다. 이제는 언론이 아동 성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건강한 논의의 틀을 마련하는 데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공분·파문 확산시키는 노릇하는 언론

<매일경제>는 '나영이 사건'의 가해자 조아무개(57)씨의 신상정보와 관련해, 허위 정보를 사실 확인 없이 인용했다. 이후 <매경>은 기사를 바로잡고 독자에게 사과했다.
 <매일경제>는 '나영이 사건'의 가해자 조아무개(57)씨의 신상정보와 관련해, 허위 정보를 사실 확인 없이 인용했다. 이후 <매경>은 기사를 바로잡고 독자에게 사과했다.
ⓒ <매일경제> 홈페이지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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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는 '나영이 사건'의 가해자 조아무개(57)씨의 신상정보와 관련해, 허위 소문을 사실 확인 없이 인용해 파문을 확산시키는 역할을 했다.

9월 30일 오후 4시 43분께 이 신문의 인터넷 판에 게재된 '나영이 사건, 징역 12년 너무 낮다, 네티즌 울분'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매경>은 조씨의 직업을 목사라고 적시했다. 당시 범행 장소가 교회 화장실인 탓에 일부 누리꾼들이 가해자의 직업을 목사라고 추정했고, 이 같은 주장이 사실로 둔갑해 인터넷에서 삽시간에 퍼진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매경> 보도가 나오자, 인터넷에서는 기독교와 목사에 대한 분노가 들끓었다. 하지만 조씨가 목사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매경>은 "사실 확인 과정에 착오가 있었다, 독자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 깊이 사과한다"며 기사를 바로 잡았다. 하지만 기독교에 대한 누리꾼들의 분노는 아직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또한 많은 언론은 자극적인 제목과 일부 누리꾼의 선정적인 주장을 통해 누리꾼들의 공분에 불을 붙였다. <중앙일보>는 1일치 신문 1면 머리기사 제목을 '짐승을 다스리지 못한 나라'라고 뽑았다. <중앙> 인터넷 판에도 실린 이 기사의 댓글란에는 "총살을 시켜야 한다" 등 감정적인 주장이 쏟아졌다.

언론은 조씨가 12년형을 받은 것은 사법부의 안이한 판단 때문이라고 지적하면서 아동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환기를 주장하고 있지만, 정작 지난해 12월 이 사건이 발생한 후 1~2심 재판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진 언론은 없었다.

대부분 언론은 지난달 22일 '나영이 사건'을 다룬 KBS 1TV '시사기획 쌈' 방송 후 누리꾼들의 분노가 거세지자 이에 발맞춰 관련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언론이 누리꾼 반응을 실어 나르던 때는 이미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온 상황이었다.

아동 성범죄 보도에서 'MB어천가' 부르는 언론

<조선일보>는 '나영이 사건' 관련, 본질과 다른 내용을 보도하기도 했다.
 <조선일보>는 '나영이 사건' 관련, 본질과 다른 내용을 보도하기도 했다.
ⓒ <조선일보> 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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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영이 사건'을 보도하면서 본질과 어긋나는 내용을 보도하는 경우도 있었다.

<조선일보> 2일치 신문 '기자수첩' 코너에는 '나영이엔 침묵하는 인권단체들'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조선>은 2005년 4월 상습 성폭력범에게 전자 팔찌를 채우자는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의 제안을 거절한 인권단체들이 나영이 사건에는 침묵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신문은 또한 "(인권단체는) 전자 팔찌 정도에 성범죄자의 인권보호를 걱정했던 사람들"이라며 "'징역 12년은 너무 약하다'고 분노하며 피해보상을 촉구하는 청원에 찬성 댓글을 단 국민 수십만 명을 '파시즘 같은 여론재판'이라고 앞장서 비판해야 앞뒤가 맞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일부 누리꾼들은 이 기사 댓글란에 "<조선>이 '나영이 사건'을 이용해 인권단체를 비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윤영호씨는 "전자 팔찌 찬성만이 나영이의 인권을 돌보는 것이고 전자 팔찌 반대자는 모두 나영이의 인권 따위에는 관심이 없는 정략적인 사람이라고 몰아세운다면, 그 단순 논리 또한 당파적이다"고 밝혔다.

신상희씨는 "인권단체들은 단 한 번도 성폭행범을 옹호하거나 '나영이 사건' 등과 같은 피해사례에 침묵한 적이 없다"며 "인권단체는 전자 팔찌 도입 효과에 의문을 나타내고 도입이 일종의 정치적 쇼와 같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라고 전했다.

<세계일보>는 "이명박 대통령이 '나영이 사건'과 관련해 내린 지시사항은 국민의 요구에 정확히 부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고 보도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국무회의에서 "평생 그런 사람(조씨)은 격리시키는 것이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참담하다"며 "국무위원들도 이런 일에 부모의 마음으로 한번쯤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말한 바 있다.

<세계일보>는 1일 오후 인터넷 판에 실린 이 기사에서 "대통령이 딸 가진 부모의 마음을 헤아린 건 올바른 상황 판단"이라며 "지난해 3월 경기도 일산 초등학생 유괴 미수사건으로 민심이 흉흉할 때 일선 경찰서를 몸소 방문한 이 대통령의 모습은 믿음직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한 블로거는 "'불난 민심'에 부채질하는 것은 대통령이 할 일은 아니다"며 "여기에 언론이 힘을 합쳐 기름을 뿌리며 더욱 (민심을) 흥분시키고 있는 와중에 (세계일보는) 'MB어천가'에 여념이 없다"고 비꼬았다.


태그:#나영이 사건, #나영이 사건 언론보도, #언론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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