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실이 보고 싶다. 황진이가 보고 싶다. 대장금이 보고 싶다. 그 어떤 남성 출연자도 보여주지 못했던 강렬한 카리스마를 내외면적으로 보여주면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던 여인들이다. 드라마에서 카리스마 하면 대부분 남성 출연자들을 먼저 떠올리지만 그녀들에게서는 모두 카리스마가 넘쳐났다.
2006년에 KBS에서 사극 "황진이"가 방송되었다. 그녀의 매력에 끌려 몇 개월 동안 울며 웃으며 한 차례도 놓치지 않고 시청했다. 나는 사극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드라마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너무 작위적인 데다 시기, 질투가 혐오스러울 정도로 범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어진 삶을 올곧게 살다 간 역사적인 인물들은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예인들을 좋아한다. 그들의 혼이 치열하게 재현하는 연기자들을 통해 다시 살아날 때 시청자로서 행복하다. 그들을 통해서 나의 잠자는 혼도 함께 깨어나니 드라마를 보는 즐거움을 넘어 고맙기 그지없다.
많은 예인들 중 부러워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황진이였다. 나도 황진이처럼 살고 싶을 때가 참 많았다. 그래서 황진이 드라마에 푹 빠져 살면서 하지원이 연기하는 그녀를 통해 마치 내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슬픔과 희열을 느끼며 행복했다.
황진이가 방송되고 있을 때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씨는 향악을 폐하려는 명나라 사신 앞에 거문고를 들쳐 메고 나타나는 황진이의 모습은 전쟁터에 나가는 그 어떤 캐릭터보다 더 카리스마가 넘쳐난다고 썼다. 그녀가 선택한 것은 거문고 연주가 아니라 '마음의 거문고 연주'라는 무기를 들고 나왔다. 겉으로 보이고 들리는 재주는 헛껍데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면서 상대방을 제압하는 황진이를 보고 카리스마가 넘쳐난다고 느꼈단다. 나 역시 그 장면을 보면서 강한 카리스마를 느꼈으니 평론가의 말에 깊이 공감했다. 그의 표현대로 무예만 출중하다고 카리스마가 생기는 건 아니다. 칼만 든다고 카리스마가 생기는 건 아니다. 갑옷만 입는다고 카리스마가 생기는 것이 아님을 황진이는 여실히 보여주었다.
최근 미실은 어떤 여인인가 알고 싶어 선덕여왕을 거슬러 보기 시작했다. 타이틀 롤을 버리고 2인자인 미실을 택한 고현정의 선택도 궁금했다. 방송관계자는 그녀의 연기를 완벽한 연기라고 표현했지만 나는 완벽하다는 느낌보다는 미실의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연기라는 느낌이 더 강했다. 화면을 꽉 채우는 그녀의 농익은 연기는 참으로 강렬하고 멋졌다. 그녀가 때로는 아주 부드럽게, 때로는 아주 표독하게 토해내는 말들은 그녀만의 카리스마를 느끼게 했다. 그래서 그녀가 그려내는 미실에 열광했던 것이다.
그녀에게 깊이 끌리게 한 것은 사람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 백성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방식이었다. 그것은 어쩌면 답답할 정도로 문제가 많은 현실정치와 많이 닮아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녀가 남긴 어록 중에 백성은 진실을 부담스러워하고 희망을 버거워하며 소통을 귀찮아하고 자유를 주면 망설인다는 말은 얼마나 백성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가 생각하게 해주었다. 만일 국가를 이끄는 지도자가 이런 생각을 한다면 그것은 심히 우려스러울 정도였다.
사극 전성시대라고 한다. 채널마다 사극을 방송하고 있다. 그러나 흥미로운 소재와 이름 있는 캐릭터만으로 시청률을 올리려고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역사는 쉬지 않고 반복된다. 과거 없는 현재는 없다. 이것이 우리가 역사를 외면하지 말아야 하는 근본 이유이다. 그것은 역사에서 배울 것을 찾아 잘못된 것을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민족은 멸망한다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한 진리이다.
더구나 지금은 지구촌 시대로 국내 사극이 외국으로 나가기 때문에 단순히 시청률만 의식할 것이 아니라 사명감을 갖고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 역사와 문화를 왜곡하지 않으면서 우리의 갖가지 우수한 문화를 그 안에 담아내야 한다. 옷가지 하나, 소품 하나에도 소홀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만의 색깔, 우리만의 음식, 우리만의 좋은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황진이에 등장한 소품들은 얼마나 아름다운 빛을 발했는지 본 사람들은 잊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정덕현씨는 아름다운 한복이 아름다운 영상을 만들어내지는 못하며 그것을 잡아내는 섬세한 카메라만이 그걸 가능하게 해준다고 했다.
나는 미실을 비롯한 출연자들의 의상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보았다. 우리나라의 고유의상들이 참 아름다웠다. 그러나 미실역을 한 고현정과 선덕여왕 역을 한 이요원이 입었던 옷 한 벌에 천여 만 원이 훨씬 넘는 고가의상들은 그 가치를 전혀 느끼지 못하고 스쳐버렸다. 의식하지 못한 내 잘못인지, 카메라맨의 실수인지 알 수가 없다. 제작진이 그렇게 고가의 의상을 만들어 입혔으면 그 가치를 살려내는 것이 카메라맨의 역 아니었을까.
2003년에 MBC에서 방영된 대장금은 드라마가 종료된 지금도 우리의 음식문화를 국외에 알리는 산파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한류 드라마로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동유럽까지 진출하여 전 세계에서 이렇게 사랑 받는 사극은 앞으로 나오기 힘들지 않을까 생각된다. 대장금의 가장 큰 공로는 한국문화가치를 세계적으로 한 단계 더 올리고 그 가격을 상승시켰다는 것이리라. 한류열풍과 대장금의 인기 때문에 한국문화를 직접 체험해 보고 싶어 하는 외국 학생들의 숫자가 더욱 늘고 있을 정도니 그 공로를 실감할 수 있다. 언젠가 우리나라에서 만든 영화 한 편이 모 자동차 회사가 자동차를 수출하여 일 년 동안 벌어들인 외화를 앞질렀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잘 만든 좋은 드라마 한편이 주는 영향도 그에 못지않으리라 생각된다.
드라마 한 편이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 것인지 깊이 생각하며 하루하루의 시청률에 연연하지 말고 만들어갈 의무와 책임을 다했으면 좋겠다. 현대극이든 사극이든 드라마마다 빠지지 않는 것이 갈등구조인데 특히 사극에서 갈등구조를 잘못 그리면 우리나라의 이미지가 고정되어버릴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어느 사회든 경쟁은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긴장감도 필요하지만 갈등구조를 그릴 때 빤히 드러날 정도로 너무 유치하게 그리는 것은 고려해볼 일이다. 집중도가 높은 스토리도 중요하지만 또 바라기는 두고두고 음미할 맛깔스러우면서 정제된 대사들이 듣고 싶다. 그런 대사들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세월이 흘러가도 드라마를 잊지 않고 오래도록 기억하게 해줄 것이다.
미실이 떠난 자리는 선덕여왕이 채워야 할 텐데 빈 공간이 너무 커 보인다. 목소리에 힘을 준다고 해서 왕으로서의 권위가 살아나진 않는다. 미실처럼 물 흘러가듯 부드럽게 하면서도 시청자들을 강하게 사로잡을 수 있는 여력이 없어 보면서 늘 안타깝다. 왕으로서 얽히고설킨 복잡한 난국을 해쳐나가면서도 고뇌하는 모습이 실감나게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자꾸만 선덕여왕 위로 미실이 오버랩 된다.
이제는 미실이 아닌 타이틀 롤에 걸맞는 선덕여왕의 모습을 보고 싶다. 우리나라 역사에 최초의 여왕으로서 선정을 베풀었던 아름답고 당찬 여왕의 모습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