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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시인이 한때 해남에 머물며 이 숲길에서 지친몸을 풀었다
▲ 서림공원의 가을 김지하 시인이 한때 해남에 머물며 이 숲길에서 지친몸을 풀었다
ⓒ 정윤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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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마지막 기운을 다하며 남으로 남으로 땅끝으로 치닫고 있다. 이 가을의 끝에 서면 누구나 무작정 달려 떠나고 싶어진다. 그래서 생각해 보는 곳이 그곳에는 무언가가 누군가가 나를 위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땅끝이다. 땅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나를 포근하게 안아줄 떠나간 여인의 숨결 같은 따스함이 있을 것 같은, 비록 거기에는 잡혀지지 않는 바람만 있다 해도 그래 한번쯤 떠나보고 싶은 곳이다.

땅끝을 찾는 사람들의 절반은 그렇게 그곳에는 무엇인가가 있을 것 같은 막연한 기대감과 동경심을 안고 찾아온다. 그 동경이라는 것은 물론 아름다운 자연과 멋있는 풍경일 수도 있지만 차라리 그보다는 일상에 지친 그리고 삶의 한 줄기가 무더기로 허물어져 내리는 사람들이 마지막처럼 떠나왔다가 짭잘한 해조음의 바람과 대화하며 새로운 출구를 찾아 다시 떠나가는 곳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이 가을의 끝으로 가는 길목에 권하고 싶은 곳이 땅끝의 가을과 시인들을 만나러 가는 문학기행이다. 땅끝 해남에는 시인들이 많다. 왜 땅끝에는 시인들이 많은 것일까.

그곳에는 바람이 많고, 황토가 많고 여름이면 바닷가를 뒤덮은 끈적한 안개가 온 세상을 뒤덮어 무위의 세상을 만들어 버릴 것 같은 곳, 사람들은 이곳에서 시린 가슴을 추스리며 한줄의 시를 읊는다.

그러나 이렇듯 많은 사람들이 시를 읊는 것은 아마도 견디기 어려운 그리움일지도 모른다. 땅끝은 바다를 향해 모든 곳으로 떠나는 길목이다.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라는 어느 가수의 노랫말은 이런데서 더욱 실감난다.

포구는 돌아오는 곳이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 포구를 통해 떠난다. 아주 오래전 멀리 제주도로 중국으로 님을 떠나 보낸 곳이 이곳 땅끝의 작은 포구이기도하다. 중국으로 떠난 남편을 기다리다 돌이 되어버렸다는 이야기는 작은 포구의 전설이 되어 내려온다.
그렇게 땅끝의 포구에는 저 멀리 먼 세계를 향해 떠나는 남자가 있고 그를 기다리는 아낙이 있다. 바다로 고기를 잡으로 떠났다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며 사는 오랜 기다림이 있는 곳이 땅끝의 포구다.

누가 백방이라 하였는가
백방산 나가미 위에
무수히 서 있는 저 연인들의
얼굴 얼굴
누가 백방이라 하였는가
저 무수히 바람에 갇혀
옹송거리는 어깨 움직임
누가 백방이라 하였는가
여기서 중국으로 중국에서
이리 떠나고 떠나오던
그 숱한 작별의 이야기들을
누가 백방이라 하였는가
어느 나무에
어느 나무 그늘에
그 사연 새겨졌는가
내 이제 짧은 머리
짧은 바지 차림으로
이 자리에 서서
홀로
젯빛 하늘을 향해 울부짖는다
여긴 왜 이제 항구가 아니냐

- 김지하 백방1 -

김지하가 땅끝 해남의 백방포를 노래한 시다. 그가 시를 통해 그리움을 노래한 곳은 오래전 중국으로 떠나는 사신을 기다렸다는 전설이 머문 백방포구다. 이제는 너른 들판만이 오래전 이곳이 멀리 중국으로 떠나는 뱃길의 출발지였던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 떠남과 기다림, 그리움의 자리에서 김지하는 백방포를 노래했다.

이제 그때의 흔적이 모두의 기억 속에서 다 사라져 가고 있는 지금 우리는 이제 무엇을 기억해야 할까, 김지하 시인이 70년대의 어둔 시대를 뚫고 잠시 몸을 풀던 곳, 그가 머문 그 서림의 숲은 늙은 고목나무들이 형형색색 잎을 물들며 마지막 조락을 향해 달음질하고 있다. 그 고목나무 아래에는 이 가을의 휴식을 위해 동네 아저씨들이  머물다 간다.

김지하가 노래한 백방포도 이제 바다가 너른 들판이 된 곳엔 빈 들판이 허전함을 채우고 있다. 이제는 모두가 떠나고 노래할이 없을 것 같은 이곳에 가을은 논두럭의 억세만 가이 없게 바람에 휘날리게 한다.    

행복한 독신자 고정희

푸른 소나무 숲을 뒤로하고 있는 송정마을에서 태어났다
▲ 고정희 시인의 생가 푸른 소나무 숲을 뒤로하고 있는 송정마을에서 태어났다
ⓒ 정윤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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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끝에 오면 모든 것이 시 한줄 쯤 쓰게 만든다. 그 바람이, 흔들리는 갈대가, 그리고 이 땅끝의 어딘가를 서성이며 오갔을 순례객들…

이 가을을 따라 땅 끝에 오면 가장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김남주와 고정희다. 어찌 김남주와 고정희 뿐인가, 강강술래를 노래한 이동주, 새로운 모더니즘의 세계를 개척한 황지우 또한 이 땅에서 태어난 사람이다. 소설가 황석영은 이 황토땅의 어는 늙은 고목나무 집 아래서 장길산을 남기기도 하였다.

이곳에 사는 이들이 모두 시인이지만 이 가을에 더 왠지 만나고 싶은 사람은 고정희다. 고정희가 살던 마을은 푸른 소나무 숲이 울창한 삼산면 송정리다. 소나무가 있는 마을이름처럼 마을 앞 언덕에는 아주 늠름한 소나무 한그루가 서있다. 마을앞 뜰을 내려다보며 온갖 풍상 견디며 살아온 성자의 모습이다. 고정희의 집은 푸른 소나무 숲을 뒤로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마을 뒤 소나무 숲 언저리에 조그마한 저수지를 내려다보며 잠들어 있다. 그가 잠들어 있는 무덤가는 너무 평화로워 보인다. 매년 이 무덤가에는 그를 찾는 사람들이 모여 그를 노래하고 추모한다. 죽어서도 그를 기억하고 찾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고정희의 유년은 이곳의 바람과 땅의 기운속에서 지나갔다.

사십대 문턱에 들어서면
바라볼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안다
기다릴 인연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안다
아니 와 있는 인연들을 조심스레 접어두고
보속의 거울을 닦아야 한다

씨뿌리는 이십대도
가꾸는 삼십대도 아주 빠르게 흘러
거두는 사십대 이랑에 들어서면
가야 할 길이 멀지 않다는 것도 안다
방황하던 시절이나
지루하던 고비도 눈물겹게 그러안고
인생의 지도를 마감해야 한다

쭉정이든 알곡이든
제 몸에서 스스로 추수하는 사십대
사십대 들녘에 들어서면
땅바닥에 침을 퉤, 뱉아도
그것이 외로움이라는 것을 안다
다시는 매달리지 않는 날이 와도
그것이 슬픔이라는 것을 안다

-고정희 '사십대' -

작은 저수지를 앞으로 있는 무덤의 풍경이 평화롭고 고즈넉하다.
▲ 고정희 시인의 무덤 작은 저수지를 앞으로 있는 무덤의 풍경이 평화롭고 고즈넉하다.
ⓒ 정윤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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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삶의 여정은 40대 초반에 멈추어 섰다. 어쩌면 인생의 성패가 결정되는 이 40대에 고정희는 자신의 삶을 마감하고 길이길이 이 모든 것 속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놓았다. 인생의 고빗길인 40대에 성패가 갈리듯이 고정희의 시 사십대를 읽으면 못다 이룬 인생의 여정앞에서 가슴이 벌렁거린다.

나의 40대는 어디로 어떻게 가고 있는가. 씨뿌리고 가꾸어 왔던 그 긴 시간을 지나 결실을 맺어야 하는 40대 나는 무엇을 거두고 있는지 자신에 대한 끝없는 회의속에 자꾸만 허우적 거린다.

고정희는 생을 마감할 때까지 독신으로 살았던 페미니스트였다. 자신의 삶을 너무 치열하게 살았던 때문일까. 생의 마지막에서 그는 이렇게 사십대라는 시를 남겼다. 고정희 생가 앞의 너른 들판은 추수를 끝낸 들판이 허허롭기만 하다. 그러나 그는 결코 외롭지 않다. 그가 고요히 잠들어 있는 무덤가는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와 보인다. 그래서 가장 행복해 보인다.

시로 노래하는 전사 김남주 시인이 태어난 집이다. 잘 단장된 이곳에서 오는 7일 김남주문학제가 열린다.
▲ 김남주생가 전경 시로 노래하는 전사 김남주 시인이 태어난 집이다. 잘 단장된 이곳에서 오는 7일 김남주문학제가 열린다.
ⓒ 정윤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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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희 생가를 뒤로하고 바로 길 건너로 넘어오면 나타나는 것이 김남주 시인 생가다. 이 둘의 삶은 7,80년대의 동시대를 사회의 부조리에 직접 몸으로 부딛히며 치열하게 살다 생을 마쳐 살아남은 자들에게는 부끄러움을 남겨놓는다.

시로 노래하는 전사, 이는 김남주 시인에게 붙여진 이름이다. 그의 시를 읽으면 가슴속의 뜨거움과 전율이 느껴진다. 그래서 어느 평론가는 그의 시를 '피로 쓰여진 언어의 화살'이라 표현하였다.

만인을 위해 내가 일할 때 나는 자유
땀 흘려 함께 일하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랴

만인을 위해 내가 싸울 때 나는 자유
피 흘려 함께 싸우지 않고서여
어찌 나는 자유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랴 -중략-

- 김남주 '자유' -

김남주 시인은 아직도 모두의 기억속에 그렇게 70년과 80년을 이어오며 칼날 같은 언어로 사회를 고발하며 저항한 시인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그가 낳고 자란 고향 땅끝 해남 삼산면 봉학리 생가에는 그를 기억하는 지나간 흔적과 함께 초가 옆에는 얼마 안 있어 홍시가 될 감 몇 개가 대롱대롱 가을 하늘에 메달려 있다.

찬서리
나무 끝을 나는 까치를 위해
홍시 하나 남겨둘 줄 아는
조선의 마음이여

- 김남주 '옛마을을 지나며'-

김남주의 마음은 아마도 처음엔 이러한 것이었을 것이다. 1평 남직한 감옥에서 은박지에 못으로 새겨 시를 쓸 수박에 없는 세상이 그에겐 슬픔이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농사를 지으며 평화롭게 살고 싶었을 그는 소박한 사랑의 세상을 꿈꾼다. 

겨울을 이기고 사랑은
봄을 기다릴 줄 안다
기다려 다시 사랑은
불모의 땅을 파헤쳐
제 뼈를 갈아 재로 뿌리고
천 년을 두고 오늘
봄의 언덕에
한 그루의 나무를 심을 줄 안다

사랑은
가을을 끝낸 들녘에 서서
사과 하나 둘로 쪼개
나눠 가질 줄 안다
너와 나와 우리가
한 별을 우러러 보며

- 김남주 '사랑은' -

김남주 시인의 생가에서는 오는 7일 김남주문학제가 열린다. 김남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모여 시를 낭송하고 함께 흥겨움으로 여는 문학제다. 시인들은 죽어서도 그를 그리워하고 노래할이 있으니 행복하지 않을까.

김남주 시인 생가의 문 앞에는 지금 노랗게 익은 유자가 가을 빚에 너무도 선명하다. 이곳이 남도땅 땅끝임을 알게해 주는 과일이다. 오래전에는 귤나무 한그루와 유자나무 한그루가 대학교를 보낼 만큼 소중한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그져 누구 하나 감상해 줄이 없는 듯 제 스스로만 그 노란빛이 가을햇살에 찬란하도록 아름다울 뿐이다.

철새들을 기다리는 고천암 갈대밭

가을을 느끼려면 갈대숲을 거닐어야 한다.
▲ 고천암 갈대 가을을 느끼려면 갈대숲을 거닐어야 한다.
ⓒ 정윤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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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을 만났다면 이제 모든 것을 털어버리듯 너른 들판을 행해 달려보자. 겨울이 되면 철새들의 낙원이 되는 고천암 갈대숲은 지금 갈대들이 힘찬 교향악을 노래하고 있다. 가을을 지날 때 가장 가을을 느끼게 하는 것이 갈대다.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의 모습은 아름답다.

갈대가 숲을 이루고 바다를 이루는 고천암 갈대숲은 초겨울이 오면 철새들이 날라와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 아직 철새가 날아오기에는 이른 시기지만 긴 호수의 강둑을 따라 갈대숲이 넘실대는 가을길을 걸어 본다면 땅끝의 시인들을 만나러 왔다는 것이 결코 후회스럽지 않을 것이다.

이곳 고천암 들판은 오래전에 바다였다. 천석의 쌀을 쌓아둘만한 창고가 있을 것이라는 윤선도의 예언처럼 이곳은 지금 그렇게 천석의 쌀을 쌓고도 남을 넓은 들이 되어있다.

당신이 만약 지금 자신의 삶이 지치고 힘들다고 생각하다면 이 고천암 너른 들판에서 힘껏 소리치며 노래해 보라. 가슴속에 맺힌 응어리나 터질 듯한 가슴속의 답답함을 다 이 들판에 쏟아 날려보라. 그러면 저 멀리에서 환청처럼 메아리가 들려 올 것이다.

"슬퍼하지 말라, 인생은 어짜피 혼자서 가는 길, 다시 시작해보라, 내일이면 다시 태양은 떠오른다~~~ "

덧붙이는 글 | 시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땅끝여행길이다.



태그:#땅끝, #고정희, #김남주,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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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를 중심으로 지역의 다양한 소재들을 통해 인문학적 글쓰기를 하고 있다. 특히 해양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16세기 해남윤씨가의 서남해안 간척과 도서개발>을 주제로 학위를 받은 바 있으며 연구활동과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 <녹우당> 열화당. 2015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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