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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먹으면 그 사람의 또 다른 면을 안다고 했던가? 술에 관한 이야기는 참으로 많다. 하기야 술을 먹고 실수를 했다거나, 술을 먹고 막말로 필름이 끊겼다거나 하는 것은, 남자들은 한 두 번은 해본 소리다. 그것이 자랑일리도 없는데 장한 일이나 한 것처럼 떠드는 것도, 알고 보면 술로 인한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조금은 희석시키고자 하는데 있다고 본다.

지금도 난 집안에서는 혼자 술을 마시지 않는다. 술을 마시면서 혼자 세워놓은 법칙이다.
▲ 술자리 지금도 난 집안에서는 혼자 술을 마시지 않는다. 술을 마시면서 혼자 세워놓은 법칙이다.
ⓒ 하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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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의 모든 술을 다 섞어 마신다

참 술을 먹는 버릇 치고는 별로 좋지 않은 버릇이다. 그렇게 먹여놓은 술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했는지, 지금 와서 생각을 하면 참 미안스럽기도 하다.

오래 전 대전에서 살 때 집에 찾아오는 사람들은 대개 연구단지 등에서 잘 나간다는 인사들이었다. 저녁 무렵 집에서 만나면 으레 술을 마시는 것이 기본이었다. 그런데 얼마 만에 만나 먹는 것이 아니고, 거의 날마다 모였으니 문제가 될 수밖에. 우선 집안에 있는 모든 술을 다 들고 나온다. 그것을 큰 함지박에 다 섞어 대접으로 한 잔씩 돌리는 것이다. 요즈음 한창 술고래들이 즐긴다는 '소백산맥'은 저리가라다.

아무래도 술을 잘 못 마시는 녀석들은 곤욕을 치러야 할 판이다. 그렇다고 함부로 그 자리를 피할 수도 없다. 일주일 내내 술을 마시고, 그것도 모자라 집을 나서 가까운 곳에 가서 또 마셔댄다. 술하고 원수가 진 일도 없는데, 어째 그리 마셨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마신 술로 한 달이면 엄청난 빈병이 나온다. 그 빈병을 처리할 때마다 주위 눈치도 볼 만하지만, 오히려 어깨를 펴고 나섰으니 참 지금 생각해도 낯 뜨거운 이야기다.

10년이 훨씬 지났는데도 "술 한 짝 가져 가셔야죠?"

방송 일을 접고 나와서 혼자 일을 하겠다고 덤비다가, 남들이 흔히 말하던 부도라는 것을 당했다.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악몽과 같다. IMF로 인한 어려움이 당시 '사채'라는 것을 빌리게 만들었다. 일 년 만에 내가 갚은 돈은, 빌린 돈의 5배에 이르렀다. 엄청난 고통이었다. 날짜가 하루만 늦어도, 별 견디기 힘든 상말을 들어가면서 말이다. 그 당시 내가 먹는 술은 엄청났다. 아침에 나가 일을 보고 나서 오후에 들어오면, 그때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한다. 새벽 2~3시까지 이어지는 술 마시기는, 주위사람들 말로는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들이부었다고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래도 체질은 타고났는지, 그렇게 마시고도 다음날 아침이면 일어나 일을 했다. 아마 체질이라기보다는 정신력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당장 하루라도 일을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술을 마시다 보니 술을 살 돈이 떨어졌다. 당시는 정말 술을 마시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을 정도였기에, 할 수 없이 마시고 내팽개친 술병을 주워 모았다. 술병만 170병이 넘는다. 얼마나 마신 것인지. 섞어 마시는 버릇이 있던 나이기에, 막걸리나 맥주 플라스틱 빈병은 더하지 않았다. 그 술병을 모아서 농협에 갔다. 빈병과 술을 바꾸러 간 것이다.

"아니 마을에 다니시면서 빈병을 주워 오셨나 봐요?"
"아뇨, 저 형님이 다 마신 건데요."
"몇 달이나 드셨어요?"
"몇 달은요. 한 달이나 되었나."

같이 간 아우 녀석과 농협매장 부장의 대화다. 여기서 저 형님은 당연히 나를 말한다. 그 말을 들은 부장님. 아무 말도 없이 술 한 짝을 갖다가 놓는다. '이거 갖다 드세요'라는 말과 함께. 아마 그 많은 술을 먹다가, 돈이 없어 병을 팔아 술을 사겠다는 내가 참으로 딱해 보였던 모양이다. 그 때는 한 짝이 24병이었다. 그 후 그 농협에만 가면 '한 짝 가져 가셔야죠?'라고 말한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 부장님 '한 짝 가져 가셔야죠?'가 인사가 되어버렸다.   
  
공병이 쌓여갈수록 술에 대한 이야기도 늘어난다.
▲ 공병 공병이 쌓여갈수록 술에 대한 이야기도 늘어난다.
ⓒ 하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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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바람이 되었다

그런 일이 있고 난 후 주위 사람들은 내가 술을 얼마나 잘 마시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아무리 술이 취해도 실수를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나도 술을 마시면서 두어 번 실수를 한 적이 있지만, 그 외에는 거의 술로 인한 추태를 부려본 기억이 없다. 아마 어릴 적부터 아버님이 늘 하시던 말씀을 들어서인가 보다. '술을 마시고 주정을 하려거든, 차라리 술을 입에 대지 마라'는 말씀이다. 그래서 술이 취해 정신이 몽롱해지면, 무조건 집으로 향한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찾기 위해 전화를 걸고 난리를 친다. 그러나 한 번 집에 들어오면 다시는 나가본 적이 없다. 그것이 나를 지키는 방법이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 나를 보고 '바람처럼 사라진다'고 이야기들을 한다. 기분 좋게 술 마시고 난 뒤, 혹 실수라도 하면 그 술에 취해 주정이라도 할까봐 생긴 버릇이다. 지금은 술 마시다가 슬그머니 빠지면 모두 그러려니 한다. 적어도 술을 몇 차례 함께 마셔본 사람들이라면, 사라진 나를 찾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저 바람이려니 생각을 해준다는 것이다. 지금도 난 술을 마시면서 변하지 않는 철칙이 있다.        

※ 집안에서는 혼자 절대 술을 마시지 않는다.
※ 기분 나쁜 일이 있을 때는 절대 술을 마시지 않는다.
※ 마음이 편치 않은 사람이 있으면, 함께 술을 마시지 않는다.
※ 술이 취해 몸을 가누기가 힘들면 바로 집으로 향한다.   

한 번의 실수가 술버릇을 바꿔  
     
아마 이런 나름대로의 법칙을 지키고 있어서인지, 아직은 술을 먹고 추태를 부리지는 않았다. 그리고 술을 마시다가 사라지기 때문에 난 '바람'이 되었다. 하지만 난 앞으로도 그 바람으로 살려고 한다. 오래도록 건강하게 술을 마실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바람이 된 것은 군에 갔다가 첫 휴가를 나오던 날 한 번의 실수 때문이다.

밤새 마시고 새벽에 통행금지 해제가 되어 술집을 나섰다, 깨어보니 집이다. 그런데 아버님께서 노발대발하신다. 어린놈이 버릇없는 짓을 해 집안 망신을 시켰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비틀거리고 집에 오는데 아버님 친구 분이 사시는 집 창문을 건드렸다고 한다. '누구요?' 하고 문을 여니 '나다'라고 라면서 비틀거리고 집으로 온 것이다. 그 일이 아버님 귀에 바로 들어가고, 난 마을을 다니면서 사죄를 해야 했다. 마을에서는 '그런 줄 몰랐는데'라는 말을 들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이야기다. 그 일이 내 술 버릇을 고친 것 같다. 지금 생각해도 식은땀이 흐르는 사건이었다.

연말이 가까워지면서 많은 술자리가 생긴다. 난 오늘도 어김없이 바람이 되어 사라질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그들의 특별한 술버릇을 공개합니다> 응모글입니다



태그:#술, #특별한 버릇, #공개, #기사공모,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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