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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목으로 쓸 장작들, 나이테가 저마다 다르다.
▲ 장작 화목으로 쓸 장작들, 나이테가 저마다 다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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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출근길을 뒤로하고 김제평야로 향했다. 아침 8시를 알리는 시보가 라디오에서 '뚜뚜뚜' 울리고, 오늘의 주요뉴스를 알리는 아나운서의 멘트가 흘러나온다. 이맘때면 동부간선도로에서 빠져나가 석계역을 향하고 있을 시간이다. 집에서 나오고 대략 20km의 거리가 그곳이었는데, 김제로 향하는 그날은 서둘지 않았는데도 서울을 벗어나 안성휴게소 부근에서 8시 뉴스를 듣는다.

몇 시간을 더 달려 목적지에 도착하니 지인이 처마밑에 화목으로 쓸 장작을 쌓고 있다. 장작의 나이테, 모양도 색깔도 각양각색이다. 하긴, 세상에 인공으로 찍어낸 것이 아니라면 같은 것이 어디 있으랴마는 나무의 속내, 죽음과 맞닿아야만 보여주는 나이테가 남다르게 보인다.

나의 속내를 다 드러냈을 때에 봐줄 만한 것이 있기나 한 것일까 생각하며, 이제 남은 시간이라도 토악질이 나질 않을 만큼의 삶은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다짐을 한다.

이방인을 무서워하지 않는 고양이, 주인의 사랑을 많이 받았나보다.
▲ 고양이 이방인을 무서워하지 않는 고양이, 주인의 사랑을 많이 받았나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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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의 무늬를 가진 고양이 새끼 두 마리가 손님을 맞이한다. 몇 개월 동안 그런대로 정성을 들여 키웠던 길고양이가 제 살길을 찾아 떠나고 처음으로 고양이를 쓰다듬어본다. 그 유전자라는 것이 무엇인지, 이놈도 쓰다듬어주니 가랑가랑 소리를 내며 꼬리를 좌우로 흔들어댄다. 강아지처럼 속도감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시계추보다 느린 꼬리 흔들리기만으로도 적개심 없이 이방인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고맙다.

집주인이 잘해주었구나. 미물을 미물로 여기지 않고, 생명으로 여기는 주인의 마음에 너른 들판 내어두고 이곳에서 살아가는 것이구나 생각하니 지인의 넓은 마음이 가늠된다.

구기자열매가 겨울햇살에 불을 밝힌듯하다.
▲ 구기자 구기자열매가 겨울햇살에 불을 밝힌듯하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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뜰에는 이런저런 나무와 꽃이 있었다. 집 주변 밭에는 뽑다가 만 무도 있고, 추수가 끝난 논이며, 들깨를 베어낸 밭과 콩이 드문드문 떨어진 콩밭도 있다. 밭 끄트머리에는 손질이 잘된 무덤도 있고, 무덤가 그늘에는 아직도 성에가 그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나의 눈길을 끈 것은 햇살에 환한 등을 켠 듯 남아있는 구기자열매였다. 말라비틀어진 것도 모자라 헤졌다고 해야 할 정도의 열매, 그러나 그 빛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혹여 배고픈 새의 먹이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넉넉해지고 따뜻해진다.

그랬다. 저리 작은 열매 하나만 보고도 행복했던 순간들을 다 잊고 살았던 날들은 내 삶을 나도 모르게 갉아 먹히고 있었던 것이다. 여전히, 그게 무슨 대수냐고 하시는 분이 계신다면 자신이 인정하든 말든 그 삶 어딘가는 허전한 구멍이 뚫린 삶일 것이다.

쇠난로 속에서 활활 타오르는 장작
▲ 난로 쇠난로 속에서 활활 타오르는 장작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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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은 쇠 난로에 화목을 집어넣었다. 화목이 활활 타오르자 온기가 실내를 감싸고, 매연과는 다른 느낌의 연기가 향수를 자극하며 방 안 가득하게 퍼진다.

살아있을 때는 꽃과 열매를 주고, 그늘과 맑은 공기를 주더니만 이렇게 죽어서 재가 되는 순간까지도 따스한 온기를 전해주는 나무가 고맙기만 하다. 속내를 다 드러내어도 아름답더니만 어쩌자고 재로 변하는 그 순간까지 그렇게 사는지 얄미울 지경이다. 재가 되어서도 또 흙을 만나 새 생명을 키우는데 일조를 하겠지?

이런 마음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자연의 마음, 남을 위해서 살겠다는 의지 때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삶을 살아가다 보니 자기도 살고, 남도 사는 자연의 무심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리라.

그저 평범한 노을빛이지만 도시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빛이다.
▲ 노을 그저 평범한 노을빛이지만 도시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빛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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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해질 녘, 나는 붉은 노을을 바라보았다.

'그래, 저 빛이야! 황홀한 빛이 아닌 일상의 빛이지만 바로 저 빛이야!'

평야를 물들이는 노을빛은 도시에서 바라보는 노을빛과는 완연히 달랐다. 그냥 바라만 보아도 하루의 삶을 반추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느낌이다. 도시의 불빛이 하나 둘 살아나며 욕망을 꿈틀거리게 하는 시간이 아니라 만물의 쉼의 시간으로 들어가는 안락한 느낌이 든다. 이것 역시 자연의 선물이 아닌가 싶다.

빈 가지에 새 한 마리가 앉아있다.
▲ 새와 나무 빈 가지에 새 한 마리가 앉아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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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돌아와 하룻밤을 지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사무실 뒤에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뭇가지 사이로 새가 날아든다. '저 새들은 이 추운 겨울 무엇을 먹고 살까?' 연민의 마음이 든다. 어제 김제 그곳 콩밭에 떨어져 있던 실한 콩들을 떠올린다. 그것이 농부의 콩 세 알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하나는 자신의 몫으로, 하나는 새들의 몫으로, 하나는 땅속의 벌레를 위하여!

자유로이 날아갈 수 있음에도 도시에 깃들어 사는 새도 나름 이유가 있겠지만, 나처럼 이기적인 마음으로 나를 갉아먹으며 살아가는 삶은 아니길 바란다.

속내를 다 드러내어도 아름다운 그들을 만난 하루, 그 하루가 있어 마음이 한결 넉넉해지는 날이다.


태그:#장작, #구기자,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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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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