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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문학관에 들어서자 최명희의 대형 초상화가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방문객을 맞이한다.
 혼불문학관에 들어서자 최명희의 대형 초상화가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방문객을 맞이한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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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눈깨비가 흩날린다. 계곡의 물을 끌어올려 타고 도는 물레방아는 혼신의 힘을 다하여 움직인다. 거대한 몸집을 굴리기에는 물이 턱없이 모자라 보이지만 물레방아는 쉼 없이 물을 타고 돈다. 개울가에는 아직 잔설이 남아있다. 아침햇살이 비출 때마다 안개분수에서 무지개가 혼불처럼 빛난다.

물보라를 흠뻑 뒤집어 쓴 남천은 발가벗은 채 얼음 꽃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 물레방아 주변 대숲에는 물이 흩날려 안개비가 내린다. 혼불 문학관에 당도하기도 전에 이곳 물레방아 곁에서 소설 혼불의 작가 최명희의 모습을 언뜻 본 듯하다. 생전에 작가가 혼불의 소재를 발굴하기 위해 노봉마을에 자주 드나들었다고 하더니 이곳에도 자주 발걸음을 한 게 아닐까.

아침햇살이 비출 때 마다 물레방아가의 안개분수에서 무지개가 혼불처럼 빛난다.
 아침햇살이 비출 때 마다 물레방아가의 안개분수에서 무지개가 혼불처럼 빛난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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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수지의 기맥을 지키기라도 하려는 듯 저수지 주변에는 솟대가 삥 둘러서 있다.  멀리 보이는 장수 팔공산의 능선은 말 잔등처럼 꿈틀대며 다가온다.
 저수지의 기맥을 지키기라도 하려는 듯 저수지 주변에는 솟대가 삥 둘러서 있다. 멀리 보이는 장수 팔공산의 능선은 말 잔등처럼 꿈틀대며 다가온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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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혼불 문학관 옆에는 청암 부인이 2년여에 걸쳐 만들었다는 청호저수지가 있다. 이 저수지는 청암 부인이 노적봉과 벼슬봉의 기맥을 가두기 위해 큰 연못을 파서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저수지는 풍악산 산자락에 안겨있다. 저수지의 기맥을 지키기라도 하려는 듯 저수지 주변에는 솟대가 삥 둘러서 있다.

찬바람이 한바탕 훑고 지나가자 정자 위 잔설이 흩날린다. 정자너머로 멀리 보이는 장수 팔공산의 능선은 말 잔등처럼 꿈틀대며 다가온다. 하얀 눈을 가득 뒤집어쓴 채 용트림을 한다.

"혼불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혼불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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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문학관은 최명희 소설 <혼불>의 무대인 거멍골과 매안, 청호저수지에 자리하고 있다. 소설의 주 무대인 종가집도 근처 노봉마을 원뜸에 있다. 혼불 문학관으로 오르는 길목이다. 탑을 이루고 있는 소원을 담은 돌들 틈 사이에는 솟대가 하늘높이 솟아있다. 돌멩이에는 저마다의 소원을 담고 있다. 수많이 글들이 돌에 씌어져 소원탑을 이루었다.

"취업 좀... 우리가족 행복하게 해주세요."       -인강
"수능대박"   -최연호
"내년에는 2세 낳게 해주세요."         - 영수, 경희
"혼불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 이영로, 박진숙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는 것만 같다"

천추락만세향(天秋樂萬歲享)의 글이 비문처럼 새겨져있다.
 천추락만세향(天秋樂萬歲享)의 글이 비문처럼 새겨져있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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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문학관 안마당에는 커다란 돌에 천추락만세향(天秋樂萬歲享)의 글이 비문처럼 새겨져있다. 소설 혼불에 나오는 글의 일부다. 고즈넉함 때문인지 풍경소리가 간간이 들려온다. 물레방아, 저수지, 잔디밭 등이 잘 조성된 문학관은 공원이 연상될 만큼 잘 꾸며져 있다. 혼불 문학관 건물 외벽의 두레질, 양반 기생, 환갑잔치, 옹기점… 등의 옛 풍경도 볼거리다.

혼불문학관에 들어서자 최명희의 대형 초상화가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방문객을 맞이한다. 초상화 아래에 놓여 있는 화분의 꽃송이는 저마다 고개를 숙이고 있다. 전시관에는 최명희의 생애와 약력, 필기구와 만년필, 소설의 무대 등 그녀의 삶이 고스란히 정리되어 있다.

작가 앨범, 작가 최명희의 삶과 죽음… 강모, 강실이의 사실적인 소꿉놀이, 소설속 배경들이 그대로 재현되어 있어 보는 이들을 다시 한 번 소설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작가 최명희는 "나는 원고를 쓸 때면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는 것만 같다"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혼신을 다해 영혼으로 써내려가서일까. 작가는 대하소설 <혼불>을 펴낸 지 2년 만에 세상을 뜨고 말았다.

혼불 문학관 건물 외벽의 두레질, 양반 기생, 환갑잔치, 옹기점... 등의 옛 풍경도 볼거리다.
 혼불 문학관 건물 외벽의 두레질, 양반 기생, 환갑잔치, 옹기점... 등의 옛 풍경도 볼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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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길을 따라가다 보면 노봉마을 원뜸에 최씨 종가집이 있다.
 마을길을 따라가다 보면 노봉마을 원뜸에 최씨 종가집이 있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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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서는 무엇이든지 썩어야 한다.

땅은 천한 것일수록 귀하게 받아들여 새롭게 만들어 준다. 땅에서는 무엇이든지 썩어야 한다. 썩은 것은 거름이 되어 곡식도 기름지게 하고 풀도 무성하게 하고 나무도 단단하게 키운다. 썩혀서 비로소 다른 생명으로 물오르게 한다. - 혼불 제3권 중에서

소설 혼불의 중심무대였던 종가집으로 향한다. 마을길을 따라가다 보면 노봉마을 원뜸에 최씨 종가집이 있다. 솟을 대문이 우뚝 솟은 종갓집은 몇 년 전에 복원된 것이라고 한다. 작품속 실제 모델은 남원과 임실의 경계를 이루는 수촌교 건너 임실 오수면 둔덕리에 있다. 1500년경에 세워져 수차례 중수된 이웅재 고가가 바로 그곳이다.

손꼽히는 아름다움, 구 서도역

구 서도역은 1932년에 지어졌으며 목조건물 역사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됐다,
 구 서도역은 1932년에 지어졌으며 목조건물 역사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됐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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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서도역은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역으로 손꼽힐 만큼 정말 운치 있고 멋진 곳이다.
 구 서도역은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역으로 손꼽힐 만큼 정말 운치 있고 멋진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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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문학관으로 향하는 길에 그냥 지나쳤던 서도역을 되돌아 나오는 길에 들렸다. 구 서도역은 혼불의 중요한 문학적 공간으로 강모가 전주로 유학 갈 때와 효원이 대실에서 매안으로 신행 올 때 기차에서 내렸던 장소다.

이곳은 1932년에 지어졌으며 목조건물 역사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됐다, 2006년 남원시에서 매입하여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하여 현재 영상촬영장으로 보존 활용하고 있다. 구 서도역은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역으로 손꼽힐 만큼 정말 운치 있고 멋진 곳이다.

전북 남원시 사매면 노봉리 일대에 조성된 혼불 문학관에 가면 소설 <혼불>에 나타난 한국인의 정서와 사투리, 전통 생활 습관 등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다. 혼불 문학관 뒤에는 노적봉이 굽어보고 있으며, 아래에는 노봉마을과 오수 둔덕리, 삼계석문이 보인다. 1만7650㎡(5340평)의 부지에 잘 조성된 문학관은 주변의 풍광과 잘 어우러져 정말 아름다운 곳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전라도뉴스, U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혼불, #최명희, #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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