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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그래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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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색으로 범벅된 주식시장 시황판이 컴퓨터 모니터에 떠 있다. 관심 종목으로 등록시켜 놓은 것들은 모두 마이너스를 의미하는 파란색이다. 그 가운데 등락률 -3 이상을 넘나드는 종목에서 눈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한숨이 나오기 시작한다. 벌써 며칠째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오늘 전체적으로 주식시황이 좋지 않은가 보네'라며 스스로 위로한다. 하지만 수십 포인트 상승하는 장에서도 내가 가진 주식종목은 며칠째 마이너스다. 주식계좌 잔고도 마이너스 폭이 점점 커지고 있다. '돌겠네'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현재 가지고 있는 종목을 팔고 다른 종목을 사면 지금까지 손해본 금액을 만회할 수 있을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내가 팔면 왠지 곧 상승세로 돌아설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에 낙폭이 점점 커진다. 몇 만 원이라도 이익 봤을 때 그냥 팔 걸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전형적인 개미투자자의 모습으로 변한 나

지난 5월에 시작한 주식. 주식투자를 해서 이익을 봤다는 사람을 주변에서 본 적이 없다. 반 토막이 났다거나 큰 손해를 보고 주식장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들은 게 전부다. 그런 영향 때문인지 난 절대 주식은 안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돈 욕심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지난 2월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룬 후 월급 외 부수입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낄 무렵, 경기 회복의 조짐으로 주식시장은 연일 뜨겁게 달아올랐다. 올해 안에 1800 포인트는 시간문제라는 둥 주식시장에 대한 '장밋빛 문구'가 난무했다.

나와는 전혀 다른 세상의 이야기로만 들렸지만 큰 잔치에서 왠지 소외당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 속에 뛰어들어 큰돈은 아니더라도 몇 푼이라도 벌고 싶었다. 그래서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모았다. 아내 몰래 모아온 비상금과 몇 년 동안 묻어두었던 <오마이뉴스> 원고료까지. 

주식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손해를 본 것은 아니었다. 주식시장에 대한 아무런 지식도 없이 뛰어든 후 회사 이름만 보고 샀던 대기업 주식이 연일 상승하더니 원금에 십만원 넘는 돈이 덧붙여졌다. 큰 욕심 없이 여기까지만 먹자라는 생각에 가지고 있던 주식을 팔았다. 150만 원을 투자해 10여 일 만에 11만 원의 이익을 봤다. 처음치고는 괜찮았다고 혼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 코스피 위주의 대기업 주식만 사기 ▲ 가격의 상한선을 정해 놓고 그 가격까지 오르면 바로 팔기 ▲ 팔았던 주식을 다시 살 때는 판 가격 이하로 떨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사기 ▲ 절대 남의 돈이 아닌 나의 여윳돈으로 투자하기 등 나름대로 원칙을 정해 놓고 주식 매매를 거듭했다.

이렇게 3개월가량 투자한 종목마다 적게는 몇 만 원에서 많게는 몇 십만 원까지 계속 이익을 이어갔다. 점점 늘어나는 주식계좌 잔고를 보면서 저절로 흥이 났다. '난 주식의 천재인가 보다. 왜 일찍 주식을 시작하지 않았을까. 좀 더 일찍 시작했으면 큰돈 벌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계속 이렇게 돈을 벌어나가면 결혼할 때 얻은 대출금도 곧 갚을 수 있을 것 같은 꿈에 젖어들었다.

몇 년 동안 주식을 했다는 회사동료는 코스닥에서 연일 수십만 원씩 마이너스를 기록하며 한탄했고 계속 수익을 내는 나를 부러워했다. 나는 그에게 주식시장에서 번 돈으로 소주까지 사주며 위로했다. 곧 나에게 다가올 불행의 앞날을 내다보지 못한 채 나의 주식투자 경험담을 이야기해주며 '주식은 이렇게 하라'는 조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약 3개월간의 주식투자를 통해 단기간에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자 어느 순간부터 아침에 사고 오후에 파는 단타 매매를 시작했다. 하루에 십만 원이 훌쩍 넘는 수익을 내기도 했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었다. 지금보다 더 많은 금액을 투자하면 좀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래서 과감하게 더 많은 금액을 주식에 쏟아 부었다. 투자한 주식 종목수도 하나에서 4∼5개로 계속 늘어갔다.

경제지의 증권면을 자세히 읽기 시작하더니 출근 후에는 간밤의 미국과 유럽 증시 동향을 세밀히 살피게 됐다. 외근하는 날이면 노트북을 가지고 다니며 무선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증시상황을 살폈다. 처음 주식에 투자하면서 인터넷을 통해 읽었던 전형적인 개미투자자의 모습으로 변하고 있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내가 사면 내리고 내가 팔면 오른다'

관심종목으로 등록 시켜놓은 주식 종목들이 대부분 파란색을 나타내고 있다.
 관심종목으로 등록 시켜놓은 주식 종목들이 대부분 파란색을 나타내고 있다.
ⓒ 증시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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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높은 줄 모르고 연일 치솟던 주식시장이 주춤하기 시작했다. 투자했던 주식들이 원금은 고사하고 며칠째 마이너스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다른 종목들은 오르는데 내가 가지고 있는 종목들만 마이너스를 이어가니 초조함이 생겼다.

초반에 이익을 냈으니 몇 십만 원의 손해를 봐도 괜찮다는 생각에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던 주식들을 과감히 팔고 상승세를 타는 주식들로 갈아탔다. 새로 산 종목에서 이익을 보면 충분히 만회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내 생각은 순진했다. 주식을 갈아타자마자 연일 상승세를 이어가던 주식이 내려가기 시작했다. 다시 마이너스 행진이다. 반대로 나에게 손해를 입힌 주식들이 상승세로 반전하기 시작했다. 며칠만 더 기다릴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내일은 오르겠지 하며 기다렸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이너스 폭이 점점 더 커지기 시작했다. 또다시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손해를 보며 주식을 갈아탔다. 하지만 갈아탄 종목마다 마이너스 행진을 이어갔다.

더 큰 손해를 보기 전에 팔아치우고 다른 종목을 사들였다. 증권계좌에 들어 있는 돈이 점점 줄어들면서 초조함을 이기지 못하고 1주일을 기다리지 못한 채 갈아타기를 반복했다. '내가 사면 내리고 내가 팔면 오른다'는 개미투자자들의 한탄이 내 입에서도 나오기 시작했다.

"나도 처음에는 어느 정도 수익이 있었다. 나도 처음에는 주식투자의 천재인 줄 알았다"며 회사 동료가 한마디 던진다. 그리고는 한마디 덧붙인다. "가지고 있던 주식종목 팔면 말해주세요. 내가 사게..." 동료도 나처럼 원금 생각에 수없이 종목을 갈아타고 있지만 여전히 수익은 마이너스를 이어가고 있다.

난 주식투자의 천재가 아니라는 것을 겨우 깨달았다. 누구나 주식투자에 있어서 처음에는 신중에 신중을 기하기 때문에 조금의 수익을 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작은 수익보다는 큰 수익을 원하는 욕심 때문에 처음의 투자 원칙은 내팽개치고 만다는 것을.

언제부턴가 정신을 차렸는지 '떼돈을 벌겠다'는 욕심에서 '이제는 원금만이라도  회복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처음 투자했던 금액을 회복한다고 해도 난 마이너스일 뿐이다. 왜냐하면 많은 술자리에서 주식으로 돈 벌었다고 과감히 내 카드를 긁었기 때문이다.

'역시 세상에서 돈은 쉽게 벌 수 있는 게 아니구나'라는 큰 경험을 얻는 중이다.


태그:#주식, #증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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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이 좋아 사진이 좋아... 오늘도 내일도 언제든지 달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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