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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조 원→5조 원→7.7조 원→8조 원'

 

이것은 한국수자원공사(수공)가 떠안은 4대강 살리기 사업비의 증가 추이다.

 

수공 참여방안과 관련, 애초 기획재정부와 국토해양부는 수공이 선투자한 뒤 국가사업비를 보전받는 방향으로 논의했다. 하지만 정부의 재정부담을 줄이기 위해 결국 수공의 자체사업으로 결론내렸다.

 

한나라당에서 작성했다는 <4대강 살리기 질의·응답자료> 문건에도 "단기간에 집중되는 재정부담을 완화할 수 있도록 수공의 사업참여 등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적시돼 있다. 이후 수공이 부담해야 할 사업비 규모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정부가 '준시장형 공기업' 수공에 8조 원이라는 막대한 사업비를 떠맡긴 것은 분명 '편법'이었다. 4대강 살리기 사업으로 민생·복지예산이 축소된다는 비판여론을 피하기 위해 공기업에 4대강 살리기 사업 SOC예산(15.4조 원)의 절반을 떠넘긴 것이다.

 

수공도, 국토해양부도 '4대강 사업 참여'가 위법이란 걸 알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8조 원을 떠넘긴 편법에 있지 않다. 수공이 4대강 살리기 사업에 '사업자'로 참여하는 것 자체가 위법이었다. 특히 수공은 자체 법률검토를 통해 이를 잘 알고 있었고, 국토해양부에도 보고했지만 묵살당했다.

 

수공의 4대강 살리기 사업 참여가 현행법을 위반했다는 주장은 국정감사가 실시되기 전인 9월 24일 나왔다. 김성순 의원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4대강 하천사업을 수공이 직접 수행하는 것은 수자원공사법과 하천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한 것.

 

김 의원이 이렇게 주장할 수 있었던 뒤에는 '수공의 내부문건'이 있었다. 당시 김 의원은 수공에서 작성한 '하천사업의 자체사업 가능 여부'와 '자체사업에 대한 변호사 자문의견' 등 두 개의 문건을 입수한 터라 자신 있게 "자체사업 추진은 현행법 위반"이라는 주장을 내놓을 수 있었다.

 

김 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수자원공사법과 하천법을 위반했다는 주장은 수공 소속 자문변호사 의견을 토대로 한 것이었다"고 귀띔했다.

 

수공은 '하천사업의 자체사업 가능 여부' 문건에서 "4대강 사업은 하천의 보전관리를 위한 종합적인 하천관리사업으로서 하천관리청의 책무에 해당하는 사업"이라며 "수자원시설의 설치·관리를 통한 원활한 용수 공급을 목적으로 설립된 수공의 사업범위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수공은 "4대강 사업이 특정 수혜자에게 비용을 부담시킬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지 않은 공공복리사업임에 따라 사업수입을 전제로 설립된 공기업인 수공의 사업으로 부적절하다"며 "4대강 사업을 수공의 자체사업이 아니라 하천법 제28조에 따라 하천관리청의 대행사업으로 시행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결론내렸다.

 

수공의 "자체사업 추진 곤란" 문건, 정부법무공단 등으로부터 법률 검토

 

수공의 "자체사업 추진 곤란" 견해는 매우 논리적이고 타당성이 높았다. 수공이 이 문건을 작성하기 전 정부법무공단과 법무법인 우현-지산, 한길, 자문변호사(2명) 등에게 철저한 법률검토를 받았기 때문이다.

 

'자체사업에 대한 변호사 자문의견' 문건은 앞서 언급한 네 곳에서 보내온 법률검토 의견을 요약한 것이다. 네 곳 모두 "4대강 살리기 사업이 수공의 사업범위에 포함된다고 보기 어렵다"는 동일한 의견을 내놓았다.

 

한 변호사는 "네 곳에서 같은 의견을 냈다면 그만큼 법률검토의 타당성은 높다고 봐야 한다"며 "이는 수공의 4대강 사업 참여가 무리하게 추진됐음을 뜻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국가로펌'에 해당하는 정부법무공단의 의견을 눈여겨볼 만하다. 정부법무공단은 "4대강 사업은 수공의 독자적인 사업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하천공사를 자체사업으로 시행할 수 있다고 해석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지난해 2월 출범한 정부법무공단은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 등 모두 107개 공공기관과 법률고문계약을 체결한 곳이다. 대통령실의 법률자문과 소송도 이곳에서 맡고 있다. 그런 만큼 이곳의 법률검토 의견은 공신력을 인정받고 있다. 게다가 이명박 정부 첫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낸 정동기 전 수석이 공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수공 의견은 묵살되고, 투자비 회수방안도 없이 사업시행 의결하고...

 

이렇게 타당성이 높고 공신력이 있는 법률검토 의견은 지난 8월 27일 국토해양부로 전달됐다. 하지만 국토해양부는 수공의 의견을 묵살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국토해양부가 먼저 법률검토를 지시해 놓고 자신들에게 불리한 의견이 제출되자 묵살했다는 점이다.

 

국토해양부는 '4대강 살리기 추진본부'의 요청에 따라 지난 8월 26일자 공문에서 "수공이 4대강 살리기 사업의 일부를 수공의 자체사업으로 시행하는 방안과 관련 관련법령을 검토해 의견을 제출하라"고 지시했다.

 

이러한 지시에 따라 수공은 앞서 언급한 네 곳으로부터 받은 법률검토 의견을 바탕으로 '하천사업의 자체사업 가능여부'라는 문건을 작성해 다음날(8월 27일) 국토해양부에 제출했다. '자체사업 추진 곤란'이라는 결론을 담은 문건이었다.

 

하지만 수공의 법률검토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정부는 ▲수변지역 개발권 부여 ▲금융비용 전액 부담 등을 수공에 제안하며 수공의 사업참여를 밀어붙였다. 수공도 지난 9월 28일 이사회를 열어 '4대강 살리기 사업 시행계획'을 의결했다. 

 

또 다른 문제는 수공이 수익을 내야 하는 '준시장형 공기업'임에도 8조 원에 이르는 막대한 투자비를 회수할 수 있는 방안이 없다는 점이다. 지난 9월 28일 이사회에 참석한 다수의 이사들이 '투자비 회수방안이 없다'는 점에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결국 정부는 권력의 향배에 민감한 공기업을 앞세워 이명박 대통령에겐 '신앙'같은 국책사업인 4대강 살리기 사업을 밀어붙인 것이다. 이와 함께 수공도 수자원공사법과 하천법에 어긋난다는 사실을 알고도 4대강 살리기 사업에 참여함으로써 '업무상 배임행위'라는 지적을 피해갈 수 없게 됐다.

 

수공의 한 관계자조차 "4대강사업에 투자하게 된 수공의 8조 원은 처음부터 아무런 사업계획 없이 정부의 정무적인 판단에 의해 책정된 것"이라고 실토할 정도다.

 

물론 '정무적 판단의 주체'는 국토해양부나 기획재정부가 아닌 청와대와 이명박 대통령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위법하다'는 수공의 사업 참여를 밀어붙일 수 있는 주체는 없다. "권력의 횡포"라는 지적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졸속, 편법, 위법, 뻥튀기 등 4대강 살리기 사업 추진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은 4대강사업과 수공의 관계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자유선진당의 논평처럼 4대강 살리기 사업은 "MB정권이 불법과 탈법으로 쌓아올리는 바벨탑"이 되고 있는 셈이다.


태그:#4대강 살리기 사업, #한국수자원공사, #8조원, #국토해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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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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