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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추적추적 비가 내리더니 이른 아침부터 차차 개기 시작했다. 비 소리 들으며 만약에 내일도 비가 오면 계획대로 지리산에 갈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도 해보았지만 계획대로 밀어붙이기로 했다. 새벽에 일어나 챙길 때까지만 해도 비가 조근 조근 오더니 밖으로 나서니 비가 뚝 그쳤다. 남양산 IC를 지나자 햇살이 퍼지기 시작했다.
 
12시 10분에 단성 IC를 통과했다. 단성IC에서 400m쯤 가서 우회전해서 지리산국립공원 표시가 보이고 국도 20호선을 타고 중산리 방향으로 향했다. 3.8km쯤 가다보면 남사예담촌을 지나고 거기서 직진해 25km가면 중산리가 나온다. 오랜만에 이 길을 간다.
 
지리산의 가을
 

지리산은 그동안 몇 번 만나고 돌아왔다. 하지만 지리산의 가을표정은 아직까지 만나지 못해 늘 아쉬웠다. 감사하게도 지리산의 가을을 만나러 간다. 어떤 표정으로 우릴 반길까. 돌아서면 가고 싶고 그리움이 차오르는 지리산, 가을이 내리는 너를 만나러 간다.
 
지리산(1915m)은 전라북도 남원시, 전라남도 구레군, 경상남도 산청군, 하동군, 함양군에 걸쳐 있는 산으로 높이 1915m의 산이다. 신라 5악의 남악으로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으로 달라진다 하여 지리산(地理山)이라 부른다지만 나는 그저 지리산이 보고 싶고 또 보고 싶어 그곳으로 간다.
 
제법 많은 산을 만났지만 지리산은 그 어떤 산보다도 아직까지 내 마음을 사로잡기에 그리움이 차오르면 지리산으로 간다. 참 멀고도 멀다. 이토록 깊고 깊은 골짜기 깊숙한 곳에 지리산이 있다. 산과 들 모두 가을로 무르익어가고 있다. 중산리 가는 길엔 감나무들이 지천이다. 노랗게 익어가는 감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어 가는 길이 환하다.
 
길가에도 감나무, 밭에도 감나무 온통 감나무들이 화등잔만한 감을 달고 그 무게를 못 이겨 축 처져 있는 것을 지렛대로 받쳐놓았다. 가을이 익어가는 풍경이다. 중산리 가는 길, 골짜기마다 등불처럼 감이 익어가고 가을은 더 농익어 가고 있다. 깊은 더 깊은 골짜기로 우리를 안내했다. 중산리국립공원 매표소에 도착하니 낮 12시 45분이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난 뒤 산행 길에 오른다.
 
중산리 등산길은 참 오랜만이다. 계곡 물소리 크고 환한 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야영장에서 점심을 챙겨먹고 나서 등산로 들머리에 들어선다. 어느새 낮 1시 50분이다. 많이 지체한 모양이다. 서둘러야겠다. 비가 많이 왔던 것일까. 불어나 계곡 물소리 한번 우렁차다.
 
물소리는 골짜기마다 파고들어 숲 속 가득 물소리로 채운다. 2시 20분에 칼바위를 지난다. 여기서 등산객들이 몇 팀 보여서 등산길이 너무 적적하지 않아 괜찮겠다. 중산리길 오랜만에 오르니 새삼스럽게 험하고 경사 높다. 등산길에는 익어 떨어진 도토리가 지천으로 깔렸다. 출렁다리 건너자 갈림길이다.
 
여기서는 천왕봉, 로터리대피소, 장터목대피소, 중산리로 갈라지는 갈림길이다. 장터목대피소까지는 4.0km, 천왕봉은 4.1km이다. 좀 늦게 출발한 우린 천왕봉으로 가는 것은 내일로 미루고 오늘은 일단 오늘 우리가 하룻밤을 묵을 장터목대피소로 바로 가기로 한다.
 
천왕봉에 갔다가 다시 장터목대피소로 가려면 꽤 늦은 시각이 되어야 할 것 같아서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함께 오르던 사람들과 갈림길에서 흩어지고 우리 두 사람만 이곳으로 향한다. 좀 걸어 가다보니 마주 오는 사람도 있고 뜸하긴 하지만 등산객도 보인다.
 
계곡길 따라 걷다, 장터목 가는 길(작은 물이 흘러 큰 강을 이루고)
 

장터목대피소 방향으로 가는 길은 바로 옆에 계곡을 끼고 걷는 길이라 물소리 벗 삼아 발걸음이 상쾌하다. 계곡 물소리 한 번 크고 우렁차다. 두 번째 출렁다리 건너니 2시 50분이다. 빛과 그늘이 어우러진 계곡을 따라 걷는 길이다.
 
높고 높은 산꼭대기 그 어디선가 발원되어 협곡을 타고 내려 점점 큰물을 이루고 거대한 바위벽을 타고 떨어지거나 쏟아지는 폭포소리는 마치 대자연의 장엄한 오케스트라의 향연이다. 그 무엇도 흉내 낼 수 없는 웅장하고도 섬세하고 멋진 천상의 음악이다.
 
깊은 계곡에서 연주되는 폭포의 향연, 이 계곡물의 오케스트라 대향연은 끝없이 이어지고 계곡 골짜기에 울려 퍼지고 사산에 흩어진다. 계곡을 끼고 오르막 내리막길을 반복해 걷다가 폭포 쏟아져 만든 물웅덩이 앞에 앉아 휴식한다.
 
깊은 골짜기엔 온통 떨어지는 폭포와 물소리로 웅장하다. 단풍이 곱게 물들기 시작한 지리산 계곡, 상쾌한 바람과 물소리 환한 길 따라 걸음 내딛는 길마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물소리만 환한 고요한 지리산으로 더 깊이깊이 발걸음 내딛는다.
 
밤을 새워 내리던 비는 오늘처럼 청명한 날을 잉태하기 위한 것이었나 보다. 깊고 깊은 산, 높고 높은 산만이 이토록 깊고 맑은 물을 낼 수 있는 것이리라. 과연 지리산이다. 높은 절벽을 타고 내리는 물이 폭포 되어 떨어져 내려 긴 강물을 이루고 멀리 더 멀리 강에서 바다로 또 이어지리라.
 
깊은 산길 계곡 길 따라 걷다가 너덜지대에 이른다. 협곡을 타고 흘러오다 직벽을 만나 폭포 되어 흐르던 물이 여기 너덜지대에선 크고 작은 바위 밑으로 침잠하고 다시 아래에서 모여 계곡으로 흘러간다. 다시 물소리 귀에 환하고 출렁다리 위를 걷는다.
 
홈바위교에 도착하자 오후 4시다. 올라갈수록 우리가 온 길 돌아보니 아래쪽엔 맑음이고 목적지가 가늠되는 높은 산 쪽은 완전 흐려져 있다. 유암폭포(4:15)에서 휴식한다. 거대한 수직 벽을 타고 떨어지는 폭포의 힘찬 물소리 들으며 앉았다.
 
점점 경사 높아지는 길로 다시 오른다. 오르다가 쉬고 또 오르는 길은 끝인가 싶으면 또 길이 이어지는 인내력 코스다. 물소리는 점점 작아지고 힘찬 물소리는 이제 점점 졸졸 시냇물 흐르는 듯 속살거리는 물소리 되어 고요한 숲에 잔잔하게 퍼진다.
 
이 작은 물이 흘러 큰물을 이루고 폭포를 이루어 떨어져 내리나보다. 저녁이 내리면서 숲은 흐리고 어두워진다. 병기막터교(4:40)를 지난다. 이런 다리도 있었던가. 다리 건너 바윗길, 높은 경사로를 힘겹게 오른다. 걸음걸이가 현저히 느려지고 한. 발 .한 .발 내딛는다.
 
이상하다 길 표정이 전과 다른 것 같다. 전에 다니던 길은 저만치 협곡 건너편에 있었는데 저쪽 길을 막아놓고 이 길을 새로 냈나보다. 없었던 다리 하나 더 생긴 낯선 길을 따라 올라간다. 이 다리 위에서 중산리 칼바위 앞에서 만났던 청년을 다시 만났다.
 
정말 빠르다. 청년은 그가 말했듯이 중산리에서 곧장 천왕봉에 올랐다가 장터목대피소에서 계곡을 따라 내려올 것이라고 했었는데, 정말 빠르기도 하다. 거의 날다시피 해서 날렵하게 우리를 앞질러 갔던 청년은 벌써 천왕봉에 올랐다가 장터목대피소까지 도착했고 이 계곡 길로 하산하는 것이었다.
 
반갑게 다시 만난 기쁨으로 서로 인사하고 헤어졌다. 청년은 발이 땅에 닿지 않는 것 같은 빠른 걸음으로 곧장 내리막길로 향했다. 어쩐지 맑은 심성을 지녔을 것 같은 청년의 집이 진주라고 했던가. 멋진 청년이다. 끙끙대며 걷는 오르막길 힘들기도 하다. 이제 도착할 때쯤 된 것 같은데 왜 길은 이리도 먼가.
 
"왜 이렇게 멀어?!" 절로 힘들다는 말이 나오는 길에서 독백처럼 터뜨리는 말이다. 거의 다 왔나보다 싶으면 계속되는 경사 높은 오르막길... 과연 지리산이로고! 남편도 많이 힘든지 "신불산 영축산은 아무것도 아니네!" 한다.
 
거기도 힘들다며 올랐건만 끝도 없을 듯 이어지는 높은 경사 길에서 절로 힘들다, 멀다 소리 나온다. 한.발.한.발 내딛는다. 우리끼리 주고받는 얘기지만 우리나라 최고의 산들을 거의 올랐고 지리산도 몇 번 왔지만 우린 매번 처음처럼 힘들고 처음처럼 산이 새롭다.
 
장터목 대피소에서 하룻밤
 

5시 40분, 장터목대피소에 도착한다. 힘들게 올라온 길이다. 흐린 하늘, 먹구름이 흩어지고 맑게 갠다. 장터목대피소에 도착한 우리는 먼저 취사장으로 들어가다. 취사장 문을 여는 수간 취사장 안 가득 찬 사람들을 보고 놀랐다. 추석연휴에 이렇게 많은 산 꾼들이 왔으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취사장은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저녁밥을 먹는 사람들의 훈기로 가득 차 있다. 꽉 찬 공간을 비집고 들어서서 자리를 잡고 우리도 맛있는 저녁을 지어 먹었다. 힘들게 올라온 끝에 먹는 밥은 꿀보다도 더 달다. 그 맛은 여기서 밥을 먹어본 자만이 알 수 있는 맛이다.
 
고기 굽는 냄새, 라면 냄새, 김치냄새...사람들이 제각기 준비 해온 음식냄새와 밥이 끓는 냄새, 냄비 사이로 피어오르는 수증기 등이 사람의 열기와 활기에 섞여 취사장 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 장터목대피소에서 바라보는 반야봉 저녁노을에 반해 여기저기서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일몰을 보기 위해 밖으로 나갔지만 차가운 바람에 오래 서 있을 수가 없어 얼른 대피소 안으로 들어왔다. 밤이 내리면서 장터목대피소 주변은 안개가 몰려와 뒤덮고 높은 바람에 이리저리 몰려다닌다. 많은 사람들이 각자 다른 사연과 이야기를 가지고 이곳에 모였다. 여름엔 저녁 9시에 소등하는데 가을이라 그런가.
 
저녁 8시에 소등했다. 나는 1층 천왕봉실, 남편은 복도 끝에 있는 제석봉실에서 떨어져 자야했다. 소등하고 누웠으나 잠이 오지 않아 밤새 뒤척여야 했다. 집채만 한 바람이 지붕 위에서 밤새도록 윙윙거리고 많이 피곤해 머리는 아픈데 아무리 잠을 자려고 해 보아도 잠이 오지 않아 밤새도록 뒤척이다가 새벽 3시쯤에야 겨우 잠이 설핏 들었다.
 
옆에 사람은 눕자마자 코까지 골며 깊은 잠에 빠져 있다. 부럽다 부러워! 바람이 우는 소리 귓가에 윙윙~거리고 나는 누운 채로 바람소리에 귀를 열고 있다. 왼쪽에 누운 옆에 사람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나보다. 내가 하도 잠이 오지 않아 일어나 앉으니 누웠다가 앉으며 잠이 오지 않는다고 했다.
 
전주에서 왔다는 여자는 남편과 함께 왔단다. 지리산은 처음이란다. 남편이 꼬드겨서 왔는데 힘들어 죽는 줄 알았다며 아픈 다리를 주물렀다. 화장실 가려고 밖으로 나와 보니 안개가 자욱하다. 중산리 마을 불빛이 저 아래에서 가물거렸다. 밤새도록 지붕위에서 불어대는 바람 소리를 듣다 설핏 잠이 들었나보다.
 
새벽 4시에 일어났다. 지붕 위에서 울던 바람은 이제 조금 낮은 곳에서 분다. 조금 누그러진 표정이다. 천왕봉 일출을 보기 위해 서둘러 준비한다. 천왕봉 일출 보러가는 것도 오랜만이다. 지리산에서 일출을 두어 번 본 후 다음 산행을 할 땐 몇 번 생략도 했기에 모처럼 새벽잠을 깨어서 챙기다보니 감회가 새롭다.
 
가을에 만난 천왕봉 일출
 

천왕봉실에서 나와 취사장에서 가볍게 아침을 먹고 따끈한 커피까지 한 모금 마신 뒤 천왕봉으로 향한다. 새벽 5시 15분이다. 깜깜한 산길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랜턴 불빛 하나 의지 삼아 어둠을 헤치며 걸음을 옮긴다. 산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골짜기에는 사람 사는 불빛이 마치 은하수를 뿌려놓은 듯 아련하다.
 
깜깜한 새벽길을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지 않기 위해 조심조심 걷는 길에 멀리 가까이 천왕봉 가는 사람들 랜턴 불빛이 깜박거린다. 어둠은 천천히 두꺼운 장막을 걷어내고 점점 희미한 여명 속으로 간다. 어느새 동녘 하늘에서 붉은 기운이 솟아 하늘이 물들기 시작한다.
 
혹시라도 늦을세라 마음이 바빠 걸음이 빨라진다. 6시 10분 천왕봉 도착, 많은 사람들이 천왕봉에 올라 일제히 해를 향해 시선을 던지고 있다. 붉게 물드는 동녘 하늘은 시시각각 표정이 달라진다. 점점 모습을 드러내는 붉은 해를 바라보며 자못 진지하고 엄숙한 표정으로 숨죽이며 해바라기하고 있는 사람들...
 
오늘은 날이 맑다. 전에 보았던 일출은 산 산을 뒤덮은 운무의 바다, 구름위의 산책이었지만 이번엔 깨끗한 산 산을 드러내고 먼 하늘, 먼 산까지 시선이 닿고 툭 트여 있어 또 다른 감동으로 사로잡는다. 이토록 멋졌던가. 산산이 겹쳐질 듯 흐트러지지 않고 조화를 이루며 이웃해 이어져 있고 조각한 듯 섬세한 산 능선과 산줄기들의 그 선명한 표정은 그 어떤 조각가와 화가가 그려도 이렇게 만들지는 못하리라.
 
하나님의 오묘한 솜씨, 신묘막측함이여! 그저 경외와 감탄으로 내 작은 존재를 느끼며 마주 바라 볼 뿐이다. 남한 최대높이의 한라산도, 영남알프스도 줄 수 없는 것을 지리산은 품고 있고 때때로 이렇게 보여준다. 할 말을 잃은 사람들은 한동안 이 자리에 돌기둥 소금기둥이라도 된 듯 꿈쩍하지 않고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
 
지리산 가을 산행은 처음이다. 가을이 무르익어가는 지리산...이 아침의 일출은 그 어떤 때보다 또 다르게 와 닿는다. 6시 20분, 해가 솟았다. 몇 번 마주보았던 지리산의 일출 광경이라 큰 기대 없이 올랐건만 천왕봉은 이토록 새롭게 깊은 감동과 압도하는 대자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점점 해가 높아지고 사방으로 햇살이 퍼지면서 맑고 깨끗한 풍경이 드러난다. 운무의 바다가 펼쳐졌던 일출광경도 좋았지만 가을 아침에 맑게 갠 천왕봉 일출은 또 다른 멋이 있다. 인간이 만들어낸 언어란 이럴 땐 부질없이 느껴진다. 그 어떤 미사여구도 이 광경을 표현할 말이 부족하고 한 번 보는 것만 못하니 말이다.
 
새벽녘의 천왕봉은 몹시 춥다. 갖고 온 옷이란 옷은 다 껴입었어도 한기가 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왕봉 정상에서 바라보는 이른 아침의 풍경에 압도되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한동안 양지바른 바위틈에 앉아 망중한! 천왕봉 아래 펼쳐진 산 산을 바라보고 있다가 아쉬움을 안고 일어섰다. 오전 6시 55분이다.
 
이제 천왕봉에서 곧바로 중산리 내려가는 길로 해서 하산한다. 내려가면서 쳐다보고 또 쳐다보며 걷는다. 가파른 비탈길이다. 지난밤엔 그토록 바람 높이 불어대더니 이토록 맑고 고요한 지리산의 면면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나. 먼 먼 산까지 조망이 되는 풍경들을 차마 두고 가기 아쉬워 자꾸만 발길이 머문다.
 
천왕샘(7: 20)에 도착한다. 천왕샘은 남강의 발원지라 했던가. 바위 틈 사이로 들릴 듯 말 듯 귀 기울여야 졸졸 흐르는 물소리 들린다. 천왕샘 가까이 가 보면 바위틈 사이에서 작은 물줄기가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다. 이 샘이 흘러서 거대한 강을 이루다니, 모든 것은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위대한 일도 작은,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이루어지는 것이다. 지리산 등산길도 한 걸음씩 옮기는 발걸음 속에서 천왕봉 정상에 도착하게 하듯이, 이곳에서 솟구친 물은 덕천강을 따라 흘러 남덕유산 참샘을 발원으로 하는 경호강과 남강댐에서 합류하여 남강댐을 이루어 낙동강으로 흐른다 하니 이 또한 신묘막측하지 아니한가.
 
사소한 것 같으나 소중한 일깨움이다. 하산 하는 길에는 마음을 붙잡는 풍경에 발걸음이 자주 선다. 아침 일찍 길을 나서니 마음 여유 넉넉해서 좋다. 개선문(7:55)이 앞에 있다. 추석날 아침 일직 등산길에 오른 많은 사람들과 스쳐지나간다. 로터리대피소(8:50)에서 잠시 쉬며 앉았다가 다시 내려간다. 어느새 오전 9시 55분이다.
 
올라가는 것보다 내려오는 것이 더 힘들다
 

지리산은 언제 와도 산 꾼들이 많다는 것을 거듭 실감한다. 망 바위(1,068m)에서 잠시 쉬어 가던 길을 다시 간다. 가장 빠른 등산길이 중산리길이지만 하산 길은 등산길보다 더 힘들고 난해하다. 속력을 낼 수도 없고, 더듬더듬 힘들게 겨우 한걸음씩 내딛어야 한다.
 
바위투성이 길을 뛰어 갈수도 없고 속도를 낼 수도 없고, 끝까지 조심조심 걸어야 하기에 발은 더 피곤하고 무릎에 무리가 따른다. 올라갈 땐 높은 경사로 인해 힘들지만 내려오는 길은 한발 한발이 조심스럽고 무릎에 힘이 더 가중되어 힘들다.
 
속력도 나지 않고 끝까지 급경사 바윗길을 한발씩 내딛는 길이다. 정상에 오르는 것도 힘들지만 최고의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은 더 조심스럽고 힘들다는 것을 실감한다. 무엇이든 내려오기를 잘 해야 하는 법이다.
 
드디어 계곡물소리 들려온다. 갈림길이 지척인가보다. 삼거리(11:25)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오늘은 외국인들을 많이 만난다. 여러 명의 젊은 외국인들이 삼거리에서 쉬었다가 등산길을 계속 가는데 모두들 올라간 뒤에 청년 한 명이 식물도감을 펼쳐들고 서 있다.
 
바로 앞에 있는 나뭇잎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자신이 들고 있는 책을 펴서 찾는 시늉을 했다. 나무이름이 붙은 나무를 찾는 줄 알고 나는 그를 불러 손짓으로 표시가 있다고 하자, 고개를 내저으며 바로 앞에 있는 나무라고 손짓했다. 그리고는 결국 식물도감에서 찾아낸 나무를 내게 보여주었다. 호기심으로 반짝이는 청년의 눈빛과 그 맑음이 인상적이었다.
 
참 보기 좋은 모습이다. 문득 나도 식물도감을 지니고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11시 35분, 칼바위 도착한다. 거의 다 내려왔나 보다. 계곡 물소리 숲 속 가득하다. 야영장(12:20)앞에 흐르는 냇물에 발을 담그고 피로를 풀고 주차장으로 향한다. 막상 밑에 내려오니 위에 공기와 다르다. 높은 산에는 바람 높고 쌀쌀한데 이곳은 비교적 따사롭다.
 
지리산엔 봄, 여름, 겨울에 한 번 이상은 왔건만 가을의 지리산은 처음으로 왔다. 단풍 짙게 물들어가는 지리산의 가을...깊은 계곡의 물소리와 산 산을 물들이는 단풍과 반야봉의 일몰과 쨍하고 맑은 날의 천왕봉의 일출...그리고 자연과 사람을 통해 지리산에서 얻은 소중한 지혜들...멋진 가을 산행이었다. 돌아서면 그리운 지리산...너를 만나러 가기 전까지 지난 추억을 가슴에 안고 그리움으로 또 채워 가리라. 또 너를 만나기까지.
 

 

산행수첩
 
1. 일시: 2009년 10월 2일(금)~3일(토):1박 2일
2. 산행기점: 중산리
3. 산행시간: 12시간
4. 진행: ① 2009년 10월 2일(금):4시간 40분(새벽에 비, 오전부터 맑음)
중산리(1:00)-중산리 야영장(1:10)-점심식사 후 출발(1:50)-칼바위(2:20)-장터목대피소, 로터리대피소 갈림길(2:25-유암폭포(4:15)-병기막터교(4:40)-장터목대피소(5:40)
② 2009년 10월 3일(토) 맑음:7시간 20분
장터목대피소(5:15)-천왕봉(6:10)-일출(6:20)-천왕봉 하산(6:55)-개선문(7:55)-로타리대피소(8:50)-식사후출발(9:55)-망바위(10:30)-갈림길(로터리,장터목대피소,11:25)-칼바위(11:35)-중산리야영장(12:20)-탁족(12:25)-중산리매표소(12:35)
 

태그:#지리산, #가을, #계곡, #일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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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전5: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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