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비가 내리는 일요일 아침, 우산을 받고 골목마실을 합니다. 골목마실을 마치고 제 일터인 도서관으로 들어와 보니, 천장부터 비가 잔뜩 새서 물이 줄줄줄 흐르고 있습니다. 책은 몇 권 젖지 않았으나 아찔했습니다. 이 건물임자는 비가 새건 무슨 말썽이 있건 고쳐 놓을 생각을 하지 않고 달삯만 차곡차곡 받고 있는데, 곧 재개발되어 헐 건물에 굳이 돈 들이지 않겠다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달삯은 꼬박꼬박 챙기겠다는 마음입니다.

어쩔 수 없는 노릇입니다. 중앙정부이든 지역정부이든 더 많은 돈을 뽑아내자면, 집값이 싼 동네를 모조리 밀어버리고 아파트를 올려세워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건물임자는 이런 재개발에 따라 돈을 더 벌고, 중앙정부나 지역정부는 이런 재개발로 살림살이를 북돋웁니다. 그러면서 골목동네 한켠에서 적은 돈으로 푼푼이 아끼며 살던 낮은자리 사람들은 옮길 곳이 마땅하지 않아 걱정과 근심에 한숨을 쉬며 더 멀리멀리 쫓겨나거나 밀려납니다. 또는 달삯을 더 올려 내면서 힘겹디힘겹게 살림을 꾸려야 합니다. 앉아서 돈을 버는 사람은 내내 앉아 있기만 해도 돈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서서 일하여 돈을 버는 사람은 내처 서서 일하고 쉴 겨를이 없어도 돈이 모이지 않고 새 나가기만 합니다.

동그라미를 받는 집. 사람이 살고 있거든요? 사람 사는 집에 이렇게 '낙서'를 해대도 됩니까?
 동그라미를 받는 집. 사람이 살고 있거든요? 사람 사는 집에 이렇게 '낙서'를 해대도 됩니까?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빗속을 거닐며 마음이 무겁습니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돈 놓고 돈 먹기에 마음을 빼앗기면서 스스로 바보가 되어 가는지 안쓰럽습니다. 학교 오래 다녀 똑똑하다는 전문가들은 왜 이렇게도 사람 사는 땅에는 발을 붙이지 않으면서 제 이웃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들여다보지 못하는가 싶어 안타깝습니다.

송림2동을 지나 송림6동에 접어들었을 때, 현대시장 둘레 숱한 골목집에 새삼스러운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는 모습을 봅니다. 지난달께 이 골목을 거닐었을 때에는 이런 동그라미가 없었기에 깜짝 놀랍니다. 이 동그라미는 옛날 국민학교에서 '참 잘했어요'라는 뜻에서 붙이는 동그라미가 아니라, '이제 곧 허물 테니 얼른 떠나라'는 윽박지름이자 으름장으로 그려대는 동그라미이기 때문에 몹시 놀랍니다. 더구나, 이 스프레이로 뿌려 그린 동그라미를 받은 집에는 하나같이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사람 사는 집에 이렇게 멋대로 낙서를 해도 되는지요?

저 멀리 보이는 아파트로 동네를 뜯어고치려고, 곧 헐어 없애겠다는 집에 스프레이로 동그라미를 그려 넣는 인천시 공무원과 개발업자들입니다. 이 집에 사람이 살고 있든 말든.
 저 멀리 보이는 아파트로 동네를 뜯어고치려고, 곧 헐어 없애겠다는 집에 스프레이로 동그라미를 그려 넣는 인천시 공무원과 개발업자들입니다. 이 집에 사람이 살고 있든 말든.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얼른 집 비우고 나가지 않으면 언제라도 들어대며 밀어붙이겠다는 으름장일까요. 부잣집 담벼락에도 이렇게 멋대로 낙서를 해댈 수 있습니까.
 얼른 집 비우고 나가지 않으면 언제라도 들어대며 밀어붙이겠다는 으름장일까요. 부잣집 담벼락에도 이렇게 멋대로 낙서를 해댈 수 있습니까.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100만 원짜리 난꽃이어야 아름다울까 궁금합니다. 1000만 원짜리 소나무여야 거룩할까 궁금합니다. 꽃은 모두 꽃이요, 나무는 모두 나무요, 사람은 모두 사람이 아닐는지요. 집은 다 같은 집이요, 보금자리는 다 같은 보금자리가 아닐는지요.

빗물이 졸졸 흐르는 샛골목에서 우산을 끄고 사진 몇 장을 찍습니다. 헐리고 빈 터에서 돌을 골라 일군 텃밭에서 김장거리가 저와 마찬가지로 비를 맞고 있습니다. 동네사람을 빼고는 사진 찍는 사람만 이 비알진 달동네 골목길을 걷습니다. 그러나 사진 찍는 사람이라 하여도 이 비를 맞으며 달동네 골목을 거닐며 돌아다니지는 않습니다. 햇볕 쨍쨍한 날이 아니고서는 골목동네를 찾지 않습니다. 새벽나절에, 깊은 밤에, 추운 겨울에, 안개 뿌연 날에,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에 맞추어 골고루 골목동네 모습을 사진으로 담는 일이란 없습니다. 그래서 골목길을 사진으로 담는 이들한테서 어떠한 이야기도 느끼지 못합니다. 그이들 스스로 사진 한 장에 이야기를 담아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글로 풀이말을 덧붙이는 사진이 아니라 사진으로 사진을 보여주는 사진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문득, 이 골목동네를 사진으로 남긴다고 하는 사람들이나 개발업자 사람들이나 다를 바 없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끔찍하게 내달리는 공무원을 꾸짖는 지식인들이나 그 끔찍하다는 공무원이나 어슷비슷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이쪽이나 저쪽이나 모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이들이나 저이들이나 골목동네에 깃들어 살아가지 않기는 매한가지입니다. 먼 옛날 어릴 적에는 이 골목동네에서 살았는지 모르지만, 바로 오늘 이곳을 구경꾼이나 길손으로 드나들 뿐 아닌가 싶습니다. 명절을 맞이해 한 번 잠깐 왔다가 떠나는 발걸음처럼, 그럴싸한 풍경 몇 점 건지려고 찾아오는 사진쟁이일 터이고, 돈 되는 재개발에 매달리는 공무원과 개발업자일 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송림4동 안쪽 동네 담벼락에 '골목길 사진' 몇 점 붙어 있습니다. 이 동네를 찍어 온 어느 분이 작품을 모아 놓으셨는데, 말 그대로 '골목 풍경 작품'입니다. '골목동네 사람들 삶자락 이야기'까지는 가 닿지 못합니다. 그래도, 이렇게 골목동네를 사진으로 찍어 주고 사진잔치까지 마련해 주니 고맙다고 느낍니다.
 송림4동 안쪽 동네 담벼락에 '골목길 사진' 몇 점 붙어 있습니다. 이 동네를 찍어 온 어느 분이 작품을 모아 놓으셨는데, 말 그대로 '골목 풍경 작품'입니다. '골목동네 사람들 삶자락 이야기'까지는 가 닿지 못합니다. 그래도, 이렇게 골목동네를 사진으로 찍어 주고 사진잔치까지 마련해 주니 고맙다고 느낍니다.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한참 비를 맞다가 송림4동 천주교회 안으로 들어서며, 저와 똑같이 비를 맞고 있는 성모님 앞에 섭니다. 성모님 앞에 가을 나뭇잎이 잔뜩 떨어져 있습니다. 조용히 서 있다가 꾸벅 절을 합니다. 다시금 동네를 두 바퀴 더 돌고 나서 송림5동과 송림3동과 금곡동을 거쳐 창영동 제 보금자리로 돌아갑니다. 창영동으로 넘어서기 앞서, 금곡동 할배네 구멍가게에 들러 보리술 한 병을 삽니다. 할배 구멍가게에서는 아직 보리술 한 병에 1700원입니다. 여기에서 6분 남짓 걸어가면 나오는 조금 큰 마트에서는 1550원입니다. 그 마트에서 10분쯤 더 걸어가면 ㅇ마트가 나오고, 이곳에서는 훨씬 값이 싼 줄 압니다. 그렇지만 저는 굳이 그 마트들로 가지 않습니다.

더도 덜도 아닌 꼭 한 병만 사들고 비에 젖은 몸을 무겁게 이끌며 골목마실을 마칩니다.

사람 사는 집은 사람 사는 집입니다. 종이에 펜으로 이름을 적어 푸른테이프로 문간에 붙여 놓고 문패를 삼아도, 이 집은 어엿하게 사람 사는 살림집입니다. '재개발 대상지구'로 묶을 수 있는 '지도에 찍힌 지점'이 아닙니다.
 사람 사는 집은 사람 사는 집입니다. 종이에 펜으로 이름을 적어 푸른테이프로 문간에 붙여 놓고 문패를 삼아도, 이 집은 어엿하게 사람 사는 살림집입니다. '재개발 대상지구'로 묶을 수 있는 '지도에 찍힌 지점'이 아닙니다.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공무원과 개발업자 들은 '아파트 새로 짓는 정책'을 끝없이 마련하기에 앞서, 사람 사는 동네에서 사람내음을 맡고 느끼는 사람됨을 먼저 배워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공무원과 개발업자 들은 '아파트 새로 짓는 정책'을 끝없이 마련하기에 앞서, 사람 사는 동네에서 사람내음을 맡고 느끼는 사람됨을 먼저 배워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무청을 말리는 달동네 꼭대기 집 담벼락 앞에는 나무전봇대가 이 집 역사만큼이나 오래도록 꿋꿋하게 서 있습니다.
 무청을 말리는 달동네 꼭대기 집 담벼락 앞에는 나무전봇대가 이 집 역사만큼이나 오래도록 꿋꿋하게 서 있습니다.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겨울을 재촉하는 비를 함께 맞고 있는, 인천 동구 송림4동 천주교회 성모님.
 겨울을 재촉하는 비를 함께 맞고 있는, 인천 동구 송림4동 천주교회 성모님.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태그:#골목길, #인천골목길, #골목마실, #사진찍기, #골목여행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