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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베니스 수로 위의 좁은 골목길과 다리는 지구상에서 따라올 곳이 없는 흥미로운 길이다. 나는 베니스 지도를 바지의 호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나는 사람들이 가는 곳으로, 길이 알려주는 대로 가기로 했다. 나는 길을 찾는 본능에 나를 맡기고 미로 속을 걸었다. 운하 사이 골목길은 마치 거미줄과 같이 이리저리 이어지고 있었다. 나의 가족은 미로 찾기에 나서는 어린아이와 같았다. 오늘 내 가족여행의 주제는 미로 기행이었다.

베니스에서는 건물에 붙은 이정표만 잘 보고 다녀도 길을 찾을 수 있다.
▲ 리알토 안내판. 베니스에서는 건물에 붙은 이정표만 잘 보고 다녀도 길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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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갈림길의 건물에는 여행자들의 길 찾기를 돕기 위한 이정표가 있다. 베니스 미로에서 가장 중요한 이정표는 산마르코 광장(San Marco Piazza)과 리알토(rialto)다. 이 두 방면에 대한 방향감각만 있으면 미로에서도 길을 잃을 염려는 거의 없다.

골목길 양편으로는 개성을 자랑하는 예쁜 가게들의 연속이다. 유리공예 가게, 레이스용품 가게, 수제 인형가게, 체스가게, 옷가게, 악세사리 가게들이 끝도 없이 이어지고 그 사이사이에 카페, 레스토랑이 들어서 있다. 가게들은 모두 다른 저마다의 독특함이 있으며 아기자기하다. 특히 손으로 만든 기념품들은 주제도 다양하고 크기에 따라 가격도 다양하다. 나는 가게 점원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이 가게 저 가게를 들어갔다.

다리 양쪽에 아케이드 상가가 있어서 다리로 들어섰는지 헷갈린다.
▲ 리알토 다리 입구. 다리 양쪽에 아케이드 상가가 있어서 다리로 들어섰는지 헷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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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들을 둘러보며 걷다보니 아케이드 가게들이 언덕 같은 곳으로 높게 이어진 곳이 나온다. 이곳 가게들 앞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몰려서 주변은 활기가 넘친다. 수많은 인파로 바글바글한 이곳은 리알토 다리(ponte di rialto)였다. 다리 양쪽은 아케이드 가게들로 막혀 있었다. 다리 위에 상점들이 있는 모습이 이국적인 데다가 중세 베니스의 모습도 그대로 살아 있어서 운치 있다.

다리의 정상에 오르니 이곳이 베니스라는 사실이 실감났다. 이 리알토 다리는 S자 모양의 베니스 대운하(Canale Grande) 중 폭이 28m로 가장 좁은 곳에 건설된 다리다. 대운하의 가장 중간 부분을 지나는 다리이기도 하다. 이 다리는 대운하의 큰 다리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오래된 다리다.

이 다리가 1591년에 완성되었으니 우리나라에서는 임진왜란이 일어나던 무렵에 만들어진 다리다. 16세기에 중건되기 전에는 목재로 지어졌었다고 하는데, 운하 위 나무다리도 상당히 어울렸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셰익스피어의 소설 <베니스의 상인>에도 나올 정도로 이 다리는 과거부터 베니스를 상징하는 다리였다.

다리의 윗부분은 백색의 대리석이 지붕을 받치고 있었다. 나는 대운하를 감상하기에 가장 좋은 곳인 다리 중앙의 가장 높은 부분에 가족과 함께 섰다. 다리 중앙 부분은 아치로 되어 그 밑으로 다양한 배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베니스 대운하를 가로지르는 가장 아름다운 리알토 다리에서 본 전경이다.
▲ 베니스 대운하. 베니스 대운하를 가로지르는 가장 아름다운 리알토 다리에서 본 전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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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위에 서 있으면 베니스가 왜 물의 도시로 이름을 날리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운하 위에는 수상버스와 곤돌라가 서서히 세월을 낚고 있고 중세의 모습에서 별로 변한 게 없어 보이는 수로변 집들은 태양빛의 방향에 따라 어둡고 밝게 빛나고 있었다.

이 베니스 제일경 앞은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당연히 다리 위에는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줄을 서듯이 몰려있었다. 나도 대운하를 배경으로 우리 가족만 들어간 사진을 찍으려고 했으나 그런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아예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수많은 사진기들 사이에서 기념사진을 필사적으로 찍었으나 모든 사진마다 우리 가족 옆에는 운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여행 친구인양 함께 찍혀 있었다. 나는 이 여행자들이 나의 가족과 함께 여행사진을 남긴 것은 억겁의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다리 아래 운하 양쪽으로는 아드리아해(Adriatic Sea)에서 잡은 해산물을 파는 식당과 노천카페들이 밀집해 있다. 다리 주변 식당에서 현지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면 낭만적이겠지만 식당 음식에 대한 맛의 만족도가 높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식당 앞은 그냥 지나쳤다. 해산물은 싱싱하나 음식 맛이 한국사람 식성에 안 맞는 곳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다리 아래 리알토 지역으로 들어섰다. 오늘 베니스 미로 여행의 핵심장소로 내가 점찍어 놓은 곳이다. 리알토는 베니스에서 사람들이 최초로 살기 시작한 곳으로 높은 제방이라는 뜻의 '리보 알토(Rivus Altus)'에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 예로부터 베니스 사람들이 이용하던 시장과 은행이 집중되었던 이 지역은 베니스에서 가장 복잡하고 시끌벅적한 곳이다. 리알토의 큰 상권을 이용하기 위해 운하 건너편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이곳은 중세시대의 베니스 전성기에 물산이 거래되던 무역의 중심지였다. 이곳에도 역시 베니스에 지천으로 널린 유리제품 가게와 가면 가게, 보석가게가 많지만 다리 건너편과는 다르게 여행자들을 유혹하는 먹을거리들이 널려 있다. 음식의 가격도 서민적이어서 여행자들에게는 더 없이 좋은 곳이다.

리알토의 시장에는 각국의 여행자들뿐만 아니라 현지인들도 많다. 시장에 들른 베니스 사람들과 시장 상인, 외국 여행자들이 섞여 거대한 물결을 이루며 움직이고 있었다. 흥미진진한 사람구경이 시작되면서 베니스의 미로 여행은 잠시 지체되었다. 하지만 나는 이곳에서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인파 사이에 자리한 생생한 먹을거리의 현장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나와 아내는 이 시장의 과일가게에서 과일을 고르기로 했다. 우리는 가장 길목이 좋은 곳에 자리 잡은 한 과일가게로 향했다. 이 가게에는 사람들도 가장 많이 몰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가게이니 과일의 맛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장에서는 다양한 과일을 파는 과일가게의 인기가 좋다.
▲ 리알토 시장 과일가게. 시장에서는 다양한 과일을 파는 과일가게의 인기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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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 과일의 싱싱한 향기가 코를 간질였다. 가게의 판매대에는 오렌지, 자두, 청포도, 수박, 키위, 복숭아, 사과, 배가 가득 쌓여 있었다. 다양한 과일을 다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인데다가 과일을 직접 깎아 먹기가 불편한데 다행히 가게에서는 모든 과일을 조그맣게 잘라서 플라스틱 컵에 넣어 팔고 있었다.

사과와 배는 우리나라 것이 가장 맛있는 것으로 유명해서 제외시키고 그 외의 과일이 들어있는 과일컵 2개를 샀다. 두 컵의 과일 종류는 조금 달랐다. 과거 이탈리아 여행 시에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어떤 과일을 먹는지가 궁금했고 먹는 과일도 많이 달랐지만 이제는 우리나라나 이탈리아나 먹는 과일의 종류에는 큰 차이가 없어졌다. 과일의 맛도 비슷해서 크게 특이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나는 베니스 시장에서 산 과일을 들고 베니스의 시장을 한가하게 둘러보는 재미를 맛볼 수 있었다.

과일가게 옆 가게는 이탈리아 파스타의 다양한 재료와 소스를 파는 곳이었다. 짧고 울퉁불퉁한 파스타 재료인 펜네(pennette), 납작하게 뽑은 파스타 재료인 린귀네(linguine), 바게트 빵에 치즈 등을 바르고 말린 부르스케타(bruschetta), 말린 파슬리, 올리브 기름, 체리 쨈, 피클 등을 먹음직스럽게 포장하여 개당 약 2유로를 받고 팔고 있었다.

가격은 아주 저렴했지만 방금 전에 스파게티로 점심을 먹었기 때문에 눈요기만 했다. 지금 생각하면 비싸지도 않은 파스타 재료를 사올 생각을 왜 안 했는지 두고두고 후회가 된다.

현지인들이 많이 찾는 야채가게는 활기가 넘친다.
▲ 에르베리아 야채시장. 현지인들이 많이 찾는 야채가게는 활기가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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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둣가에는 과일과 채소를 파는 에르베리아(erveria) 시장이 있다. 이곳 역시 현지인들과 여행객들이 많이 몰리는 활기찬 수변 시장이다. 한국 사람과 이태리 사람들의 외양이 다르듯이 이 시장의 채소와 과일들은 우리나라 것과 생긴 모습이 조금씩 다르다. 이런 재래시장은 현지인들이 하루하루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곳이다. 인상적인 것은 과일이나 채소를 파는 상인들의 옷차림이나 행색이 전혀 누추하지 않고 아주 깔끔하다는 점이다.

이 시장 주변은 낯이 익었다. <007 카지노 로얄>이라는 영화에서 보면 주인공 제임스 본드가 대운하를 따라 리알토 다리 아래의 이 부두까지 요트를 타고 도착하는 장면이 나온다. 베니스의 수로에서는 수백 년 동안 요트가 지나가지 못했지만 007 영화촬영을 위해서 특별히 요트 사용 허가를 받았다고 한다. 실제로 베니스의 수로를 보니 요트는 전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 영화에서 제임스 본드가 애인의 납치범들을 쫓아갔던 수상가옥은 바로 이 야채시장 맞은편에 자리 잡고 있다. 영화에서 바다 속으로 가라앉던 그 수상가옥은 현재 운하 앞에 멀쩡하게 서 있다. 책과 달리 영화를 통해 눈에 박혔던 영상기억은 영화촬영 현장에서 자신이 경험한 듯이 생생하게 복원된다.

영화의 한 장면이 오랜 역사유적의 관광지에 스토리를 더 하고 그로 인해 베니스의 여행 콘텐츠는 더욱 풍성해지고 있었다. 우리나라도 서울이나 지방 지자체에서 영화, 드라마에 유명 여행지를 아름답게 담는 노력을 해야 하는 이유가 베니스를 보면 명확해진다.

여성들이 주로 입는 앞치마에 남자 성기를 그려 넣어 매우 자극적이다.
▲ 옷가게의 앞치마. 여성들이 주로 입는 앞치마에 남자 성기를 그려 넣어 매우 자극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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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채시장 앞에는 옷가게가 있다. 그런데 이 옷가게, 아주 인상적이다. 가게의 가장 앞쪽에 앞치마 여러 개를 걸어두고 팔고 있었다. 대개 여자들이 사용하는 앞치마에 로마시대 조각상 같이 미끈한 남자의 벗은 몸매가 사실적으로 박혀 있었다. 이 앞치마를 두르면 여자의 팬티 부분에 남자 성기가 걸치게 되는 것이다. 이 앞치마가 시선을 확 잡아끌면서 손님들을 옷집으로 유인하고 있었다. 참으로 기발한 발상에 웃음이 흘러 나왔다. 관행적인 생각을 조금 비틀어서 생각한 이 앞치마는 사람들에게 웃음도 선사하고 가게 매출에 일조하고 있었다.

이 거리에는 비싼 명품이 아니지만 직접 손으로 만든 저렴하고 예쁜 제품들이 많았다. 대부분의 가게들은 작지만 화려하고 풍성했다. 길마다 가게마다 유리 세공품이 밝게 빛나고 가면들은 다양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이 거리는 베니스의 느낌을 전해주고 있었다.

베니스 수로 위의 미로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내 사랑하는 아내와 딸과 이 미로를 계속 걸어가기로 했다. 우리의 앞으로 수로 위 미로와 가게들이 자꾸만 이어지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이탈리아, #베니스, #리알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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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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