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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저출산 대책의 하나로 불법 낙태를 단속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보도가 나가자 보건당국은 '구체적으로 검토한 바 없다'고 밝혔지만 '대충'(?)이라도 논의는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낙태문제는 저출산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 한 언제라도 다시 튀어나올 수 있는 문제인 데다, 이미 일부 언론이 반색을 하고 나선 터라 이 문제를 분명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겠습니다.

낙태문제, 정말 쉽게 해법을 찾기 힘든 난제입니다. 낙태반대론자들이 주장하듯 생명과 관련된 문제니까요. 때문에 낙태문제는 세계 곳곳에서 지금까지 수십년간 온갖 윤리적 철학적 의학적 법적 종교적 담론들을 생산하며 뜨거운 정치사회적 쟁점으로 다뤄져 왔음에도 최근 미국에서 건강보험개혁법안과 연관돼 다시 큰 논란이 되고 있는 것에서 보듯 아직도 찬반 대립이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무슨 배짱으로 이 복잡하고 고민스런 낙태문제를 분명히 짚고 넘어가겠느냐구요? 그것이 저출산 대책의 하나로 거론됐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불법낙태 단속이 저출산 문제의 해결에 별 도움도 못주면서 심각한 부작용들만 낳을 게 뻔히 보이기 때문입니다.

저출산 문제, 낙태 단속으로 해결될까

낙태에 반대하는 한 예술가가 만든 낙태 태아 인형.
 낙태에 반대하는 한 예술가가 만든 낙태 태아 인형.
ⓒ 이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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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나 독일에서 낙태가 불법이었을 때 낙태를 원하는 여성들은 낙태가 허용됐던 영국으로 날아가 수술을 받았으며, 낙태금지법이 서슬 퍼런 칼날처럼 사람들을 위협하던 루마니아 차우셰스쿠 정권 하에서는 '목숨을 걸고' 불결한 지하 낙태시술소를 찾는 여성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자기 몸에 들어선 생명, 태어나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자기 아이가 될 그 생명을 포기하기로 결심할 때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기 마련입니다. 대부분 '절박한' 이유들이지요. 그런 이유가 있는 사람들은 아무리 죄책감이 커도, 처벌한다고 을러대도 쉽게 단념하지 않습니다. 위협당한다고 느낄 때 삶은 적나라해지기 마련이니까요.

만약 정부가 불법낙태, 즉 현재 이뤄지고 있는 거의 모든 낙태수술들을 단속하기 시작한다면 낙태를 원하는 여성들은 해외로 나가거나 음지에서 번성할 시술소들을 찾을 게 뻔합니다. 원정출산, 원정교육에 이어 원정낙태가 등장하고 불결한 환경에서 가슴 졸이며 수술을 받다가 죽는 여성들도 생겨나겠지요. '원하지 않았던' 출산 덕에 출산율이 좀 늘어날 수 있다 해도 그 불행한 출산들이 사회에 드리울 그림자는 또 어쩌란 것인지요.

지난 18일 언론에는 10살짜리 딸을 성폭행한 재혼남편을 생활고 때문에 선처해 달라고 호소한 한 엄마의 얘기가 소개됐습니다.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 둘과 이제 막(지난 10월) 그 남자의 아이를 출산한 상태에서 혼자 살아가기가 너무나 막막하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원하지 않던' 출산도 증가하면 박수칠 일?

영화 <집행자> 가운데 한 장면. 재경은 여자 친구 은주(차수연)의 임신 사실을 알고 갈등한다. 결국 은주는 낙태를 하고, 이 둘은 헤어진다.
 영화 <집행자> 가운데 한 장면. 재경은 여자 친구 은주(차수연)의 임신 사실을 알고 갈등한다. 결국 은주는 낙태를 하고, 이 둘은 헤어진다.
ⓒ 영화사활동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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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진 엄마'를 손가락질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핏덩이인 아기 때문에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세 아이를 부양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정부 보조금을 떠올리며 그녀가 느꼈을 '생의 공포'를 생각하면 그저 아득해지기만 합니다.

따져 보니 그 엄마가 딸의 성폭행 사실을 알았을 때는 임신 7개월쯤 됐을 때더군요. 만약 그때 그녀가 임신 초기였다면 어땠을까요? 그때 그녀가 낙태를 감행했다면 그녀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요? 차라리 낙태를 할 수 있었다면 성폭행 당한 어린 딸이 가해자와 다시 함께 살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하는 모진 짓, 위험한 짓, 미친 짓을 하지 않아도 됐을 거라고 안타까워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비난해야 하는 것일까요?

출산율을 적정 수준으로 높인다고 해서 저출산을 문제삼는 사람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국가경쟁력이 저절로 보장되는 건 아닙니다. 다 알다시피 아이를 낳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를 잘 키우는 일이지요.

솔직히 말하면 아이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성폭행범에게 기댈 수밖에 없도록 국민을 방치해 놓고 있는 국가가 도대체 무슨 염치로 아이를 낳으라는 캠페인을 벌일 수 있는 것인지, 불법낙태를 처벌하겠다는 말을 흘리고 있는지 기가 막힙니다.

아무리 생활고에 쫓긴 엄마의 호소가 있었다 해도 '가장 최선의 해결방안' 운운하며 아동 성폭행범을 집행유예로 풀어주지 못하는 법 현실을 문제삼은 법원은 또 어떻게 봐야 할지요. 도대체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아이들을 '경쟁력 있게' 키우라는 것인가요?

출산장려가 인생장려 정책이어야 하는 까닭

정부 당국은 저출산 현상의 주요요인으로 여성들의 가치관 변화를 꼽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변화한 여성들의 가치관을 거꾸로 변화시키기 위해 캠페인도 벌이고 지하철역에 출산장려 포스터도 붙이고 각종 행사들도 벌이고 있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그런 일로 예산 낭비하고 업적 과시하기는 쉬울지 몰라도 여성들, 아니 사람들의 가치관은  쉽게 바꿀 수 없습니다.

일부 당국자는 1960~1970년대 실시돼 성공했던 출산억제 정책을 떠올리며 정부의 대대적인 캠페인이 출산 조절에 효과적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만, 당시 그 정책이 성공할 수 있었던 건 대다수 여성들이 이미 출산 억제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었다는 걸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흔히들 출산장려 정책이라는 말을 씁니다. 정부 주도 하에 전국적으로 '아이 낳기 좋은 세상 운동'이라는 것도 벌어지고 있더군요. 이런 말들은 출산이라는 행위가 따로 독립해서 존재하는 것같은 느낌을 줍니다. 하지만 출산은 한 인간을 세상에 내놓는 것이고 그 결과는 죽음까지 이어집니다. 출산은 인생이란 긴 여정의 출발점이지 출산 행위가 끝났다고 종료되는 일이 아닌 것이지요.

그러므로 출산이 장려되기 위해서는 태어날 아이의 전체 인생 또한 장려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또 부모가 될 사람들의 인생 역시 그로 인해 불이익을 당하지 않고 장려돼야 아이를 갖고 싶은 의욕이 생기겠지요. 이렇게 보면 출산장려 정책이란 전 국민의 인생장려정책에 다름 아닙니다.

출산장려금 따위 보다 더 중요한 출산장려 정책

<4개월 3주 그리고 2일>의 한 장면.
 <4개월 3주 그리고 2일>의 한 장면.
ⓒ 유레카 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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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 국민들이 이 나라에 태어나 살고 있는 게 행복하다고 느낄 때, 적어도 앞날이 불안하거나 고통스럽진 않다고 할 때, 그리고 국가와 사회, 남성들이 양육책임을 확실하게 분담할 때, 가난한 집에 태어났든 미혼모의 아이든 장애를 가졌든 이 나라에 태어난 모든 아이들이 기본적인 사랑과 보살핌을 받으며 밝게 자랄 수 있다고 믿을 때, 여성들은 낳지 말라고 해도 기꺼이 아이를 낳으려 할 겁니다.

겨우 출산장려금같은 것이나 대책이라고 내놓고 요란스런 캠페인이나 벌이는 출산장려 정책은 차라리 없느니만 못 합니다. 또 여성을 자기 몸에 대한 통제권, 재생산권의 주체로 존중하지 않고 국가 발전과 유지를 위한 출산기계로 여겨, 인구정책에 따라 낙태를 조장했다 금지했다 멋대로 다루려고 할 때 낙태문제도 합리적인 해법을 찾기 어려울 것입니다.

혹시 정부내에 불법낙태 단속에 대해 아직도 유혹을 느끼는 분이 계시다면 2007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루마니아 영화 <4개월 3주 그리고 2일>을 꼭 봤으면 합니다. 차우셰스크 독재정권 하에서 낙태금지법이 루마니아 사회와 여성들을 어떻게 일그러뜨렸는지 분명하게 느낄 수 있을 테니까요. 새로 발견한 독재자들의 공통점 하나, 여성들을 출산기계로 다루면서 넘치는 애국심을 과시한다는 것이지요.

덧붙이는 글 | 김신명숙 기자는 작가이자, 문화미래 이프 이사입니다.



태그:#저출산, #낙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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